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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교환·환불 제도는 일명 ‘레몬법’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형 레몬법’이라는 이름으로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가 시행 중입니다. 올해 1월 1일 시행되어 어느덧 반년이 가까워 오는 ‘한국형 레몬법’, 무엇이 어떻게 문제일까요? 윤철한 경실련 정책실장이 ‘한국형 레몬법’의 문제를 찬찬히 점검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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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레몬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의 대명사인 ‘레몬법’은 달콤한 오렌지인 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렌지를 닮은 신 레몬이었다는 비유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맛이 신 레몬’은 (달콤한 오렌지가 아니라는 맥락에서) 불량품을 뜻한다.

자동차는 우리가 구매하는 가장 고가의 제조물이다(법적으로 주택·건물은 부동산으로 제조물이 아님). 또한, 생명·안전과 직결돼 있다. 구조적·기계적 결함은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유발한다.

자동차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가장 비싼 제조물 중 하나인 동시에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
자동차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가장 비싼 제조물 중 하나인 동시에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

레몬법 이전 상황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심각한 자동차 결함이나 하자가 있어도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해 교환·환불이 가능하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소비자에게 이런저런 핑계로 교환·환불을 거부하기 다반사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도 법적 강제력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는 자동차 리콜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리콜은 해당 기업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고, 교환·환불이 아닌 간단한 부품 교환이나 수리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 신차의 하자에 대하여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해오던 자동차업계의 관행에 대하여 많은 잡음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큰 파장을 일으켜 사회적 문제로 공감된 경우도 적지 않다. 여타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새로 구매한 자동차에 하자가 있다면 교환 또는 환불 처리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아주 기본적인 소비자의 권리가 지금껏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불량 자동차로 인한 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소비자 불만이 계속되었다. 오랜 논란과 논의 끝에 지난 20년간 소비자의 바람이 실현되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어 자동차 레몬법이 시행된 것이다.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의 대명사인 ‘레몬법’은 달콤한 오렌지인 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렌지를 닮은 신 레몬이었다는 비유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맛이 신 레몬’은 (달콤한 오렌지가 아니라는 맥락에서) 불량품을 뜻한다.

[toggle style=”closed” title=”한국형 레몬법 (개요)“]

1. 자동차 교환·환불 대상

비사업용 자동차만을 대상으로 하나, 생계형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업주가 많은 국내 현실을 고려하여 사업용 자동차도 1대를 소유한 개인사업자에 한하여 대상에 포함하였다.

2. 자동차 교환·환불 신청 기한

하자 차량소유자는 자동차를 인도받은 날로부터 2년 이내에 국토교통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교환·환불 중재를 신청해야 한다.

3. 자동차 교환·환불 요건

① 하자발생 시 신차로 교환·환불할 것 등이 포함된 서면계약에 따라 판매된 자동차일 것,
② 하자로 인해 안전 우려, 경제적 가치 훼손 또는 사용이 곤란할 것,
③ 자동차를 인도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 2만 Km 이내에 중대한 하자는 2회, 일반 하자는 3회 발생하거나 총 수리 기간이 30일을 초과할 것.
④ 하자 차량 소유자는 중대한 하자는 1회, 일반 하자는 2회 수리 후 하자가 발생한 사실을 자동차제작자 등에게 통보할 것 등 위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4. 하자의 추정

자동차가 소유자에게 인도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인도 시점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이후 하자는 자동차 소유자가 입증한다.

5.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

국토교통부에 법학, 자동차, 소비자 보호 등 각 분야 전문가 50인으로 구성한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를 두고, 각 중재신청 별로 3인으로 구성한 중재부에서 중재를 진행한다.

6.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판정의 효력

교환·환불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므로, 중재부의 교환·환불 중재판정이 나면 자동차제작·수입자 등은 반드시 교환 또는 환불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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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레몬법 = 요건 까탈 + 강제력 X  

‘한국형’ 레몬법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자동차를 인도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
  2. 중대한 하자
  3. 여러 번 발생하고 (≠ 미국은 “1회만 발생해도” 교환)
  4. 이로 인해 심각한 안전 우려나 경제적 가치가 명백히 훼손된 경우,
  5. 국토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신청한 뒤에 위원회의 결정으로
  6.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형’ 레몬법은 교환·환불 요건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나 해외의 레몬법에 비해 까다롭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형 자동차 레몬법은 ‘하자발생시 신차로 교환 또는 환불 보장이 포함된 서면계약에 따라 판매된 자동차’에 한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법은 시행됐지만, 강제성 없이 법 적용 여부를 업체가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무늬만 '레몬법'? 한국형 레몬법은 요건은 까다롭고, 법적 강제력은 없어 허수아비에 다름 아니다.
무늬만 ‘레몬법’? 한국형 레몬법은 요건은 까다롭고, 법적 강제력은 없어 허수아비에 다름 아니다.

반면 미국, EU 등 해외에서는 강력한 레몬법을 시행해 소비자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1975년 레몬법을 도입한 미국은 하자나 결함이 있는 신차를 판 회사는 소비자에게 신차로 교환하거나 환불해줘야 한다. 미국 외에도 유럽, 캐나다,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국이 아닌 캐나다,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자동차 생산 역사가 우리보다 짧은 중국에서도 2013년부터 ‘수리·교체·반품을 책임진다’라는 ‘삼포법(三包法)’을 시행하고 있다. 모두 업체의 선택이 아닌 법적 강제력을 가진다.

