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노동 규제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저하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위기인데, 사실이 아니다.

삼성이 가장 잘나갔던 2010~2017년에는 ‘Work Hard’가 아니라 ‘Work Smart’ 기조를 외쳤다.

  • 첫째, 임원 퇴근 시간은 저녁 6시로 관리했다.
  • 둘째, 10+10+10 회의 문화 개선 정책을 펼쳐서, 회의는 10명 이하 참석, 회의 의제는 10개 이하로, 발표는 10분 이하 등으로 불필요한 업무를 최소화했다.
  • 셋째, CEO 보고도 10분 내로 제한했다.

그 시절 삼성은 메모리 산업에서 타사 대비 1년 이상 앞섰고, 반도체 업계 글로벌 1등으로 자리잡았다. 후발 주자였던 파운드리에서도 19% 점유율을 올리면서 교두보를 만들었다.

한때 잘 나갔던 삼성, 조직의 우선 순위가 달라졌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변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 첫째, 주간 업무를 빡빡히 관리하기 시작했고
  • 둘째, 관리자들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생겨났다.
  • 셋째, 연구개발도 실현 가능성과 타산을 따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기술력이 뒤쳐지기 시작했고, AI 혁명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노동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단기 재무 성과 중심의 의사결정이 문제였다.

대만의 TSMC는 노동 유연성이 경쟁력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단편적인 접근이다. TSMC가 한때 장시간 노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TSMC도 일과 삶의 조화를 천명한 상태다.

출처: 법률사무소 지담.

3교대 근무 시스템은 어떤 반도체 제조 기업에서나 운용하고 있는 방식인데 열악한 근무 조건에 걸맞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계속해서 외주 협력사에 교대 근무를 넘겨 왔다. 설계나 공정 등 연구개발을 중심으로하는 엔지니어 부문과 달리 설비 유지보수를 외주화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구조가 수율 저하와 직결된다.

기술 회사가 연구개발을 가볍게 봤다.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추궁하거나, 실수를 덮으려고 협력사에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연구개발과 수율 향상을 위한 도전적인 과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동화와 외주화의 책임만 늘어간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간과했던 결과가 지금의 기술 격차다.

SK하이닉스는 통상 삼성보다 경영지원 파트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SK하이닉스는 기술을 중심에 뒀고 유틸리티와 인프라 등에 대한 기술적 존중이 있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성공과 수율 향상 등에는 이러한 기술 중심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삼성전자의 위기 해법은 명확하다.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는 관리‧지원 부서와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는 현업 부서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 이를 통한 업무 효율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 기술 용어를 세탁한 보고서, 결국에 단기 이익으로 수렴되어 지원부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연구개발과 투자 방식은 강력히 제고되어야 한다.

52시간이라는 근로 기준이나 근태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를 내고 비효율을 조정하는 게 과제다.

근원적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새 경영진의 선언은 나름 의미가 있으나, 과거로 회귀하는 업무 방식이나 그립감을 강조하면서 헌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임원과 지시와 협력을 하는 관리자, 성장을 체감하는 담당자의 고리가 연결되어야 회복과 추격이 가능할 것이다.

관행적이고 음성적인 초과 노동, 구조와 본질을 보자.

왜 이렇게 52시간을 관철하려는 것일까?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의 사례를 드는데, 이는 미국의 경영자, 일부 관리자, 전문가 집단 등 법에서 강력히 규정하는 이들에 한정되어 있고, 이들은 야근 수당을 받지 않고 고연봉자로 한정된다. 반도체 산업 전체에 예외 기준을 두는 것과는 결이 맞지 않다.

결론적으로 삼성이 요구하는 52시간 예외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노동자를 압박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현상의 자기오류의 문제가 발생한다. 말하자면, 52시간 노동이 없어서 반도체 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현장에서는 52시간 초과 노동이 일상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 첫째,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노동자들은 자기 실력을 위해서든 과업 지시 해결을 위해서든 업적 평가를 위해서든 일단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게 돼 있다. 그래서 가끔 늦은 퇴근을 할 수도 있다. 52시간에 저촉되어서 일을 안 한다는 논리는 멀리 있는 법보다 가까이 있는 성과와 평판에 영향을 받는 것을 생각했을 때 현실성이 없다.
  • 지금도 프로젝트 조직이나 기타 다양한 예외적인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3개월 열심히 일하고 3개월 쉬게 하는 등 장기간 집중 노동과 휴식은 연간 업적평가로 연봉과 경력이 결정되는 대기업의 인사 정책에 의해, 집중 노동만 증가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둘째, 현상과 실제가 다르다. 여기에는 강력한 노동자 관리의 미시적인 기술이 활용된다. 실제로 52시간 노동을 지속하면서도 인사 시스템 상에서 소위 ‘예외처리’를 통해 실제 근로시간보다 적게 근로시간을 입력하는 경우도 많다. 법규를 어겨도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 관행화된 초과 노동을 양성화한다는 건 노동자의 수당을 현실화 하기 위한다는 선의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일상화할 가능성이 크다.

잘 나갈 땐 경영자 칭송, 위기 닥치면 노동자 근태 타령.

성과가 날 때는 불세출의 경영자를 칭송하고, 회사를 추종하다가, 위기가 현실화하면 노동자 근로 태도와 근무 시간을 문제 삼고, 역량이 부족해서라는 핑계를 댄다. 책임없는 이들이 책임을 종용하는 권한을 갖기 때문에 문제다.

반도체 산업은 현실에서 제품을 만들고 한땀 한땀 수율을 올리는, 대체할 수 없는 현장의 노동자들에 달려있다. 52시간 예외라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 노동자들을 압박하면, 일 잘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날 것이다. 남은 이들은 번아웃과 태업으로 버틸 것이다. 지금 삼성전자는 그 기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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