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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녹음 기록을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인터뷰집의 일부입니다. 전체 인터뷰집은 ESC 청년과학기술인 위원회의 협력과 도움에 힘입어 [어떤 대화: 청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pdf)로 발간되었습니다. (필자)

  1.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 청년 생태학자와의 대화 
  3. 공룡 꿈나무와의 대화
  4. 과학고 교사와의 대화 
  5. 청년 유기화학자와의 대화
  6. 제약회사 연구원 출신 마케터와의 대화
  7. 어느 학생연구생과의 대화

¶ 이 인터뷰는 2016년 3월에 있었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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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묘한 입장으로 대학원 과정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학연생? 꿈보다 해몽… 빛 좋은 개살구 

– 대학원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제도적으로는 학생연구생, 줄여서 ‘학연생‘이라고 하죠. 학생인데 연수인력이라는 것인데, 무슨 말인가요?

이게 참… 꿈보다 해몽이네요.

– 일단은 아름다운 단어인데요. 학생이면서 동시에 연수도 받는 것 같은. 좋은 일 아닌가 싶어요? 

말만 들으면 정말 멋지고 이상적이고 그렇죠. 그런데 이게 빛 좋은 개살구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학연제도라는 것은 결국에는 그런 거예요. 산업체에서 학생 인력을 활용하는 조건으로 연수 인력들을 뽑아서 산업체에서는 이 인력을 노동자로 쓰고, 이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위탁교육을 하는 것이죠. 즉, 위탁 교육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산업체에 활용한다! 이것이 학연제도의 기본 취지가 되는 겁니다.

디자인: 노수리
디자인: 노수리

– 취지는 좋네요. 배우고 나서 활용도 하면서 거기서 또 배우는 그림이죠.

이상적인 부분이 많아요. 현실적인 부분은 과연 그 이상향을 잘 따라가고 있느냐를 봐야 하는 것이고, 한번 고찰해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어떤 제도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는데, 문제는 이 괴리가 얼마나 뻗쳐 있어서 어디까지 실제 현장에서 멀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학연 제도가 한국의 국공립 기관들이 아마 많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인데요. 기본적으로 연구소나 산업체 쪽에서 사람을 뽑고, 이 사람들을 자매 대학원의 대학원 시스템을 통해서 위탁 교육하는 겁니다.

– 그러면 학생 연구생 신분인 사람들은 대학원에 지원하는 건가요?

일차적으로는 이 인력이 산업체 우선이에요.

– 산업체 노동자로 고용 계약이 되는 건가요?

그렇죠. 그게 먼저에요. 산업체 입장에서는 일단 인력이 필요하죠. 인력을 가동하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산업체가 잘 구비가 되어 있으면 스스로 따라갈 수 있겠지만, 그게 안 되니까 위탁 교육 시스템을 구비해서 이 사람들을 대학원을 통해서 교육받게 하고, 그렇게 받은 연수 인력들이 산업체에 와서 응용을 한다면 산업체 입장에서는 매우 좋다 이런 거죠. 인력의 질적 향상을 위한 시스템인 거죠.

– 인력은 필요한데 지식과 기술이, 숙련됨이 필요하고 그 교육을 고용 후에 이 기관에서 스스로 제공하기는 힘든 현실이니까 기존의 교육기관인 학교와 연계를 해서 같이 해보자는 거군요.

그렇죠. 산업체 입장에서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보니까 자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죠.

– 이렇게만 설명을 들으면 그야말로 정부에서 말하는 산학협력이 되는 거 아닌가요? 산업과 학계의 협력. 혹은 연구와 학업의 협력?

실제로 그런 의미에서 학연생이죠.

– 그런데 처음에 대학원생이라고 하셨잖아요?

대학원으로 위탁교육을 보냈기 때문에 기관의 노동자이면서 대학원의 학생이란 입장을 동시에 겸유하는 거죠.

야호! 오늘도 야근이다!! 