‘배 째!’ 적잖은 수입차 업체 무시로 일관 

이처럼 한국형 자동차 레몬법은 강제성이 없다 보니 많은 업체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 3월 13일, 소비자의 알 권리와 자동차 업계의 적극적 레몬법 참여를 요구하기 위하여 주요 국산 자동차와 수입 자동차 업체를 대상으로 자동차 교환·환불 `레몬법` 적용 여부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 자동차매매계약서에 레몬법 적용 포함 여부
  • 포함했다면, 계약서에 포함한 날짜와 레몬법이 적용된 날짜
  • 포함하지 않았다면, 향후 포함 계획과 일정

그 결과, 레몬법을 적용해 시행하고 있는 국산차는 현대(제네시스 포함), 기아, 르노삼성, 쌍용 등 4개이며, 한국GM은 검토 중이라고 답변을 보내왔다. 수입차는 비엠더블유(BMW), 미니, 재규어, 랜드로버, 닛산, 인피니티, 토요타, 렉서스, 볼보 등 9개 브랜드다. 혼다와 포드·링컨은 곧 적용 예정이거나 상반기 중 적용하겠다고 답변해왔다.

경실련은 레몬법 수용과 빠른 적용을 촉구하기 위해, 4월 11일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벤틀리’ 4개 브랜드의 수입차 업체를 방문해 신속한 레몬법 시행을 요청하고, 서한을 전달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2018년 매출 4조 4,743억 원, 70,798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27.2%의 점유율을 기록한 수입차 1위 업체다. 폭스바겐 그룹에 속해있는 아우디, 폭스바겐, 벤틀리는 2018년 총 28,055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벤츠와 BMW(19.4%)에 이어 10.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수입차 3위 업체다.

경실련이 지난 3월 한국형 자동차 레몬법 수용을 촉구한 이후, 앞서 이야기한 혼다와 포드, 링컨을 비롯해 한국GM,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벤틀리, 캐딜락 등 국산차 1개와 수입차 8개 브랜드가 레몬법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GM과 캐딜락은 4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벤츠는 지난 6월 20일부터 레몬법을 시행하되 그 적용시점을 4월 1일로 소급하겠다고 밝혔다.

[box type=”info” head=”업체별 레몬법 시행 여부“]

(모든 날짜 표기에 2019년 생략됨, ’19년 6월 23일 기준)

1월 1일부터 적용(또는 소급적용)

2월부터 적용 (1월에 차를 구입한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함) 

  • 르노삼성 
  • 쌍용

4월부터 적용 (1월~3월에 차를 구입한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함)

미적용 

  1. 아우디:  4월 10일 레몬법 동참 확정. 하지만 구체적 일정 제시 없음.
  2. 폭스바겐: 4월 10일 레몬법 동참 확정. 하지만 구체적 일정 제시 없음.
  3. 포드 
  4. FCA크라이슬러
  5. 지프
  6. 마세라티 
  7. 푸조시트로엥
  8. 포르쉐 
  9. 페라리
  10. 벤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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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레몬법을 '특히 더' 무시하는 수입차 업체들.
한국형 레몬법을 ‘특히 더’ 무시하는 수입차 업체들.

레몬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르노삼성과 쌍용은 2월, 한국GM과 캐딜락 그리고 벤츠는 4월 1일 출고 및 계약부터 적용받는다는 사실이다. 올해 1월부터 레몬법이 시행됐지만, 1월 또는 1월에서 3월에 구매한 소비자는 레몬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레몬법을 적용할 예정이지만, 아직 시행하지 않거나, 미수용한 업체가 나중에 수용하더라도 소급적용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업체의 일방적 방침에 의해 소외되는 소비자가 발생하는 것은, 시행일을 정하고 있는 법의 취지에 부합하지도 않고 소비자를 계약 시점으로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호구’? 

소비자는 결함 있는 불량자동차를 교환이나 환불받을 자격이 있으며, 안전할 권리가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레몬법 조항을 적용해, 하자 있는 불량자동차의 교환·환불을 보장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를 차별적으로 처우하면서, 소비자 신뢰를 기반한 자동차 판매 영업을 지속하겠다는 것은 오만한 판단이며, 소비자를 조롱하는 행태다.

레몬법은 우리나라에서 새로이 시작된 법적 논의의 결과물이 아니라, 이미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제를 차용하여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도 동일한 자동차를 미국 등 해외와 우리나라에 동시에 판매하면서, 미국의 레몬법은 수용하고 우리나라의 레몬법 조항은 거부한다면 이는 국내 소비자를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장 고가의 상품이다. 하자나 결함 있는 제품의 교환·환불은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이며, 기업의 의무다. 조속한 레몬법 조항의 적용을 통하여 국내 소비자의 권리를 존중해 주시기 바란다. 또한 그 적용 시점은 레몬법이 시행된 시점의 판매·출고된 신차로 소급되어야 한다. 국내의 소비자를 상대로 차량을 판매하는 기업이라면, 현행 레몬법의 맹점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조속히 레몬법 적용을 계약서에 명시해 입법 취지에 부응해야 한다.

한국 소비자만 유독 '호구' 취급하는 수입차 업체들
한국 소비자만 유독 ‘호구’ 취급하는 수입차 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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