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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리포트: 미래 한국의 패러다임을 찾아]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2013년 한 해 동안 독일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대부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책은 오히려 내 안의 ‘비판 정신’을 마구마구 일깨웠다. 저널리즘의 한계를 드러낸 책이라고 평가한다. 이하 비판적으로 분석해 본다.

독일리포트

1. 슈뢰더 정부 개혁은 롤모델인가 

우선, 이 책에도 맨 앞에 나오고, 각종 경제지에서 찬양한 독일 슈뢰더 정부의 개혁을 보자.

“아젠다 2020″과 “하르츠 개혁”은 좌파 정권이 정책에 있어 우파적 요소(고용보호 완화, 실업급여 지급 기간 단축 등)를 도입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그 구체적인 정책을 본받는 것은 무리가 있다.

슈뢰더 독일 총리
슈뢰더 전 독일 총리. 1944년 4월 7일생. 임기 1998년 10월 27일~2005년 11월 22일
출처: Hinrich, “Gerhard Schröder”, 2003년 11월 27일, CC BY-SA

한국은 오히려 우파 정권이 좌파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시대적인 과제다. 슈뢰더 개혁이 독일 사회에 팽배했던 “회사에서 쫓겨날 일 없고 일하지 않아도 굶을 일 없다”안이한 분위기를 바꿨다고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글로벌연수원장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분위기가 퍼져 있다.

‘회사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고 일을 해도 거의 굶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독일 특유의 ‘중도 대타협’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2. ‘히든 챔피언’ 

이제 독일의 그 유명한 강소기업, 가족기업, ‘히든 챔피언’에 대한 찬사를 비판할 차례다.

헤르만 지몬, 히든 챔피언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우량 강소기업(强小企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히든 챔피언’이라는 용어는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자신의 경영 저널 출판물의 제목으로 처음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위키백과, “히든 챔피언” 중에서)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공용(좌)

일단 독일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7.7%로 대기업의 5.8%보다 높다는 얘기를 들으니 ‘독일에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가 없나?’라는 의문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물론 ‘히든 챔피언’답게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의 ‘블루 오션’ 개척에 성공했다는 모범 답안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을 주로 하여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

한 독일 교수의 ‘독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것은 맞다’는 얘기로 마무리된다. 결국, 독일인은 ‘사회적’이고, ‘신뢰와 협력을 중시’한다는 뻔한 이야기다. 아마 기독교라는 종교적 배경까지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가족기업의 현주소, 독일 vs. 한국 

가족기업은 과연 바람직한가? 독일의 (비상장) 가족기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창업주와 직원의 신뢰관계가 확립돼 있다.
  • 단기적으로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재무적으로 부채비율이 낮다.
  • 정부 지원을 별로 받지 않는다.
  • 지역사회에 강한 책임감을 가진다.

한국의 가족 중심 중소기업은 독일의 정반대 모습에 가깝다.

  • 창업주와 직원의 신뢰도가 낮다. (중소기업 오너의 ‘전횡’ 사례를 떠올려 보라.)
  • 창업주 자신의 개인 재산을 단기적으로 늘리는 데 연연한다.
  • 부채비율이 높다. (잘 얘기 안 해서 그렇지 가계부채 못지 않게 심각하다.)
  • 정부의 지원에 많이 의존한다.
  •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장을 마음대로 해외로 옮긴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갑질’에 피해를 많이 입고 있기도 하지만, 정부의 여러 지원책과 대기업과의 납품 관계에 안주하여 진정한 ‘히든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위기 혹은 기회를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기업?

가족 기업과 정부 지원의 관계 

물론, 생각해 보면 독일이야말로 19세기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가 ‘유치산업 보호론’을 주장한 나라이기는 하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니 정부 지원이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중소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계속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과도한 금융지원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강소기업, 가족기업들은 모두 ‘차입의 최소화’가 성공 비결이었다고 주장한다.

독일 중소기업이 자랑하는 ‘히든 챔피언’ 전략, 즉 틈새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전략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 책도 인정한다. 특히 요즘처럼 급격한 기술 변화가 있을 때는 3대, 4대째 내려오는 가족기업이라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역시 기술 개발에 힘쓰고 튼튼한 재무 구조를 갖추며 노동자와의 신뢰를 유지한다는 모범 답안이 있지만, 왠지 ‘실패학’이 없이 성공 사례만 늘어놓은 느낌이다.

숙련공 양성이란 대안은 유효할까? 

