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요양병원 입원 못 줄이면 2030년 건강보험 191조 원 지출… 병원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
소셜코리아 제휴 칼럼.
대안 담론을 위한 열린 공론장, 소셜코리아의 칼럼을 슬로우뉴스에 공동 게재합니다. 오늘은 김승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의 칼럼입니다. 김승연 연구위원은 지역사회 돌봄 정책과 사회복지 재정을 연구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지역사회 공공 돌봄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새판 짜기』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지난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오랜 시간 시민사회와 현장, 학계가 요구해 온 지역사회에서의 돌봄이 마침내 제도의 형식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서 곧바로 실효성있는 돌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를 현실에서 움직이게 할 재정은 턱없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전국 시행을 위해 편성된 예산은 914억 원에 불과하며, 그 중 지자체가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돌봄 사업비는 620억 원뿐이다. 이는 시민사회가 요구한 예산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국 시군구로 나눠보면 평균 2.7억 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 재정으로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대상자를 발굴하며, 보건·복지·의료·요양 서비스를 연계하는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국 시행이라는 이름과 달리, 예산 편성 원리는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재정구조 문제 방치하면 2030년엔 건강보험 191조 원 지출
문제는 정부 예산 규모만이 아니다. 돌봄체계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구조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돌봄에 쓰는 공공재정은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시설에 사용되는 재정으로 2023년 기준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요양병원 진료비는 약 5.3조 원, 장기요양보험의 시설급여비는 약 5.1조 원으로 두 항목만 합쳐도 이미 10조 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돌봄 관련 재원은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국비, 지방비로 나뉜 채 각자의 칸막이 안에서 따로 작동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사회에서 예방하고 지원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불필요한 병원과 시설 입소가 반복되면서 재정은 비용이 더 큰 병원과 시설 쪽으로 계속 흘러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에 따르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병상의 약 절반은 이른바 ‘사회적 입원’이라고 한다. 집과 지역사회 기반 돌봄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병원이나 시설에 가지 않아도 됐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역사회 돌봄이 제대로 작동되면 가장 직접적인 재정 이득을 얻는 쪽은 바로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이다. 지역에서 재가돌봄, 방문보건, 퇴원연계가 제때 이루어지면 불필요한 요양병원 입원을 줄이고 시설 입소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국회예산정책처는 오는 2032년에 장기요양보험 지출이 34조 원,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2030년에 최대 19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처럼 재가 돌봄 기반 없이 병원과 시설 중심 지출이 누적되는 구조를 방치하면 돌봄 재정은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재정 여력 없는 지자체…지역별 돌봄 불평등만 커질 것
지역돌봄을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는 재정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 시군구 사회복지 총예산 중 지자체 자체 사업 예산 비중은 불과 10%를 밑돈다. 게다가 국고보조 사업은 항목별로 용도가 세세하게 정해져 있어 지자체가 지역 현실에 맞게 재량을 발휘할 여지도 별로 없다.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최소한의 예산만 지원하고 지역에 ‘통합적으로 해보라’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단체장의 의지와 재정 여력이 있는 지자체는 어느 정도 보완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신청 창구만 열어두고 실질적 돌봄이 보장되지 않는 반쪽짜리 사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돌봄의 권리가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지역의 관심과 재정력에 따라 갈라지는 불평등한 권리가 되는 것이다.
돌봄 재정 설계를 위한 세 가지 원칙
현재의 턱없이 부족한 예산은 당장 확대되어야 하지만, 단순한 예산 증액 요구를 넘어서서 돌봄의 재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매년 정부예산을 편성할 때 몇 개 사업 항목을 조금 늘리고 줄이는 방식으로는 지역통합돌봄의 기반을 만들 수 없다. 돌봄이 지자체를 통해 자율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단년도 사업비의 관리가 아니라 전반적인 돌봄 재정 구조의 전략적 설계를 통해 재편해야 한다.
첫째, 국가-지방 공동책임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자체가 통합돌봄을 실제로 운영하려면 전담팀 인건비, 통합사정 및 사례관리 체계, 지역케어회의 운영, 퇴원연계 시스템과 같은 기본 운영기반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전국 공통의 기본 기능은 국비 중심으로 책임지고, 지역 특성에 따라 추가되는 서비스는 지방이 자율적으로 설계하되 중앙이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체계화 되어야 한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고 돌봄수요가 높은 농산어촌, 인구감소지역, 초고령 지역 등에 탄력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포괄보조 방식의 재정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의 돌봄 재정은 부처별·사업별·대상별로 지나치게 쪼개져 있다. 개별 사업별로 용도가 정해지고 중앙부처가 관리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사람 한 명의 삶을 중심에 놓고 필요한 서비스를 유연하게 연계 통합하기 어렵다. 재정의 분절이 서비스의 단절로 이어지는 셈이다. 대안인 포괄보조 방식의 핵심은 중앙이 공통 목표와 최소 기준을 제시하고, 지자체는 그 범위 안에서 지역의 인구구조와 돌봄 공백에 맞춰 서비스와 인력을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셋째, 중장기적으로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국비·지방비를 연계하는 돌봄재정 통합구상을 시작해야 한다. 지자체에 ‘통합돌봄 기금을 설치하고,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 내에 지역 돌봄 계정을 만들어 지자체로 재정을 이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요양병원의 장기입원 재정 일부를 지역사회 복귀와 정착 지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와 지자체 돌봄예산을 어떻게 결합해 시설 입소를 예방할 수 있는지, 국비와 지방비를 어떤 기준으로 묶어 지역 단위 통합재정으로 운영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청사진이 절실하다. 돌봄통합지원의 완성은 의료·요양·복지·주거를 떠받치는 여러 재정 흐름을 사람·지역사회 중심으로 다시 묶는 데 있다.
가족의 희생? 지방 정부의 선의? 재정으로 풀어야 한다.
물론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은 법률에 따라 정해진 급여에만 지출하도록 되어 있어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역사회 돌봄이 강화되려면 불필요한 입원과 시설 입소가 줄고, 그 재정적 이득이 결국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이 바로 과감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돌봄은 더 이상 가족의 희생이나 지방정부의 선의에 맡겨둘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돌봄은 모두의 삶을 지탱하는 기본권이며, 이는 치밀한 정책구조와 안정적인 재정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법 시행은 시작일 뿐이다. 돌봄통합지원을 제대로 하겠다면, 단년도 편성과 파편적인 지원을 넘어서 대전환적 돌봄재정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시작부터 빈곤한 돌봄통합지원으로는 그 누구의 삶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