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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승 코리아

한 명의 20대 여성이 자살했다.

한 여성의 죽음 

화장실 입구에서 넥타이로 목을 맸다. 네 살과 7개월 된 두 아들이 있었고, 노동자인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공장에서 파업 중이었다. 그날 남편이 있는 공장에는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있었고, 경찰의 진입에 맞춰 사측은 물과 가스 공급을 끊고 의료품과 생필품 반입을 차단했다.

의료인 단체가 공장 앞에 와 최소한의 물과 의약품을 들여보내 달라고 호소했지만, 공권력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자살한 여성은 2009년 7월 20일 오후 1시 30분, 쌍용차 사태 5번째 사망자로 기록되었다.

2009년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답가, ‘오~ 필승 코리아!’ 

그날, 쌍용차 정문 맞은 편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자살한 박 씨의 소식을 알리고, 쌍용차 사측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이 시작함과 동시에 사측은 ‘오 필승 코리아’를 기자회견 참가자 방향으로 틀었다. 기자회견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 필승 코리아’라는 노래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답가라기에는 너무도 잔혹한 노래였지만, 저주와 조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찝찝한 노래였다. 그때 그 공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의 가족들과 싸우고 있던 상대는 확실히 국가였기 때문이다.

오 필승 코리아  (재인용 출처:  부산촛불방송)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ZP6c&articleno=430&categoryId=82&regdt=20120815003649

오 필승 코리아 (재인용 출처: 부산촛불방송)

경찰 총공격… 조현오 “일류경찰 되기 위한 자양분” 

10여 일 후, 곤봉과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경찰부대가 총공격을 감행했다. 쓰러진 노동자들을 둘러싼 채 곤봉으로 두드려 패고, 발로 찼다. 몸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더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정신을 꺾어놓기 위한 집단폭행이었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는 이 기억에 대해 청문회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 경찰을 선진 일류경찰로 만들어 가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77일만에 끝난 옥쇄파업… “빨갱이 없어 다행이다”

그리고 이틀이 채 되지 않아 쌍용차 사태는 종결되었다.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옥쇄파업은 77일 만에 끝났다. 쌍용차 파업이 끝나고, 평택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모님이 파업에 참가했던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손을 들었어야 할 한 명의 학생은, 나쁜 예감에 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다. 우리 반엔 빨갱이가 없어서.”

그때 손을 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살과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 등,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은 그 후로도 줄을 이었다. 대한문에 설치된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는 만들어지는 족족 남대문경찰서의 발에 작살이 났다. 영정 한 개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쌍용차 사태 관련 사망자는 25명으로 늘어났다.

2014년 11월,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소송 대법원 판결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쉽게 말하면, 정리해고는 정당했다는 판결인 셈이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만들기 위해 회사가 회계조작을 한 사실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추정이 보수적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합리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출처: 대법원 http://www.scourt.go.kr/scourt/index.html

출처: 대법원

대법원 판결 = 결국 해고는 ‘사장 마음’ 

문장은 길지만, 결국 해고는 사장 마음이라는 말을 길게 한 것에 불과하다.

정리해고의 조건인 “경영상의 위기”는, “미래가 불확실”한 이상 언제나 기업주가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마저도 모자라서 정리해고의 요건을 더 완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중규직’이라는 신종 고용형태 도입도 고려하고 있다.

 

 

25명이 죽었다.

1조가 넘는 공적 자금이 한탕 도박에 넘어갔다.

이 모든 일에서 쌍용차는, 그리고 대한민국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 필승 코리아!

 

 

정리해고법 발효 이후 대한민국 

1998년 2월, 정리해고법이 발효되었다.

같은 해 3월, 현대자동차는 정리해고법을 무기 삼아 1만여 명의 노동자를 현장에서 쫓아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다. 정규직이 쫓겨난 자리에는 비정규직이 신규 채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노동형태는, 노동시장의 절반을 넘나들게 되었다.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 (소위 ‘정리해고법’)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①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상하이자동차 쌍용차 인수: 2005년 1월 

2005년 1월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 채권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5,900억 원에 공장을 인수했다.

2002년 투입된 공적자금 1조 원과 금융지원 2천억 원, 모두 합쳐 1조 2천억 원이라는 출자전환 금액과 비교하면 50% 이상 깎아준 셈이다. 인수 당시에는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지만,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된 후 신차 개발은 전혀 없었다. 대중국 수출도 늘지 않았다.

