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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과 ‘직조’ 그리고 나꼼수식 반지성주의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동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영화 [기생충] 한줄평이 지난주 큰 화제가 됐다.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 사용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커뮤니티 ‘MLBPARK'(이하 ‘엠팍’)에서는 이 주제로 난상토론이 벌어지면서, 매체가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명징’과 ‘직조’에 관하여

  • 명징하다 (明徵하다) [동사] 사실이나 증거로 분명히 하다.
  • 직조하다 (織造하다) [동사] 기계나 베틀 따위로 피륙을 짜다.

이동진의 한줄평(원문)을 굳이 좀 더 쉽게 쓰면, “상승과 하강으로 분명하게 만들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정도로 쓸 수 있지만, 원문의 “상승과 하강”이라는 표현을 보건대, ‘명징’과 ‘직조’를 사용한 이유는 아주 분명해 보인다.

마치 천을 만드는 과정(“직조”)처럼 가로와 세로로 빈틈 없이 실이 엮여(“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영화가 구성돼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려면 ‘명징’과 ‘직조’는 이 한줄평 문장에서 어울리는 정도를 넘어서 필연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직조’와 ‘명징’에 대한 거부감(?)은 그 단어의 뜻이 그 자체로 어렵다기보다는 요즘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특히 한자어)라서 특히 젊은 세대에게 낯설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다. 그 낯섬이 거부감으로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킨 거고.

사족으로, 세상 모든 게 다 토론이 될 수 있고, 아주 작은 일에도 우리는 근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토론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징’과 ‘직조’의 쓰임이 적당한가라고 그 주제를 좁히면, 이 논란을 가치 있는 토론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편집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선 “명징과 직조가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거나 “저 말을 어렵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다”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일종의 ‘허상 치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엠팍에 들어가봤는데 웬 걸, (명징과 직조를) ‘써도 된다’, ‘쓰면 안된다’가 꽤 비등한 의견을 이루고 있었다. 아래는 이 평론가의 한줄평에 비판적인 의견 중 극히 일부를 추린 것이다.

“명징직조 어려운 거 맞는데영~ 대중문화 글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설마설마 자기가 쓰는 어휘의 난도도 모르고 기고하는 거면 때려쳐야졍 ㅎㅎ”

“수능 국어 1등급 출신인데 명징 모르겠네요.(…) 책 사고 읽는게 취미인데도 명징은 정말 모르겠어요.”

“대중을 상대로 글로 먹고사는 평론가는 저런 말 쓰면 안되죠.”

“예술가도 아닌 평론가가 고작 20자 쓰면서 대중들이 못 알아먹게 쓴 자신의 역량을 탓해야지”

'엠팍'에서 '명징'과 '직조'로 검색한 화면 중 일부. (출처: MBLPARK) http://mlbpark.donga.com/mp/b.php?p=91&m=search&b=bullpen&query=%EB%AA%85%EC%A7%95+%EC%A7%81%EC%A1%B0&select=sct&user=

논란의 시작… ‘엠팍’에서 ‘명징’과 ‘직조’로 검색한 화면 중 일부. (출처: MBLPARK)

반지성주의: ‘저항’에서 ‘자뻑’으로 

나는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 사용을 비판하는 의견 중 “대중을 상대로”라는 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반권위주의를 내세우는 반지성주의 행태로 보였다. 그들은 전문가의 평가를 ‘일부러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라는 식으로 규정해버리며 ‘당신이 전문가든 뭐든 나와 똑같은 수준의 어휘를 구사하라’고 요구한다. 즉, 어렵게 말하며 가르치려 들지 말고, ‘바로 알아듣게’ 말하라는 것.

[반지성주의] (2015)를 쓴 학자 모리모토 안리는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개신교와 결합하면서 19세기 여권신장운동이나 노예제 폐지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또 이 흐름이 20세기에는 민권운동과 소비자운동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한다. 즉, 반지성주의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독식한 지식, 부당한 권위에 대한 저항의 계기나 촉발점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한 것이다. 반지성주의와 반권위주의가 엮이는 것은 당연하다.

