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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를 살았던 다수 젊은이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도 그중 하나에 포함될 것이다. 엔딩을 장식한 명곡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와 함께.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을 한마디로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누구나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노래로 전쟁을 끝내버린 영화’라고.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예의 ‘노래로 전쟁을 끝내버린’ 그 사건, 작전명 “민메이 어택”은 지구인 군이 문화를 잊은 종족 젠트라디와의 전쟁에서 사용한 작전이다. 작전의 내용은 린 민메이라는 이름의 가수가 적군을 향해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것. 젠트라디의 브리타이 함대는 이 노래를 듣고 자신들이 오래전에 잊었던 것, ‘문화’라는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은 그 문화라는 것을 되찾기 위해 지구군 측에 귀순해 함께 싸우고, 엄청난 병력 차이로 절망적이었던 전쟁은 기적적인 승리로 끝을 맺는다. (동영상 링크)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기억하나요](1984)  (C) 다쓰노코 프로, 스튜디오 누에(제작)/ 도호(배급)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기억하나요](1984)
(C) 다쓰노코 프로, 스튜디오 누에(제작)/ 도호(배급)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비폭력의 위대함 같은 아름답고 남의 집 일 같은 헛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애초에 민메이 어택도 피를 흘리지 않은 작전은 아니었을뿐더러, 젠트라디 처지에서 보면 지구군에 귀순한 놈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배신자들이다.

나는 거절한다

10월 9일, 회원 수 200명 남짓한 꼬꼬마 좌익단체 ‘청년좌파’의 회원들이 서울 을지로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의 전광판 위를 불법 점거하고 불법시위를 벌이다가 10명이 지상에서 연행되고 5명이 전광판 위에서 사지가 붙들린 채 에어 매트로 던져져 연행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몇 가지 지난 일들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청년좌파는 80%의 회원들이 수도권 시민으로, 서울이 사실상의 근거지인 단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한전 광고용 베란다를 점거 시위하는 청년좌파
2013년 10월 9일

한국전력 점거 사건이 일어나기 약 25시간 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중단 대국민 호소 시국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어쩌다 보니 청년좌파의 대표인 내가 청년단체들을 대표해서 발언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서만 5~6번 정도 버스를 대절해서 회원들과 함께 밀양에 다녀왔다. 오늘도 회원들 일부가 내려갈 예정이다. 왜 갔느냐고 물어보면 양심 때문에 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대답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이 사회에서 양심을 가지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양심을 가지는 행위는 부도덕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 정의가 그렇다는 것은 언론이 증명하고 있다.

‘외부세력’의 밀양 주민에 대한 연대를 비난하는 언론을 보면서 처음 떠오른 풍경은 이거였다. 길에서 깡패가 누군가를 때리고 있을 때, 그걸 말리면 ‘네가 무슨 상관인데 여기에 끼어드느냐’고 욕하기 마련이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그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제 사회정의가 되었음을 보여준 것이 언론이었다.

밀양을 보면서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이라크 전쟁 당시에 전범 국가의 시민이 될 수 없다면서 인간방패가 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났던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기억은, 은마아파트에서 청소노동자가 감전사로 죽었을 때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따져야 했던 주민들이다. 그 두 가지 상반된 삶 중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언론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외부세력’이란 말은 오히려 밀양 문제의 본질을 말해준다. 밀양에 송전탑을 짓는 일은 밀양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로부터의 침략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전범세력의 일원으로써 양심을 택할 것인가, 이윤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것이다.

시간을 약간 더 되돌려서 8일 오전 11시 30분, 밀양주민들이 상경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한문 앞에서 청년좌파의 집행위원장인 박정훈 씨의 병역거부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의 제목은 “나는 거절한다”였다. 거부가 아니라 거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강자의 편에서 “정상”의 삶을 살며 온존하기를 거절한다는 것. 하나는 밀양, 더 나아가 지역을 파괴하고 착취해서 얻은 전기로 누리기를 거절한다는 것. 그것이 설사 풍족한 삶을 가져다준다 해도 말이다.