어느새 쌍용자동차의 주력인 SUV 차량마저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중국에는 쌍용차와 비슷한 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상하이자동차가 가진 브랜드로.

상하이자동차

쌍용차 노동자 기술 유출 고발: 2006년 8월 

2006년 8월, 쌍용차 노동자들이 상하이 자동차가 기술유출을 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사측이 아니라 노동자들이었다.

쌍용차가 국가지원을 받아 개발 중인 핵심기술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렇다 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8개월 후, 카이런의 디젤엔진과 변속기 기술 관련 자료가 이메일을 통해 상하이로 넘어가면서 국비로 만든 기술유출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2008년 3월, 이 기술유출사건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언론보도 이후부터다.

쌍용차 기술유출 사건 관련 보도 (출처: 구글 뉴스 검색, 기간설정: 2006년 1월 1일~2009년 12월 31일.)

쌍용차 기술유출 사건 관련 보도 (출처: 구글 뉴스 검색, 기간설정: 2006년 3월 1일~2009년 12월 31일.)

수사 미발표 – 기획부도 – 법정관리 신청: ’08년 말~’09년 1월  

2008년 말, 기술유출 사건의 수사결과가 나왔지만, 검찰은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 마찰’을 우려해서라고 했다. 상하이자동차는 이미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챙길 것은 충분히 챙겼고, 검찰도 정부도 너그러웠다. 상하이자동차는 금융위기를 빌미로 쌍용차 부도를 선언했다. 기획 부도였다.

매각에 방해되는 눈엣가시는 기술유출에 예민한 노동자들과 기술유출을 감히 고발할 정도로 강성인 노동조합이었다. 그들을 ‘청소’하려면, “경영상의 위기”가 필요했다. 쌍용차는 회계 조작을 감행했다. 1조 197억 원의 부동산 가격이 하루아침에 5,252억 원으로 떨어지는 마술이 벌어졌다.

구차 단종으로 매출이 줄어들지만, 신차 매출이 그것을 메우진 못할 것이라는 엄청나게 비관적인 예측이 회계보고에 담겼다. 그리고 2009년 1월 쌍용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은 판타지 소설 같은 그 회계보고를 인정했다.

2,646명 정리해고, 남은 자와 남지 못한 자: 2009년 4월 

쌍용차가 그해 4월 발표한 정리해고 대상은 2,646명이었다. 노동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다. 헬기로 노동자들의 머리 위에 최루액을 뿌리고 테이저건을 쏘았다. 쌍용차는 공장 및 옥상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물과 음식, 가스 등을 차단했다.

사측은 해고 대상이 아닌 노동자들을 동원해,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 싸우라고 지시했다.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한 자가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6월 11일, 사측의 관제 데모에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죽지 않은 자들은 여전히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야 했다.

파업 77일, 전쟁은 경찰의 진압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무급휴직 462명, 희망퇴직 353명, 정리해고 165명 등, 980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100여 명의 구속,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 그리고 25명의 죽음이 이 전쟁의 유산이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성과급은 줄어들었고, 쟁의는 금지되었다. 노동 시간은 줄지 않고, 노동 강도는 높아졌다.

결국 ‘필승’을 쟁취한 ‘코리아’의 만행  

결국 “필승”을 쟁취한 “코리아”는 기고만장해졌다.

법원은 무급휴직자에게 지급해야 할 5천여만 원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거기에 노사합의문에 뭐라고 쓰여있건 회사가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킬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엔 정리해고가 사실상 기업주 마음이라는 해석까지 내렸다. 쌍용차 이후로도 정리해고는 기승을 부렸다.

매각 가격을 올리기 위해, 주식가치를 위해, 부동산 때문에, 다양한 이유가 판을 쳤다. 심지어 구미의 KEC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13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해 관리자 연봉을 올리겠다는 파렴치한 계획 속에서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노동자가 자살하고, 죽어 나가는 와중에 기업주들은 마치 게임의 말을 옮기듯이,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늘렸다.

이제 와서 정리해고법 개정하겠다? 

“정리해고는 사장 마음”이라는 해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 없는 불안정노동의 선상에 올려놓았고, 사회 곳곳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올해 침몰한 세월호 참사에서 당시 승무원 중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야당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도입되었던 정리해고법을 이제야 개정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정리해고법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리해고법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분명 1998년 이전에는, 정리해고법이 없었다. 그리고 정리해고법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 같은 것도 없었다. 정리해고법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한 노동자도 없었고, 정리해고법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노동자도 없었다.