– 잠깐 정리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기업에 계시는 분들이 대학원을 다니시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럼 그 분들은 풀타임(full-time) 직장인이면서 파트타임 학생이 되는데, 이것과 비슷한 경우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그런 분들은 자기가 대학원을 통해서 얻을 지식을 직장에서 활용한다는 조건이 없잖아요. 학연 제도는 조건이 붙어있어요. 야간이 아니라 주중 대학원을 다니는데, 풀타임 대학원을 다니는 건 아니고…

모든 학연생들이 이런 환경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제가 겪은 환경에서는 산업체에서 주중에 일일 근무를 하죠. 그러면서 시간을 따로 빼서 대학원 수업을 듣는 거에요.

직장인이 대학원을 다닌다는 개념에 비유하자면, 야간에 하는 수업이 주중(근무시간)에 껴 있는 셈이 되는 거에요. 이 사람은, 노동자는 일하다가 수업을 들어야 하고, 수업을 듣고 나면 다시 산업체에 돌아와야죠.

– 그러면 맨날 야근 확정일 것 같은데요?

그렇죠. 이런 생활을 해요. 이런 생활을 학연생들이 대부분 하죠.

밤은 길고, 할 일은 많다. 야호! 야근이다!!
밤은 길고, 할 일은 많다. 야호! 오늘도 야근이다!!

– 그러니까 이게 학교에서 뽑는 게 아니군요.

그렇죠. 엄밀히 따지면 기관에서 인력을 뽑는 거에요.

– 즉,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리도 기관에 있고, 책상도 거기 있는 것이 맞죠?

그렇죠. 산업체와 대학원 간의 협력이 되어 있는 경우는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TO를 생산해 내고, 이 TO에 대한 추천서를 보내서 학교에서 그 사람들을 픽업할 수 있게끔 시스템이 되어 있습니다.

– 예를 들어서 기관에서 1년에 5명의 학연생을 뽑는다 치면, 이 학생들이 무조건 대학원을 가야 하니까 그 추천서를 들고 대학원에 가면 뽑아준다는 건가요?

네. 그 추천서에 있는 5명을 뽑아 주게 되어 있어요. 대학원 TO랑은 별개일 거예요. 그 대학원은 대학원 자체의 TO가 따로 있기 때문에.

학생인가 노동자인가 

– 그럼 학비를 내나요?

내죠.

– 누가 내나요?

학생이 냅니다. 학생으로서 학연생이 학비를 내죠.

학비는 학연생이 냅니다.
학비는 학연생이 냅니다.

– 그런데 일은 기관에서 하잖아요.

그건 노동자로서.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산업체 입장에서는 학연생이 대학원에 가서 받은 교육을 산업체에 활용해라, 즉 노동력을 대라는 이야기에요. 그렇기 때문에 수업료는 학생이 내고, 여기 와서 일 하는 데에 대해서는 ‘연수 장려금’ 이라는 항목의 돈을 줍니다. 기관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바에 대한 금액을 지불해 준다, 보상해 준다는 시스템이 되어 있죠.

– 월급 개념으로 돈이 조금 나오는군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보면 맹점이 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급여가 학비를 얼마나 커버해주느냐를  봐야죠. 생활이고 현실이니까. 아이러니한 부분이, 저는 기관에서 인력이 필요해서 노동자를 뽑았으니 기관에서는 이 사람을 기본적으로는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시스템은 이 사람을 학생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그러면 임금 산출이 달라지죠. 이 사람은 학생 신분이고, 풀타임 아니고, 기술적인 요건만 충족시켜서 서비스 제공하는 사람이니 금액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죠.

– 학비를 직접 낸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대학원 학비가 학기당 한 500 이렇게 되잖아요. 더 되나요? 예를 들어서 1년에 1000만 원이라고 친다면, 기관에서 주는 학연생 장려금이 학비를 커버하고 남을 정도가 되나요?