이날 저녁, 한 대의 버스가 밀양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에 남은 사람들은 을지로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힘내요” “힘내요” “밀양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하라” 금곡 헬기장 앞 거울
2013년 10월 3일

송전탑: 서울의 전기 식민지들

1998년, 한국에 처음으로 765kV의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섰다. 765kV 송전선로는 캐나다 퀘벡주의 수력발전소들과 미국의 북동부 지역 간을 잇는 1,000km대의 선로처럼 장거리송전에 사용되는 선로. 이것이 들어선 것은 당진과 울진에 대규모 석탄 화력과 핵발전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본격적인 원거리 대량수송 시스템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대량 수송 시스템이라고 하니 뭔가 멋있어 보이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위험한 발전소는 최대한 서울에서 떨어져서 짓고, 거기서 생산된 전기는 서울에서 우선 끌어다 쓰는 시스템이다. 덕분에 오늘날 전국에서 생산하는 전력 중에서 37%를 수도권에서 쓰면서도, 서울의 전기자급률은 3%에 불과한 전기 종주국 시대가 되었다. 발전소와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들은 서울의 전기 식민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04년,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의결한다. 사업의 내용은 신축 예정인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북경남변전소로 총 90.5km 구간에 161기의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는 것. 노파심에서 말해두지만, 경남의 전기자급률은 210%다. 문제는 161기 중 52기가 밀양시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 등을 지난다는 것이었다.

처음 일어난 것은 상동면이었다. 2005년 11월,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최초로 송전탑 공사 반대집회를 열었다. 곧이어 2006년 3월, 밀양ㆍ창녕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가 발족하며 본격적인 반대운동이 시작되었다. 2012년 1월,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에서 74세의 노인 이치우 씨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하면서 밀양의 송전탑 전쟁은 짧은 휴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밀양 송전탑 공사는 전국적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2013년 10월 1일, 한국전력공사와 경찰은 공사 강행을 선포하고 밀양에 대규모 인원과 병력을 투입했다.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다음날까지, 32개 중대 3,000명의 경찰이 전국에서 밀양으로 소집되었다.

3,000명의 경찰이 밀양으로 파견되던 날 아침, 두 사람의 밀양 주민이 천주교 부산교구 조성제 신부와 함께 서울로 상경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김정회, 박은숙 부부.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던 대책 없는 상경이었다. 경찰은 그들이 한전 앞에서 단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안정적인 단식(!)을 위해 대한문으로 장소를 바꿨지만, 거기서도 역시 단식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 사람의 단식자는 결국 한 명은 대한문에서, 한 명은 시청 앞에서, 한 명은 시청역에서 단식을 이어갔다.

같은 날, 청년좌파 회원 세 사람이 밀양으로 떠났다. 열흘 일정으로 떠났던 그들이 첫날 본 광경은, 한 명의 늙은 주민이 울면서 경찰차에 연신 절을 하는 모습이었다. ”제발 헬기 좀 치워주세요. 제발 공사 좀 하지 마세요.” 청년좌파의 김대환 대변인은 이 광경을 “밀양이 대도시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님 국민 한 사람도 피해주지 마라꼬 해놓고…” 바드리 마을 입구 이남이 할머님
2013년 10월 7일

밀양의 노래

10월 9일 한글날 오전 3시가 조금 넘어서, 우리는 사다리를 타고 한국전력 서울지부 전광판 위로 올라가 현수막을 내렸다. 복잡한 설명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하라”라고만 적힌. 세상은 여전히 ‘남의 일에 왜 끼어드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였다. 우리가 버린 것들을 되찾아오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린 민메이의 노래를 들어버린 젠트라디였다. 우리는 밀양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거기에 올랐다. 그러니까 아마, ‘외부세력’이라는 말보다는 ‘배신자’라는 말이 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남대문 경찰서와 서울 경찰청에서 병력이 몰려왔다. 바닥에 에어 매트가 깔렸고, 지상에서 우리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먼저 연행되었다. 남대문 경찰서 최성영 경비과장의 1차 해산경고, 2차 해산 경고, 3차 해산 경고가 5분 만에 끝났다. 물론 이 당시에는 3차까지 경고를 했는지도 몰랐고, 이후에 체포 통지서를 받아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잠시 후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경찰들에 의해 우리는 사지가 잡힌 채 아래로 던져졌다. 아래로 푹 꺼져가는 에어 매트 위에 누워 꽃봉오리가 닫히듯이 감싸드는 윗부분을 보면서, 식충 식물에 먹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연행당하기 직전에, 아래쪽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가 현장을 떠나며 전화를 걸어왔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서부터는 언론의 몫이죠.”

