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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예산안’ 없는 추경 논의

2026년 추가경정 예산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그러나 추경 논의에 정작 ‘추경 예산안’이 없다. 정부는 3월 31일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했고, 국회 각 상임위는 4월 2일부터 심의를 시작했지만, 정부의 공식 재정정보 공개시스템인 ‘열린재정’에는 4월 7일 기준으로도 추경안이 공개되지 않았다. 국민과 언론은 추경예산안을 아직 보지 못한 채, 기획예산처의 홍보자료와 구두 설명에만 의존하고 있다(📢 편집자 주: 2026년 4월 10일 오후 2시 기준, 여야가 26.2조 추경안에 합의했고, 오후 본회의에 처리할 예정이다).

정부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에 부처별 사업설명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비공개 자료다. 국회에 공식적으로는 제출되는 추경안은 국회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지만, 분석가능한 형태의 자료가 아니다. 세부사업별 증감액조차 없고 셀 병합이 불규칙해 통계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산은 정치다. 국민과 국회가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토론하고 타협하고 증감액을 확정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예산안의 공개 없이 홍보 자료만으로 추경예산을 설명하는 행위는 건강한 토론이 아닌 일방적 홍보일 뿐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전형이다. 

100여 개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 세부 사업 가운데 정부의 입맛에 맞는 항목만 선별한 홍보 자료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이에 정부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비공개 부처별 사업설명자료를 통합 분석하고 전체 사업을 전수조사하여, 이번 추경안의 네 가지 주요 쟁점을 분석한다.

쟁점 1. 추경 규모는 26.2조 원이 아니라 25.2조 원이다

기획예산처는 이번 추경 규모를 26.2조원 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총지출 증가액은 25.2조 원이다. 차액 1조 원은 국채상환액이다. 국채상환은 정부 내부거래에 불과할뿐, 새롭게 지출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국민 입장에서 “정부가 이번 추경으로 실제 얼마를 더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26.2조 원이 아니라 25.2조 원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계산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과거에도 해마다 다른 기준을 사용해 왔다. 예컨대 2025년 2차 추경에서 정부는 추경 규모를 30.5조 원이라 홍보했지만, 당시 증가한 총지출액은 14.9조 원에 불과했다. 2020년에는 4차례 추경을 합산한 정부 발표액이 무려 67조 원에 달했지만, 실제 총지출 증가액은 42조 원에 불과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의미가 매번 달라진다. 정부가 ‘추경 규모’를 자의적으로 부풀리거나 줄이면, 국민은 실제 재정확장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과거 추경과의 비교도 불가능해진다. 앞으로는 추경 규모를 총지출 증감액 기준으로 일원화하고, 세입 증액·감액 경정, 세출 증액·감액 경정을 각각 따로 병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재정정책의 핵심은 총량이다. 정부가 얼마를 더 쓰는지가 먼저이고, 어디에 쓰는지는 다음이다.

쟁점 2. ‘국채 없는 추경’은 자랑이 아니라 세수 추계 실패다

정부는 초과세수를 활용해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편성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하면 본예산 단계에서 세수를 지나치게 적게 잡아 세수 추계를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정부가 본예산 세수를 과소 추계하면, 그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불필요하게 많은 국채 발행을 계획하게 된다. 그 뒤 실제 세수가 더 걷히면 “국채 없이 추경했다”고 포장할 수 있다. 처음부터 세수를 정확히 추계했다면 애초에 국채 발행 계획을 과도하게 잡지 않았을 것이다.

비유하면 이렇다. ‘이번에 20억 원짜리 집을 대출 한 푼 없이 현금으로 살 것이다’라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현금이 20억 원이나 있는가?’라고 묻자 ‘올해 초에 20억 원을 대출받아 둔 것이 있어서, 이번에는 대출 없이 살 수 있다’라고 답하는 격이다. 결국 이번 추경은 추가 국채 발행이 없는 추경이 아니라, 본예산 편성 시 잘못 세운 세입 및 국채 계획을 뒤늦게 정정한 것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계열 정부는 ‘세수결손’에 시달리지만, 민주당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 ‘초과세수’에 시달린다는 과거의 관행이 이재명 정부에서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2022년 대선 직전 문재인 정부는 추경을 추진했으나 기재부는 여력이 없다며 14조 원 규모에 머물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3개월 뒤, 기재부는 53조 원의 초과세수가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민주당 주도로 ‘초과세수 TF’가 구성됐고, 필자도 발제를 맡아 11월 세수 재추계(rolling forecast) 정례화를 제안했다. 기획재정부는 그 자리에서 수용을 약속했으나,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세수 결손에 시달리던 윤석열 정부와는 달리,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또다시 큰 폭의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국채 없는 추경”이라는 수사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본예산 예측 실패를 가리는 포장지에 가깝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정말 추경이 필요할 때, 초과세수가 없으면 추경을 편성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프레임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식 추경 예산안이다. 세부사업별 증감액조차 없어 어떤 세부사업이 얼마나 증액되었는지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쟁점 3. 5조 원 예비비는 홍보자료에도 없다

국민과 언론이 알아야 할 핵심은 세부 사업별 금액이다. 이번 추경의 핵심 세부사업은 예비비 5조 원 증액이다. 전체 총지출 증가액 25.2조 원 중 약 20%에 달하는 최대 규모 사업이다. 그런데 정부 홍보자료에는 ‘예비비’라는 단어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국민은 ‘고유가 부담 완화’라는 말은 듣지만, 실제로는 정유사 지원을 위한 5조 원이 예비비 형식으로 잡혀있다는 사실은 알기 어렵다. 민간기업인 정유사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면서, 어떤 정유사에  어떤 기준으로 얼마를 지원하는지 밝히지 않은 채 ‘예비비’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릴 뿐이다.