빠듯하거나 안되요. 그게 안 될 수 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제가 말씀드리는 학생과 노동자의 개념이 다르다고 이해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가령, 학부를 마치고 평균 임금 월 150만 원에 테크니션으로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가상의 기준이 있다고 할 때, 학연 과정을 통해서 석사 학위에 등록된 노동자가 과연 150만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이게 안 된다는 거에요.

– 게다가 말씀하신 테크니션은 4대 보험 적용을 받잖아요.

이게 계약을 어떤 조건 하에 하냐에 따라서 다른 건데 기관 자체 TO에 따라서 뽑는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또 그게 아닌 경우면 세부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 말하기가 힘들어요.

다만, 학연 제도에서 최고 장려금이 얼마까지 지급될 수 있다는 기관 내 규정이 있는 곳도 있어요. 최고가 설정되어 있어요. 이게 좀 이상하죠. 해가 가면서 최저시급이 산출되고, 복지 후생 제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추세에 되레 상한선이 정해지는 거예요.

장려금 상한제...를 정한 곳도 있다.
장려금 상한선…을 정한 곳도 있어요.

–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학비를 낸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일은 연구소에서 하잖아요. 이 때, 학위를 주는 주체는 연구소인가요 학교인가요?

학위를 주는 주체는 학교에요. 대학원에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 그런데 대학원에서 연구를 안 하잖아요. 연구 지도를 대학원 교수님한테 받나요?

학연 제도 시스템은 산업체와 학교 간에 지도교수가 각각 한 명씩 배정돼요. 그렇기 때문에 학연생은 양쪽을 다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에요. 보스가 두 명이죠. 그런데 보통 학교 쪽 교수님은 실질적으로 본인이 연구를 지도할 수 없고 그런 환경이 안 된다는 걸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냥 크게 신경 써 주시지 않아요. 쓸 수가 없는 상태죠. 사실상 산업 쪽에서 이걸 가지고 학위 과정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고, 또 그쪽 사람의 지도를 받죠.

교수님이 직접 신경 쓰기는 힘들죠.
교수님이 학생을 직접 신경 쓰기는 힘들죠. 사실상 산업 쪽에서 학위 과정을 이끌고, 그쪽 사람 지도를 받죠.

– 주도권이 산업체 쪽으로 많이 가 있네요.

네. 생활은 그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어요. 만약에 학연생으로 졸업하면 대학원에서 졸업장이 나오고요, 산업체에서도 졸업장처럼 뭐가 또 나와요. 증서 같은 것이죠. 보통 제 선배님들은 졸업장 두 장 나온다고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일종의 연수증 같은 거죠.

– 뭔가 일은 열심히 하고, 학비는 학비 대로 내는데, 돈벌기보다 오히려 까먹고 있는 상황이 되는 느낌인데요.

제도가 학연생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학생으로 분류했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인데, 저는 산업체에서 이 사람을 노동력으로 활용을 하려면 노동자 대우를 해 주는 게 기본이라고 봐요.

그런 시스템을 더 도입해야 하는데 산업체 입장에서는 경제성을 지키고 싶은 거죠. 가격 대비 고효율을 내고 싶으니까 이걸 학생 신분으로 처리하면 소모 비용이 확 주는 거에요. 질적으로 대학원 학위 과정에 있는 고학력 노동자들을 싼 값에 쓸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 정리하자면, 학연생 신분의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는 일상은 노동자에 가까운데, 제도적 분류는 학생으로 되어 있는 거죠.

현실과 제도의 모순이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결국에 중간에 끼어 있는 학생들만 휘둘리고 불리한 조건 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학생이니까 열심히 해야지! 

– 4대 보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이것도 중요합니다. 직장에 소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지역 의료보험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좀 비싸죠. 개인사업자 방식으로 하면 비싼 부분이 있고, 일을 하다가 관두면 실업수당같은 거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것도 아니네요.