모리모토 안리 저 (2015) / 강혜정 역 | 세종서적 (2017) http://www.yes24.com/Product/Goods/35185455

반지성주의, 모리모토 안리 저 (2015) / 강혜정 역 | 세종서적 (2017)

다만 문제는 반지성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직조와 명징을 대차게 비난한 댓글들은 ‘반권위’를 추구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쨌든 내 입맛에 맞춰’식의 변질된 소비자주의에 더 가깝다. 인터넷의 발달로 스스로 습득한 정보가 많다고 믿으며,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등에 의견을 개진하고, 심지어 사전(위키백과, 나무위키 등)까지 만드는 이들은 전문가들이 자신들 위에 올라선 느낌을 싫어한다. 그들은 엘리트의 지식독식이나 권위를 타파하자는 게 아니라, 나도 알만큼 아니까 (당신을 소비해주는)독자들 앞에서 유세떨지 말라고 한다. ‘수능 언어 1등급’에 책도 많이 보는 내가 모르는 단어를 왜 쓰냐”는 불만은 그렇게 나왔다.

이에 대해 손희정‘어용 시민의 탄생’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반지성주의는 초창기에는 ‘진실을 말할 권한’을 승인받은 엘리트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권위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이 저항의 끝은 합리적인 비판 의식이 아니라 ‘나도 너만큼 똑똑해’라는 나르시시즘(톰 니콜스 인용).” (손희정)

 

이게 다 유시민 때문? 

엠팍 내 명징과 직조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은, 조회 수가 약 5만에 육박하고, 댓글이 5백 개가 넘게 달린 ‘요즘 인터넷 보면 별게 다 어려운 단어라고 까네요.jpg’라는 글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글은 갑자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논란의 원인으로 언급한다.

“이게 다 유시민 때문임ㅋㅋ 유시민이 아는 사람은 쉽게 쓴다 한거 가지고 그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별로 어렵지도 않은 단어도 어렵다고 욕함ㅋㅋㅋ”

'명징 직조' 논란의 시작. (출처: 요즘 인터넷 보면 별게 다 어려운 단어라고 까네요.jpg, MLBPARK) http://mlbpark.donga.com/mp/b.php?m=search&p=91&b=bullpen&id=201906010031708484&select=sct&query=%EB%AA%85%EC%A7%95+%EC%A7%81%EC%A1%B0&user=&site=twitter.com&reply=&source=&sig=h6jLGY-gg3eRKfX@h-j9Sf-gkhlq

‘명징 직조’ 논란의 시작. 강조(빨간 박스)는 편집자. (출처: 요즘 인터넷 보면 별게 다 어려운 단어라고 까네요.jpg, MLBPARK)

의도가 있든 없든 반지성주의의 원인으로 유 이사장을 지목한 셈이다. 유 이사장은 글쓰기 강의 등을 하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관점을 밝혔왔는데, 심지어 JTBC ‘차이나는 클래스’에 출연해서는 아래와 같이 밝힌다.

“그렇게 어렵게 쓰는 사람은 남을 설득하려는 생각이 없는거예요. 진정 소통으로 소통을 하고 내가 말하고 하는 논리 생각 전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쓰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어렵게 쓰냐면 사기치려는 사람이 어렵게 써요.”(유시민)

사실 유 이사장의 말은, 기자들 사이에서 많이 통용되는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라는 말과 별크게 다르지 않다. 필요 이상으로 어렵거나, 개념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거나 구조가 복잡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유 이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사기’ 운운한 부분이 과하다는 지적을 받을지언정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정작 그가 ‘반지성주의’를 부추긴 혐의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바로 ‘어용지식인’ 선언이다.

문 지지자가 만든 ‘가짜뉴스’ 

2017년 5월 5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유 이사장은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될거라고 선언한다. ‘진보’와 ‘지식인’, 그리고 ‘어용’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단어 조합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이 선언은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에게 강한 어필을 했고, 이후 ‘어용 시민’을 자처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17 5월 5일 공개된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 시절 진보언론과 진보 지식인의 태도에 관해 말했다. (한겨레TV 갈무리)

’17 5월 5일 공개된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 시절 진보언론과 진보 지식인의 태도에 관해 말했다. (한겨레TV 갈무리)

