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북살롱 ‘오티움’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정부가 없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마냐의 북라이딩]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들은 두 번 충격받았다. 처음 트럼프 당선에 당황해 절치부심 쓴 책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How Democracies Die, 2018). 트럼프 덕분에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저자들은 4년 뒤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 다시 경악했다.
당시 현직 대통령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의 주류까지 바이든이 이긴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에, 특히 미국 민주주의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목조목 파헤쳤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영어 2023, 한글 2024)의 원제는 [소수의 폭정] (Tyranny of the Minority)인데, 책을 읽고 나면 당혹스럽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위험하다
곳곳에서 백래시, 역풍이 불고 있다. 극단주의 우파 정당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 전반에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권을 잡고 제도를 공격했다. 저자들이 보기에 부유한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적 혼란도 대체로 못사는 나라 몫이라는 그들의 관점은 넘어가자.
미국 공화당은 민주주의의 세 가지 원칙과 기준을 다 위배했다.
-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
- 극단주의자와 손잡지 않는다.
멀쩡한 정치인들이 순식간에 태세 전환한 이유는 ‘자리’가 결정적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거나 더 높은 자리로 가고 싶은 경력지상주의자였을 뿐이다. 트럼프에 반대하면 다음 선거가 위태로우니, 일단 트럼프 편을 들었다. 심오한 뜻이나 고심한 갈등이 있는게 아니다. 단지 민주주의에 무심했다.
저자들은 이걸 ‘독재의 평범성’(banality of authotaranism)이라 부른다. “그들이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다. 실제 민주주의 원칙에 굳건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달리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다.
“주류 정당이 전제적인 극단주의자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혹은 이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 민주주의는 곤경에 빠진다. 그들은 독재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조력자가 된다.”
트럼프는 2020년 선거 직후 온갖 짓을 다 했다. 저자들 요약만 봐도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형적 사기를 저지르도록 압박하면서 “11,780표만 있으면 된다”며 바이든이 공식적으로 앞선 격차보다 한 표 더 불렀다. 미국 주방위군을 배치해서 투표계산기를 압수했고, 바이든이 승리한 여섯 개 주에서 트럼프를 승자로 인정하는 허위 인증서를 마련했다.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지만, ‘부정선거’라고 계속 떼를 썼다.
공화당 인사들이 처음엔 주저하다가, 트럼프의 억지에 가세했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2020년 미국 공화당에 대해 “일반적인 중도 우파 여당보다 튀르키예의 정의개발당(AKP)이나 헝가리의 피데스와 같은 독재 정당과 더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이쯤에서 궁금했다. 우리는?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민주주의 리포트를 찾아봤다가 또 충격을 받는다. 대한민국은 2023년 ‘독재화’ 진행 국가로 분류된다. 와,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혼자서 내리막 화살표는 뭣이며, 지도상에서 붉은 색 쪽으로 분류되다니…
공화당이 뻔뻔해질 수 있는 비결?
미국 선거제도는 유권자 민심을 반영하지 못했다. 1992~2020년 공화당은 2004년을 제외하고 전국 선거에서 내리 패배했으나 세번이나 대권을 차지했다. 공화당이 미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에 적응해야 할 동기를 상실한 이유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가 팽팽한 경합주 몇 곳에서만 이기면 된다. 전체 득표는 의미 없다.
미국 선거제도가 이상하다는 것을 미국인인들 모를까? 225년간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 혹은 개혁하려는 시도가 700회를 넘겼지만 실패했다. 미국 헌법이 압도적 다수가 아니면 ‘소수’를 존중하는 탓이다. 미국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하기에는 소수의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 미국 헌법 수정 시도는 11,848회 있었고 성공한 건 27번에 불과하다.
극단주의는 미국 역사에서 종종 포악했다. 1896년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자 백인은 집단폭력을 행사해 투표를 못하게 했다. 대법원은 흑인의 투표권 박탈을 손놓고 구경했다. 남부 흑인 투표율은 1880년 61%에서 1912년 2%로 떨어졌다. 윌밍턴시의 경우, 1898년 세 명의 흑인 시의원이 강제 사퇴한 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다시 시의원이 된 것은 1972년 일이다.
인종적 보수주의를 채택, 사실상 백인 정당이 된 공화당은 백인 유권자 감소에 기민하게 움직였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몇몇 주에서는 투표 때 신원 확인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다.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이 없는 미국에서는 가난할수록, 흑인일수록 이게 장벽이 된다. 약자들로부터 투표권을 박탈하는 셈이다. 여기에 공화당은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을 대변하고, 민주당은 도시 정당이 되어버렸다.
다수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설계된 규칙이 정치적 소수가 다수를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심지어 지배하도록 만든 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진영과 정파성을 숨기지 않는 종신 판사들이 입법부가 만든 법을 위헌으로 만들어버리는 권한
- 주 지방 정부에 입법 권한을 과도하게 넘긴 연방주의
- 인구 숫자에 상관 없이 모든 주가 동등한 대표권을 가짐으로써 심각하게 불균형하게 할당된 상원 구조
- 상원, 하원 두 의회의 다수가 필요한 체계 등
미국 헌법은 이례적으로 많은 반다수결주의 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헌법을 수정하려면 상하원 모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고, 전체 주의 4분의 3이 비중해야 한다. 미국 헌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연방제 안착을 위해 작은 주에 특혜를 부여했지만 이제는 완전 낡아빠진 제도다.
법치주의를 앞세운 독재
역시 흔하다. 인도에서는 인디라 간디가 1975년 명목상 대통령을 설득해 비상사태를 선포, 하룻밤새 676명의 정치인을 투옥한데 이어 11만 명의 반체제 인사들을 국가보안법 비슷한 걸로 체포했다. 그는 30년 인도 민주주의 역사를 끝내고, ‘헌법’을 앞세워 독재를 이어갔다. 박정희 유신 독재가 흔한 패턴이었나 싶다.
