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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뉴스]의 소설가 애니 프루, 부조리한 시대에 꾸는 ‘해피엔딩’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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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전미도서재단의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애니 프루(Annie Proulx, 1935-)가 선정되었다. [항해 뉴스] (The Shipping News),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같은 작품과 영화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원로작가 프루는 “평생 공로라고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쉰여덟 살때부터였으니까 그 때부터 따지면…”이라는 말로 청중의 웃음을 자아낸 다음 수상 연설의 본론에 들어간다.

애니 플루(2009년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2.0) https://en.wikipedia.org/wiki/Annie_Proulx#/media/File:Annie_Proulx_Frankfurt_Book_Fair_Conference_2009.jpg
애니 프루(2009년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2.0)

우리는 카프카스러운 모순과 부조리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래서, ‘행복한 결말’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못하며, 이는 엄혹한 현실과 해피엔딩의 희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작가의 ‘딜레마’로 이어진다고, 거짓과 부조리,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무차별하게 전파되고 공유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작금의 어두운 사회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해피엔딩’의 위안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고.

아래는 프루의 수상연설 전문을 우리말로 옮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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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선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카프카의 암울한 작품들이 연상되는, 절망과 부조리의 시대입니다.

텔레비전은 혐오스럽고 부도덕한 정치꾼들과 온갖 성 추행 뉴스들로 번쩍거립니다. 우리는 온갖 끔찍한 사건사고의 이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허리케인과 대화재, 분노로 가득찬 총잡이들의 거듭되는 대량 살상 사건들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자꾸 암시되는 핵전쟁의 위협에 불안해 합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조작하고 분열시켜 서로 증오하고 대립하도록 내모는 현상을 목도했습니다.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에서 소위 ‘바이러스성 직접 민주주의’로 이행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이러스처럼 풍문과 요구와 비판이 전파되고 공유되고 확산되는, 우리를 쓰레기로 가득찬 온갖 데이터의 쓰나미로 내모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무시되었던 옛 가치와 열망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합니다. 진실, 타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명예, 정의, 공평한 나눔 같은, 유행에 뒤진 가치들에 우리는 아직도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가치를 이루기 위해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여전히 행복한 결말을 꿈꿉니다. 살면서 그런 결말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폴란드의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는 엄혹한 현실과 해피엔딩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작가의 딜레마를 잘 포착했습니다. ‘위안’ (Consolation)이라는 시입니다.

먹구름 가장자리로 빛나는 햇빛 같은 희망은
따라서 필수불가결하다
연인들은 재결합하고, 가족은 화해하고,
의심은 해소되고,
정절은 보상받고, 재산은 도로 찾고,
보물은 발견되고,
뻣뻣하던 이웃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화해하고, 명예는 회복되고,
탐욕은 징치되고, 나이든 하녀는 괜찮은 목사와 결혼해 안정을 찾고,
말썽꾼은 다른 세상으로 사라져버리고,
문서 위조범들은 계단 아래로 내던져지고,
유혹꾼들은 억지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고아들은 피난처를 찾고, 미망인들은 위안을 얻고,
자만은 망신을 당하고, 부상자는 치료를 받고,
탕아는 집으로 돌아오고,
슬픔의 잔들은 바다로 내던져지고,
손수건은 화해와 기쁨, 축복의 눈물로 젖고,
1장에서 길을 잃고 사라졌던 개 파이도는
마지막 장에서 반갑게 멍멍 짖으며 나타나고.

YouTube 동영상

We don’t live in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This is a Kafkaesque time.

The television sparkles with images of despicable political louts and sexual harassment reports. We cannot look away from the pictures of furious elements, hurricanes and fires, from the repetitive crowd murders by gunmen burning with rage. We are made more anxious by flickering threats of nuclear war.

We observed social media’s manipulation of a credulous population, a population dividing into bitter tribal cultures. We are living through a massive shift from representative democracy to something called viral direct democracy, now cascading over us in a garbage-laden tsunami of raw data.

Yes somehow the old discredited values and longings persist. We still have tender feelings for such outmoded notions as truth, respect for others, personal honor, justice, equitable sharing. We keep on trying because there’s nothing else to do.

The happy endings still beckons, and it’s in hope of grasping it that we go on. The poet Wislawa Szymborska caught the writer’s dilemma of choosing between hard realities, and the longing for the happy ending. She called it, “Consolation.”

Hence the indispensable
silver lining,
the lovers reunited, the families reconciled,
the doubts dispelled, fidelity rewarded,
fortunes regained, treasures uncovered,
stiff-necked neighbors mending their ways,
good names restored, greed daunted,
old maids married off to worthy parsons,
troublemakers banished to other hemispheres,
forgers of documents tossed down the stairs,
seducers scurrying to the altar,
orphans sheltered, widows comforted,
pride humbled, wounds healed over,
prodigal sons summoned home,
cups of sorrow thrown into the ocean,
hankies drenched with tears of reconciliation,
general merriment and celebration,
and the dog Fido,
gone astray in the first chapter,
turns up barking gladly
in the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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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프루는 특히 미국 서민의 삶을 곡진하게 대변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소재로 삼은 지역의 특색, 방언, 그 지역민의 일반적인 행태 등을 더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위의 멸시와 핍박을 받는 인생의 낙오자로, 결국 캐나다의 동쪽 끝 뉴펀들랜드까지 떠밀려 온 주인공 쿼일이 서서히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생생한 지역색을 곁들여 절묘하게 묘사한 [항해 뉴스]는 1993년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흔한 표현을 빌린다면 ‘인스턴트 클래식’이 된 것이다. 2001년에 라세 할스트롬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플루의 소설을 영화화한 [쉬핑 뉴스] (2001)
프루의 소설을 영화화한 [쉬핑 뉴스] (2001)
애니 프루는 내 인생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작가다. 프루의 걸작 [항해 뉴스]를 읽고 뉴펀들랜드-러브라도에 대한 ‘로망’을 품었고, 그것이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동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프루의 다른 작품도 몇 편 더 읽었지만, ‘팬’이라고 자부하기는 쑥스러운 수준이다.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더 많다.

항해뉴스 외에 깊은 인상을 받은 프루의 작품은 와이오밍을 소재로 한 단편들만 모은 [근거리; Close Range], 그 중에서도 맨 끝에 실린 ‘브록백 마운틴’이다. 물론 영화로 제작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그 짧은 분량 안에서, 그토록 깊은 슬픔과 쓸쓸함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데 놀라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플루의 단편을 영화화한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 2005)
프루의 단편을 영화화한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 2005)
얼마전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가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미래를 얼마나 낙관적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나라별로 대략 이런 결과가 나왔다.

  • 중국: 53%
  • 인도: 43%
  • 사우디아라비아: 19%
  • 미국: 16%
  • 러시아: 15%
  • 영국: 9%
  • 캐나다: 8%
  • 한국: 8%
  • 독일: 7%
  • 프랑스: 7%
  • 일본: 4%
  • 멕시코: 4%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물론 한국이다. 8%밖에 안된다. 바꿔 말하면 92%가, 열에 아홉 이상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일본은 더하다. 겨우 4%만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 평균을 따져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13%다.

우리는 왜 이토록 비관적이 된 것일까?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전망하게 됐을까? 세상이 암울해 보일수록, 사회가 부조리할수록, 그러나, 아니 그래서 더욱, 가슴 한 편에는 ‘해피엔딩’의 꿈을 여전히 간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애니 프루의 수상 연설이 더욱 각별하게 공감되는 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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