일단 일을 그만둘 수 있을지를 먼저 물어봐야죠. 내가 그만하고 싶을 때 그만할 수 있느냐. 이게 쉽지 않은 선택인 거에요. 본인 스스로도 열의가 있고, 꿈과 희망이 있고 자기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 선택한 길을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혔다고 해서 쉽게 그만둘 수 있을까요.

게다가 분위기가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두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치부해 버리니까요. “본인 열심히 안 했으니까 저러는 거지” 라고 하는데 글쎄요. 자기 삶을 자기가 판단해서 결정을 내린 것뿐인데.

이게 생각보다 심각해요. 그리고 그만둔다 해도 학생은 실업수당을 못 받죠. 4대보험이 적용되는 근무지에서 근무를 해야 실업급여도 나오는 거죠.

– 학연생은 결과적으로 기관에 고용이 돼 있다고 하셨는데, 학연생들이 하는 일이 기관에서 따로 뽑은 노동자와 다른 점이 있나요? 하루 근무 시간이 다르다거나, 출퇴근 제도 자체가 다르다든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계의 성격을 끌고 옵니다. “학생이니까 열심히 해야지!”라는 논리죠. 테크니션이면 아침 9시면 땡 출근해서 자기 프로젝트 끝내 놓고, 6시면 퇴근 하면 돼요.

학생도 뭐 6시, 7시에 퇴근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제 얘는 ‘학업 포기한 애’가 되는거죠, 분위기가. 산업체에서 본인이 했던 업무, 프로젝트가 학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도 일찍 퇴근해서 놀고 싶다고요! 하지만 언감생신...
학연생도 일찍 퇴근해서 놀고 싶다고…요! 하지만 언감생신…

– 즉, 학연생 입장에서는 일하면서 학위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요. 방금 말씀해주신 상황, 하는 일이 결국 학위와 직결이 되는 이런 상황은 일반 회사로 치면 인사고과를 쥐고 있는 그런 느낌이네요.

네. 자연스럽게. 강요하지 않아도 그렇게 돼요.

– 결국 정규직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학연생들이 하는 일이 거의 동일하다고 말씀하시는 거네요. 같은 프로젝트에 있다면.

그렇죠. 더 많이 하면 많이 하죠. 결과물을 가지고 학위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책임감이 있다보니까. 여기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시스템이 될 수가 없는 거죠.

동일 임금을 놓고 보면 테크니션이 일을 더 많이 해줘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거거든요. 최소한 그 사람은 4대보험 받으니까. 완벽한 노동자죠.

학연생은 4대보험도 안 받고 급여는 똑같은데 일은 더 많이 하고 수업도 들어야 하죠. 이게 환장하는 겁니다. 정말 24시간이 모자라요.

그리고 기관과 산업체가 학교와 담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야 될 법은 없으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저는 되게 근거리여서 한 15분 20분 내외면 왔다 갔다 하는데, 제 후배 같은 경우는 1시간 20분 이렇게 가기도 해요. 수업을 듣는 건 의무잖아요. 그럼 들으러 가야지. 업무를 중단하고. 갔다 와서 다시 일을 해야죠.

– 업무 중단하면 또 눈치 보일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도 그게 내부적으로는 양해가 되죠. 그런 선례가 쭉 있으니까. 어쨌든 눈치 보이는 건 맞는 거에요. 예를 들어 수업 들으러 갔는데 산업체 쪽 지도교수가 찾아요.

“어디 갔어.”

“수업 들으러 갔는데요.”

“그래?”

그래서 수업 끝나고 왔는데 그 교수님은 퇴근하고 없어요. 이제 하루 종일 중압감에 시달리는 거에요. ‘어떡하지? 내일 아침부터 혼나겠구나.’

Cliff, CC BY https://flic.kr/p/5nNg9d
Cliff, CC BY

책임 소재? 행방불명! 

