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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로 다른 동물원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풍경에 익숙한가?

PROSalim Virji, CC BY https://flic.kr/p/id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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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edodo.com http://thedo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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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이명주

이제 여행을 떠난다. 내가 원하는 동물원으로. 여러분도 가능하다. 여러분이 원하는 동물원을 마음으로 ‘찜’ 해라. 여기는 태국 칸차나베리(Kanchanaburi)의 ‘엘리펀트 헤이븐 타일랜드(Elephant Haven Thailand)’. 내가 선택한 동물원이다. ‘haven’은 우리말로 ‘안식처’라는 뜻이다.

오전에 도착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박, 호박, 쌀겨 등이 담긴 양동이 하나씩을 받았다. 맨손으로 내용물을 섞어 커다란 주먹밥 모양으로 만들었다. 코끼리들을 위한 간식이다. ‘코가 손인 코끼리 아저씨’의 간식은 과자가 아니라 신선한 과일과 곡물이었다. 앞에 선 남자가 맛을 보더니 “굿(Good)” 했다. 나도 먹었다. “굿”이었다.

음식 준비를 마치자 저 숲길 끝에서 마치 환영처럼 코끼리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총 여섯 마리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흙 마당 한가운데 나무 ‘식탁’ 앞에 섰다. 함께 온 사육사들은 우리가 코끼리들에게 간식을 줄 수 있게 이끌면서 개중에 호기심이나 식탐 강한 녀석들을 그저 몸으로 지긋이 달랬다.

우리에 갇힌 동물만 봐 왔을 뿐 이렇듯 코끼리 무리를 그것도 코앞에서 만나긴 처음이다. 내 손으로 빚은 음식을 먹이며 그들과 눈을 마주 보고 감촉을 공유하는 것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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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산책. 아까 코끼리들과 사육사들이 걸어 나왔던 그 숲길로 우리도 함께 간다. 코끼리들은 방금 간식에 밥까지 먹고도 사방에 널린 풀과 열매를 뜯으며 걸었다. 그런 코끼리들과 적당히 속도를 맞추며 사람들도 숲의 풍경과 향기를 즐겼고 무엇보다 모두가 같이 있는 신기하고도 행복한 느낌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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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들은 이렇게 하루 18시간은 먹고 움직이면서 4시간만 잠을 잔다고 했다. 동물원에 머무는 8시간 동안 우리는 세 번 더 간식을 준비하고 익숙한 숲길을 거닐었다. 숲길 끝에 있는 작은 진흙탕. 코끼리들은 익숙하게 하나둘 탕으로 들어가 목욕을 시작했다.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도 그들이 행복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밥을 먹을 때 유독 식탐이 많던 녀석이 있더니 목욕을 유달리 좋아하는 녀석도 보였다. 사람처럼 각각이 좋아하는 대상이 다른 것이다.

코끼리는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과 같이 인격을 가진 동물로 판명된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s)중 하나다. 목욕을 끝낸 후의 행동에서도 그 총명함을 엿볼 수 있었다. 진흙탕에서 나온 코끼리들은 마치 사람이 수건으로 몸을 닦듯 차례대로 제 몸을 나무에 비벼댔고, 어떤 코끼리는 주변의 나뭇가지를 주워 발목 부위를 섬세하게 긁기도 했다.

‘행복한 동물원을 찾아서’ 더딘 여정을 이어온 지 약 1년. 태국 칸차나베리의 ‘엘리펀트 헤이븐 타일랜드’는 내 생애 처음 만난 행복한 동물원이었다. 그곳에서는 건강한 자연 가운데서 사람도 동물도 다 같이 행복했다. 그간 보아온 도심 속 동물원의 환경과 그곳에 갇힌 동물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코끼리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고 명확했다. 모두가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때문. 자연도, 동물도, 그리고 그들을 만나고 싶다면 우리 사람이 찾아가 예의 바른 손님이 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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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info” head=”‘엘리펀트 헤이븐 타일랜드’에 관하여 “]

‘엘리펀트 헤이븐 타일랜드(Elephant Haven Thailand)’는 태국 칸차나베리(Kanchanaburi)의 사욕(Saiyok) 숲에 있다.

이곳이 지금과 같이 ‘행복한 동물원’이 된 것은 불과 두 달 전이다. 여기도 그전까지는 코끼리들에 무거운 꽃가마를 지우고 사람들을 태우는 등의 쇼를 했다. 하지만 태국인 렉(Lek) 씨가 코끼리들의 구조(rescue)와 쉼터(sanctuary) 제공을 목적으로 1998년에 설립한 ‘코끼리 자연공원(Elephant Nature Park)’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그 모습이 180도 바뀌었다.

이제는 동물원이면서 동물, 사람, 자연 모두를 위한 안식처(haven)가 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이곳의 모든 것이 변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코끼리들은 자유롭게 제 본성대로 생활하고, 그들을 잔혹한 전통 방식으로 길들이던 사육사들은 교육을 통해 동물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배웠다. 그 결과 코끼리와 사육사는 물론 나와 같은 방문객들 역시 코끼리 등 위에 올라타 앉아 있는 것보다 우리 속에 갇힌 그 어떤 동물을 구경할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희망적인 소식. 앞으로 미얀마와 푸켓 등 네 곳에 있는 동물원들이 엘리펀트 헤이븐 타일랜드처럼 코끼리 자연공원의 프로젝트에 합류해 행복한 동물원으로 거듭날 예정이라고 한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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