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낙태죄 헌법소원 등 ‘공익소송’은 우리 사회에 전향적인 변화를 일으켜 왔습니다. 소송에서의 승패를 넘어서서, 국가기관이나 대기업 등을 향한 소송 제기 자체가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공익적 목적을 가지는데요. 하지만 패소한다면 막대한 소송비용을 오롯이 떠맡아야 합니다. 현행 민사소송법이 예외 없이 소송비용은 무조건 패소한 측이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패소자부담주의).
이에 공익소송 당사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공익소송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 균형만 고집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최새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비평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24. 4. 25. 패소 비용을 당사자가 부담한다는 민사소송법 제98조와 변호사 보수 규정을 둔 민사소송법 제109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패소 비용 부담주의와 변호사 보수 규정은 누구나 다 납득할 수 있는 사회적 약속처럼 보이는데, 당사자들은 왜 위 조항을 위헌이라고 주장한 걸까?
공익소송 당사자들, 헌법소원을 청구하다
당사자들은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하여 안전 발판 설비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거나, 북한 출신 종업원 12명에 대한 접견·물품 반입 신청을 국정원이 거부하자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공익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위 청구는 기각되었고, 소송비용은 청구인들이 부담하는 것으로 판시가 되어 당사자들이 항소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후 피고들에게 반환하여야 하는 소송비용액이 확정되었다. 즉시항고하고 위헌심판제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어 헌법소원 청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사자들은 공익소송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면서, 소송비용은 무조건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고 규정한 민사소송법 제98조 및 변호사 보수 규정을 둔 민사소송법 제109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 “공익소송? 민사소송과 다르지 않아”
헌법재판소는 민사소송법 제98조 즉 소송비용부담조항에 대해, 위 조항에 관한 위헌 여부에 따라 이번 사건의 결론이나 효력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의 전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각하).
민사소송법 제109조 제1항 변호사보수산입 조항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2019. 11. 28. 유사 사례에서 판시한 “공익에 기여 한다고 볼만한 소송 유형에 대해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을 제한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이고, 공익소송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경우 소송의 상대방의 실효적 권리구제의 필요 또는 남소(소송 남발) 우려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고, 공익소송이 다른 민사소송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하기도 어려우므로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변경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호주제, 낙태죄… 공익소송 의미 간과한 헌법재판소
이러한 헌법재판소 판결은 우리 사회에서의 공익소송의 역할과 의의를 간과한 매우 아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공익적 목적을 갖는 소송을 실무적,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한 달에 약 5~6건의 공익변론사건이 신청되며, 1년에 60건 이상 공익변론소송으로 선정돼 변론기금을 지원받는다. 공익변론 사건들 중에는 우리 사회에 전향적인 변화를 일으킨 소송도 있다. 아래 예시하는 소송이 대표적이다.
- 호주제 폐지 헌법소원 (위헌)
- 국가보안법 제7조 헌법소원 (합헌)
- 낙태죄 헌법소원 (헌법불합치)
- 군형법 제92조의6 헌법소원 (합헌) 등
시민과 언론의 주목은 받지 못하였으나 꼭 바뀌어야 하는 지점을 주목한 소송도 있다. 이러한 소송들은 승소와 패소라는 결과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유의미하고 사법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사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익소송은 여타 일반 재판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 구제 등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불합리한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소송에, 승패에 따라 패널티(패소 비용)가 부과되어야만 할까?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변호사 업계 및 사법 구조는 승리-패배 논리로 패배한 쪽에게 불이익을 주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공익소송은 이러한 자본주의 구조를 가로질러 사회 정의를 위하여 제기되는 ‘내러티브’이다. 이러한 소송은 재판 결과만이 의미를 갖기보다는, 소 제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던 사회적 배경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후에도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따라서 공익소송은, 이겼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소송에서 졌다고 모든 것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공익소송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여타 일반적인 민사소송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하였다.
현실적인 면에서 보아도, 공익소송의 양 당사자의 지위는 대등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 본인 또는 시민사회단체가 소송의 일방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당사자가 경제적 자력이 충분치 않으며, 상대방이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대기업으로서 모든 역량의 불균형이 예정되어 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평등원칙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일까?
세상 바꾸는 공익소송에 ‘패소=비용부담’ 해결돼야
헌법재판소는 일반 법원과는 달리,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데 그 존재 의미가 있는 기관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헌법재판소는 공익소송의 의의와 영향에 대하여 좀 더 면밀히 파악하고 실질적 평등 구현을 위한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음을, 비록 그것이 ‘패소’로 기록에 남겨졌더라도 소송의 여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공익소송 패소라는 결과가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불평등한 구조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광장에 나온 판결: 256번째 이야기
– 민사소송법 제98조 등 ‘패소자 소송비용부담주의’에 대한 헌재의 합헌·각하 결정
– 헌법재판소 이종석(재판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재판관 2024. 4. 25. 선고 2020헌바476, 2022헌바159(병합) [결정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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