– 혼나는 것도 굉장히 이상하네요. 물론 한국에서 직장 상사한테 혼나긴 하지만 그게 업무에 대한 걸로 혼나는 것인데, 이거는 뭔가 학생 지도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생활 태도 가지고도 혼낼 수 있잖아요.

맞습니다. 정확히 그 부분이 문제예요. 엄밀히 따지면 산업체 쪽에서 지도하는 분도 일종의 객원 교수직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도할 수는 있다고는 봐요. 업무적인 부분에서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온종일 생활할 수 있으니까 지도 좀 할 수 있다고 봐요.

다만, 문제는 뭔가 잘 됐을 때는 큰 문제가 없는데 잘 안 되는 경우면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고 해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거죠. 학교 입장에서는 “아 그건 그쪽 산업체에서 애를 다루면서 어떻게 된 거니까 그건.” 또 산업체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냐 애가 학생 아니냐?” 이렇게 떠넘길 수 있다는 거죠. 선례도 저는 봤고.

–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네요.

네. 이게 결국에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처럼 학연생들 입장이 아주 불리해요.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어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진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진다.

– 계속 궁금한 게 생기는데요. 한국에서 대다수 남자들은 예비군에 가는데, 직장이 크면 직장 예비군이 따로 생기잖아요. 학교는 또 예비군이 따로 있어서 학교 예비군을 하는데 학연생 같은 경우에는 그럼 어디로 예비군을 가나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고, 저는 직장 예비군으로 가죠.

– … 제도가 일관성이 없네요. 사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반 대학원생 같은 경우, 일을 하다가 파견을 가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이 사람이 전문연구요원 복무 중인데 파견을 갔다가 여기서 예비군을 간다거나 휴가를 쓰고 해외를 간다거나 하면 그 기관에서 처리해야 해요. 학교가 아니라. 원칙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결국 핵심은, 산업체가 학연생을 어떻게 바라봐 주느냐 하는 겁니다.

– 외부 감시 기관이나 혹은 의결회 같은 단체는 없는 건가요?

그럴 이유는 없죠. 산업체에서 ‘우리는 그런 인력을 원한다’고 해서 자체 TO를 만들어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 숫자가 어느 정도나 되나요? 혹시 아신다면.

제가 속한 기관은, 비율을 내 보자면 100 기준으로 책임급, 선임급 다 빼면 한 30%, 40%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 그렇게 많아요? 학연생이요?

학생은 그 정도 비율이 되는데 여기서 또 새로운 제도가 나옵니다. 연합대학원(UST) 소속인 사람들과 학연생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조금 다른 개념이에요 예전이 비중에 7:3 이었다면 지금은 6:4나 5:5 정도입니다. 학연과 연합대학원 두 시스템으로 나누어져 있죠.

– 정리하자면 100명 중에 40명 정도가 학생 신분이네요 어쨌든.

20%나 30%정도는 학연과정이고 나머지 20 정도는 연합대학원 시스템을 통해서 온 것이고요.

– 바꿔 말하면, 100명인 기관에서 40명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상태네요.

그렇죠. 그냥 학생인 거죠.

– 국가에서 통계를 낼 때, 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비중에 학생이 안 들어가나요?

당연히 안 들어가죠. 저희가 비정규직이면 차라리 노무사를 찾아갈 수 있죠, 문제가 생기면. 그런데 이건 찾아갈 데도 없어요.

비정규직이라면 노무사라도 찾아가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갈 데가 없어요.
비정규직이라면 노무사라도 찾아가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갈 데가 없어요.

노동 사각지대… 마이스터고 현장 실습과 비슷

– 교육부는 어때요.

교육부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대학원 수업 다 받으니까요. 시스템상으로는 수업 받는 데 문제 없으니까.

– 그러면 100 기준에서 40명은 빼고, 60명 중에 요즘 한국 직장들 비정규직 비율이 30%는 되니 대충 나머지 60명 중에서 20명, 30명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빠지고, 결국 100명짜리 기관에서 30명만 정규직이네요.

