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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역사: 5. 마케팅의 아버지 – 필립 코틀러

지금 당장 ‘마케팅 프로세스’를 검색해보라. 정석으로 여겨지는 필립 코틀러의 방법론부터 다양하게 변형된 프로세스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필립 코틀러의 R-STP-MM-I-C 프로세스 각 단계 중 코틀러의 순수 창작은 없다. 이미 존재했던 개념을 결합해 ‘마케팅 프로세스’라고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수학 공식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방법론은 그저 방법론일 뿐이다. 마케팅의 역사를 알면 익숙한 여러 기법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본질을 이해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스스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고, 어설픈 컨설턴트를 걸러낼 능력도 생긴다.

이 연재 ‘마케팅의 역사’가 형식보다는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필자)

  1. 괴벨스, 마왕의 마케팅 
  2. 선전의 대가들 – 버네이스와 괴벨스
  3. 오길비, 브랜드 이미지의 탄생
  4. 마케팅 비긴즈 – 슬론과 드러커
  5. 마케팅의 아버지 – 필립 코틀러

필립 코틀러 씨? 피터 드러커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선생님을 저희 집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시간 되실 때 한 번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코틀러는 순간 얼어붙어 입을 뗄 수 없었다. 드러커의 책을 읽고 전적으로 공감했고, 매우 존경해온 터였다. 그런 그에게 드러커의 갑작스러운 전화는 충격이었다. 두 사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드러커의 집 근처 녹음실에서 진지한 만남을 가졌다. 조용한 녹음실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비영리단체에서 마케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경영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흰 눈썹의 거장은 겸손한 학생처럼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주로 비영리조직의 마케팅에 관한 것이었다. 질문은 하나같이 날카롭고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대답하는 코틀러가 새로운 영감을 받을 정도였다. 드러커는 이날 정리된 내용을 토대로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을 출간한다. 사실 드러커는 자신의 지식만으로도 비영리단체의 경영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드러커가 굳이 코틀러를 만나 대화를 나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필립 코틀러 (Philip Kotler, 1931년 ~ 현재)https://en.wikipedia.org/wiki/Philip_Kotler (출처: Mays Business School, Philip Kotler, CC BY NC ND) https://flic.kr/p/8GJS6B

필립 코틀러 (Philip Kotler, 1931년 ~ 현재, 출처: Mays Business School, “Philip Kotler”, CC BY NC ND)

비영리단체를 위한 마케팅 

비영리단체의 경영에 대한 최초 저술은 코틀러가 드러커보다 15년 앞서 있었다. 1970년부터 여러 비영리단체들의 자문을 해온 코틀러는 정리된 이론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에 [비영리단체를 위한 마케팅, Marketing for Nonprofit Organizations] (1975)를 출간한다. 덕분에 비영리단체들은 필요에 따라 코틀러가 제시한 방법론을 현장에 적용하여 경영 성과를 높일 수 있었다. 아마도 드러커 역시 이 책을 접하고 코틀러와의 대담을 원했으리라.

필립 코틀러, [비영리단체를 위한 마케팅] (1975)

필립 코틀러, [비영리단체를 위한 마케팅] (1975)

코틀러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비영리단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보수로 30여 년간 지역 병원의 환자를 위해 봉사했다. 그녀가 열정을 바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자문 활동을 하던 코틀러는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비영리단체 사람들이 비즈니스 마인드를 금기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상업적인 것과 구별된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비영리단체의 사람들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는 것을 속물이 되는 것처럼 여겼다. 그런 생각은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들에게 코틀러는 속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순되게도 그 속물에게서 비영리단체를 한순간에 영웅적으로 변모시킬 마법 같은 능력을 기대했다. 그들에게 마케팅이란 아무리 쓸모없는 똥이라도 매력적인 단어 몇 마디를 조합해서 광고하면 순식간에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거짓말 노하우였다. 그런 기술은 물론 천박한 것이었지만 자신들의 고귀한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필요악이라 생각했다.

