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준 칼럼] 36년간 중동 지역 전문가로 활동한 문병준(전 사우디 대사 대리)이 말하는 ‘몸으로 배운 중동’. 휴전 후에도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갈등의 중심 ‘국가 안의 국가’. 헤즈볼라를 이해하면 중동 뉴스가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고 말하는 이유. (⌚9분)
📢 참고: 휴전 다음 날, 레바논 ‘헤즈볼라’ 공습한 이스라엘. (편집자)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해 최소 254명이 숨지고 1100명 이상 다쳤다. 사전 경고도 없이 주거 지역에 폭탄이 떨어졌다. 미국과 이란이 2주일 휴전에 합의한 지 하루만이다. 이스라엘은 미-이란 휴전 합의를 수용해 대이란 공격은 멈췄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휴전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휴전 다음 날’ 레바논 전역에 존재하는 100여 개 목표물을 공습했다.
이란은 이를 휴전 합의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휴전 합의로 개방하는 듯했던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봉쇄한다고 위협했다. 현재 호르무즈에는 사실상 이란 선박만 통과하고 있다. 호르무즈에 묶인 선박은 한국 선박 26척을 포함해 전 세계 2000척 이상의 선박이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2026년 4월10일 기준 내외신 기사 참고).
요즘 뉴스를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름이 있다. 헤즈볼라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건 단순한 무장단체 이야기가 아니다. 종교, 전쟁, 대리전, 그리고 한 나라의 비극이 40년에 걸쳐 뒤엉킨 이야기다. 딱 한 번 제대로 이해하면, 중동 뉴스가 완전히 달리 보인다.

먼저 이름부터
헤즈볼라(Hezbollah)는 아랍어로 حزب الله, “알라의 당(黨)”이라는 뜻이다. 코란 5장 56절에 등장하는 표현에서 따온 이름이다. “알라와 그의 사도를 따르는 자들, 실로 알라의 당이 승리할 것이니라.” 이름부터 이미 선전포고다. 우리는 신의 편이고 반드시 이긴다는 뜻이니까.
베이루트, 거리 하나 차이
나는 약 35년 전 처음 베이루트에 갔다. 레바논—’흰 산’을 뜻하는 셈어 어근(LBN)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겨울마다 산 정상을 덮는 흰 눈에서 비롯됐다는 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이다—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거리 하나를 경계로 세계가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 카페 테라스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이 커피를 홀짝이고, 길 하나를 건너면 검은 히잡의 물결이 골목을 채웠다. 같은 도시,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세계가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 묘한 긴장감의 이름이 무엇인지,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것이 레바논이었다.
레바논은 작은 나라다.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다. 차 한 대 렌트해서 하루만 달려도 웬만한 곳을 다 돌 수 있다. 그런데 그 하루 안에 펼쳐지는 풍경이 믿기 어렵다. 오전엔 지중해 해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만 차를 몰아 올라가면 중동의 대표적인 스키 리조트 므자르(Mzaar)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 슬로프 꼭대기에서 맑은 날이면 지중해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스키를 타고 내려와 오후엔 다시 지중해 수영을 — 이게 레바논이다.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이 이 나라 북부 산골 마을 출신이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영화 ‘가버나움’도 베이루트에서 나왔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AUB)은 한때 중동 비즈니스와 외교의 실제 네트워크를 좌우했고, AUB 출신이라는 게 중동에서 하나의 신분증이었다.
사람들이 괜히 ‘중동의 스위스’라 부른 게 아니었다.
그랬다. 한때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레바논은 신이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버린 나라라고. 인간이 그것을 망가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바논이라는 나라, 프랑스가 만들었다
레바논은 원래 프랑스가 설계한 나라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자, 프랑스가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위임통치하게 됐다. 1920년, 프랑스는 “대레바논(Greater Lebanon)”을 선포했다. 기독교 마론파를 중심으로 한 친프랑스 세력을 위한 나라였다.
문제는 국경선을 그을 때부터 시작됐다. 프랑스는 마론파 기독교인이 많은 산악 지역뿐 아니라,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이 많은 남부와 베카 계곡까지 한 나라에 집어넣었다.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국경선 안에 가둔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레바논이다.

왜 프랑스는 지금도 레바논에 집착하는가
레바논은 프랑스에 단순한 옛 식민지가 아니다. 자기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나라다. 국경도, 국가의 기본 틀도, 법체계도 프랑스 손으로 만들었다. 레바논이 흔들릴 때마다 프랑스 대통령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작품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실적 이유도 있다. 레바논은 중동에서 드물게 아랍어와 함께 프랑스어를 쓰고, 가톨릭·마론파 기반을 가지고, 유럽식 교육과 법체계를 유지하는 나라다. 프랑스 입장에서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발판이다. 레바논을 놓치면 중동에서 완전히 밀린다.
그래서 2020년 베이루트 항구가 폭발했을 때도, 2024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폭격했을 때도, 프랑스가 가장 먼저 중재에 나섰다. 이란이 헤즈볼라를 통해 레바논을 장악하려 하는 것도, 프랑스 입장에서는 자기 마지막 거점을 빼앗기는 싸움이다.

