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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 헌재가 만든 또 하나의 ‘과거사’

판결비평 헌재 5기 특집

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 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여덟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4년 12월 19일에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비평을 한상희 교수(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가 집필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은 대법원조차 부정하였던 R.O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외국의 사례와 함께 우리헌법에 위헌정당해산제도가 들어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1. 정치적 인간을 위한 정당법 (장철준) 
  2.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이종수)
  3.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조지훈)
  4.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하태훈)
  5.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이상희)
  6.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서보학)
  7. 패킷 감청의 헌법불합치 결정, 수사 권력 통제엔 미흡 (오동석)
  8.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가 만든 또 하나의 ‘과거사’ (한상희) 

‘정당의 무덤’.

터키는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6개의 정당을 해산시킨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러던 터키조차 유럽연합 가입을 모색하던 2008년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며 원대 최대 다수의석을 확보하였던 정의개발당(AKP)에 대해, 해산이라는 극단적 방식 대신 국고지원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그 ‘위헌성’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선회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학살을 단행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박근혜정부가 최대의 권력을 휘두르던 2014. 12. 19. 헌법재판소는 장장 254페이지(헌재판례집 기준)나 되는 결정문을 통해 “대한민국 체제를 파괴하려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와 민주주의의 다원성 보장이라는 사회적 이익”을 위하여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을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 강제해산시키는 한편, 그 소속 국회의원 5명에 대하여 의원직을 박탈하였다. 독재의 길을 치닫던 이승만정권이 1958년 강력한 정적이었던 조봉암을 사법살인하고 그의 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킨 바로 그 시절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헌재 통합진보당

  • 통합진보당 해산 (별칭: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
  • 사건번호: 2014. 12. 19. 2013헌다1
  • 재판장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8:1)

정해진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한 헌재

이 결정의 요체는 ‘주도세력’, ‘퍼즐 맞추기’, ‘숨겨진 목적’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에 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수만 명의 당원과 함께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합법적 정당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진보적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세우던 주도세력들의 “이념적 성향 및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 주도세력으로 30여명을 선별한다.

하지만 그 주도세력들은 통합진보당의 창당이나 활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아니라 ‘숨겨진 목적’을 찾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택된다. 그리고는 이들의 발언이나 활동들을 하나하나 조각내어 전체의 큰 그림에 맞추어 나간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구두변론 과정에서 정부 측 참고인이 말하였던 ‘퍼즐 맞추기’가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이다.

큰 그림을 먼저 정해놓고 이를 퍼즐조각으로 이리저리 잘라낸 뒤 다시 그 큰 그림을 짜 맞추는 ‘퍼즐 맞추기’ — 그것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이후 선동으로 바뀌었다)사건에서 대법원조차 부정하였던 R.O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하였던 헌법재판소의 이 장장한 결정문에 대한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출처: 통합진보당 선거홍보물

출처: 통합진보당 선거홍보물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판단 또한 마찬가지다. 정당을 강제해산하기 위해서는 그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주도세력’이 말했던 저항권이나 민중주권론을 언급하고, 어떤 당원이 개인적으로 거론했던 식민지반자본주의론까지도 끌어들여 혁명론과 연계시켰다.

그리고는 이런 임기응변식의 짜맞추기 논법을 통해 통합민주당의 ‘숨겨진 목적’은 북한의 그것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는, ‘발가락이 닮았다’는 식의 어정쩡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통합진보당이 폭력성의 혁명을 추구하였기에 위험하다는 논법이 아니라, 그를 해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그 위험성이 있어 보이는 발언들을 추려내어 보니 이런 저런 발언들이 있었고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이 순환논법이다.

