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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고장난 어느 날 저녁의 삼성전자 서비스

우리는 각종 기업의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합니다. 고객은 왕이고, 친절한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 안에서 일하는 진짜 사람을 잊기 쉬운 것 같습니다. 냉장고가 고장난 어느 날 저녁,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편집자)

냉장고가 고장나면 우리는 사소하게 절망한다  (사진: Gunter Panzerfaust , CC BY NC ND)

냉장고가 고장나면 우리는 사소하게 절망한다
(사진: Gunter Panzerfaust , CC BY NC ND)

냉장고 고장나다

전화를 걸자 기계가 받는다. 근데 버튼을 누르는 대신 뭐가 고장 났는지 말해 달란다.

“냉장고”
“네, 고객님 냉장고 담당자입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셨습니까?”

신기함과 최인훈이 떠올랐지만, 녹아 문드러진 식자재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어서 상황을 설명해 줬다.

“삼성 제품은 맞으시죠?”
“맞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럼 내가 삼성에 전화해서 엘지 고쳐달라고 하겠니?’ 라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가전 양사라는 놈들이 회사명 걷어내고 디오스니 하우젠이니 하고 있으니 이게 삼성인지 엘지인지 알게 뭐냐 일단 걸자 하는 사람도 있겠다 싶더라.

고장 수리에는 옵션이 두 가지가 있어서, 상담원이 처치방법을 알려 주고 그대로 해 봐서 되면 OK를 할 수도 있단다. 그래도 안 되면 기사 호출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저 직장 다니는 독거노인입니다.”
“네?”
“설명 듣고 처치할 사람이 집에 없어요. 제가 저녁에 한 다음에 내일 아침에 요청 전화를 다시 걸면…”

기사가 배정되다

기사가 배정되었다. 폭풍 일 처리를 하며 휴가 기안을 썼다. “사유 : 냉장고, 아니 가사” 로 기안했으나 막판에 다시 폭풍처럼 밀린 일이 계속 나왔다. 수리 기사에게 전화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뒷타임 있으시면 땡겨 하세요. 저 지금 퇴근해요. ㅠㅠ”
“아니에요. 좀 기다렸다 출발하죠, 뭐”

수리 기사 도착. 나보다 옷을 더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는 사실에 절망…이 아니라, 하여튼 맞아들였다.

보더니 끄응 한다. 못 고칠 것 같다고. 그러면서 뜯어서 보여주고 설명을 해 준단다. 그런데 뜯어서 보더니 “될지도 모르겠네요”하면서 냉장고 안에 쌓인 얼음을 한번 녹여 보겠단다. 스팀기를 이용해서 녹이는데, 어찌나 얼음이 많이 들어 있던지 냉장고 밑에 흐뭇하게 물이 흘러, 나는 대야를 받치고 물을 닦아내고, 수리 기사는 계속 얼음을 녹였다.

너무 너무 너무 친절한 기사

녹여서 재가동시킬 수는 있지만, 냉장고 증발기 안에 쌓인 성에를 녹이는 히터가 망가졌을 가능성이 높단다. 히터가 망가지면, 길면 1주일. 짧으면 3일 안에 다시 멈출 것이며, 그때는 다시 사는 게 낫겠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동안 즐거웠어…’가 아니라 희망을 찾기로 해 봤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에… 뭐 이물질이 쌓여서 아래 배수구가 막혔던 거라면, 가능하죠.”

물론 배수구에 이물질이 걸려 있었다면 아래 빠져나왔겠지. 결국, 냉장고는 다시 멈출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구나. 그동안 즐거웠어…

결빙 제거는 삼만 원인데, 출장비만 받겠단다. 그러면 미안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완전히 고쳤다는 보장을 못 드리니까” 실제 수리비를 받을 수 없단다. 헛된 희망을 품은 자라, 보장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확실히 서비스를 잘해 주는 건 맞다.

전화 상담원이 옵션을 주더라는 얘기를 잠시 했는데, “일단 저희는 나오면 출장비 만 원이라도 발생하니까요…” 하며 눙친다. ‘겨우 그거하고 돈 받겠다는 거냐’는 사람이 있거나, 출장비를 발생시킴으로써 왠지 나쁜 이미지를 주는 것을 걱정하나 보다.

원래 결빙 수리비를 주려고 했는데 “제가 수리를 잘했다는 자신이 없어서 받지 않아요”라며 거절하길래 못 줬다(책이라도 한 권 꺼내 줄 걸 그랬네.). 참 열심히 설명하고 내부 구조도 같이 보고 했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꼼꼼하게 말해 주던지, 결빙을 녹였어도 결국 다시 얼 가능성이 무지 높다는 걸 중학생 정도면 알아들을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설명하고, 이해시켜도, 결국에는 “컴플레인이 들어오기도 한다”더라.

“고객님”의 폭력과 “매우 만족”의 상관 관계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너무나 편하게 당일 저녁에 오는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었고, 내 일정에 맞추느라 퇴근 시간까지 늦어진 기사에게 냉장고의 작동 원리와 구조, 그리고 현재의 문제 상황과 여러 가지 냉장고 고장의 가능성에 대한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며, 이를 통해 이번 주말에라도 냉장고가 다시 멈출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내가 이 모든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낸 돈은, 겨우 만 원이었다. 그중 센터가 먹고 삼성이 먹고 나면 뭐가 남겠는가. 그걸 수당으로 받는 사람이, 내가 하는 온갖 잡소리를 다 들어 주며 맞장구도 치고, 좋아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더라.

삼성 안에서 일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가해지는 “고객님”의 폭력(어찌 보면 나도 그런 짓을 한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을 “매우 만족” 시키기 위해 그들을 쥐어짜고, 고객님께 반항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그렇게 나날이 서비스의 질을 높여가는 삼성.

서글퍼졌다.

출처: 영삼성

(사진: 영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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