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성장 중심 국정이 놓치고 있는 복지국가 청사진. 이재명 정부, 복지를 국정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우석진 /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7분)
이재명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이 위기의 무게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정부가 앞세우는 것은 성장·투자·AI·산업전환·지역 활성화다. 반면 복지·재분배·사회보험·실업보호·돌봄은 늘 뒤로 밀린다. 성장이 본문이고 복지는 부록인 듯하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출신이어서인지 보건 분야만 집중하는 것 같다. 통합돌봄 정책이 있긴 하지만, 사회복지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비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청와대에서 이 분야를 담당하는 사회수석의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국정에서 사회복지의 존재감이 얼마나 희미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조화된 불평등…기회와 선택권 격차로 이어져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소득분배 지표를 보면 최근 분배 상황이 다시 악화

자산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순자산 지니계수 역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최근 들어 그 폭은 더 커졌다.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는 가운데 자산 불평등까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단순한 경기 국면이 아니라 구조적 양극화의 심화 국면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함께 보유한 계층은 상승기뿐 아니라 조정기에도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강하다. 무주택이면서 금융자산도 부족한 계층은 전월세 부담, 금리 변화, 소득 충격을 더 직접적으로 짊어진다. 결국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함께 가진 계층과 어느 쪽도 갖지 못한 계층 사이의 복합적 격차로 나타난다. 이 차이는 재산의 양을 넘어 기회와 선택권의 격차로 이어진다.
저출생이 자산 불평등 더 굳힌다
이런 사회 구조 앞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성장의 과실이 나중에 흘러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기회를 재배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더 두터운 복지국가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행보를 보면 그런 복지국가의 비전은 선명하지 않다.

국정에서 실종된 복지…기술적 진보 비용은 제도 문제
정부의 발표를 보면 취약계층 지원, 생계보호 강화, 안전망 확충, 비정형 노동자 보호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국정의 중심 철학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성장동력 회복이 우선이고, 투자 확대가 핵심이며, AI와 산업정책이 미래의 해법이다. 복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완화하는 보완 장치에 그치고 있다.
소득재분배가 뒷받침되지 않은 성장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미 강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몰아주고, 약한 사람에게는 더 큰 적응 비용을 떠넘긴다.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은 정책 변화와 시장 변동 속에서도 새로운 수익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충격을 완충할 장치 없이 더 쉽게 흔들린다. 정부가 자산시장과 주가의 반응에는 민감하면서도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소극적일 때, 정책은 자산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가 던지는 경고는 그래서 더 무겁다. 두 경제학자는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저절로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낙관론을 비판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기술적 진보는 자동으로 분배되지 않았다. 어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사용되고, 그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변화의 비용을 누가 떠안는가는 결국 권력과 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하고 안전망이 빈약할 때 기술혁신은 다수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소수의 이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성장과 혁신이 공동의 번영으로 이어지려면 국가는 그 과실의 분배 구조를 적극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기술 변화가 빠를수록, 시장의 파괴력이 클수록, 국가의 사회정책은 더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희미한 복지국가상, 취약한 사회안전망
지금 한국이 바로 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정부는 AI와 첨단산업, 생산성 혁신과 산업구조 개편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 변화가 커질수록 전면에 나와야 하는 것은 복지와 안전망이다.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은 일부에게는 기회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해고·전직·소득 감소·경력 단절·노동의 불안정화를 뜻할 수 있다.
이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실직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소득보전 체계,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재교육과 전직지원, 의료와 돌봄의 공백을 메울 공공체계, 주거비 부담을 낮출 제도를 함께 내놓는 것이다. 이런 장치 없이 기술 혁신만 앞세우는 정부는 강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약한 사람에게는 더 빠른 불안을 제공할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고용유연성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제 인식 자체는 옳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가지려면, 해고와 전직의 위험이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직장을 잃는 순간 집세와 대출 상환, 교육비와 의료비, 돌봄 부담이 한꺼번에 짓누르는 사회에서 유연화는 개혁이 아니라 공포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아직 적당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했다.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단시간 노동자·특수고용 노동자의 상당수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중장년층 전직 지원은 약하고, 상병으로 일하지 못할 때 버틸 소득보장 체계도 충분하지 않다.
국가가 먼저 ‘일자리를 잃어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를 증명한 뒤에야 유연화는 사회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유연화의 필요성은 말하면서도, 그것을 감당할 사회적 기반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가장 큰 정책적 취약점이 있다. 복지국가의 상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복지의 청사진을 주도해야 할 사회수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복지…국정 중심으로 끌어올리자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잠재 위험은 성장의 과실이 사회에 퍼지지 못하고, 불평등이 계층이동의 희망을 무너뜨리며, 노동자와 청년이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데 있다. 복지가 약한 사회에서 성장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내수 소비 기반은 취약해지고, 교육 기회는 세습되며, 정치적 분노는 커지고, 개혁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약해진다.
양극화 극복을 말하기 전에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복지가 국정의 맨 앞줄은 아니더라도 맨 뒤에 쳐져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 고용보험 확대,
- 상병수당 제도화,
- 돌봄의 국가책임 강화,
- 청년·무주택층 주거 안정,
- 중장년 전직훈련 확충,
-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사회보험 편입 같은 청사진을 전면에 놓아야 한다.
아울러 금융자산이 거의 없는 계층에게도 장기저축이나 매칭형 지원 등을 통해 최소한의 자산 형성 기회를 넓혀야 한다. 지금 한국의 격차는 집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과 근로소득만으로 오늘을 버티는 사람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다.

정치의 역할은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을 위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장이 만들어내는 위험을 공동으로 분담하게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기술과 성장의 속도를 자랑하는 정부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끝까지 붙드는 정부여야 한다. 성장은 자동으로 공동번영이 되지 않는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결국 제도다.
AI와 산업전환을 말하려면 그보다 먼저 변화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답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말하려면 그보다 먼저 안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면 취약계층 지원 몇 가지를 나열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소득과 자산, 고용과 주거, 돌봄과 노후를 함께 다루는 구조적 복지개혁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복지를 국정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양극화를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양극화를 관리하는 정책에 머물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성장의 약속만이 아니다. 그 성장 속에서 자신이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사회수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불평등과 사회복지 의제를 이끌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