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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0일 저녁 신은미 씨의 통일 콘서트가 열린 곳은 전북 익산의 한 성당이었다. 술에 취한 한 고등학생이 이곳에 사제폭탄을 터뜨렸다.

'통일콘서트 테러'로 검색한 모습 (출처: 구글 뉴스 검색)
‘통일콘서트 테러’로 검색한 모습. 검색 시각: 2014년 12월 13일 오후 4시 30분 (출처: 구글 뉴스 검색)

우선, 가톨릭계와 가톨릭 신자의 침묵과 무관심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성당 경내에서 이런 폭력이 발생했는데 가톨릭계나 신자들의 반응을 전하는 관련 기사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통일콘서트 테러 가톨릭'으로 검색한 모습 (출처: 구글 뉴스 검색)
‘통일콘서트 테러 가톨릭’으로 검색한 모습. 관련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검색 시각: 2014년 12월 13일 오후 4시 30분. (출처: 구글 뉴스 검색)

1. 수제폭탄을 던진 고등학생 

테러 용의자는 고등학생이다. 이 학생은 화공 약품에 관한 지식이 있고, 화약을 다루는 자격증까지 있다(실업계 고등학교 재학 중). 인터넷을 통해서 급조폭발물(IED) 노하우를 습득해 사제폭탄을 제조했다. 그리고 폭탄 제작과정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분명하게 테러를 예고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혹은 ‘일시적인 분노에 휩싸여’ 등의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주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으리라. 이것은 계획적 범죄다.

충분히 계획한 범죄 

용의자는 준비한 사제폭탄이 불발될 것에 대비하여 황산 1리터를 별도로 소지하고 있었다.

황산은 용액으로 씻어 낼 수 있는 염산과 달리(염산은 빨리 씻어내면 최소한 목숨은 건질 수 있음) 피부에 닿으면 그 피부조직이 순식간에 타들어간다. 물로 씻으면 강한 발열로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다시 환기하자. 통일 콘서트 테러 사건 용의자는 화공 약품에 관한 지식과 화약을 다루는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황산을 사람에게 뿌렸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황산을 준비했던 것이다.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를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사건 당시 상황 

사건 당시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

“일부에서 마치 내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왜곡하는데, 어느 곳에서도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남과 북 모두 현재는 지상낙원이 아니다.”

신은미 씨가 이렇게 말하자, 용의자는 “지금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나?”고 따져 물었다. 그리고 신은미 씨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질문은 추후에 받겠다”고 답한 직후에 용의자는 폭탄을 투척했다. 신은미 씨는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너는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주장했어’라고 테러를 가한 것이다.

북한 여행 좋았다고 말한 여행객은 테러를 당해야 하나 

북한은 관광객 유치 홍보 광고까지 한다. 외국인은 원하면 자유롭게 북한을 관광할 수 있다.

이영재, 연합뉴스 - "북한 관광 오세요"…북한, 관광 특화 웹사이트 개설 http://www.yonhapnews.co.kr/northkorea/2014/12/01/1801000000AKR20141201051600014.HTML
이영재, 연합뉴스 – “북한 관광 오세요”…북한, 관광 특화 웹사이트 개설 (출처: 연합뉴스)

뉴스를 통해서 접한 ‘정말 희한한 나라’ 북한이 얼마나 희한한지 내가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외국 관광객이 꽤 된다. 북한을 관광한 모든 여행자는 북한 여행을 통해서 느낀 호불호를 표현할 수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고 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후자의 감상을 가진 모든 북한 여행객은 테러를 당해야 마땅한가?

2. 신은미 씨와 그의 북한 여행기 

신은미 씨는 미국 국적을 가졌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미국 시민에 대한 테러를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백인인 미국인이 북한을 관광하고 와서 같은 수준의 이야기를 했더라도 사제폭발물로 죽일 생각을 했을까?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 출신  

신은미 씨는 대구의 부유하고 보수적인 반공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때 ‘리틀 엔젤스’ 단원이었으며 이화여대 성악과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가서 성악가 겸 음악교수가 됐다. (오마이뉴스 필자 소개로는 ‘전직 교수’.) 그런 배경을 가진 신은미 씨의 북한 주민에 대한 시각은 북한 여행을 통해서 많이 바뀐다.

– 오마이뉴스 첫 번째 연재기사에서 신은미 교수님께서 기독교 신자이면서 보수·반공 주의자라고 하셨는데 북한여행을 하시면서 북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지요. 달라졌다면 어떤 면이 달라졌는지요.

신은미: 제가 제 자신을 ‘보수적인 아줌마’라고 불렀던 것은 제가 이념적으로 보수라서가 아니라, 기독교(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생활 한답시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또 어려서 받은 반공교육에 따라 ‘묻지마 반공’을 하는 것을 보며 주위의 사람들이 저를 ‘꼴통 보수’라고 불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방면에 무지하여 이념이 파고 들 자리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저에게 이념적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단지 저에게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동포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의 눈이 달라졌다는 것 뿐이에요.

