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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예산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서양 속담에도 있다. “머니 토크” 말보다 돈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2026년 한국을 728조 원 쓰는 정치집단으로 보자.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8분)

이재명 정부의 국정 방향이 드러났다. 2026년도 정부 예산안이 그 단서를 제공한다. 서양 속담에 머니 토크(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말보다 돈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의미다.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말보다 실제로 어디에 돈을 쓰는지가 그 정부의 본질을 나타낸다. 그런 의미에서 2026년의 대한민국을 728조 원을 쓰는 정치집단으로 보고자 한다.

이재명 정부가 편성한 26년 예산안을 보면,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25년 예산안과 대척점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또 의외로 윤석열 정부와 닮은 점도 보인다. 무엇이 달라졌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도록 하자.

1. 확장재정…하지만 더 강력한 초부자감세

첫째, 확장재정으로의 전환. 그러나 더 확대된 초부자감세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긴축 재정을 추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25년 올해 정부 총지출 증가율은 3.2%다. 특히 재량지출(정부 예산에서 법률에 따라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의무지출’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으로 정부가 정책적 필요와 재정 여건을 감안해 자유롭게 규모와 대상 조정을 할 수 있는 지출) 증가율은 0.8%에 불과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 취임 후 첫 편성된 내년 예산안 총지출 증가율은 8.1%다. 정부가 재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이렇듯 정부가 돈을 많이 쓸 경우 재정의 책임성은 증가하나 재정 건전성은 줄어들 수 있다. 실제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채무 비율은 내년에 드디어 50%를 넘는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재정 여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출 확대도 중요하지만,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재정 여력도 고려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말로는 ‘건전 재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정 지출 증가를 억제했음에도, 지나친 감세조치로 오히려 재정 여력은 악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예산을 편성한 마지막 해인 2022년, 국세수입은 396조 원이었다. 그런데 2024년 작년 국세수입은 337조 원에 불과했다. 윤석열 정부 2년 만에 국세수입은 무려 15% 감소한 셈이다. 코로나19 위기(2.7% 감소), 금융위기(1.7% 감소)는 물론 IMF 위기(3% 감소)  때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국세수입 감소로 재정 여력이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는 끝났지만 윤석열 정부의 감세조치는 세법을 고치지 않는 한 이재명 정부에서도 지속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감세 효과로 인해 이재명 정부 5년간 줄어드는 세수는 무려 80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법인세는 윤석열 정부 시기 이뤄진 감세를 원상회복한다면서도, 오히려 윤 정부도 하지 못했던 배당소득에 대한 감세는 확대한다고 한다. 중산층 소득의 근원은 노동소득이지만 부유층 소득의 근원은 부동산 소득이다. 윤석열 정부는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깎아서 ‘부자 감세’ 정부라는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수천억원, 수조원의 재산을 가진 초부자들의 소득의 근원은 부동산이 아니라 주식 배당소득이다. ‘초부자 감세’라는 비판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물론 ‘감세의 화신’ 이명박 정부도 하지 못했던 주식 배당소득 감세를 이재명 정부는 추진한다고 한다. 

또한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 과세(2025년 기준, 상장주식의 대주주가 해당 종목당 50억 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일정 지분율을 가진 경우,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고 있다. 2025년 세제개편안에서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으로 하향 조정하려 했으나, 시장 반발로 50억 원 기준이 유지되고 있다)도 정부안 당초 개정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윤석열 정부와 동일하게 50억 원으로 크게 확대한다고 한다. 

‘부자 감세’가 나쁠까? ‘초부자 감세’가 더 나쁠까?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대원칙은 없어지고 오로지 노동소득에만 세금이 매겨지고, 자본소득(주식 양도소득)에는 세금이 없거나, 노동소득보다 훨씬 적은 세금(주식 배당소득)을 부과하고자 한다.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주식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 자신보다 자신의 비서의 소득세율이 더 높다며 한탄했던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게 되었다. 주가를 띄우기 위해 워렌 버핏 조차 반대하는 일을 해야 할까?