어떤 노래도, 들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연행되는 청년좌파
2013년 10월 9일

우리들의 도시에서

저녁이 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왜 반대하느냐”는 심문에 망설이다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서 어려웠던 건 아니다. 서로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뿐이다. 그 후로도 어려운 질문들은 계속 이어졌고, 대부분 질문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모두 풀려났다. 언론 보도들은 그저 그랬다. 한전에 올라갔다는 것, 연행되었다는 것 정도가 주 내용이었다. 우리가 왜 거기에 올라갔는지는 관심사 밖이었다. 심지어 YTN에서는 “대학생들”이라고 표현했는데, 미안하지만 난 고졸이다. 뭐가 어찌 되었건 밀양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들른 한국전력 서울지부 앞에서, 우리는 실소를 짓고 말았다. 우리가 올라갔던 전광판 위에는, 휴전선에서나 보았던 윤형 철조망이 처져 있었다. 그래. 전쟁 중이지. 한국전력 측은 우리가 문화재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알고 보니 그 건물이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단다. 문화재라. 그보다 더 오래된,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았나?

촛불 같은 건 켜지 않아도 될 만큼 환했다. 길 건너편에는 전깃불로 도배한 롯데백화점과, “24시간”이라고 쓰여 있는 롯데리아의 간판을 보면서 칠흑같이 검었던 밀양의 논두렁을 생각했다. 주최 측에서 발언을 요청하기에, 나가서 이야기했다.

전선은 서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우리도 당사자다’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거요. 인류가 소에게서 우유를 짜내기 시작하고, 동물들을 공장에 사육하기 시작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을 짜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멈추고 뒤를 돌아볼 것인가,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밀양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할 것입니다. 서울시민이 천만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위에 올라가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이 5명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폭력공사 중…ㄷ” 바드리 마을 가드레일
2013년 10월 4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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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음. 송전탑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늘 갈팡질팡합니다.

    1. 한전+정부 : 계획만 있고 이해당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없죠. 비단 이 정부만, 이 사업만 그런 건 아니지만.
    2. 영향과 관련규정 : 이 부분이 핵심이 되어서 얘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본 다큐에서 설명된 바로는, 전자파 등에 관련된 안전기준이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다소 낮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3. 전력수요+비용 : 전력수요가 계속 피크에 도달하는 이유는 사실상 개인이 아니라 제조업에 기반한 대기업들에 있다고 봅니다만… 어쨌든 예비전력이 위험수위에 도달하는 일이 반복되고, 전력수요는 대체로 증가추세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초고압케이블의 지중화는, 기술적인 가능/불가능을 따져볼 수는 없지만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갈 사업인 건 분명합니다. 충분한 거리를 두어 절연(전기적 간섭을 막는 것?)할 수 있는 공중에서와 달리 지하에 매설하는 케이블은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자면 공사비가 늘고, 공간을 좁히면서 절연을 확보하려면 절연물질을 사용해야 해서 자재비가 상승하게 되죠. 자세히는 몰라서 정말 간다하게만 적어보아도 그렇습니다.
    4. 주민 :
    ———————————- 여기까지 적다가 찜찜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밀양 송전탑을 통한 ‘수도권 송전 계획’이 폐지되어 765kV 선로 신설이 불필요하단 얘기가 있네요(기존 345kV 선로로 우회송전 가능). 연결할 신고리3호의 발전량도 140만kW도 전체발전설비용량의 1.7% 수준이라고…;

    저는 사실 지금도, 필요한 것(송발전)과 불가피한 것(주민피해) 사이에서는 어쨌든 효율이 개입해야 하고, 불가피한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필요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밀양 송전탑은… 불가피하지만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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