이것은 일종의 시그널이다. 지식인으로서의 사명, 시민으로서의 비판의식을 버리고, 즉 ‘반지성주의’를 장착하고 특정한 정치권력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탄압했던 한국의 색깔론, 미국의 매카시즘이 반지성주의와 권력이 결합한 행태라는 것은 이들은 알까. 나는 현 정부를 꽤 신뢰하는 사람이지만, 지지자들의 이런 태도에 상당히 놀란 게 사실이다.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를 기억하면서, 스스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냈다. 현 문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주문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노사모’ 앞에서 “여러분은 저를 지켜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노무현의 발언은 말뿐만 아니라 뉘앙스가 전혀 달랐다. 천하의 ‘노무현’이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지켜달라’는 말을 할 리가 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여러분은 이제 뭐하지요”

지지자: “감시” “감시”

노 전 대통령: (웃으면서) “여러분 말고도 흔들 사람 꽉 있습니다. 뒤통수 칠 사람도 꽉 있습니다. 앞길을 막을 사람들도 꽉 있습니다. 감시도 하고,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 좀 해주세요.”

나꼼수식 정의감? 

조작을 통해서라도 ‘어용’을 주장하는 문화는 하루 아침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는 자신의 저서 [타락한 저항]에서 나꼼수를 비롯한 민주당 지지 성향의 진보 남성들이 어떻게 반지성주의를 부추겼는지 지적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던 나꼼수 세력이 (유 이사장의 어용 선언도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나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팬덤 정치를 부추기면서, ‘우리 편’에 대한 비판 자체가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됐다.

타락한 저항, 이라영 저 | 교유서가 | 2019년 04월 02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71135437

타락한 저항, 이라영 저 | 교유서가 | 2019년 04월 02일

나꼼수는 ‘쫄지마 씨바’를 외치며 ‘무학의 통찰’이 지닌 위력을 보여준다. 지식인의 고매한 말들이 감히 상상도 못한 ‘사이다’를 대중에게 선사한다.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김어준이 ‘사이다’를 선사하는 과정이 ‘우리 편이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종교적 열정을 자아내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일종의 ‘정치적 힐링’이다. 당연히 논리나 지식보다는 ‘믿음’이나 ‘기분’이 중요시된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비판을 한다고 이들에겐 먹히지가 않는다. 동시에 ‘정권교체’ 혹은 ‘민주당 지지’라는 대의는 비판에 대한 방어도 가능하게 했다.

또한, 김어준은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정권교체나 적폐 청산을 제외한 이슈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데 기여했다. 이라영은 특히 여성혐오가 ‘정당화’되거나 ‘나중에’ 해결할 문제가 됐다고 지적한다.

김어준은 ‘미투’ 국면에서 미투 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하는 ‘정치 공작’일 수 있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정봉주 전 의원을 사실상 두둔한다. 김어준은 정 전 의원의 거짓말이 드러났음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어준 (2016년 12월 당시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김어준 (2016년 12월 당시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예언을 할까 한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냐. 첫째 섹스, 좋은 소재고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그러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라는 사고가 돌아갈 것” (김어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 2018. 2. 24. 중에서)

그의 파트너인 김용민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지난 3월 12일 “한국 언론의 현실… 윤지오 출석 텅텅… 정준영 귀국 팍팍”이라는 메모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버닝썬이 고 장자연 사건을 덮는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부연한다. 그러나 실상 윤지오 씨 검찰 참고인 출두는 조선일보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보도한 상황이었다.

김용민의 페이스북 게시물 캡쳐

김용민의 페이스북 게시물 캡쳐

이러한 시각을 잘 대변하는 것이 페이스북에서도 크게 화제가 된 ‘버닝썬 사건의 본질’이라는 글이다. 글쓴이는 당시 정준영 불법촬영건이 보도된 것을 “프레임 전환”으로 설명하면서, “교묘하면서도 절박한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우리편이 아닌) ‘거악’을 잡는게 중요한데 왜 연예인 ‘따위’에 관심을 쓰고 있느냐는 지적인 것이다.

‘나꼼수’ ‘386’으로 대표되는 중년 남성은 젠더 폭력에 있어서도 ‘여성의 피해’가 아닌 자신들이 ‘정의감 충족’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용민이 이후에 선대인의 언론비평 프로그램 제목을 ‘버닝썬대인’으로 정한 걸 보면, 그들은 전 정부나 보수세력에 별 타격감이 없는 버닝썬에 대해선 철저히 무감각했던 것 같다.

