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 칼럼] 난데 없는 친일파 타령에 ‘논란’이라는 위험한 프레임…“환단고기는 위작”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 발언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해명에 나섰다. 약 23분간의 브리핑과 질의응답이었다.
그런데 이 브리핑을 듣고 나니 상황이 더 명확해졌다. 김남준 대변인은 환단고기를 명확히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자들이 5번이나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도, 단 한 번도 “환단고기는 위작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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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브리핑에는 환단고기가 없었다
김남준 대변인의 23분 브리핑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약 7분간의 준비된 공식 브리핑이다. 여기서 대변인이 다룬 주제는 책임 있는 행정, 공정한 국정운영, 적극 행정, 관료 편의주의 타파, 공직자 격려였다.
전형적인 국정 홍보 브리핑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환단고기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환단고기는 대통령실이 스스로 꺼내서 설명하려던 주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저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고, 대통령실은 이를 국정의 주요 메시지로 다루지 않았다.
두 번째는 약 14분간의 기자 질의응답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구간에서 환단고기가 핵심 이슈로 급부상한다.
기자들은 집요했다. 같은 질문을 다섯 번 던졌다. 그리고 김남준 대변인의 즉석 대응 속에서, 준비된 원고에 없던 그의 역사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첫 번째 모순: “친일파 타령”으로 논점 흐리기
중앙일보 기자가 물었다. “유사역사학 논쟁을 언급한 것이 적절했냐?”
이에 김남준 대변인의 답변은,
“친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의 주장은 어느 문헌에 있고, 위안부는 본인들이 원해서 한 건 아니냐라는 주장은 어느 문헌에 나와 있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듣고 있으면서도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고 물었다. 질문은 명확했다. 환단고기가 역사적 문헌으로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변인은 갑자기 친일파, 위안부, 독도를 들먹이며 화제를 바꿨다. 이것은 전형적인 논점 이탈이다.
환단고기 문제와 친일, 위안부, 독도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환단고기는 1911년 이전 어떤 사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근대 일본식 한자어가 고대 기록에 버젓이 나온다. 고고학적 증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것이 위작이라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환단고기 문제와 달리, 친일 협력, 위안부 강제동원, 독도 영유권은 실증 사료와 증언이 존재한다. 학계의 합의가 있다. 역사적 사실이다.
대변인은 의도적으로 환단고기 문제를 “친일파 vs 민족주의”라는 정치 프레임으로 전환했다. 마치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것이 친일파를 옹호하는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환단고기가 위작인가 아닌가이지, “역사관의 차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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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모순: “기관이 답하라”는 책임 회피
국민일보 기자가 핵심을 찔렀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게 잘못되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더 연구하라는 뜻인가?”
이에 김남준의 답변은,
“그거에 대한 입장은 국가의 역사관을 연구하고 수립하는 기관에서 답을 내놓아야 될 부분이다. 기관에서 어떻게 답변 내놓는지를 국민들이 보고 평가할 부분이다.”
이게 답변인가?
대통령이 박지향 이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 이것은 대통령 자신이 환단고기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변인은 그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기관이 답할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만약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위작으로 본다면,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대통령은 환단고기가 위작이라는 학계 정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계시며, 동북아역사재단이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 두 문장이면 된다. 하지만 김남준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왜 말할 수 없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대통령 발언을 정면으로 수정하거나 부정할 권한이 대변인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대변인은 해명해야 했지만, 동시에 선을 그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언어가 ‘논란’이었고, 선택한 방식이 ‘기관으로의 책임 전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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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모순: “논란”이라는 위험한 프레임
기자가 다시 물었다.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 적절하다고 보나, 부적절하다고 보나?”
김남준은 이렇게 답했다.
“논란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느냐. 존재하고 있음에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냐.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있다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문제가 있으면 짚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회피하는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대통령은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특정 사안들을 해결해온 분은 아니다.”
이 답변이 가장 위험하다. “논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유사역사학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환단고기는 “논란”이 아니라 위작이다. “논란”은 양측에 각각 근거가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지구평면설과 과학 사이에 “논란”이 있는가? 없다. 마찬가지로 환단고기와 역사학 사이에도 “논란”은 없다. 한쪽은 검증된 학문이고, 다른 한쪽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대변인의 논리대로라면, “지구평면설도 논란이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도 성립한다.
그리고 “회피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논리가 뒤집혔다. 유사역사학을 명확히 부정하는 것이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부정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것이 회피다. 김남준은 지금 정확히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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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
기자들은 다섯 번 물었다.
“발언이 적절했나?” (중앙일보), “왜 환빠 논쟁을 언급했나?” (장윤선), “환단고기를 연구하라는 뜻인가, 위서가 잘못되었다는 뜻인가?” (국민일보), “논란 붉어진 것에 대해 적절한가, 부적절한가?” (재질문), “환단고기가 실재하는 역사 중 하나 아니냐, 더 연구해보라는 취지인가?” (재질문)
김남준 대변인은 다섯 번 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복한 단어들이 있다.