당시 코틀러는 [마케팅 관리론, Marketing Management] (1967)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마케팅 학자로서 충분한 명성을 쌓은 상태였다. 그대로 안주할 수도 있었겠지만, 비영리단체의 비즈니스를 금기로 여기는 문화는 그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코틀러는 기존 영리 기업에 머물러 있던 마케팅의 영역을 비영리단체에까지 확장할 포부를 가진다. 이에 1985년부터 학교, 의료기관, 자선단체, 종교단체, 공연예술단체, 미술관에 대한 책을 출간하며 마케팅의 영토를 넓혔다. 그는 마치 마케팅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하여 전방위적으로 선전포고하는 장군 같았다.

“빌바오에는 에펠탑이 없잖아요” 

1990년경 코틀러는 스페인 빌바오(Bilbao)시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빌바오는 한때 제철업과 조선업으로 부흥한 산업도시였지만 한국 같은 신흥 산업국이 등장하면서 쇠퇴 일로를 걷는다. 실업률은 50%에 달했고 바스크 독립을 주장하는 ETA의 테러와 폭동으로 도심 분위기는 만화 배트맨의 고담 시티를 방불케 했다. 일찍이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빌바오에 대해 “부유하고 추하고 무더운 광산 마을”이라 평한 바 있었다. 90년대 빌바오는 부유함은 사라지고 추함과 무더움만 남은 상태였다.

시 당국은 죽은 도시를 다시 살리기 위해 관광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리고 그 기획의 일환으로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를 초청했다. 빌바오 시 당국의 마케팅에 대한 인식은 전형적인 비영리단체와 같았다. 스타일리시한 모델과 마법 같은 단어 몇 개로 광고를 쏟아부으면 아무리 똥 같은 도시라도 황금의 엘도라도로 비추어질 거라는 기대였다. 시 당국이 코틀러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코틀러는 그 기대를 허무하게 무너뜨린다.

“빌바오에는 에펠탑이 없잖아요.”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저명한 마케팅 학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빌바오에 생뚱맞게 무슨 에펠탑인가? 초딩이나 할 법한 엉뚱한 소리가 세계적 권위를 가진 석학의 입에서 나오니 시 당국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그 어쩔 줄 모름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코틀러는 초딩 같은 말로 날카롭게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고객을 생각하라 

마케팅은 탄생의 순간부터 끊임없이 말해오고 있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생산자 주도로 제품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것이 마케팅의 시작이다. 데이비드 오길비와 알프레드 슬론은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었고, 피터 드러커는 마케팅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마케팅의 개념은 충분히 광고되지 못한 모양이다. 실무에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사람들이 도시를 관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쇼핑? 친절한 미소? 그런 것들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에펠탑이다. 에펠탑이 있어서 파리에 가는 것이다. 빅벤이 있기에 런던에 가는 것이다. 타임스퀘어가 있기 때문에 뉴욕에 간다. 빌바오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이 파리에 가는 이유? 거기에 에펠탑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파리에 가는 이유? 거기에 에펠탑이 있으니까.

빌바오 시 당국은 시를 하나의 제품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제품을 만들지 말고, 먼저 질문부터 해야 했다. 관광객은 어떤 도시를 좋아하는가? 답은 에펠탑이다. 그들은 에펠탑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고,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빌바오 마케팅의 첫 단추는 파리의 에펠탑 같은 빌바오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그 정체성 없이 만드는 광고는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그냥 한번 소비되고 마는 일회성 콘텐츠에 불과한 것이다.

