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텍스트] 4대 금융지주 상반기 이자수입 21조 원… “‘이자놀이’ 매달리지마” 대통령 경고에 ‘움찔’.
이재명(대통령)이 ‘이자놀이’를 직격하자 국내 금융권이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28일 금융권 협회장들을 소집해 자금 공급을 생산적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권대영은 이날 은행연합회장 조용병, 금융투자협회장 서유석, 생명보험협회장 김철주, 손해보험협회장 이병래, 저축은행중앙회장 오화경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권대영은 “우리 금융권이 부동산 금융과 담보·보증 대출에 의존하고 손쉬운 이자 장사에 매달려왔다는 국민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이자놀이에 매달리지 말라.”
- 대통령 말 한마디에 소집된 긴급 회의였다. 이재명은 지난 24일 “국내 금융기관은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그래야 “국민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기관도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쓴소리다.
- 은행들이 앉아서 버는 돈이 많아도 너무 많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상반기 중 이자로 거둬들인 수입은 무려 21조 1000억 원에 달한다. 작년 동기보다 1.4% 증가했다. 가계 대출 증가와 높은 예대 마진(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에서 비롯했다.
- 한국은행은 지난해부터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은행들은 ‘가계 대출 관리’를 명분으로 대출 금리를 높이고 예·적금 금리는 낮췄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은행 예대금리차는 0.5%P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1%P 중반까지 확대됐다.
- 대통령 발언에 주요 언론도 호응했다. 동아일보는 “금융지주사들은 이렇게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벌어들인 순이익의 절반을 배당, 자사주 소각 등에 사용한다”고 비판했고, 세계일보도 “은행의 이자놀이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 70% “예대 마진 일부, 사회에 환원해야.”
- 리얼미터가 28일 공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예대 마진은 국가로부터 보장 받은 무위험 차익에 가까우므로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67.9%에 달했다. 반면 ‘법률상 보호 받아야 할 기업 활동이므로 은행권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은 25.7%에 불과했다.
- 같은 조사에서 ‘정부가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에 적극 개입하거나 높은 강도의 금융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66.3%가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29.1%에 그쳤다.
- 이 밖에도 응답자 78.1%는 ‘금융권 지배 구조에 대해 일반 상장 기업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64.3%는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공정하게 관리·감독하지 않는다’고 봤다. 금융권에 대한 부정 여론이 나타난 조사다.

금융권 스스로도 “영업 방식 바꿔야.”
- 부동산 대출 중심 영업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은 금융계 내에서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1월 보고서(‘인구변화에 따른 은행의 대응방안’)를 통해 부동산 담보 위주 영업은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는 주택 가격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은행 건전성을 위해서라도 기존 영업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최근 보고서(‘부동산 중심 관행적 금융에서 사업성 중심 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제’)에서도 “부동산 편중 대출은 향후 경제가 악화할 경우 가계와 기업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키워 연체를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 강화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유발해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며 “기업의 담보가 아닌 미래 사업성을 평가해 지원하는 금융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이런 시각은 권대영이 간담회에서 “금융이 시중 자금의 물꼬를 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 산업과 벤처기업, 자본시장 및 지방·소상공인 등 생산적 영역으로 돌려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맞닿아 있다. 이날 금융협회장들은 첨단·벤처·혁신기업 투자를 위한 민·관합동 100조 원 규모 펀드 조성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상향 조정해야.”
- 어떻게 하면 자금이 생산 기업으로 흐를 수 있을까. 위험가중자산(RWA, Risk-Weighted Assets)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RWA 제도는 대출, 투자 등 은행이 보유한 자산을 단순 총합이 아닌 각 자산 위험도를 반영한 ‘가중 자산’ 합계로 계산하는 금융 규제 방식이다.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제안한 자본 규제 개념이다.
-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의 8% 이상(BIS 비율 8%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을 많이 하면 재무 건전성을 뜻하는 BIS 비율*이 하락할 수 있다. 은행들이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 대출보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있어 위험가중치가 낮은 주택담보대출을 선호하는 이유다.
- 기본소득당 의원 용혜인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20개 국내 은행의 대출 익스포져별 위험자산 가중치’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는 18.9%로 일반 기업의 57.9%에 비해 약 3배 가량 낮았다. 용혜인은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선영도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위험 가중치 하한선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은행이 기업 대출 등 생산적 자금 공급에 기여할 경우 이를 감독해 평가에 반영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BIS 자기자본비율
국제결제은행(BIS)가 정한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자기자본비율. 한국은 1993년 BIS 자기자본비율 제도를 도입했다. 1995년 연말부터는 BIS 비율을 8% 이상 유지하도록 의무화했다.
“은행 규제, 제도로 강화해야.”
- 이재명의 기본 시리즈인 ‘기본금융’ 연구 책임자로 활동한 임수강(경제학 박사)은 28일 통화에서 “‘이자놀이’는 결국 담보대출로 돈을 손쉽게 번다는 지적”이라며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고 생산적 금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옳다. 다만 대통령에 의존하는 것보다 은행 규제를 제도로 보완하고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 “위험가중치가 가계 대출은 평균적으로 18%, 기업은 55% 정도인데 가중치 설정은 국가의 재량 사항이다. 가계 대출 위험도를 높이는 제도 개선으로 은행 자금의 물꼬를 가계에서 기업으로 틀 수 있다.”
-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 실효성을 높임으로써 은행이 기업 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 공급을 선호하는 유인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위험가중치는 약 15% 수준으로 홍콩, 스웨덴의 경우 위험가중치 하한을 25%로 상향한 바 있다”고 했다.
또 하나의 카드, ‘횡재세’ 다시 꺼낼까.
-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시절 금융회사가 고금리 덕에 벌어들인 초과 이익 일부를 부담금 형태로 환수하는 ‘횡재세’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금융회사가 지난 5년 동안의 평균 순이자수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 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다.
- 당시 이재명은 “유가 상승과 고금리 때문에 정유사와 은행들이 사상 최고 수익을 거두고 있다. 정유사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무려 87.3% 상승했고 은행은 올해 60조 원을 초과할 것”이라며 “횡재세 도입으로 만들어진 재원으로 고금리에 고통받는 국민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횡재세는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 금융권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반영해 다시 꺼낼 수 있는 카드다.
-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은행권이 법정 비용이라고 주장하는 각종 보험료와 출연금 등을 가산 금리에 넣어 대출자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막는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대출 금리 산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회는 지난 4월 이 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했다.
-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규제 움직임에 “반시장적 ‘정치 금리’ 포퓰리즘이 오히려 서민 경제를 위협할 수 있으며 시장 경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비판하지만 거대 의석 앞에 속수무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