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연봉 5000만 원 미만 개인에게 월 최대 50만 원 지급… 격차 해소와 근로 유인,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다. (⌚7분)

올해 1월 2030세대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72만 명이다. 전년 대비 6만 명 증가했다. 2015년에 50만 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10년간 ‘쉬었음’ 인구는 50%나 늘었다. ‘쉬었음’ 인구는 비경제 활동 인구 중 특별한 사유나 교육·훈련 없이 노동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쉬고 있는 청년의 증가는 노동 감소, 불평등 심화, 소비 위축, 세수 감소, 잠재 성장 둔화 등 사회 문제를 빚는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좌절의 늪에 빠져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1988년에는 구직자 10명이 일자리 33개를 앞에 놓고 골랐다. 지금은 10명 앞에 놓인 일자리는 고작 3개뿐이다. 청년을 늪에서 구할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연구자 이완은 근로장려금을 해법으로 제안했다. 이재명(민주당 대표)의 기본소득과 오세훈(서울시장)의 안심소득, 김동연(경기도지사)의 기회소득 등 소득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여럿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거나 구조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 근로장려금은 저소득 계층의 근로를 유인하고 실질 소득을 지원하려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국정 과제 회의에서 근로장려금을 정책 어젠다로 부각했고 2006년 조세특례제한법에 근로장려세제를 신설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처음 지급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도 제도 기틀을 잡거나 확장했다. 보수와 진보 모두 갈고 닦아 발전시킨 제도다.
- 일정 소득 이상까지는 일을 하면 할수록 장려금을 더 받는다. 일정 소득 구간에서는 최고액을 정액으로 받으며, 그 구간을 넘어 기준 소득 금액 미만까지는 지급액이 점점 줄어드는 구조다.
- 일례를 들어보자. 현재 한 해 총소득 2200만 원 미만의 단독 가구엔 최대 165만 원을 지급한다. 총소득이 4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은 총소득의 41.25%를 장려금으로 받는다. 이 구간은 일할수록 장려금이 느는 ‘점증’ 구간이다. 총소득이 400만~900만 원 미만 구간은 정액 165만 원을 받는다. 900만~2200만 원 미만 구간은 일할수록 지급액이 깎이는 ‘점감’ 구간이다.
- 정부는 단독 가구 외에도 3200만 원 미만 홑벌이 가구에 최대 285만 원, 4400만 원 미만 맞벌이 가구에 최대 330만 원을 장려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2023)를 보면, 근로장려금은 단독 가구 및 30세 미만 가구에서 근로 유인 및 소득 효과가 나타나는 등 “타당성과 효과성을 모두 갖춘 제도”로 평가받는다.

기본소득 예산의 3분의 1도 안 된다.
- 이완의 주장은 총소득 5000만 원 미만 모든 개인에게 최대 600만 원(월 50만 원)의 근로장려금을 지급하자는 구상이다.
-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중위’ 소득은 월 247만 원이다. 이는 연봉 3000만 원 수준으로, 이들이 받을 최대 지급액 600만 원은 중소기업 종사자가 근로장려금으로 대기업 종사자의 소득을 초월하지 않으면서도 대기업 종사자와 격차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수준이다.
- 정부가 중소기업 종사자에게 생활에 보탬이 되는 소득을 지원한다면, 청년은 최소한 의욕을 잃지 않을 것이고, 중소기업 역시 젊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 경우 소요 예산은 44조 17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근로장려금의 다섯 가지 키워드.
- 첫째, 지급액 상승 구간이 있어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현금 복지가 받는 비판은 근로 의욕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 둘째, 보편적 기본소득에 비해 적은 예산이 든다. 성인 4000만 명에게 매달 30만 원씩 지급하려면 144조 원이 필요하다. 근로장려금은 3분의 1 수준이다.
- 셋째, 최저임금 인상에 비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부담이 적다.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국가 책무를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 넷째, 이미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개선하여 활용할 수 있다.
- 다섯째, 청년도약계좌 등 기존 청년 정책과 달리 더 포괄적이다.

한계와 전망: 재정지출 확대, 증세 없이는 불가능.
- 2023년 근로장려금 지급액은 4조5600억 원이었다. 이완의 구상대로 근로장려금을 확대하려면 10배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완은 “증세나 적자 재정이 필요하다”며 토지세, 금융투자소득세 등 지대 및 자본이득 과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조기 대선을 앞두고, 수도권 중산층 표심을 잡기 위해 상속세 완화 등 감세 경쟁에 나선 여·야 정치권이 증세와 직결된 복지 정책에 관심을 보일지 회의적이다.
- 다만, 윤석열 정부도 올해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할 수 있는 맞벌이 가구의 총소득 상한 금액을 3800만 원에서 4400만 원으로 확대했다. 보수든 진보든 제도의 효용을 평가하고 있다. ‘근로장려세제 대상 및 지원 금액 확대’는 2022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의 복지 공약이었다.
-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상승하면서 전 국민 소득과 살림살이가 극도로 위축됐다. 국가 재정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이완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재정을 너무 아낀 편”이라며 “지금처럼 전 국민 소득이 위험할 때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현명하게 확대해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완 미니 인터뷰.