약식으로는 그렇게 계산할 수 있어요.

– 저희가 구체적인 각 기관 자료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사회 통념 기준의 계산을 해 보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애매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요.

애매한 이유가 여럿 있죠.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융통성이 생기고 제도가 개선이 되었느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학연’이란 시스템이 만들어진 지는 정말 오래된 걸로 저는 알고 있거든요. 그러면 그 때 만들어 놓은 제도에서 몇 번이나 제대로 개선이 되었을까요?

가령,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연수장려금 상한선이 있다는 기관에서도 또 연구실마다 다 달라요. 상한선이지 여기에 맞춰서 실제로 준다는 게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저는 옆방에 있는 학연생이랑 비슷한 업무를 하고 똑같이 실험하고 똑같이 학위 받고 수업 듣고 하는데 옆에 있는 애는 상한선이 100만원이라고 칩시다. 옆에 있는 애는 PI가 좋아서 100만원을 받아요. 그런데 우리 PI는 80만원만 줄 수도 있어요.

– 법적으로 강제할 장치는 없는 상태인가요?

상한선이 있으니 넘지만 않으면 되죠. 나쁘게 말하면, PI가 여유 있으면 120만원 주는 거고, 안 되면 80만원 주고 나서 “애쓴다,” 하는 겁니다. 시대 반영이 얼마나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연합대학원 같은 경우에는 가장 최근에 생겼고요.

외국에 좋은 선례들을 최대한 반영을 해서 해 보자 하고 의지를 가지고 만들어서 그런지 최소금액이 정해져 있어요. 그리고 기존의 학연 시스템처럼 양쪽 기관 사이에서 좌지우지 되는 형국이 아니라 온전히 그 기관, 연합대학원에 속해서 자기 프로젝트와 학위과정을 해 나갈 수 있는 거에요.

– 어느 정도 통제가 되겠네요.

그렇죠. 비중이 5:5나 6:4로 점점 올라오고 있는데, 학연생들이 바라보는 연합대학원생들은… 부러운 점이 많죠. 비슷한 처지인데 더 케어를 잘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막 두 기관에서 좌지우지되고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교. 등록금도 비싸고. 그러면 뭐가 더 좋니 했을 때 “졸업장이 한 장 더 나 와!” 이 말 밖에 할 수 없어요.

– 즉, 연합대학원 시스템은 사람들이 모여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핵심이 있는데 학연생들 같은 경우에는 계약 특성상 “너도 학연생 하니?” 라고 할 수는 있지만 각자가 속해있는 계약 대상은 다 다를 수는 있는 거네요. 결속이 힘든 구조네요.

그렇죠. 학연생들은 결속이 힘들어요. 소속이 양 쪽에 갈라져 있기 때문에 학교 소속이 서로 다르면 이게 뭐가 안 되죠.

– 그러면 지금 소속되어 계신 대학교의 대학원 총학생회는 소속될 수 있으세요?

할 수는 있겠지만, 이유가 없죠. 생활을 거기서 하지 않는데 제가 거기서 혜택을 누릴 이유는 없어요.

– 연구하거나 일하는 곳의 노조는요?

저는 거기서는 학생이죠. 그러니까 이게 미쳐버리는 거예요. 노동자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학생이라는 제도로 묶어요. 잘 되면 정말 좋은 거고, 안 되면 낙동강 오리 알 되는 건데요.

생각해보세요. 학연생이 100명이 있다고 칩시다. 그 중에서 잘 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정말 특별 케이스가 있어서 사이언스지에 논문 하나 냈다 하면 대박이죠. 서로 양 쪽 입장에서 좋겠지만 100명 중에 그게 몇 명이나 나오겠냐고요. 그래서 솔직히 저는 학연 과정에 있지만, 연합대학원생들이 정말 부러워요.

– 일반 대학원생은 안 부러워요?