인간의 불행과 죽음에서 우리가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 개개인의 삶과 생명이 국제투기장의 판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정리해고법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우리가 에볼라의 감염에 맞서서 바이러스를 ‘개정’하겠다고 나서지 않듯이, 우리가 군대 폭력과 살인 사건들에 맞서서 군대 폭력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듯이.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아직도 공장에 돌아가길 포기하지 않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일이다. 여의도에 앉아서 정리해고 게임의 균형이 너무 안 맞으니 유지 보수해야 한다는 소리나 하고 있는 저 쾌락 살인마들에게, 정리해고법을 당장 없애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2014년 12월, 쌍용차 26번째 죽음

2014년 12월 13일, 26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쌍용차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친, 정리해고자였다.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산재소송비용과 허리 치료에 모두 소진한 채, 간암과 싸우다 죽었다. 두 명의 노동자가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에 항의해 다시 쌍용차 공장 안 굴뚝으로 올라간 날이다.

노동자의 처지는 언제나 하나다. 정리해고가 완화되면 비정규직의 처지가 나아질 것이라는 정부의 궤변은 이치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따질 가치조차 없다. 한 회사의 한 명의 노동자가 해고당할 때, 그것은 개인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의 처지는 편의점의 과잣값과 같다. 하나가 변동하면 모두가 바뀐다.

물론 과잣값은 오르고, 노동자의 가격은 매번 내려간다.

‘땅콩 회항’ 사건이 보여준 노동자의 처지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은 재벌기업의 오만함과 함께, 노동자들의 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무장과 당시 탑승객들이 증언한 바로는, 조 부사장은 사무장과 승무원을 무릎을 꿇린 채 모욕을 주었고 욕설과 폭언, 폭행을 감행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도 사측은 피해자들에게 사과는커녕 거짓 진술을 강요했을 뿐이다.

이 회사(대한항공)는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총 5명의 직원이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자살한 그 회사다.

출처: 대한항공 광고

출처: 대한항공 광고

한진중공업의 악몽 

조현아 부사장의 삼촌 조남호는 한진중공업의 회장이다. (이들은 친인척 간이지만 한진그룹과 한진중공업그룹은 별도의 그룹이다. – 편집자) 2011년 노동자들과의 협약을 파기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해, 희망버스 국면을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후 약속한 해고자 복귀를 다시 파기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다.

2003년 김주익 당시 노조 위원장이 구조 조정과 손해배상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다 자살했고, 2004년에는 김춘봉 씨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자살했다. 2013년 1월에는 사내 하청 업체에서 일하다가 정리해고된 최 모 씨가, 회사 측이 제기한 손해 배상·가압류 158억 원에 분통을 터뜨리며 목을 맸다. 같은 해 12월 29일에는 김 모 씨가, 2014년 3월 26일에는 최 모 씨가 목을 맸다.

물론 조남호는 노동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마치 조현아가 노동자를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던 것처럼, 노동자는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리라. 그것이 오늘날 노동자의 처지다.

한진중공업

땅콩만도 못한 현실… 다시 굴뚝에 오른 쌍용차 노동자

지난 10월 7일,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의 경비노동자 이만수 씨가 분신했다. 주민들의 모욕과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린 결과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 씨의 분신으로 주민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노동자 106명을 전원 해고하기로 했다. 지난 11일에는 그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가 주민의 폭행으로 코뼈가 내려앉았다. 오늘날 노동자의 처지가 이렇다.

엄동설한에 두 명의 노동자가 쌍용차 공장 안 70m 상공 굴뚝에 올라갔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 그대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은 사회에 의한 연쇄살인이었다. 이 살인을 위해 국내 자본과 국외 자본, 정부와 경찰, 투기시장과 법원이 연합했다.

그리고 이 연합은 모든 노동자를 무릎 꿇렸고, 이 나라 노동자들의 가치는 한낱 견과류, 아니 그 견과류를 포장한 봉지만도 못하게 되었다. 그 견과류가 땅콩이 아니라 좀 더 비싸다는 ‘마카다미아넛’이라는 점이 무슨 위로가 될까.

두 명의 노동자가 굴뚝 위에 오른 일이 단지 그 두 사람의 일로만 끝난다면, 우리들의 가격은 또 어디까지 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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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슷캇
초대필자, 청년좌파 대표

영상활동가(진지). 청년좌파(yleft.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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