여전히 진보 성향의 남성 중에는 ‘여성단체는 장자연 사건에 왜 침묵했느냐’고 우기거나,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공격에 동조하는 이들이 꽤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이 남성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리고 이들이 팩트나 사실관계, 전문가의 말을 거부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때,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다. 꽤 많다. 이라영 연구자는 반지성주의를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라고 규정했는데, 그들에게 이 말이 딱 어울린다.

 

 

자기애에 빠진 반지성주의 

‘명징’과 ‘직조’란 단어를 영화 비평에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상황을, 나꼼수나 유시민 이사장이 불러일으켰다고 단언한다면 그것은 비약이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비평과 비판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감정이나 정치적 당파성에 따라 정보를 판단하는 경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이 나꼼수식 반지성주의의 자장 안에 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명징’과 ‘직조’ 논란이 우습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작은 소동이 현재의 반지성주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즘과 그것을 떠받드는 커뮤니티나 뉴미디어가 반지성주의의 기반일 경우, 이것이 앞으로 페미니즘을 비롯한 소수자 담론에는 큰 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반지성주의는 '작은 이야기'와 '자유로운 토론'을 잡아먹는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반지성주의는 ‘작은 이야기들’과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자유로운 토론’을 잡아먹는다.

자신과 주변 집단이 지식이나 담론의 ‘기준’이 된 이에게는 어렵고 낯선 지식이나 새로운 조류가 받아들여지긴 힘들다. 어렵고 낯선 것은 주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소수자-약자들의 이야기 아닌가. 정희진은 ‘쉬운 글이 불편한 이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드러나기가 쉽지 않아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폭력으로 가정이 깨져서 문제가 아니라 웬만한 폭력으로도 가정이 안 깨지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이렇게 반문하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어렵게 들리는 것이다.

나는 주식이나 자동차 분야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글을 읽을 때 무지한 내가 문제지 ‘어렵게’ 쓴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학)의 글일 경우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거리낌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라”고 요구한다.

(…)‘근친강간(가족 내 성폭력)’이라고 써서 원고를 보내면 편집자가 오타인 줄 알고 ‘근친상간’으로 바꾸어, 나도 모르게 활자화되는 경우를 수없이 겪었다. 내가 장애인의 ‘상대어’를 비장애인이라고 쓰면 ‘정상인’이나 ‘일반인’으로 고친 후, ‘이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고 오히려 나를 설득한다.” (정희진, ‘쉬운 글이 불편한 이유’ 중에서)

다스베이더 꼰대 강요 억압

안정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중년 비장애인 남성’에게 ‘쉬운 글’, ‘빠르게 공감할 수 있는 글’, ‘마음에 드는 글’만 나오는 사회는 불행하다. 그들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권력을 고착화하는 반지성주의 행태가 지속되고, ‘불편한 글’은 더욱 더 나오기 힘들게 된다.

이를테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혹은 ‘맨스플레인’)이란 말을 생각해보라. 나꼼수를 좋아했던 상당수 남성은 여성이 주도하고 여성 스스로 피해를 고백하면서 현실을 바꿔나가는 과정에서도, ‘남성’의 기준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평가하려고 든다. 페미니즘의 대의에는 동의하는듯 하면서도, 여성가족부 장관이 ‘탁현민 행정 해임 건의’를 이야기하자마자 역으로 ‘여성가족부 장관 해임’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나와 다른 시민’들과 연대는커녕,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안하고 있다. 당연히 혐오와 적대의식만 쌓인다. 김수아 교수는 엄연한 성차별 통계조차 거부하는 남성 역차별론자의 행태에 대해 “지금, 여기, 나’에게만 집중하는 태도에서 나온 반지성주의”(국가인권위 토론회, 여성신문)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묻고 싶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누가 이 남성들을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흠뻑 빠지게 만들었을까?
왜 이 남성들이 귀를 막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들이 계속 반지성주의 안에서 안락함을 누리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우리에겐 더 많은 ‘지성과 불편함’이 필요하다.

 

이 글의 소재와 주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과 기고를 환영합니다.(이상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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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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