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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복지 사각지대를 밝히는 ‘인간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발굴 대상이었지만 두 번 지원을 거절당하고 결국 주검으로 발견된 A씨의 비극. (김윤영/빈곤사회연대 활동가) (⌚7분)

‘백만장자’는 산업혁명 이후 당대 최고 부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20세기 들어 독과점이 심화되자, 첫 ‘억만장자’ 석유재벌 록펠러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인류 역사상 첫 ‘조만장자’의 등장이 예고된다. 주인공은 일론 머스크다. 조만장자가 탄생하는 배경에는 막대한 자산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금융소득이 있다. 금융 시스템은 부유층으로의 부 집중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다.

억만장자 식민주의: 5만6천 명 자산이 28억 명의 3배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6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 가운데 자산 상위 0.001%(약 5만 6천 명)는 하위 50%(28억 명)보다 세 배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순자산 점유율은 30년 전 세계의 4%였으나 올해는 6%에 이른다.

옥스팜(Oxfam, 전 세계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 비정부기구 연합체)은 2024년 억만장자(한화 기준 1조 3,400억 원)의 자산이 1년 전보다 세배 빠르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향후 10년 내 조만장자가 5명 이상 출현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한해 전에 비해 5배 상승한 예측치다. 반면 세계 36억 명은 하루 6.85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이처럼 극심한 불평등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생산이나 이윤은 더 늘어났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고 있다. 자산·소득 상위 계층은 상속과 글로벌 금융시스템, 수많은 조세회피 수단을 통해 더 많은 부를 더 빠르게 획득하고 있다. 옥스팜은 이를 ‘억만장자 식민주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 빈곤율 15%

한국의 빈곤율은 15% 내외에서 고착되고 있다. 가처분소득(세금·사회보험료 같은 의무 지출을 모두 제외하고, 실제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득) 빈곤율은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와 마찬가지로 상위 계층의 자산·소득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어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계층의 노동소득은 평균 401만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1.3% 줄었다. 2019년 이후 첫 감소다. 반면 5분위의 평균 노동소득은 1억 2006만원으로 3.7% 늘었다. 자산이 가장 많은 10분위의 자산 점유율은 1.6% 늘었다. 그 외 모든 계층의 자산 점유율은 변동이 없거나 하락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빈곤층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공약은 기존 선언을 반복하는 수준에 멈췄다. 임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빈곤정책에 대한 노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빈곤층 제로를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와 사각지대 해소다. 하지만 큰 변화가 없거나 실효성이 의문인 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중 사회안전망 강화와 관련해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선정기준 및 보장수준 개선, AI 도입으로 위기가구 발굴·지원 확대라는 두 가지가 제시되었다.

폐지되지 않은 부양의무자 기준, 여전히 낮은 기준중위소득

지난 12월 9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부양비 제도를 폐지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폐지된 것은 ‘간주 부양비’로 부양의무자 기준과 다르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부양능력 없음, 미약, 있음이다. 부양의무자가 있더라도 그의 소득과 재산이 낮을 경우 부양 능력이 없다고 본다. 반대로 소득과 재산이 기준 이상일 경우 부양 능력이 있다고 보고, 수급자를 탈락시킨다. 이 사이 구간이 ‘미약’에 해당하는데, 이때 간주부양비가 발생한다.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준다고 가정해 책정하는 이 간주부양비는 잘못된 제도인 만큼 폐지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간주부양비 폐지를 마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2017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언한 지 8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부양의무자기준이 남아있다.

낮은 기준중위소득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5년 도입된 기준중위소득은 국민 전체 소득의 상대적 수준을 복지 기준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현재 국가데이터청 통계에 나오는 실제 소득 중윗값에는 한참 못 미친다. 2026년 기준중위소득은 6.51%를 인상해 1인가구 기준 256만 원으로 결정됐으나 국가 통계지표에 따른 2024년 중위소득은 1인가구 321만 원으로 큰 차이가 난다.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뿐만 아니라 80개 다른 복지제도의 선정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 국민 복지 기준선이 하향 조작되어있는 셈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를 개선하기보다 기준이나 산식을 바꿔 현재 상황을 ‘정상화’ 시키려는 듯하다.

‘송파 세 모녀’ 급여법, 발굴 대상 84% 미지원

2014년 12월,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급여법)이 제정됐다. 급여법은 제도 시행 초기 13개 기관으로부터 23종의 위기정보를 수집했으나, 2025년 현재 26개 기관 47개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로 위기가구를 선정하면 각 지자체에 대상자를 통보하고, 담당자가 이들을 상담, 필요한 복지제도로 연계한다.