현실이 되어 버린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 결정이 내세운 비례성 판단 또한 흠 투성이다. 정당해산은 어쩌지 못하는 최후의 순간에 비로소 가능한 조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장이 적절하게 작동함으로써 그 정당의 정치적 위험성을 상당부분 견제할 수 있다”면 그에 맡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원칙을 과감하게 저버린다. 범죄 행각이 드러나기도 전에 그 씨앗을 제거해버리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처럼 헌법재판소는 ‘예방적’ 조치를 주도함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사회에서 헌법재판소는 시민들이 판단하고 시민들이 행동할 수 있는 공론의 장 자체를 무시하고 배제해 버린 셈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 스티븐 스필버그) 중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 스티븐 스필버그) 중에서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저 정당학살자 터키 헌법재판소조차도 정당해산을 이유로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획일적으로 내치지는 않는다. 그 의원들이 정당의 위헌적 활동에 얼마나 개입했는지의 정도를 별도로 심사해서 그 자격여부를 심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해산결정의 취지와 목적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해 가차 없는 징벌을 가하였다. 입법자인 국회가 법률로써 정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법률이 없으면 그 의원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입법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법정의견에 대해 유일한 반대의견을 내었던 김이수 재판관은 이렇게 비판했고, 그리고 그 비판의 말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우리 정치사는 진행되었다.

경미한 오류들이 축적되어 거대한 논리적 비약을 만들어 내고, 혹여 그에 기초하여 정당해산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체제는 ‘점진적 쿠데타’ 내지는 ‘연성쿠데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통치술을 구사하고 급기야는 촛불시민의 분노와 압박에 밀려 바로 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결국 이 사건은 박근혜 정권이 구사한 회심의 일격이자 동시에 아주 처참한 자충수였고, 말 그대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매우 불행한 일”로 기록된다.

2016년 11월 4일에 있었던 박근혜의 두 번째 대국민 사과. (출처: JTBC 갈무리)

2016년 11월 4일에 있었던 박근혜의 두 번째 대국민 사과. (출처: JTBC 갈무리)

위헌정당해산제도의 ‘진짜’ 목적 

실제 우리 헌법에서 위헌정당해산제도가 들어오게 된 것은 4·19민주혁명 이후 제3차 개헌을 통해서였다. 그것은 이승만의 독재체제에서 진보당이 강제해산 된 전례를 반성한 결과였다. 정당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결사의 자유보다 더 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신나치주의의 발호를 막기 위하여 혹은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국가사회주의당이나 독일공산당을 해산시킨 독일의 경우라든가 혹은 아타투르크의 혁명 이념을 전승하기 위하여 분리주의정당이나 이슬람정당을 해산시킨 터키 등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다.

독일식 방어적 민주주의를 앞세워 ‘나쁜’ 정당을 해산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다양성에 터 잡은 민주주의체제를 위하여 ‘나쁜’ 정당이라도 특별히 보호하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이런 헌법적 결단을 너무도 무뢰하게 저버리고 말았다.

우리 헌법이 '위헌정당해산제도'를 마련한 취지는 '나쁜 정당'을 박멸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정당의 자유를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헌법이 ‘위헌정당해산제도’를 마련한 취지는 ‘나쁜 정당’을 박멸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나쁜 정당’이라도 특별히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 민주주의를 해산하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심판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우리 헌법 그 자체였다는 비판도 가능해진다. 이 결정은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는 구태의연한 법률 속담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 결정문의 도입부는 “입헌적 민주주의”라든가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와 관련하여 거창한 헌법이론이나 장밋빛 정치 지형들을 그려낸다. 그에 의하면 어떤 사유에서도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정작 통합진보당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각론은 이런 총론을 과감하게 배신 한다: 사실관계에 대한 자의적인 선별작업과 그 의미에 대한 지레짐작자의적인 유추해석, 짜맞추기에 충실하였던 논증,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서의 해산 결정.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낭독한 이 결정의 주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해산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2014년 12월 19일은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정사에 남겨둔 또 하나의 과거사가 되어 내내 회자될 것이다.

촛불혁명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모습. (2016. 11. 19. 광화문, 사진 제공: 옥토)

촛불혁명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모습. (2016. 11. 19. 광화문, 사진 제공: 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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