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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투병기다.

나는 “살 많이 빠졌네”라는 말이 정말 싫다. 외모를 평가함으로써 외모지상주의를 재생산하고, 내면화하게 하며, 그런 평가를 위해 내 몸을 훑어봤다는 게 소름 돋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작년보다 15kg 정도 덜 나가는 몸을 갖게 된 끔찍한 과정이 떠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날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약 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은 내가 살면서 가장 뚱뚱했던 해였다.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대 2병’에 걸렸다. 진로에 대한 부정적인 고민을 계속했고, 스트레스 때문에 집중을 못 하니 학점은 떨어지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의 악순환이었다. 그런 현상을 ‘대 2병’이라 한다는 것은 3학년 때 알았다. 나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고, 당연하게도 몸집이 불어났었다.

다이어트 비만

이대로 학교를 계속 다닐 수는 없겠다 싶어서 휴학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 3달 동안 1일 1식을 하고 한약을 먹으며 다이어트를 했다. 2015년 5월, 몸무게는 점점 줄어갔고 내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리 예정일 일주일 전, 느닷없이 이불에 피가 묻었고 산부인과를 가보니 이건 생리불순이 아니라 부정출혈이라고 했다. 그 신촌의 산부인과에서는 호르몬 문제라며 피임약을 처방했고, 그걸 먹으면서 약 3주간 부정출혈에 시달렸었다. 약을 처방받고 약국으로 갈 때,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너무 무서워서 신촌역 근처에서 엉엉 울었다.

다음으로 간 종합병원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겪는 현상이고 아마 걸그룹 멤버 중 생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그리고 약을 그만 먹고 식이요법을 해보자고 했다. 약 1달 후에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노오력’하면 ‘예쁜’ 몸을 가질 수 있단 말은 많이 들어봤겠지만 ‘노오력’하면 하혈을 하거나 생리불순이 생긴단 말을 들어본 적 있는 여성은 많이 없을 거다. 내가 무지했던 걸까? 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기 전까진 정말 몰랐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주말이었나, 자려고 누웠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조금 참으면 될 줄 알았는데 복통은 점점 심해져 하늘이 노래질 지경이 되었다. 응급실에 가니 위경련 증세라며 진통제 주사를 놔주더라.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죽 이외의 다른 것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위경련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일하다가, 잠을 자기 직전에 몇 번 더 발생했고, 진통제 주사를 맞고 집에 와서 약 기운 때문에 그날 먹은 것을 다 토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약을 꾸준히 먹는데도 계속 아팠기 때문에 엄마는 큰 병원에 가보길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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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담석증’ 진단을 받았고 이 역시 밥을 잘 안 먹으면 종종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것 때문에 끔찍한 비수면 내시경과 복강경 수술을 했고, 이후에 평생 위경련으로 아플 고통을 3일 동안 다 겪었고,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장기가 하나 없는 몸이 되었고, 피어싱하는 고통쯤은 별로 아프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 수술 이후 나는 누군가가 1일 1식 따위를 한다고 하면 뜯어말린다.

산부인과에서 호르몬 검사를 하면서 다른 호르몬 수치도 검사했었는데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고 모순적이게도 나는 너무 즐거웠다. 작아서 못 입던 옷들을 입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 채로 철없이 즐거워했던 걸 생각하면 나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럽다.

그렇게 나는 갑상선암 발병 사실을 알았다. 다이어트의 결과로 생긴 병은 아니지만, 병 때문에 일종의 ‘노력 없는 다이어트’를 했다. 지난 6월 수술을 받았고 이젠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 다섯시간이 넘게 이어진 수술 시간 동안 엄마가 많이 울었다고 같은 병실을 썼던 할머니가 말해주셨다. 나의 즐거움은 엄마의 눈물이 되었다. 혹시나 내가 암환자라고 해서 오해가 있을까 싶어 말해두자면, 암에는 원인이 없다고 한다. 내가 ‘자기관리’를 못 했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빌어먹을 ‘자기관리’ 때문에 나는 하혈을 했으며, 쓸개를 떼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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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인 ‘암 다이어트’를 하게 될 예정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은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고통받을 것이고 살이 빠지겠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할 것이다.

“너 요즘 살 많이 빠졌네!”

그래. 칭찬이겠지.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사회에서 강요하는 미적 이데올로기에 가까워진 것에 대한. 나는 아마 속으로 삐딱한 대답을 생각할 것이다.

‘살 빠져서 부럽죠? 부러우면 암 걸리세요.’

그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좋아하고 있을까?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은 미디어를 통해, 친구들을 통해, 가족을 통해 자꾸만 주입된다. ‘자기관리’, ‘노력’을 통해 미적 이상(ideal)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야 여성들이 뷰티 산업에 돈을 쓰기 때문이다. 그 미적 이상에 가까워지려다 시간, 돈 그리고 건강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다. 외모지상주의를 내면화한 (나 같은) 여성은 본인이 건강을 잃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되는, 그런 역겹고 슬픈 일이 일어나게 된다.

많은 여성은 노력 없이, 맛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몸을 원한다. 사실 그게 실현된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꼭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아보셔야 한다.) 설령 ‘노력’을 통해 살이 빠졌더라도 건강상태가 이전과 같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살 빠졌다.’라는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을 잃은 것이 칭찬이 되는 일은 너무도 비참하고 슬픈 일이다.

new 1lluminati, religion is a region with a li(e) in it, CC BY https://flic.kr/p/hN1djZ
new 1lluminati, “religion is a region with a li(e) in it”,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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