그 밖에, 독일 ‘히든 챔피언’이 그렇게 자랑하는 제조업의 직업교육, 숙련공 양성 체계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는 얘기는 이미 며칠 전에 올렸다. 그리고 기술 발전으로 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누구든 1주일만 교육하면 자동차 조립 라인에 투입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숙련공 양성이란 대안이 얼마나 유효한지도 의문이다.

독일 총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20%. 한국의 17%보다 좀 높기는 하지만 어쨌든 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제조업은 남성 중심. 여성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달랑 12%다.

나머지 노동자들, 여성/서비스업 취업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미니잡으로 갔다. 월 450유로의 임금 상한선이 정해진 시간제 일자리다.

독일 여성노동자 저임금 비중

공동결정제도 도입은 불가능할 것

독일 노사관계의 핵심으로 잘 알려진 공동결정제도는 물론 한국 도입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세계 주요국 중 오직 독일에서는 시행하는 제도로 알고 있다. 독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생겨난 제도일지도 모르겠다. ‘혁명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라고나 할까.

3. 독일의 강점 ‘사회적 경제’  

독일 중앙협동조합은행다음은 독일 경제에 있어 또 하나의 강점이라는 사회적 경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등장한 독일 중앙협동조합은행(DZ Bank)이 과연 우리나라의 농협은행이나 단위농협, 새마을금고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아마 제도는 비슷할 것이다. 운용이 문제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과 공익을 추구하는 정부 기관의 중간적 위치에서 ‘제3의 경영 방식’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독일 사회적 기업의 몇몇 사례를 보니 규제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저소득층 학생의 학업을 돕는 사회적 기업의 경우 한국 같으면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이 수고비를 받을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제도상 자원봉사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금지될 수도 있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열정페이’도 떠오른다.) 시각장애인을 유방암 촉진 전문가로 육성한다는 부분에서는 당연히 보건의료상의 각종 규제가 생각나고. (한국에서 유방암 촉진은 오직 의사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사회적 기업 중 상당수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기업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보조금 또는 최종 전기 소비자의 ‘발전차액지원(전기요금 인상)’에 의존한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제조업체는 발전차액지원 면제(전기요금 할인)를 받는다는 대목에서는 ‘만약 우리나라 같으면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엄청나게 비난받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이러한 신재생에너지 진흥 정책은 최근 재정 부담의 누적으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립하기가 역시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독일은 과거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도입한 발전차액 지원제도(FIT)로 비용만 늘었다. 그리고 이 비용을 부담금 형태로 전력소비자에게 전가했다. 결국, 일반 소비자의 전기요금이 높아지자 독일 국민의 불만은 높아졌다.
독일은 과거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도입한 발전차액 지원제도(FIT)로 비용만 늘었다. 그리고 이 비용을 부담금 형태로 전력소비자에게 전가했다. 결국, 일반 소비자의 전기요금이 높아지자 독일 국민의 불만은 높아졌다.

독일의 사회 복지 제도는 여타 선진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건강보험의 경우 5개의 공공보험조합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유치원의 경영과 교육이 완전히 분리된 점, 그리고 보육이 완전 무상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했다. (복지재단 중앙본부에서 재정 업무를 총괄하고, 연 소득 10만 유로를 초과하는 가정은 한 달 4백 유로라는 만만찮은 돈을 낸다.)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간 한국 분이 월 2백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는 대목은 ‘전체 연금 수령자의 절반이 한 달 연금 백만 원도 못 받는다’고 알고 있던 것과는 꽤 차이가 났지만, 책의 맨 끝에 광부로 건너간 한국 분들이 연금을 백만 원 남짓 받는다는 걸 보고 그 내용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호사는 공무원이니까 연금이 많았던 것이다. 독일도 결국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4. 독일의 교육

다음은 독일의 교육 차례다. 진로 교육이 잘 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직업 실습 기회는 학교가 알선해주지 않기 때문에 학생이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대목에서 좀 깬다. 좋은 자리는 1년 전에 예약해야 하고, 직업 실습 자리는 부모의 인맥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단다. 변호사 자녀는 로펌에서, 의사 자녀는 병원에서 실습을 할 게 틀림없다. 중등학교 중 가장 급이 떨어지는 하우프트슐레 학생들은 직업체험 자리 잡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box type=”info”]참고로 독일의 학생들은 보통 4년 과정의 초등학교에 다닌 후 하우프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 중 한 곳을 택해서 진학한다. 이러한 세 가지 학교형태는 학업성취, 이론과 실무의 비중에서 차이를 보인다. (세 가지 형태의 학교를 통합해서 운영하는 게잠트슐레도 있다.)

