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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불량식품

정현종이 그랬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 (나를 당연히 포함해) 진보는 박근혜로부터 배워야 한다.

박근혜의 불량식품부터 시작해보자.

많은 이들이 지난 대선토론회에서 박근혜의 ‘불량식품’을 희화화하고 조롱했다. 풍자는 민중이 폭압적인 권력에 맞서 이를 비판하는 가장 유효한 방식 중의 하나지만, 그 풍자가 생명력을 갖기 위해선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물러선 안 된다. 정치적인 상상력과 대안이 결여된 조롱만이 가득한 풍자의 결과가 대선에서 문재인의 패배고, 위대한 정치 광대 나꼼수의 해외 피난이다.

각설하고, 다시 복기해보자. 박근혜는 지난 18대 대선 토론회에서 4대 악 척결을 강조한다. (참조: 2012년 제18대 대선 3차 토론회 팩트 체크: 사회, 교육, 과학기술)

박근혜: 4대 악 척결 약속드렸다.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이라든가 가정파괴범 등 4대 악에 대해서는 뿌리뽑겠다. (보기)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4대 악 중 하나인 불량식품은 많은 사람들의 촌평과 패러디를 낳고 있지만,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 식품산업본부장인 윤명희 의원은 “박 후보의 불량식품 근절의지는 추상적이거나 일회성 언급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18일 토론회 다음 날 밝히면서, ‘불량식품 4대 악’ 발언을 희화화하는 것은 치졸한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비판함. (관련 링크)

토론회가 끝나고 한겨레는 “1학년이 불량식품 먹으며 초딩 2학년 문제집 풀면, 전과 2범?”이란 표제의 기사에서 누리꾼들의 SNS 패러디를 짜깁기해서 소개했다. 이것이 소위 진보가 박근혜를 바라보는 관점이었고, 지난 대선 토론회를 검토하는 수준이었으며, 그 깊이였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나. 야권 성향 유권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직관적인 반응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너머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Kirti Poddar, "Lollipop" (CC BY)

Kirti Poddar, “Lollipop” (CC BY)

40대 이상 전업주부의 불안: 남은 건 가족뿐

지난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추론컨대 결정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50대 이상(“40대 여성과 50대 초반의 마음을 잡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인으로 보인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경향신문)이었다. 특히 유교적 가부장의 관성이 남아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할만한 40대 이상의 전업주부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다. 물론 연령별 여성 유권자의 투표성향을 조사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지만, 대체로 여성 유권자들, 특히 40대 이상의 여성 유권자들이 여권 성향의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이 추론은 상식적으로 보인다.

특히 전업주부들을 이야기해보자. 대부분 한두 명의 자녀를 둔 대한민국 40, 50대 여성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다. 그녀들은 자신이 자랐을 때보다는 조금 더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2등 시민으로 가정이라는 투명한 감옥에 갇혀 지낸다. 구청에서 여는 월 3만 원짜리 교양강좌와 결혼 10주년, 20주년 기념 동남아 여행이 대부분의 평범한 그녀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그녀들은 공공연하게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방치되어 있다.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누이들을 떠올려보시라. 대한민국에서 자아 성취적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 얼마나 되겠나. 이 불쌍한 짐승 같은 고결한 존재들, 흔히 ‘엄마’라고 불리는 그녀들은 남편과 자식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존재인 것이다. 여전히 유교적인 관성의 끄트머리에서 박정희식 가부장 통치시대에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낸 그녀들은 박근혜의 4대 악 척결에 조롱이 아닌 기꺼운 공감을 보냈으리라.

그러니 박근혜의 4대 악 척결은 남은 것이라고는 가정뿐인 50대 이상의 여성들에게 지켜야 하는 최소한에 대한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에게 민주주의와 부정부패 척결은 배부른 공상이거나 혹은 이미 식상한 구호에 불과하다. 좀 더 생생한 언표들. 남은 건 몸뚱어리 뿐인데 성폭력, 가정파괴범이라고? 내 딸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을 당한다고? 죽일 놈이다. 사회악 맞다. 그리고 내 자녀들이 하루종일 있어야 하는 학교에서의 폭력? 이거 용납할 수 없지. 내 새끼 건강을 위협하는 불량식품? 악이다. 박근혜의 4대 악은 그녀들에게 남겨진 몇 되지 않은 ‘정말 지켜야 할 것들’ 인 것이다.