2. AI에 ‘몰빵’한 26년 예산안

둘째,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은 AI와 R&D(연구개발)로 이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내년에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돌파한다는 말이 들린다. 이미 여러 번 들어온 이야기다.  2021년 예산안 발표 때 정부는 2022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2022년과 2023년에도 다음 해에는 50%를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복됐다. 그런데 2025년 현재, 국가채무비율은 여전히 49%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0년에는 2022년에 50%를 넘고, 2024년에는 58%를 초과한다며 국가채무를 걱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2026년에 50%를 돌파하고 2029년에 58%를 넘을 것이라 다시 말한다. ‘내년에는 50%를 넘는다’는 예고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일단, 기재부의 국가 채무 비율 예측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예측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틀리더라도 낙관적(+) 예측, 비관적(-) 예측이 번갈아 가면서 틀려야 한다. 항상 부정적 방향으로 틀렸다면, ‘0점 조절’이 필요하다. 5년짜리 예측이 5년 틀린 것은 지나치다.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진 이유는 세입이 늘어서도, 세출이 줄어서도 아니다. 명목 GDP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를 갚는 것은 우리 후손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그 자체라는 의미다. 1970년, 당시 국가 예산의 15%를 투입해 건설한 경부고속도로의 비용은 430억 원이었다.  우리 후손은 430억 원의 빚과 함께 경부고속도로라는 자산을 물려받았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문화체육관광부 (CC BY)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빚을 졌는가’가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가’다. 그 돈으로 ‘대왕고래 프로젝트’(윤석열 정부가 동해 심해 에너지 개발을 위해 추진한 대형 국가 프로젝트로, 경제성이 없어 중단된 사업) 같은 도박판을 벌였는지, 아니면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컴퓨터를 들여와 이자비용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는지가 핵심이다.

26년도 국가 지출이 가장 많이 확대된 곳은 어디일까? 총지출이 가장 많이 증가한 분야는 통신 분야(31%), 과학기술 분야(19%), 그리고 산업·중소기업및에너지 분야(15%)다(예비비 제외). 10% 이상 증가한 분야는 이것이 전부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AI에 10조 원, R&D에 35조 원을 몰아주었다. AI, R&D에 ‘몰빵’한 지출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가 가장 솔직한 답이다. 내년도 예산은 균등 배분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AI, R&D에 불균등 배분 전략을 택한 셈이다. 

이를 투자 전략으로 보면 위험을 분산한 ‘포트폴리오 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몰빵’ 투자에 가깝다. 그리고 ‘몰빵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즉, 위험 감수(리스크 테이킹) 전략이다. 위험 감수 전략은 장단점이 있다. 만일 AI, R&D 투자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26년 정부 지출은 대단히 현명한 선택으로 평가될 것이다. 반면 AI, R&D 투자가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26년 정부 지출은 실패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26년 정부 지출 전략은 이 자체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우며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AI, R&D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예컨대 GPU(그래픽처리장치) 구매를 위한 사업이 무려 2조 원이나 책정되었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는 엔비디아 GPU를 과연 2조 원어치나 구매할 수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예산안 제출 이후, 젠슨 황이 방한해 GPU 26만 장을 판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GPU 등 고성능 컴퓨터를 돌릴 때 쓰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은 10~20메가와트(MW)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울산에 100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지어 GPU 8만 장을 채운다고 해도, 실제 국내 AI 수요가 20메가와트에 불과하다면 최대 26만 장의 GPU 중 상당수가 활용을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은 예산이 있어도 GPU를 사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으나, 정작 GPU를 확보하고 나서도 국내에서 제대로 쓸 수 없다면, 결국 GPU는 ‘그림의 떡’이 아니라 ‘돼지 목에 진주’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결국, 민·관의 노력을 통해 ‘그림의 떡’ 신세를 면했다면 이제는 제대로 된 AI 수요를 창출할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내년도 예산안 사업명에 ‘AI’가 들어간 부처가 무려 24개나 된다. 과연 이 모든 사업이 AI 발전을 위해 편성한 사업일까? 예산을 따낼 수 있는 마법의 키워드로 ‘표지갈이’한 사업도 일부 섞여 있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작은 AI 수요나마 창출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무척 복잡하다.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복지 권리도 대단히 많다. 우리나라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흩어져 있는 모든 복지 제도를 설명해주는 ‘복지 AI’를 개발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소득, 지역, 재산, 필요한 복지를 물어보면 환각 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복지제도를 척척 설명해주는 복지 AI가 있으면, 몰라서 누리지 못하는 복지 권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3. 윤석열 정부와 비슷한 복지예산