“논란” (5번), “회피하지 않는다” (3번), “기관이 답할 문제” (2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1번)
그런데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문장이 있다.
“환단고기는 위작입니다.”
이것은 즉흥적인 실수가 아니다. 5번의 질문, 5번의 답변. 그 어디에서도 환단고기를 명확히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관된 판단 회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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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브리핑 vs 질의응답이 말해주는 것
정리해보자. 23분 브리핑을 두 부분으로 나눠보면 명확하다. 공식 브리핑 (준비된 내용)에서는 환단고기 언급이 전혀 없었고, 국정 철학 설명에 집중했으며, 대통령실이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즉석 대응한 질의응답에서는 환단고기가 핵심 이슈로 부상했고, 이에 대해 명확한 부정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 프레임, 책임 회피, 논점 전환으로 일관했는데, 김남준 대변인의 역사 인식이 드러난 구간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환단고기는 대통령실이 미리 정리해서 발표할 계획이 없었던 사안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물어보자, 숨기고 있던 입장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입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고 물었을 때 이미 드러난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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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명이 만든 세 가지 효과
김남준 대변인의 브리핑은, 의도와 무관하게, 세 가지 정치적 효과를 냈다.
첫째, 유사역사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논란”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는 순간, 환단고기는 학문적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대상이 된다. 한쪽은 검증된 역사학이고 다른 한쪽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인데, “논란”이라고 부르면 둘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이것은 유사역사학 세력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도 하나의 입장이다”라는 인정. 대통령실이 그 인정을 해준 것이다.
둘째, 역사학계를 방어적 위치에 놓았다. 친일/위안부/독도를 환단고기와 같은 선상에 놓는 순간, 역사학계는 “당신들도 정치적 편향 아니냐”는 공격에 노출된다. 실증 사학을 지키려는 역사학자들이, 마치 친일파를 옹호하는 것처럼 몰릴 수 있는 프레임이 형성됐다.
셋째, 대통령실의 입장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는 명백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변인은 “기관이 답할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실이 환단고기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명확히 부정하지도, 명확히 긍정하지도 않는 이 애매함. 이것이 유사역사학 세력에게는 희망의 근거가 되고, 역사학계에게는 불안의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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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대통령실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환단고기는 위작입니다. 학계의 정설입니다. 대통령실은 유사역사학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단 한 문장이면 된다. 하지만 김남준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논란”, “다양한 입장”, “회피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적 언어로 얼버무렸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실은 환단고기를 “검증되지 않은 위작”에서 “논쟁 중인 역사 해석”으로 격상시켰다. “논란”으로 프레임을 잡는 순간, 환단고기는 학문적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대상이 된다.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정치적으로 유리한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논란”이라는 한 단어로, 대통령실은 유사역사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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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 직후 나온 공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브리핑이 끝난 직후, 대통령실은 공지를 냈다.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보고 과정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
약 14분간 기자들의 질문을 다섯 번 받고도 말하지 못한 것을, 브리핑이 끝나고 공지로 낸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왜 브리핑 중에 말하지 않았는가?
그 내밀한 사정은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사역사학 비판 작가 이문영 선생님과 그의 페북글에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다. 그는 환단고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추가 공지에 대해 소소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정치권에, 아니 국회 내 유사역사학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릴 기회가 될 것인가 생각해본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건을 호재로 생각하고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이준석은 “환단고기는 위작”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마찬가지로 정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번처럼 일부 보수 진영에서도 환단고기를 명확히 부정하는 이 순간이 언제 다시 올까?
박근혜 정부 시절, 환단고기를 인용한 ‘혼이 비정상’ 발언에 민주당은 조롱했다. 이재명 정부 시절,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 발언에 국민의힘이 비판한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이 선언을 하고 있다. 좋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박근혜를 비판했던 그 논리로 화답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기회에 국회의원들이 번갈아가며 페이스북에 입장 표명을 하면 어떨까? 국회가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에 유사역사학 대응 강화를 주문하면 어떨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사 연구 예산을 대폭 늘려주면 어떨까?
희망 사항 몇자 적고 있는 순간에도, 이 주문이 솔직히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끝날 것임을 안다. 현재 국회 사정은 정반대 상황이기 때문이다.
“환단고기는 위작입니다”라는 단 한 문장조차 말하지 못하는 정부. 그리고 그것을 정쟁용으로 비판하는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 이 기회를 놓치면, 유사역사학은 다시 정치의 도구로 돌아간다. 국회 내에서 제발 유사역사학자들 모아 놓고 행사나 하지 않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