빌바오 + 구겐하임 미술관 

코틀러의 조언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시 당국은 논의 끝에 솔로몬 구겐하임(Solomon Guggenheim) 재단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한다. 구겐하임 재단은 뉴욕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개관한 것으로 문화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마침 뉴욕 미술관의 소장 공간이 가득 차는 바람에 새로운 미술관 건립을 알아보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구겐하임은 미국을 대표하는 철강 재벌이었다. 과거 철강의 도시였던 빌바오와 구겐하임의 만남은 빌바오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에 있어서도 시너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빌바오 외에도 여러 도시가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빌바오는 건축 비용 대부분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적극적인 유치전을 펼친 끝에 어렵게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할 수 있었다. 이어서 빌바오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를 영입하여 미술관의 디자인을 맡긴다. 미술관 건축에 드는 비용은 총 1억 4천만 유로였다. 그러나 몰락한 철강 도시에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3천 6백만 유로 정도를 지출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금액은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빌바오 시민들은 미술관 건립을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야지 돼지 목에 진주도 아니고 거지 같은 도시에 미술관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그 질문을 직접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손에 쥐기까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명언이 있다.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의 말이다.

“만약 제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면, 사람들은 제게 더 빠른 말이 필요하다고 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은 소비자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한다. 그 질문을 갖고 관찰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관찰은 내가 직접 할 수도 있고, 남이 한 것을 참고할 수도 있다. 빌바오는 코틀러의 관찰을 따르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제 빌바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된 구겐하임 미술관

이제 빌바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된 구겐하임 미술관

1997년 반짝이는 티타늄 비늘을 입은 물고기 형상의 미술관이 빌바오의 폐허 위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1년 후 130만 명의 관광객이 빌바오 구겐하임을 다녀갔다. 첫 해 매출은 1억 6천만 유로였다. 이후로도 매년 평균 105만 명의 관광객이 도시를 찾았다. 빌바오의 호텔 수는 순식간에 10배나 증가했다.

미술관의 영향으로 새로 건축되는 빌바오의 주요 건축물들은 미적 가치를 우선으로 디자인되었다. 빌바오는 유럽에서 가장 여행하고 싶은 도시 10위에 올랐다. 2014년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에서 가장 투자하기 매력적인 도시 4위로 빌바오를 선정했다. 거지 같던 도시는 아름다운 문화도시로 변모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빌바오 효과’라 명명했고, 수많은 도시 기획자들이 빌바오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빌바오 시민 중에 미술관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빌바오를 몰락시켰던 신흥 강국 한국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모델로 하여 2014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건축했다.

마케팅 드림팀과 함께하다 

코틀러가 처음부터 마케팅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루스벨트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다. 그가 마케팅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포드의 영향이 컸다. 포드는 GM과의 자동차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이 경영의 패배에 있다고 보고 경영 연구 분야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었다.

1960년, 포드 재단은 수학과 사회과학을 이용하여 경영 교육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경제학 교수들을 대거 영입한다. 코틀러는 어쩌다 보니 마케팅 팀에 배속되었는데 그 팀에는 제리 맥카시(Jerry McCarthy), 프랭크 배스(Frank Bas), 에드가 페시미어(Edgar Pessemier), 빌 레이저(Bill Lazer), 로버트 버젤(Robert Buzzell) 같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는 물리학으로 치면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프랑크, 슈뢰딩거, 파울러, 하이젠베르크가 모인 1927년의 솔베이 물리학 학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제리 맥카시는 4P Mix의 창안자다. 흔히 4P Mix 하면 제품(Product), 가격(Price), 촉진(Promotion), 경로(Place)를 어떻게 할지 모두 정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이해다. 4P Mix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요리를 떠올려야 한다. 4P Mix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요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스터 셰프]라는 요리 프로를 예로 들어보자. 언젠가 만화가 김풍보다 스테이크 요리를 잘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참가자 10명은 각자의 개성을 발휘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어떤 이는 갈비찜 느낌의 스테이크를 만들었고, 어떤 이는 구운 과일을 얹은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목표는 ‘맛있는 스테이크’로 같았지만, 스테이크를 만드는데 혼합된 재료와 결과물은 각각 달랐다. 마케팅 믹스에서 믹스는 이렇게 요리를 위해 식재료를 혼합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마케팅 믹스는 1948년 제임스 컬리톤(James Culliton)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다. 그는 의사 결정으로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식재료 혼합으로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는 것에 비유했다. 컬리톤의 비유를 타당하게 여긴 하버드의 광고학 교수 닐 보든(Neil Borden)은 1949년에 마케팅 믹스의 재료를 12가지로 구체화했다. 1960년에는 제리 맥카시 교수가 이를 다시 네 가지로 정리하여 4P Mix를 완성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스마트폰의 예를 들어보겠다. 같은 스마트폰이지만 샤오미와 애플이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재료는 다르다. 샤오미는 폭스콘(Foxconn)의 EMS 제조 방식과 샤오미 닷컴이라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재료로 사용했다. 선도적인 디자인이라는 재료는 버리고 모방을 택했다. 자체 개발 OS라는 재료도 버리고 안드로이드를 택했다. 재료들을 혼합한 결과 샤오미는 그럭저럭 괜찮은 디자인과 성능의 초저가 샤오미폰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카피캣' 전략의 샤오미 vs. '고품질 오리지널' 애플