셋째, 복지예산은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AI, R&D 지출은 크게 확대한 반면, 복지 분야 지출은 그다지 확대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24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2.8%였고, 사회복지 분야 지출액 증가율은 8.7%였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8.1%나 사회복지 분야 증가율은 이보다 낮은 8.6%다. 총지출 증가율은 거의 세 배 가까이 증가했으나 유독 사회복지 분야 증가율은 낮은 셈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지출의 기본은 기초생활보장 부문이다. 빈곤층에게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빈곤층의 정의는 중위소득의 50% 이하다. 즉, 우리나라 모든 소득자를 일렬로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 만약 300만 원이면 그 50%인 150만 원 이하를 벌면 빈곤층으로 정의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빈곤층을 위한 생계급여는 중위소득의 50%가 아니라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는 기준중위소득의 30% 이하만 생계급여 대상이었다. 그래도 윤석열 정부에서 32%로 증가되어 생계급여 대상이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에서는 33%, 35% 등으로 확대되어 중장기적으로는 50%까지는 올리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유럽국가들은 과거 중위소득 50% 이하를 빈곤층으로 분류하다가 2000년 리스본 정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중위소득의 60%를 상대적 빈곤선으로 결정하고 각종 복지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의료급여 등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도 시급한 문제다. 

이재명 정부의 복지 브랜드는 ‘통합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복지 브랜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한 기초생활보장제도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이다. 즉, 김대중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최저선’을 세우고,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으로 보편적 급여의 범위를 넓혔다면, 이재명 정부의 통합 돌봄은 복지의 지평을 생활권으로 확장하려는 첫 시도로 복지의 목적이 생존에서 생활로 옮겨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통합 돌봄’은 12개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으로만 하다가 드디어 26년에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던 통합 돌봄 예산은 불과 777억 원에 그친다. 예산 규모가 적으니 20%의 지자체는 정부 보조금이 0원이다. 내년도 전국 확대를 믿고 통합 돌봄을 준비하던 이들 지자체는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원래 통합 돌봄은 의료뿐만 아니라 주거, 가사, 식사, 이동지원까지 포함된 통합적 재택 돌봄이었다. 노인, 장애인, 질환자 등이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살던 집에서 다양한 돌봄을 받는 게 핵심이었다. 그런데 26년 예산서는 ‘취약지역 의료서비스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축소·변질되었다. 전국적 통합 돌봄이 취약지역 의료서비스로 축소된 이유는 결국 예산을 충분히 확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에는 10조 원을 쓰면서 이재명 정부의 복지 브랜드인 통합 돌봄에는 777억 원만 책정하다 보니 생긴 문제다.

정부는 많은 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예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6년 예산안이 보여주는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분명하다. AI에는 10조 원을 쓰면서도 통합 돌봄에는 777억 원만 배정한 이 예산이 과연 ‘생활 속 복지’로 나아가려는 정부의 진심을 증명할 수 있을지, 국민은 숫자로 확인할 것이다. 동시에 AI와 R&D에 대한 ‘몰빵 투자’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재정 여력 확충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에 이어 초부자 감세까지 용인한 채로는 확장재정도, 복지도, 미래 투자도 오래가기 어렵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보건복지위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통합 돌봄 예산은 증액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예결위 본심사가 남았다. 반면,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확장적 재정과 감세는 재정여력을 줄일 수 밖에 없다. 국회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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