— 근로장려금은 ‘소득 보장’보다 ‘근로 유인’에 더 큰 방점이 찍힌 제도 아닌가?
“현금 복지를 논의할 때 항상 나오는 비판이 바로 ‘근로 의욕 저하’다. 나라가 공짜로 돈을 주니까 일을 안 한다는 논리다. 모든 현금 복지가 그렇지는 않지만 잘못 설계된 현금 복지가 일할 의욕을 꺾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제도는 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지원을 깎는다. 소득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빈곤한 사람 입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큰 소득을 벌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일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 근로장려금은 이런 상황을 초래하지 않는다. 일정 구간에서는 소득이 늘면 지급액도 함께 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 더 많은 소득을 벌면 나라가 보너스를 주는 셈이니 이름처럼 근로를 장려하는 효과가 있다.”
— 청년들의 근로 의욕 상실을 주목했다.
“요즘 청년이 아무 곳에나 취업하지 않고 그냥 드러눕는 데는 고통스러운 기업 문화와 (우울증 등) 정신 질환 문제 등의 요인(관련 기사 : 청년 3명 중 1명은 ‘자살 생각’…청년층 정신질환 위험, 중년층보다 심각)도 있지만, 너무나 불안정한 소득 탓도 크다.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정말 혼자 간신히 먹고살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월급이 밀리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이러면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만약 정부가 중소기업 종사자에게 생활에 보탬이 될 만큼 소득을 지원하고 근로 의욕을 꺾지 않는 방식으로 채용한다면, 청년은 일자리를 얻고 중소기업은 젊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근로장려금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급 대상과 금액을 늘리면 중소기업 취업을 장려할 수 있지 않을까.”
— 정부와 여·야 모두 근로장려금 효과와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행히 근로장려금은 사회적 인식이 나쁘지 않은 제도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초를 쌓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시행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기틀을 잡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급 대상을 확대했다. 진보와 보수 모두가 함께 쌓아 올린 복지 제도다. 이 제도가 저소득층만을 위한 제도라는 인식도 빠르게 개선할 것이라 예상한다.”
— 기본소득은 왜 문제인가?
“일단 너무 비싸다. 성인 4000만 명에게 매달 30만 원씩 지급하는 데만 144조 원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쓰는 예산이 125조 원 정도다. 기존 복지 제도를 다 폐지해도 기본소득 예산을 마련할 수 없다. 또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 제도를 대체할 수 없다. 누구는 정부로부터 월 100만 원을 받아야 살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10만 원만 받아도 살 수 있다 치자.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똑같이 30만 원을 지급해 버린다.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폐지하고 모두에게 매달 30만 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개인은 그 30만 원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이 제공하던 안전망을 직접 마련해야 한다. 고객이 늘어난 만큼 보험료가 오를 테니 개인은 기존 복지 제도가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감당해야 한다.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을 모조리 보험료로 지출해야 할 수도 있다. 기존 복지 제도와 결합하지 않으면 기본소득은 약자의 생존을 위협한다.
하지만 기존 복지 제도를 폐지하지 않으면 기본소득 예산을 마련하기 어렵다. 지급액을 늘리면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고 지급액을 줄이면 포괄성이 낮아진다. 기본소득의 딜레마다.”
— 근로장려금 재원 44조 원은 어떻게 설계된 금액인가?
“올해 3월 발표된 2023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종사자의 중위 임금은 세전으로 월 247만 원이다. 연봉으로 약 3000만 원 정도다. 같은 시기 중소기업 종사자의 평균 소득은 세전으로 월 298만 원, 연 소득으로 약 3570만 원 정도다. 우선 중소기업 안에서 중위 소득과 평균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최대 지급액을 600만 원으로 설정했다.
지금 설계안에서는 연 소득 3000만 원부터 최대 지급액 600만 원을 받는다. 이 경우 3600만 원(3000+600)이 되어 중소기업 평균 임금(3570만 원)을 넘는다. 또 지금 설계안에서는 연 소득 3600만 원까지 최대 지급액을 받을 수 있는데 3600만 원에 600만 원을 더하면 4200만 원이 된다. 20대 후반 대기업 종사자의 중위 소득이 월 366만 원, 연봉으로 4390만 원 정도다.
정리하면, 최대 지급액이 600만 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중소기업 종사자가 근로장려금으로 대기업 종사자를 초월하지 않으면서도 대기업 종사자와의 격차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연 소득이 만들어진다. 물론, 상승·하락 구간 등은 임의로 설정한 수치라 더 다듬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수치를 설정하고 통합 소득 백분위 자료의 분위별 인구수와 곱해 분위별 지급액을 구했다. 분위별 지급액을 모두 더해 나온 금액이 약 44조 원이다. 당장은 최신 자료를 사용했지만 앞으로 새로운 소득 자료가 나오면 금액이 바뀔 수 있다.”
— 44조 재원 역시 부담인데 이에 관한 해법이나 대안을 고민한 게 있나?
“청년도약계좌처럼 대다수 청년에게는 도움 되지 않는 정책은 폐지해야 한다. 물론 기존 청년 정책은 예산이 너무 적다. 증세나 적자 재정이 필요하다. 세금에 관한 공부는 부족하지만 토지세와 금융투자소득세를 눈여겨보고 있다. 기존 기본소득과 안심소득 논의에서 나온 예산 확보 방안을 근로장려금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청년도약계좌는 왜 문제인가?
“청년도약계좌는 일종의 적금이다. 일정 기준 미만으로 소득을 버는 사람이 1000원에서 70만 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이자를 얹어주는 정책이다. 이 정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은 매달 70만 원씩 적금을 부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다. 혹은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다수 청년이 아니라 소수, 운 좋은 청년에게 보너스를 주는 정책이다.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확대한 근로장려금과 연계할 수 있게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