하우프트슐레(실무)는 5학년부터 9학년까지를 의무수업으로, 10학년은 자발적 수업으로 규정한다. 레알슐레(기술)는 5학년부터 10학년까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등교육에 해당한다. 김나지움(학술)은 연방주에 따라 12학년 혹은 13학년까지 있으며, 졸업하면 대학입학자격을 준다.

내용 참고: 주한독일대사관 – 독일의 학교제도와 학력/경력 인정[/box]

독일도 별수 없다. 중등학교 졸업 이후의 직업교육은 기업과 직업학교가 ‘이원화 교육’을 통해 협력하는데, 불경기일 때는 정부가 기업에 직업교육을 많이 하라고 압력을 가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대학 진학률이 2007년 37%에서 2012년 55%로 급증한 것이 매우 이례적이다. 엔하위키에서 OECD 자료를 인용해 정리한 것처럼 ‘독일 항목 중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결과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OECD 국가별, 학력별, 성별 임금 격차
OECD 국가별, 학력별, 성별 임금 격차 (출처: OECD 교육지표 2014)

5. 독일의 정치 

그리고 독일의 정치. 정당 부설 재단이 정치 교육을 담당하고, 막스 베버의 정신에 걸맞은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잘 확립되었다고 한다. 2차대전 종전 이후의 모든 내각이 기민당과 기사당의 한 번의 연정을 제외하고는 다 연립 정부였다는 것도 특이하다.

유럽 연합 형성 이후 각 주의 자치권이 더 강화되었다는 얘기는 이미 토니 주트의 [포스트워]에서 접했었다. ‘독일은 정권이 바뀌어도 앞선 정권이 한 일에 대해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는 얘기도 뻔하지만 인상 깊었다. 만일 차기 대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승리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 사업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6. 끝으로 독일의 통일 

독일 통일 얘기도 빠질 수 없다. 물론 이 책에는 밝은 얘기가 주로 나온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서울과 평양에 대사관이 설치되는 정상적인 국가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 비서가 동독의 간첩임이 발각되어 빌리 브란트가 사임한 뒤에도 후임자 슈미트가 계속 동방정책을 추진해 나갔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생겼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서독 정부가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과 우편 교류에 대한 대가로 거액의 돈을 동독에 지불했다는 것 역시 우리나라 같으면 ‘퍼주기’로 비난받았을 것이다. 중국의 천안문 시위 무력 진압이 독일의 통일을 촉진했다는 견해도 새로웠다. 이 무력 진압이 소련의 개입에 대한 우려로 이어져 동독 주민의 서방 탈출을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 중 독일 통일을 처음부터 지원한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것, 소련의 붕괴와 유럽 연합 출범이 독일 통일을 촉진했다는 점 등은 물론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통일에서 교회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독교의 전통이 뿌리 깊은 독일(동독)에서 종교를 완전히 말살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고, 독일 분단 이후에도 동서독의 교회는 단일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를 보면 구 동독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불만이 가시지 않은 듯하다.

[box type=”note”]경향신문 –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 (이응준, 소설가)

  1. 노아의 홍수 이후를 위한 서문 (2013년 10월 25일)
  2. 사라진 나라에서 온 유령십자군들의 그림자 (2013년 11월 1일)
  3. 폐허가 될 것인가, 광야가 될 것인가 (2013년 11월 8일)
  4. 인간이라는 거울 속의 어둠, 국가라는 거울 속의 인간 (2013년 11월 15일)
  5. 역사적 혼돈의 파괴공학 (2013년 11월 22일)
  6. 복수하는 자들과 반역했던 자들의 지옥별에서 (2013년 11월 29일)
  7. 행복과 불행의 변증법을 꿈꾸며 (2013년 12월 6일) 
  8. 운명의 주인인 국가와 운명의 노예인 국가 (2014년 12월 13일)
  9. 고래뱃속에서 촛불을 밝히는 일 (2013년 12월 20일)
  10. 강철무지개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을 위한 후기 (2013년 12월 27일) (完)

[/box]
이는 이 책 [독일리포트] 맨 앞에 나온 전 동독 총리와의 인터뷰에도 잘 드러나 있었다. 동독 토지에 대한 서독 및 폴란드 사람들의 소유권 제기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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