일반 대학원생도 부러워요. 학교 소속인 풀 타임 애들 부러워요. 책임지는 집단이 있으니까요.

– 아예 직원들은 안 부러우신가요? 기관 소속 테크니션이나 기술자들은 어때요?

그게 부러워지기 시작하면 아예 학교를 때려 쳐야죠. 테크니션의 일이 부럽다고 하면 애당초에 학연생에 들어올 이유가 없어요. ‘학위까지 같이 하고 싶다’는 것이 학연 제도의 핵심기능이고 연합대학원도 비슷한 의미에요.

– 학계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그게 문제야?” 라고 하실 수 있을 텐데, 사실 이것이 한국 사회 고용구조의 고질적 문제인 원청-하청 문제와 비슷합니다. 가장 비슷한 사회문제는,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마이스터고 학생 사고 문제가 있습니다.

마이스터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3학년이 되면 정확하게 학연생과 같은 취지로 실습을 나가서 취직이 되는 겸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는 시스템이 있는데, 최근에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학생에 대해 어디서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죠.

똑같네요. 굉장히 똑같네.

절망 청춘 고독 희망 소망 청년 사람

– 사회 여러 부문에서 이런 형태, 즉 연수, 실습 등의 형태로 비슷비슷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네요.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사실 같은 이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엔 노동자가 아니니까 노동법을 적용시켜주지 않는 거죠. 이 집단 자체를 다른 식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 사실 학비를 낸다고 하셨을 때 깜짝 놀랐는데, 기관의 일을 해 주고 교육은 위탁을 맡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기관에서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내주는 것이 장려금이라는 명목 하에 나오는 거에요. 학비를 내고 남을 돈이면 괜찮을 수 있어요. 학비는 어쨌든 교육 시스템을 위해서 투자를 하는 셈이고 기관 입장에서도 “너는 여기서 노동력을 제공을 해서 내가 임금 책정을 해 주는 거고 거기에 네가 학연생이니 교육비를 일부 대마.” 이런 시스템이 된다면 불만이 없어지겠죠.

급여를 받는 거에 대해서, 혹은 학비가 나가는 거에 대해서 부담도 없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지원금 상한선이 있잖아요. 학생이라는 조건이 있으니까요.

– 참고로 풀 타임 대학원생에게도 급여 상한선이 있죠.

맞아요. 풀 타임 대학원생으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학연생을. 엄밀히 따지면 산업체잖아요. 산업체가 이 사람을 노동자로 봐 줘야 하는 게 맞는 얘기인데 학생으로 바라본다는 거에요. 교육적 요소가 있으니까.

‘학연’ 제도는 도대체 왜 유지되는 걸까

– 그러면 우리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대체 왜 학연 제도가 유지가 되고 있나?” 하는 겁니다.

그 문제 의식이 연합대학원에 묻어있어요. 그래서 연합대학원은 이 사람의 최소 연수 장려금이 얼마, 그 다음에 플러스 학비 보조로 얼마 해야 된다가 정해져 있어요.

즉, 생활비 명목으로 얼마가 지급이 되고, 학비는 PI의 연구비에서 나오는데 PI의 연구비로 이 학생이 등록이 되어 있으면 거기서 차감이 돼요. 예전에는 자동으로 연구비에서 차감이 됐었는데 지금은 수당도 학생한테 줘요. 그런데 학연은 그게 아니니까 그냥 연수 장려금을 그대로 학비에 박아야 해요. 결국은 마이너스죠.