법의 헛점을 이용해 집권당의 과반수 구조를 영구적으로 만들어버린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정부. 그의 언론 장악도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다. 공영방송 언론인 1000명을 자르고, ‘충직한 이’로 대체했더니 어느새 충실한 정부 선전기구. 오르반 측근들은 주요 언론 매체를 사들이거나 모기업 경영권을 차지했다. 최대 야권신문은 바뀐 오너에 의해 갑자기 폐간됐다. ‘편파적’이고, ‘모욕적’인, 혹은 ‘공중도덕에 반하는’ 기사를 불법화한뒤 (우리 방송통신위원회를 닮은) 헝가리 언론위원회가 언론사 수십곳에 수십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진보적 라디오 방송사는 45분으로 보고하고 50분 방송한 것 등을 빌미 삼아 허가를 취소했다.
합법을 내세워 슬며시 다수를 누르고 극소수가 자기 이권을 챙기는 풍경.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입만 열면 법을 떠들지만 법은 차별적이다. 최근 정부는 독립기념관장에 친일파 인사를 임명하고, 일본의 과거사 세탁에 눈감고 입닫았다. 우리 국민 중 여기에 동의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소수다. 그런데 ‘국민과의 전쟁’을 서슴치 않으면서 법치주의를 떠든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까
저자들은 미국이 민주주의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소수를 보호하는 영역을 허물고, 다수에 힘을 실어주는 문제다. 즉 헌법적 보호주의를 끝내고 실질적 정치 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 다수에게 더 민감하게 대응하고, 더 많은 책임을 떠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틀린 말은 없다. 투표 때나 민감한 척 하고, 책임은 아랑곳 않는 대다수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그렇다. 그래서? 더 많이 떠들라고 한다. 개혁을 공적 사안으로 만들라는 주문, 애써달라는 당부다. “옹호자와 조직자, 대중 사상가, 의제 형성자들이 정치 토론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람들이 열망하거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점차 바 꿔나가야 한다.”
토론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또 토론하고. 마이동풍,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지만 인류의 발전이란 게 그렇다. 예컨대 여자가 인간, 아니 시민이 된 건 20세기 일이다.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데 오래 걸렸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제19조에 대해 설계자인 캐리 채프먼 카트는 “상상력이 부족한 남성들에게는 난데없이 등장한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했지만, 무려 52년 동안 싸워서 쟁취한 권리다. 그들은 남성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56번의 국민투표 캠페인을 비롯해 의회가 수정안을 내놓도록 480번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밖에도 수백 건의 응집을 위해 수천 명의 여성이 평생을 바쳤고, 수십 만명이 관심과 응원을 보탰다. 할머니가 캠페인을 시작해 손녀 때에 결실을 봤다. 개혁은 힘들다. 그러나 끝내 바꾸는 것은 미래를 다르게 꿈꾸는 사람들이다. 저자들의 당부가 공허하게 느껴지다가도, 다시 정신차리게 되는 역사의 교훈이 있다.
상대를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생각하는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책에 등장하는 아르헨티나 사례는 기억해둘만 하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험한 과제이지만 끝내 해내는 이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남겨진 질문들
책은 제목에서 기대했던 내용에 부합했나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민주주의
- 정당이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민주주의에 등 돌리게 만드는게 정치 보복(재앙)이 없을거란 믿음의 부재라는데요. 적폐청산이 반복되는 건 불가피한 걸까요?
- 평등한 투표권, 이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차라리 독재 정부가 낫다는 주장(태국)도 있고, 미국은 아직도 그게 안되고.. 우리는 괜찮아요? 도농 갈등이 정파 갈등이 되는 추세인데 정보격차는 어찌할까요?
- 법을 통한 독재. 헝가리와 인도 사례가 나옵니다. 언론과 사법부 장악 코스는 몹시 합법적이네요. 법치주의가 뭐라고 생각해요?
-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것에 동의해요? 뭐가 문제죠?
독재화
- 단지 민주주의에 무심해서, 자기 자리 욕심에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고, 민주주의 붕괴의 조력자가 되는 정치인들은 ‘독재의 평범성’을 보여준다고요. 아.. 이런 정치인, 혹은 이렇지 않은 정치인이 떠오르시는지?
- 미국 공화당은 더이상 중도 우파가 아니라 극우 독재 정당에 가깝다고요.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나라가 독재화 단계 국가로 분류되네요. 어찌 보십니까?)
그래서요?
- 단기 이익, 선거공학이라고도 하죠. 공화당은 인종주의가 유리했어요. (그러나 인종 구성 변화 덕분에 고전 중) 다들 ‘적’(흑인, 난민, 여성)을 상정해서 부추기죠. 여기 안 넘어갈 방법은요?
- 정치인이 국민에게 더 민감하게 대응하고 더 많은 책임을 떠안도록 해야 한다고요. 어떻게요? 이게 투표로 심판한다는 원론이 현실화되려면요? (아이디어, 상상!)
- 개혁을 공적인 사안으로 만드는 노력, 정치 토론은 어디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업데이트 알림:
본문 삽화 해설(캡션)에서 루비 브리지스를 린다 브라운으로 착오해 설명하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한 독자께서 소셜 미디어에서 지적해주셨고, 이에 사실을 바로잡습니다.
너른 양해를 구하며, 저희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결론은 여야 모두 쓰레기라는 것이다. 깨끗한 척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국민도 쓰레기라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천벌을 인간 스스로 내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