촛불, 불량식품 먹지 않겠다는 항의

그리고 떠올려보자.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광화문의 촛불들. 그거 뭐였나. 결국 불량식품 먹지 않겠다는 몸부림 아니었냔 말이다. 물론 촛불의 의미를 불량식품 반대 운동이라는 한정된 시각으로만 보는 건 부당하다. 2008년의 촛불은 주권자인 국민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일방통행식 권위주의 국가 권력에 대한 단호한 거부였고, 대한민국 주권의 원천인 국민이 그 어떤 공식적인 권력보다 우선한다는, 그러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정신의 확인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왜 유모차 부대가 나왔고, 왜 여중생 부대들이 나와서 울먹거리며 연설했느냐 말이다. 미친 소고기 먹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 아닌가. 그리고 그때 불량식품 먹지 않겠다는 촛불 시민들을 조롱한 건 조중동이었다. 그 조중동 프레임에 대해서는 그토록 분노했던 소위 진보가 박근혜의 불량식품에 대해 조롱하는 건, 그런 즉각적인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결국 자기반성적 성찰에 이르지 못한 진보 정치 담론의 미성숙을 방증할 뿐이다.

 

샛길, 2008년 5월 3일 청계광장 (CC BY SA)

샛길, 2008년 5월 3일 청계광장 (CC BY SA)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위키백과) 중에서

막장 드라마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건 점점 더 평범한 전업주부의 의식 세계를 잠식하는 막장드라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와 결합한 저널리즘의 자기반성 없는 생존 욕구가 대한민국 저널리즘을 막장화했다면, 전업주부의 억압된 욕망을 해소시키는 (가짜) 해방구로서 막장 드라마는 사회적 삶과 격리된 전업주부의 잉여 시간과 높은 구매력과 결합해 점점 더 그 영토를 확대해왔다. (참고: 막장드라마를 보는 사람)

그래서 그 막장드라마는 그저 아침 드라마와 일일연속극에서 만족하지 않고, 주말드라마와 월화, 수목드라마에까지 그 막장의 욕망을 확대하고, 막장 해방구를 넓혀왔던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대한민국 전업주부의 억압된 욕망을 대리해 투사하는 동시에 그 막장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의 퇴행적 심리 구조를 그녀들에게 내면화시켰다.

막장드라마는 뒤틀린 혈연관계로 핍박받는 주인공이 미모와 재능, 그리고 이를 통한 결혼과 연애 따위를 이용해 전도된 가부장적 권력에게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심리적 원형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원형적인 공간 속에서 막장드라마는 현실 속에서 핵화되는 가족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퇴행적인 가족주의(출생의 비밀과 음모, 하다못해 고부 갈등 등으로 얽히고설킨 그 아수라장)를 확대재생산한다. 박정희 가부장 통치의 관성을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남한의 40대 이상 여성들에게 막장드라마는 가족을 복원할 ‘결혼하지 않은 여자’ 박근혜라는 영웅적 판타지의 출현을 예언적으로 이미지화한다. 박근혜는 마치 막장드라마의 원형적 상징으로서의 현신과도 같다.

그러니 막장드라마는 박근혜 시대의 출현을 암시하면서, 또 그런 시대의 도래에 적극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시대 출범… 유교적 가부장 통치의 가능성

박근혜 시대가 출범했다. 우리는 박근혜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박근혜 시대를 피할 수 없다면 박근혜 시대를 즐길 필요가 있다. 세계관을 달리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흔히 ‘수꼴’이라는 말을 하는데, 수구 꼴통이라고 어떤 정치현상과 그런 현상에 편승하거나 순응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일은 아주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네들이 우리의 어머니라면, 우리의 누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친구이며 이웃이라면, 그때도 그렇게 비웃기만 할 것인가.

박근혜 시대다. 진보는 박근혜 시대를 가능하게 한 이 모든 것들, 그 빛과 그림자를 겸허하게 복기하고, 거기에서 관찰되는 그 욕망을 직시하고, 그 소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시대에 대한 가장 큰 불안은 박근혜라는 권력이 필연적으로 불러올 박정희의 그림자다. 그것은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어머니)가 가정의 기강을 명분으로 끝없이 가족 구성원에게 명령하는 세계, 근엄한 제스처와 목소리로 온갖 비인격적인 인권 유린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세계다. 더욱 무서운 건 우리(국민) 스스로 그런 엄한 아버지, 엄한 어머니로부터 매 맞고 싶어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87년의 위대한 항쟁과 97년 IMF의 쇼크 이후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다시 권위주의적 가부장의 명령을 그리워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나는 박근혜로부터 매 맞는 자식이고 싶지 않다.
그녀는 나의 어머니가 아니며, 국민은 그녀의 자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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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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