종파가 나라를 지배하는 구조
프랑스가 만든 레바논의 정치 구조는 독특하다.
- 대통령은 반드시 기독교 마론파,
-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여야 한다.
- 의회 의석도 종파별로 나눠 갖는다. 현재는 기독교와 무슬림이 50대50으로 배분된다.
1943년 독립 당시의 권력 분점 구조에서 출발한 규칙인데, 이후 일부 조정이 있었어도 종파별로 권력을 나누는 틀 자체는 지금도 그대로다. 이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는 두 가지다.
- 아무도 양보하지 않는다.
- 그리고 강한 국가가 만들어질 수 없다. 국가가 약한 곳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 레바논에선 헤즈볼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내전 15년, 그리고 끝나지 않는 전쟁
1975년, 레바논 내전이 터졌다. 팔레스타인 난민과 무장세력 유입은 내전의 직접적인 도화선 가운데 하나였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 수십만 명이 레바논으로 흘러들어왔다. 거기에 시리아가 개입하고, 이스라엘이 개입하고, 이란이 개입했다.
내전은 15년 동안 이어졌다. 15만 명이 죽었다. “중동의 파리”는 폐허가 됐다. 그리고 그 내전 한복판인 1982년, 이스라엘이 침공했다. 헤즈볼라가 형성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다.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 항구가 폭발했다. 6년 동안 창고에 방치된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터졌다.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사고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쌓인 부패와 무능의 폭발이었다.
그리고 2024년, 이스라엘이 다시 레바논을 폭격했다.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가 사망하고, 레바논 남부가 초토화됐다. 2024년 11월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이스라엘은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2026년 4월,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하자 이스라엘은 레바논 정부와의 직접 협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공식 외교 관계조차 없던 나라다. 헤즈볼라 무장 해제와 국경 안정, 관계 재조정이 그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그래서 헤즈볼라는 어떻게 생겨났나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다. 레바논에 거점을 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소탕한다는 명분이었다. 탱크가 베이루트까지 밀고 들어왔다.

시아파는 레바논 정치 구조에서 가장 소외된 존재였다. 남부 레바논의 가난한 땅에서 국가의 보호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살았다. 그 분노에,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1979년)으로 기세가 오른 혁명수비대가 레바논에 교관들을 보냈다. 분노한 청년들 + 이란의 자금과 이념 + 코란의 한 구절. 이 세 가지가 합쳐져 1982년 이후 형성되기 시작해 1985년 공식 선언으로 조직화된 헤즈볼라가 탄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헤즈볼라는 없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신의 최대 적을 만들어낸 셈이다.
헤즈볼라가 그저 무장단체가 아닌 이유
헤즈볼라를 테러 조직으로만 규정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이들은 동시에 세 가지다.
1. 우선 정치 조직
레바논 의회에 의원을 당선시키고 장관직도 차지한다. 1992년부터 선거에 참가했고 2005년 이후엔 내각에도 들어갔다. 완전히 합법적인 정당이다.
2. 동시에 군사 조직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비국가 무장세력 중 하나다. 수만 발 규모로 추정되는 로켓과 수만 명 수준의 병력을 보유해왔고,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 전쟁에서 버텨낸 것이 그 증거다. 이스라엘 정규군이 명확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종전된 건 전례 없는 충격이었다.

3. 그리고 사회복지 네트워크
병원, 학교, 고아원을 운영한다. 레바논 정부가 외면한 가난한 시아파 마을에 전기와 수도를 놓았다. 정부가 못하는 걸 헤즈볼라가 했다. 이것이 레바논 시아파의 충성심을 40년 동안 유지한 핵심이다.
한마디로 헤즈볼라는 ‘국가 안의 국가’다. 자체 군대, 행정, 복지를 운영하는 그림자 정부다. 레바논이라는 나라 안에 또 하나의 권력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란과의 관계 — 돈줄이지만 꼭두각시는 아니다
‘이란이 조종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이란 마음대로만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란은 헤즈볼라에 매년 수억 달러를 퍼붓는다. 무기, 훈련, 정보, 이념 전부 이란에서 왔다. 이란 입장에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쪽 국경 바로 코앞에 심어놓은 전진기지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직접 붙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 레바논에 대리인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레바논 안에 실제 지지 기반과 사회 조직을 가진 세력이다. 완전한 꼭두각시도 아니고, 완전한 독립 세력도 아니다. 이란의 돈과 무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이란 마음대로만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지도를 보면 이렇다.
- 북쪽 레바논에 헤즈볼라,
- 남쪽 가자에 하마스,
- 예멘에 후티.
- 그리고 그 모든 배후에 이란.
사방이 이란 대리군으로 포위된 구조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치는 것도, 결국은 이란을 겨냥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왜 끝도 없이 싸우는가
이게 핵심 질문이다. 왜 40년 동안 멈추질 않는가.
헤즈볼라는 창설 이후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협상도, 타협도 없다. 이건 영토 다툼이 아니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싸움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북쪽 국경 바로 너머에 자신을 부정하는 무장집단이 로켓을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게 거기 있다.
결국 이 싸움은 끝낼 수가 없는 구조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저항한다’는 것이 존재 이유의 전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이스라엘은 국경 바로 옆에 적대 무장세력이 있는 한 긴장을 풀 수 없다. 1982년 그날부터 이미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자, 헤즈볼라가 북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와 레바논 두 전선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2024년이 헤즈볼라에게 최악의 해였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대원들의 통신 장비를 겨냥한 동시다발 폭발 작전을 감행했다. 수천 명이 동시에 다쳤다. 통신망과 지휘체계가 한꺼번에 마비됐다.
이어 핵심 지휘관 수십 명이 연쇄 제거됐고, 헤즈볼라를 32년간 이끌어온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9월 베이루트 지하 벙커 공습으로 사망했다. 헤즈볼라의 상징이자 조직의 구심점을 잃은 것이었다.