– 어느 나라든 정책이란 게 한 번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관성이 생겨서 못 막는데, 쉽게 생각해서 우리나라 수능과 대입 문제 보면, 국민 5000만 명에게 물어보면 다 문제를 알고 있어도 못 없애잖아요, 바꾸지도 못 하고. 조금 조금씩 개선을 하겠다고 하지만 수능이라는 큰 틀 자체를 바꾸지는 못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존폐유무를 결정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고, 연합대학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기 전에 이 시스템을 왜 기존 학연 시스템과 병합하지 않았을까 궁금한 거예요. 위에서 결과만 보면 학연시스템이라는 것은 졸업장 두 장만 발급해 주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없앨 이유가 없는 거죠,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선진화 된 시스템을 새로 도입을 했으면, 두 시스템이 공존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이러면 기존 시스템은 “너 그냥 졸업장 딸 때까지 참아” 라는 말이죠. 지금 트렌드에 맞춰 말해보면 학연생을 추후에 정규직으로 전환을 시켜서 인력 멋있게 써보려고 한다는 것인데 만약 이 제도가 정말 합리적이었다면 아마 한국에 있는 기관들의 정규직 중에 학연생 출신들이 정말 많아야죠.

– 더불어서 대중 인지도가 높았겠죠. 사람들한테 “나 어디 대학원 다녀” 하면 “아 대학원생” 하는 것처럼 “나 어디랑 어디 사이에서 학연생을 하고 있다” 하면 “학연생 하는구나” 이해하는 정도가 되어야 사회적으로 정착이 된 제도라고 할 수 있겠죠.

맞아요. 지금은 “소속이 어디에요?” 그렇게 물어보면 “일 하는 데요? 수업 받는 데요? 어느 쪽?” 그래서 “어디에서 일해요?” 물어보면 기관 이름을 말해요. 그 다음에 “학생이세요? 대학원생이세요?” 그러면 “네 어디 학교에요” 하죠.

가장 최근에, 이건 제가 직접 겪은 일인데 제가 운전을 하다가 경미한 사고를 냈어요. 이게 10대 과실에 들어가서 경찰서에 갔죠. 그걸 물어보는 거에요. 조서를 써야 하니까.

“소속이 어디죠?”“근무지는 어디에요?” 그래서 제가 어디 어디 기관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요? 그러면 뭐 기관에 소속 없어요?” “아 제가 학생이라서요.” “네? 학생이예요? 왜?” “아 대학원생이라서요.” “아 그 직장 다니면서 다니는” “그게 아니고요.”

– (…) 

이게 진짜 애매하더라고요. 설명을 드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해도 못 하고. “그런 제도가 있어요?” “네 있어요,” “나도 처음 알았네,” 하시는 분들도 많고. 이렇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소속을 밝히기가 아주 모호해요.

Matthias Ripp, CC BY https://flic.kr/p/opGxp5
Matthias Ripp, CC BY

– 이 문제를 또 한 가지 큰 틀로 바라보면, 한국 사회 청년정책의 부재와도 연결이 됩니다. 사실 학연생이라는 신분에 처한 연령이나 나이대가 소위 말하는 청년층이 되는데요. 항상 사회적 위치가 떠 있는 애매한 층이잖아요. 그렇게 떠 있다 보니까 정말로 일이 없는 경우에 어디로부터도 책임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도 생기고 있어요.

청년들에게 정말 좋은 환경을 제공만 해 주면 거기로 인력이 다 몰릴 텐데… 이공계, 과학계에 인재가 없다는 핀잔하지 말고 시스템을 보완해서 핵심 인력을 끌어올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 시스템을 보완해서 ‘이게 좋은 곳이다. 매력적인 곳이다!’ 

그렇죠. 이쪽 일이 하면 할수록 지식이 습득되니까요. 저는 과학이 크게 두 가지의 패턴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이론이고 하나는 결국 검증이죠. 실험인데 자기가 나이 60, 70 먹어서까지 검증 인력을 대체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병행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해 온 연구와 경력을 쌓아서 이론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으면, 청년들이 한창 일할 시기인 것과 맞물려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 개인사도 있을 텐데 어려운 이야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논리정연하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감정에 복받치다 보니까 잘 안되네요. 지금은 작은 목소리지만, 나비효과처럼 언젠가 큰 파동이 일어날 수 있다면… 저는 인간이 항상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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