– 자주민보,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신은미교수 대담 (2014년 2월 10일)

북한 여행기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다 

신은미 씨는 자신이 느낀 바를 오마이뉴스에 2012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타이틀로 연재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신은미 씨의 북한 여행기는 나도 읽어봤다. 북한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선입견이 깨지는 자잘한 경험들에 대한 것과 그런 체제 아래에서도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여행 감상문은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반박하고 싶으면 같은 여행 코스를 돌고 다른 시각으로 여행 감상문을 쓰면 그만이다.

신은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Issue/series_pg.aspx?srscd=0000011008&pageno=1
신은미, 오마이뉴스 –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출처: 오마이뉴스)

문화부가 추천한 2013년 우수문학 도서  

신은미 씨는 오마이뉴스 연재의 첫 부분(첫 30회분)을 묶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라는 책으로도 냈다.

신은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네잎크로바, 2012 ) (출처: 다음책)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7966011
신은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네잎크로바, 2012 ) (출처: 다음책)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책을 ‘2013년 우수문학 도서’로 선정했다. 선정 이유는 ‘책 읽는 사회문화재단’ 심사위원들이 감명 깊게 읽고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2013년 추천도서로 선정된 신은미 씨의 책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2013년 추천도서로 선정된 신은미 씨의 책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통일부는 신은미 씨와 이 책을 홍보하는 동영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통일부 홈페이지에 게시했었다. (이후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내림) 그러니까 2013년까지만 해도 정부는 신은미 씨의 북한 여행기에 별 문제점을 못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문제점은커녕 문화부가 나서서 추천한 책이었다. 그러다가 1년 사이에 태도가 180도 변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각자 생각해보시라.

3. 눈먼 증오를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언론 

도대체 북한 사람에 대해서 뭘 어쩌자는 말이냐? 김정은에게 철저하게 세뇌 당했으니 21세기판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다 죽여서 인종 청소라도 하자는 말이냐?

그 척박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민초들은 일상을 이어나간다. 내가 만일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고 와서 아프가니스탄 사람에게도 희로애락이 있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지만, 이웃에 대한 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면 아프가니스탄 정권 찬양이고 테러당해야 하나?

테러 용의자에게 “용감하다”고 칭찬한 언론 

사건 당일 다음날 새벽까지 일하면서 관련 기사들을 봤다. 헤럴드경제는 “용감한 고3 학생, 신은미 콘서트장에 인화물질 투척”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다분히 이 테러 사건을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아침에 같은 기사를 다시 검색해보니 헤드라인에 “용감한”은 삭제돼 있었다.

헤럴드경제는 사제폭탄테러를 "용감한  고3생"이라는 제목을 붙어 포털(DAUM)에 송고했다. (재인용 출처: 기레기 컬렉션)  http://giregi.tumblr.com/post/104922486996/2014-11-12
헤럴드경제는 사제폭탄테러에 관해 “용감한 고3 학생”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으로 포털(DAUM)에 송고했다. (재인용 출처: 기레기 컬렉션)

무관심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2014년 9월 28일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라고 밝힌 이들은 세월호 리본을 철거하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부렸다. 이제는 일베를 숙주 삼아 눈먼 증오를 학습한 고등학생이 테러를 벌인다. 여기에 정신 나간 언론은 “용감한 고3 학생”이라고 그 범죄를 부추기고, 칭찬한다. ‘막장’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모습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퍼블릭 도메인)
히틀러 무솔리니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괴물’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을 자양분 삼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런 눈먼 증오와 폭력을 통제할 궁극적인 주체는 시민사회다. 한국에 그런 시민사회가 아직도 존재한다면 말이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Edmund Burke)

에드먼드 버크(1771)   http://en.wikipedia.org/wiki/Edmund_Burke http://en.wikipedia.org/wiki/File:EdmundBurke1771.jpg
에드먼드 버크(1771) (출처: 위키백과 공용)

(참고: 버크가 정확하게 이런 말을 했다는 근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사한 취지의 진술을 그의 책(Thoughts on the Cause of the Present Discontents, 1770)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버크가 한 말로 널리 인용된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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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미 통일콘서트 테러 사건 경과 (주요 기사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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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개인적으로는 저런 일이 소수의 골수 지지자로부터 찬양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작 캐스팅 보트가 되는 중도층으로부턴 외면받고 선거때 반대층 결집 효과를 불러올거라고 생각하지만 – 박근혜 면도칼 테러 사건이 그랬죠 – 그래도 이글처럼 누군가가 저 일에 대한 비판을 해줘야 중도층 내지는 건전한 사람들이 ‘어 난 저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런건가?’ 하는 불안을 덜어줄 수 있지 않나 싶네요.

  2. 이백명이 대피한 이 테러사건에 대한 다른 기사들을 보니 댓글에 심지어 오군은 열사다, 종북콘서트가 문제지 겁좀주려고 기름부은게 문제냐, 괜한 학생 앞길 막지마라 등등의 말들이 보이네요…. 이나라의 광기어린 타겟팅이 종북프레임으로 잡혔으니 막을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겁이납니다…

  3. 달걀을 던졌으면 이해하지만, 어떻게 봐도 인명을 해하려고 한 일인데… 슐릭을 살해하고도 독일 합병 뒤에 풀려난 요한 넬북처럼 될까봐 걱정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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