‘카피캣’ 전략의 샤오미 vs. ‘고품질 오리지널’ 애플

애플은 샤오미와 동일하게 폭스콘이라는 재료를 사용했다. 그리고 조너선 아이브라는 전문 디자이너 재료를 섞었다. 거기에 자체 설계 칩과 자체 개발 OS라는 재료도 섞었다. 그 결과 애플은 높은 성능과 선도적 디자인의 비싼 아이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모든 재료를 다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 없는 재료는 버리고 필요한 재료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제품 디자인을 차별화’, ‘가격은 저가’ 하는 식으로 4P의 각 요소를 정하는 것은 마케팅 믹스가 아니다. 생각해보라. 요리를 만들 때 ‘고기는 제주도산 흑돼지’, ‘소금은 1g’ 하는 식으로 재료부터 생각한다면 맛있는 요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맛있는 요리를 먼저 떠올린 뒤에 그 요리를 만들기 위해 어떤 고기를 쓰고 소금을 얼마나 넣을지 정하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식재료들이 잘 혼합되어야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 중요한 것은 혼합이다. 재료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애플과 샤오미도 재료를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다. 어떤 스마트폰을 만들지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 어떤 재료를 혼합할지를 생각한 것이다. 마케팅 믹스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재료를 혼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다. 믹스를 제쳐두고 재료 자체에 얽매이면 마케팅 믹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마케팅에서 마케팅 믹스의 비중이 크기에 제리 맥카시에 대한 설명이 길어졌지만 다른 교수들도 맥카시만큼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프랭크 배스는 신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확산되는지 측정할 수 있는 배스 확산모델을 고안한 사람이다. 배스 확산모델은 이후 제품 수명 주기(Product Life Cycle)이론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브랜드 가치 순위는 에드가 페시미어로부터 시작되었다.

페시미어는 브랜드 가치를 달러 단위로 측정한 최초의 인물이다. 빌 레이저는 마케팅에 최초로 라이프 스타일 개념을 접목하여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구매 행위가 구분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로버트 버젤은 3,000여 개의 실제 사업체를 분석하여 마케팅 전략의 선택에 따라 어떤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도출하는 PIMS(Profit Impact of Marketing Strategy)를 만든 사람이었다.

