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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경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와 함께 집 인근의 대기업 계열 모 슈퍼마켓을 찾았다. 가볍게 장도 보고 집에 쌓여 있던 빈용기(빈병) 보증금도 돌려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자기네 매장에서 주류와 음료를 구입했던 영수증을 지참하거나, 멤버십 카드로 구매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해당 매장에서는 주류와 음료를 산 적이 없기는 했지만, 구입 내역이 있어야 환급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뭔가 이상했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빈용기를 도로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수증이 있어야만 빈용기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우선 해당 슈퍼마켓의 다른 지점에 전화해서 문의해 보았다. 그 매장에서는 영수증 없이도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빈용기 보증금 환급시 영수증을 요구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한다.

다시 방문했던 매장에 전화를 했지만, 영수증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행위가 불법임을 알리고 신고를 하겠다고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

무겁게 들고 간 병 어쩌라고… (출처: 서대문구 블로그)

빈용기 보증금. 구청에서도 잘 몰라.

다음날 구청 민원실에 전화했다. 경제진흥과를 안내받고 전화가 연결되었으나 빈용기 보증금 환급과 관련된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다. 제재 사항이 아니라서 신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하기에, 인터넷에서 확인한 내용을 알려주었더니 다시 확인해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슈퍼마켓 본사의 고객만족센터에도 전화했지만, 역시나 매장마다 운영지침이 다를 수 있다고만 한다.

구청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해당 슈퍼마켓에서 전화가 왔다. 빈용기 보증금 환급 정책은 매장마다 다를 수 있다고 하기에, 법적으로도 옳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고 구청에서 확인 중이라고만 얘기해 주었다.

잠시 후 구청에서 전화가 와서 이 건은 환경부 관할이니 환경부로 전화하라고 했다.

구청에서 환경부로, 그리고 구청, 매장까지.

환경부에 전화했다. 빈용기보증금 환불 요청에 대해 영수증을 요구하는 행위는 불법이 맞고, 신고와 조치는 관할 구청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구청에서 모르겠다며 환경부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고 말하니 직접 구청에 연락해서 조치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날 현장 조사를 하고 시정 명령을 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슈퍼마켓 본사 고객만족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사안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확인했으니 다시 방문하면 환급 처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빈용기 보증금 제도란

빈용기 보증금 제도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빈용기 보증금을 제품 가격에 포함하여 판매한 뒤 용기를 반환하는 사람에게 빈용기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위 사례처럼 빈용기 보증금 지급 대상 사업자가 적정하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병보증금을 환불해 주어야 하는 소매업자의 범위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종합소매업, 음식료품 및 담배 소매업 사업자이며, 식당, 주점 등의 업소는 포함되지 않았다. 즉, 대부분의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 등이 이에 속한다.

용량별 빈용기보증금액. 델X트 같은 대용량 음료병도 포함된다. (출처: 한국용기순환협회)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과 제도 자체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영세상인들은 빈용기를 보관하는 장소가 부족하고 취급수수료가 낮아 보증금 환불을 기피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빈용기 보증금 제도가 페트병과 알루미늄캔을 제외한 유리병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거나, 쓰레기 종량제로 인해 재활용품 분류배출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빈병 보증금 제도가 여전히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볼 수 있었다.

외국의 경우 환경 오염물질 배출이 덜한 유리병 용기보다 환경 오염 물질 배출이 심한 플라스틱 용기에 더 많은 보증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빈용기 보증금제도가 얼마나 잘못된 제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중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재활용품 분류배출이 잘 지켜지고 있는데요. 이런 국내 상황을 고려한다면 굳이 독일처럼 용기에 보증금을 부과하는 것은 2중으로 부담을 주는 정책이기에 바람직한 정책은 아닐 것습니다.

출처: “독일 따라했다가 망한 사례, 대형 마트의 페트병 자동 수거기”, 맛있는 블로그

물론 그런 점들은 법과 제도로서 풀어가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빈병 보증금 환급은 구매자의 정당한 권리다. 그러니 위의 사례처럼 부당하게 빈병보증금을 환급해주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결론이었다.

우리는 결국 보증금을 무사히 돌려받았다. 하지만 처음 방문간 매장에서가 아니라 대형 마트에서. 중소,영세상인들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니 차라리 큰 곳에서 바꾸자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결국 이런 불편 때문에 대형 마트만을 찾게 되는 것도 문제다 싶었다.

과연 “빈용기 보증금은 권리이니 강력히 주장하세요!”나 “속 편하게 환불 잘 해주는 대형마트로 가세요!” 중 무엇을 주장해야 할까. 일단은 첫 번째 결론은 잠정 폐기하고, 참 세상엔 정말 쉬운 일이 없구나 하는 참 이상한 두 번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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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정말 잘하셨어요. 국민들 세금떼어먹고 사는 구청에서 빈용기보증금도 모르고 뭐하는지 모르겠네여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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