그런데 왜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계속 치는가
2024년 11월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이스라엘은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재무장을 막기 위해서다. 헤즈볼라가 휴전 기간을 이용해 다시 무기를 채워넣으면, 다음 전쟁은 더 큰 규모가 된다. 이란은 지금도 시리아를 통해 헤즈볼라에 무기를 보내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 관문인 시리아를 계속 폭격한다.
둘째, 헤즈볼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다. 휴전 합의대로라면 레바논 남부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일부 병력과 무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정보를 이스라엘이 갖고 있고, 이를 명분으로 타격을 계속한다.
셋째, 이건 헤즈볼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과 사실상 전면 충돌 국면에 있다. 이란을 압박하는 한 수단으로 헤즈볼라를 계속 치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입장에서 이 휴전은 전쟁의 끝이 아니다.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일 뿐이다.

레바논 정부는 뭐 하고 있나
레바논 정부는 헤즈볼라가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구조다. 종파 간 권력 분점 체제가 강한 국가를 만들지 못하게 막았고, 그 틈에서 헤즈볼라가 정규군보다 강한 무장력을 키웠다. 억지로 해산시키려 하면 내전이 날 수 있다.
지금 레바논 정부는 무장 해제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서방도 재건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이를 내걸었다. 헤즈볼라는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 위협이 여전한데 어떻게 총을 내려놓겠느냐는 게 헤즈볼라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무기를 내려놓는 순간 레바논 국내 정치에서의 존재감도 함께 사라진다. 헤즈볼라에게 총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정체성이자 협상력 그 자체다.
그런데 2026년 4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국제 압박이 커지자, 네타냐후가 레바논 정부와 직접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을 계속하면서 레바논까지 동시에 끌고 가기엔 부담이 커졌다는 판단이었다. 목표는 헤즈볼라 무장해제와 양국 관계 정상화.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공식 외교 관계조차 없던 나라다. 폭격하면서 협상 테이블을 내민 것이다. 레바논 입장에서 이게 기회인지 굴욕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레바논 안에서 헤즈볼라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시아파 무슬림에게 헤즈볼라는 보호자다. 레바논 정부가 버린 사람들을 품어줬고, 이스라엘로부터 마을을 지켰다. 이 충성심은 40년째 유지되고 있다.
기독교인과 수니파에게 헤즈볼라는 재앙이다. 이란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레바논을 남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2024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레바논 남부와 베이루트 교외가 초토화됐을 때, 이게 다 헤즈볼라 때문이라는 분노가 폭발했다.
같은 조직이 한 나라 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약 35년 전 내가 걸었던 베이루트 그 골목의 분열이, 지금도 그대로다. 아니, 더 깊어졌다.

그래서 헤즈볼라는 끝났나
아니다.
2024년의 타격은 창설 이래 최악이었다. 나스랄라가 죽었고, 지휘부의 상당수가 제거됐다. 이란의 자금줄도 국제 제재로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2006년 전쟁 후에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끝냈다고 했다. 2년 뒤 헤즈볼라는 더 강해져 있었다.
이 조직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다. 사회, 정치, 이념이 결합된 구조다. 지도자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레바논 남부 지하 어딘가에서, 베이루트 골목 어딘가에서, 헤즈볼라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약해졌지만 죽지 않았다. 형태를 바꿔 살아남는 것, 그게 헤즈볼라의 40년 역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베이루트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지중해 바람도, 삼나무 숲도, 그 골목도.
그리고 그 골목에서 태어난 헤즈볼라도 아직 그 자리에 있다.
40년이 지났고, 수장을 잃었고, 크게 약해졌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헤즈볼라는 살아남았고, 레바논의 비극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