마케팅 프로세스 

마케팅 드림팀과 1년여를 함께 보낸 코틀러는 프로젝트가 끝난 후 노스웨스턴 경영대학원(현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교수로 진로를 바꾼다. 코틀러는 이후 여러 학자의 마케팅 이론을 조합하여 리서치(Research) – STP(시장세분화, 타케팅, 포지셔닝) –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 – 실행(Implementation) – 컨트롤(Control)로 구성된 마케팅 프로세스를 발표하는데, 이는 드림팀과의 인연이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간혹 보면 코틀러의 마케팅 프로세스를 절대 공식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코틀러가 조합한 프로세스는 그 이전부터 각각 독립된 방법론이었음을 기억하자. 이 학자들은 당신이 비즈니스에 사용할 망치와 스패너를 마련해준 것뿐이다. 당신은 당신의 사업에 필요한 도구를 골라서 사용하면 된다. ‘STP 전략 양식.pptx’ 같은 걸 다운로드 받아서 억지로 채워 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STP 전략이 무엇인지 책을 사서 읽고 이해하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책장

방법론을 몰라도 성공한 기업가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의식을 했든지 안 했든지 그들은 고객 중심으로 사고했다. 마케팅 방법론을 전혀 몰랐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마케팅 방법론을 몸소 실천했다. 이는 마케팅 이론들이 단순히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 사례 중심의 사회 과학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론을 무시할 필요도 없고, 절대 공식화할 필요도 없다.

코틀러가 단지 동료 학자들의 이론을 조립하는 것에 그쳤다면 마케팅의 아버지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코틀러는 마케팅을 이해하고 마케팅의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는 해석을 제시했다. 드러커가 경영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제품과 근로자와 기업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 형성에 집중했다면, 코틀러는 마케팅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기업과 소비자 간의 의미 있는 관계 형성에 집중했다.

소비자에게 사회적 가치를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밀어붙이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소비자를 기업이 만족시켜야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만족을 넘어서 기업이 소비자에게 사회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코틀러는 그것을 ‘마켓 3.0’이라 지칭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성향은 나이키의 리브 스트롱(Livestrong) 팔찌 유행 같은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리브 스트롱 팔찌는 나이키가 암 투병을 후원하는 선한 기업임을 나타낸다. 소비자는 노란색 고무로 된 리브 스트롱 팔찌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양식 있는 사람임을 주변에 나타낸다. 리브 스트롱 팔찌는 나이키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어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고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켰다.

리브 스트롱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는 앞으로 점점 더 밀접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 제작에 관여하게 되거나 소비자와 생산자를 구분하는 벽이 얕아지면서 마케팅 믹스의 의미가 희미해질 것이다. 시장 세분화는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개인 단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시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쇼핑 채널이 아닌 쇼룸으로 변할 것이다. 이런 변화 추세에 의하여 향후 9년 이내에(2016년 기준) 기업들은 광고 예산의 절반 이상을 소셜 미디어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마케팅의 아버지 코틀러가 예견한 앞으로의 마케팅이다.

필립 코틀러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전 세계를 다니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마케팅 지식은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었고, 그가 만든 교재 덕분에 대학에서 수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마케팅의 일인자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을 이렇게 정의한다.

“마케팅은 기업이 고객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고, 강력한 고객 관계를 구축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얻는 과정이다.”

마케팅의 역사 연재는 이제 여기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직도 한국에는 마케팅을 영업이나 광고에 한정하는 경향이 크다. 이 연재가 그 경향을 깨뜨리는 것에 일조했으면 좋겠다. 마케팅 개념이 영업이나 광고 수준에 한정되면 제품은 그만큼 고객에게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드러커와 코틀러가 했던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마케팅은 영업이 아니다.
마케팅은 광고가 아니다.

(끝) 

참고 문헌

  •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 에드워드 버네이스, [프로파간다]
  • 데이비드 오길비, [광고 불변의 법칙]
  • 알프레드 슬론, [나의 GM 시절]
  • 피터 드러커, [기업의 개념]
  • 필립 코틀러, [마케팅 관리론]
  • 필립 코틀러, [마켓 3.0]
  • 필립 코틀러, [마케팅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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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현준
초대필자

게임 기획자로 4년, 스타트업 대표로 4년을 일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마케팅팀장으로 일합니다. 역사를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입니다. 경영 관련 에세이를 주로 씁니다.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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