문제는 이렇게 연계된 대상자 중 많은 수가 지원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5년 전체 발굴 대상자 중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비율은 84%에 달한다. 2022년 이 비율은 50% 정도로 줄어들었으나, 단기간 민간 지원제도를 연계하는 것이 아닌 공적서비스 즉, 기초생활보장·차상위·긴급복지서비스를 받은 경우는 전체 대상자의 각각 2.1%, 0.7%, 1.3%에 불과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있는 제도도 활용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그 뒤로 빈곤 사각지대에서 누군가가 숨지면 어김없이 “왜 발견하지 못했나”, “왜 신청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다시 말해, 제도 발전의 초점이 ‘발굴’에 맞춰지는 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은 자연스럽게 ‘신청’으로 돌려졌다. 신청을 둘러싼 논의에는 신청주의가 낙인을 낳는다는 비판과, 신청주의 탓에 사각지대가 넓어진다는 주장 등 여러 쟁점이 뒤섞여 있다.

발굴 시스템의 문제: ‘사회적 평점’은 ‘수용할 수 없는 위험’

하지만 이 두 가지 질문은 약간씩 수정될 필요가 있다. 첫째, 어떤 선정 기준이 낙인을 유발하는가? 둘째, 신청을 해도 탈락(구조적 배제)하거나, 이미 복지에 진입했지만 생활이 충분하지 않은(과소수급)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이 디테일을 짚지 않고 신청주의만 잡도리할 경우 오히려 제도가 위축될 수 있다. 정보 비대칭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까다로운 선정 기준과 복잡한 예외 규정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신청할 수 있는 수급자는 사실상 없다. 제도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복지수급자들은 일단 요구하는 모든 정보를 내놓고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이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한, 신청 단계가 사라진다고 해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더 나은 제도가 될 리 만무하다.

급여법은 제정 이래 십 년간 28차례 개정되었고, 같은 기간 발굴대상자는 11만명에서 120만명으로 늘어났다. 복지 사각지대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쏟아지는 ‘왜 발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급여법 개정과 강화로 이어졌지만, 증가한 업무량과 투입된 사회적 자원과 대비할 때 급여법이 다른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제 발굴 시스템 자체를 주목해서 봐야 한다. 월세와 핸드폰 요금 연체부터 공과금 미납까지 개인의 재정적, 가정사적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와 유출의 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이 AI 산업과 밀착되는 방향으로 가면서, 사회보장제도의 디지털화와 함께 AI 활용이 한층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2025년부터 AI 상담 전화가 도입됐고, 2026년에는 생성형 AI 서비스까지 적용될 예정이다. 한편 유럽 인공지능법은 인공지능 위험을 네 단계로 분류하며, 그중 ‘수용할 수 없는 위험’에 해당하는 사례로 ‘사회적 평점’ 시스템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공적 데이터를 수집해 고위험 발굴 대상자를 추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평점’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효과적인지 알 수 없는 ‘발굴’을 위해 어디까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디지털 기술 도입은 과학적 진보의 필연적 결과물이 아니다. 언제나 인간의 정치적 선택을 반영한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라는 미명을 걷고, 디지털화와 AI 도입의 영향에 대해 진단하고 평가할 때다.

‘발굴 대상 선정’에도 두 번 신청 거부… 주검으로 발견된 A씨

기억해야 할 한 죽음이 있다. 2025년 3월 20일, 강남구 반지하에 살던 세입자 50대 남성 A씨다. 그는 6개월 이상 무직 상태였고, 월세와 전기요금이 수개월 체납됐으며, 도시가스도 중단 된 상태였다. 강남구청은 한 해 전 그를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으로 선정하고, 자택에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이후 A씨가 긴급복지지원제도 신청을 문의했으나 예산 소진으로 1월에 방문하라는 안내를 받았고, 2025년 1월 다시 주민센터를 찾을 때는 5일 후 다시 방문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다시 주민센터를 찾지 않았고,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A씨의 죽음은 빈곤 사각지대 발굴 정책이 야기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다양한 정보를 취합 해 위기가구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필요해 지원을 요청한 사람을 두 차례나 돌려보냈다. 기초법행동(‘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의 줄임말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선하고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은 2024년 11월 초,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 운영 여부에 대해 문의했는데, 이미 4개 구에서 예산소진으로 신청받지 않고 있었고, 8개 구에서는 제한적으로 신청받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비참함은 증오를 낳는다”(Misery generates hate). 영국 복지국가의 기초를 세운 ‘베버리지 보고서'(자유사회에서의 완전고용, 1944) 책 뒤표지에 실린 소설가 샤럿 브론테의 문장.

13개 구에서는 시행 중이었으나, 이 중 8개 구에서 ‘예산소진에 따라 곧 중단될 수 있다’고 했다. A씨가 살던 곳은 이미 신청을 받지 않고 있던 강남구였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조사 시간 동안 신청자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48시간 내 지원을 먼저 시행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이 무색하게도 수개월 동안 정책 자체가 중단되었다.

조만장자가 등장하는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똑같은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 이는 두 개의 다른 현실이 아니라 연결된 세계다. 금융의 지배력이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때, 국정이 목표로 삼을 것은 ‘코스피 5000시대’가 아니라 더 나은 일자리의 확대, 정당한 조세, 사회보장제도의 강화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롭고 참신한 방안이 아니라, 기존 제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치적 의지와 재정 확보다. 이행하지 않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약속을 지키고, 소득을 상실한 모든 빈곤층에게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자. 예산소진을 핑계로 뒷짐지는 것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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