금액 상위 사업을 보자. 이번 추경의 핵심은 유가 최고가액에 따른 정유사지원 금액 ‘예비비’ 5조 원과 고유가 지원금 4.8조 원이다. 국세 증대에 따른 법적의무지출인 교육청 지원 교부금(4.6조 원)과 지방정부 교부세(4.5조 원)가 그다음이며, 나프타 수입가격 차액지원(4,700억원), 소상공인 융자액(3,200억원)등이 뒤를 잇는다.

통상적으로 정부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이후 공식 홈페이지인 ‘열린 재정’에 세부사업별 금액을 다음날 또는 다음다음날에는 공개하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월 31일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했는데도 4월 7일 현재까지도 열린재정에는 추경 정보가 없다.

국회 각 상임위는 4월 2일부터 심의를 시작했지만, 정부의 공식 재정정보 공개시스템인 ‘열린재정’에는 4월 7일 기준으로도 추경안이 공개되지 않았다. 열린재정 누리집 갈무리.

지금은 AI 시대다. 그럼에도 정부는 AI는 고사하고 사람조차 읽고 분석하기 힘든 형식적인 예산안을 제출하고 있다. 정부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과 동시에 세부사업별 증감액을 ‘열린재정’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 공식 제출 예산서 자체를 ‘기계 판독이 가능한’ (machine-readable) 데이터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한글’ 파일로 작성된 공식 예산서의 복잡한 셀병합을 보면 어떠한 통계분석도 할 수 없어 화가 나면서도 그 복잡한 표를 만든 실무자의 노고가 느껴져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쟁점 4. 이번 추경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거꾸로 되어 있다

고유가와 공급 불안에 대한 대응의 순서는 분명하다. 에너지 수요 절감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무공해차 전환과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는 것이 반복되는 유가 충격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에너지 취약계층 직접 지원이다. 가격 급등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계층을 보호하는 것이 재정의 본래 역할이다. 공급가격 인하는 그다음 보완적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추경은 이 순서가 정반대다. 가장 큰 재정수단은 가격 인하와 가격 보전에 들어가고, 취약계층 보호가 그다음이며, 수요 대책과 에너지 전환은 가장 뒤로 밀려 있다. 숫자를 보면 더 분명하다. 정유사 지원을 위한 예비비 5조 원이 이번 추경의 최대 사업이다. 여기에 유류세 인하 등에 따른 조세지출 4.7조 원 등까지 더하면, 정부가 에너지 가격 인하를 위해 동원한 재정수단은 10조 원에 이른다. 취약계층 보호로 고유가 피해지원금 4.8조 원이 그 뒤를 잇는다. 

반면, 에너지 수요 대책과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의 예산은 상대적으로 적다.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2,205억 원, 무공해차 보급사업 900억 원, 대중교통비 환급 877억 원,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624억 원, AI기반 분산전력망 산업 육성 588억 원 수준에 그친다. 정부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인정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및 기금’의 전체 증액 규모도 5,633억 원에 불과하다. 고유가 대응의 우선순위가 에너지 수요 전환이 아니라 가격 억제로 짜여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이해될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이다. 본래 가격 상승은 에너지 소비 감소와 효율 개선, 대체에너지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에너지 가격 하락을 우선 보조하면,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더욱이 가격 인하 위주의 정책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주체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반면 에너지 효율 개선, 대중교통 지원, 무공해차 보급,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다음 고유가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 경제가 덜 흔들리는 구조를 만드는 투자다. 따라서 이번 추경의 핵심 쟁점은 단순히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 예산이 조금 늘었는지 여부가 아니다. 그 점에서 이번 추경은 고유가 대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 우선순위는 거꾸로 된 추경이다.

예산은 숫자로 증명하는 ‘정책’…추경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번 추경의 문제는 개별 사업 몇 개가 아니다. 추경을 편성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방식 전체의 문제다. 실제보다 부풀려진 추경 규모, 본예산 세수추계 실패를 감춘 “국채 없는 추경”이라는 포장, 예산안 없이 홍보자료로 설명되는 정보 비대칭, 그리고 에너지 전환보다 가격 인하에 더 많은 재정을 배분한 거꾸로 된 우선순위까지, 모든 문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위기 대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일수록, 더 많은 돈을 쓰는 정부일수록,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더 정확하고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결국 이번 추경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원칙과 기준이고,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정책의 순서이고, 재원의 출처가 아니라 정부의 소통 방식이다. 

예산은 말로 설명하는 정책이 아니라 숫자로 증명하는 정책이다. 예산서에 적힌 숫자가 곧 정부의 우선순위이고, 그 숫자의 흐름이 곧 정부의 진짜 정책이다. 국회와 국민도 정부의 설명이 아니라 실제 예산의 흐름을 기준으로 이번 추경을 다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추경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민 앞에 검증 가능한 재정 정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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