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은 그냥 나온 발언이 아니다. 전조가 있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었다.
“고용의 유연성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방향을 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
최경환, ‘유연성’ 받고 ‘중규직’ 베팅… ‘고용 불가’ 올인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의 합리화’가 문자나, SNS로 해고를 통보해도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근로기준법 27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물론, 기획재정부가 하겠다는 것이 그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법을 고치지 않아도, 이미 우리 주변에는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회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문자만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행위는 효력이 없다. 즉, 무효다.)
이 발언을 받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규직 과보호가 심각하고, 정규직과보호로 인해 기업은 채용을 꺼리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다시 ‘중규직’의 도입이 이야기되다가, 최경환 부총리가 재차 등판하여, 임금은 한정되어 있고, 정규직 임금이 매년 상승하면, 정규직을 새로이 고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1. 기조: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려라
듣기에 황당하고, 그 실효성을 의심하게 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지만, 최경환 부총리를 포함하여 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최근 주장들이 상황에 대한 초현실적인 인식에서 나오는 실언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규직 보호 합리화’ 라는 수사로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유연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러한 의지가 전면에 나온 것은 아마 2014년 3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지 않을까 싶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내용을 보면, 카테고리의 제목은 ‘정규직 보호 합리화’인데, 내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근로조건 격차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실태파악 후 개선방안 마련’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만약 카테고리의 제목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고, 그 내용이 위와 같으면, 그 의미를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기준으로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한다’ 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똑똑히 보라, 카테고리 제목이 “정규직 보호 합리화”고, 그 내용이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조건 격차 해소를 위한 해고제도 개선방안 마련”이다. ‘정규직의 수준을 비정규직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느낌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2. 어떻게: 경영상 해고(=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해라
일단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먼저 결론을 말하자면, 더 완화할 수 있다는 경영상 해고 요건은 없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경영상 해고를 적법하다고 판단하기 위한 네 가지 요건이 있는데, 그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근로기준법상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영상 필요, 그냥 합리적인 경영상의 필요를 넘어, 이제 장래의 경영악화를 대비하는 현재의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경영상 해고도 적법하다고 인정되고 있다.
나머지 요건이라고 해서, 경영상 해고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에 가깝다. 근로기준법은 위 네 가지 요건을 갖추어 경영상 해고를 정당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 중 경영상 해고의 대상자 선정 정도가 인정받거나, 검토되는 추세다.
최근 판례를 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까지도 못 간다. 사용자가 경영상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경영상 해고가 부당하다고 인정한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3. 정책법원, 더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만들어 주마
그러나 더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사실 이미 진행 중이다. 경영상 해고에, 엄밀하게는 사업주의 ‘경영’에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쌍용차 경영상 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정책법원’이라는 개념이 많이 소개되었다. 어떤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이 일정한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다. 쌍용차 경영상 해고의 고등법원 판결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해고의 한 유형으로서의 정리해고는 근로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에 의하여 단행되는 것으로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인한 통상해고나 징계해고와는 그 성격이 다르고, 통상 대량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행하여지는 경우가 많아 대상 근로자들 및 가족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며 (…중략…)
따라서 정리해고에 관한 법령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정리해고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같은 사건에 대해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잉여인력은 몇 명인지 등은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경영판단이다. 경영판단은 사용자의 몫이고, 사법부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다. 경영권 그리고 경영상 해고에 대한 경영자의 필요와 판단에 대해 사법부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4. 정부, 우리도 ‘경영권’ 존중하니까 빠질게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 본인 혼자만 판에서 빠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현재 스코어, 경영상 해고는 경영권이다. 교섭의 대상도 아니며, 경영상 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은 불법파업으로 간주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지워지는 그렇게 어마 무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경영상 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간주하고, 이를 근거로 사용자와 정부가 노동자를 고소, 고발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귀책사유도 없이, 하루아침에 생존권을 박탈당했지만, 경영상 해고는 경영권이고, 경영권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헌법에만 있다고 자조할지언정 노동3권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경영권은 헌법은 물론, 출처를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경영권은 마치 천부적 어떤 것이고, 경영권 해고는 사용자의 천부적 권리 중 하나가 되었다.
정부도 빠져나간다. 쌍용차 사태로 회사 인원의 3분의 1이 넘는 노동자를 해고했고, 그 대량해고로 인해 해고자와 가족을 포함해 25명의 목숨을 잃었지만, 한 해에 경영상 해고로 몇 명이 일자리를 잃는지 정확하게 알 수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근로기준법은 일정한 규모의 경영상 해고의 경우, 그 내용을 고용노동부 장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상시 노동자가 99명 이하인 사업장은 10명 이상 경영상 해고하려면 사용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비틀어 생각하면, 경비노동자가 99명인 아파트에서 8명, 9명의 경비노동자가 해고되면, 사용자는 이 해고는 신고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통계에도 잡히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 정부는 누가 얼마나 해고되었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5. 정부의 히든카드: 성과 낮은 노동자 자르는 건 어때?
최근 양상을 보면,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는 (일단)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다음 나온 정부 카드는 업무 성과에 따라서 해고를 쉽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성과가 낮은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자는 주장이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보다 더 무섭다.
더 무서운 첫 번째 이유는 경영상 해고는 그래도 사용자가 경영상에 일말의 어려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과에 따른 해고는 할 수만 있으면 너무 쉽고,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해고가 쉬워진다.
더 무서운 두 번째 이유는 그 방식과 의미이다. 정부발의란 방법도 있지만, 어떤 의원이 성과에 따라 노동자를 해고하자는 근로기준법을 발의할까 궁금하다. 발의할 의원이 있어도 이 내용을 근로기준법에 넣는 것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직접 노사관계에 개입하여, 성과에 따라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개정하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노사관계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 정부는 이미 공공기관 정상화 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이름으로 공공기관 노사관계와 그들의 단체협약에 개입해왔다.
최근 정부가 말하는 바는 단순(?) 해고 요건 완화가 아니다. 경영상 해고는 경영자의 판단인데, 성과가 낮은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은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노사관계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의 최근 발언이 위험한 것이다.
6. 편의점 알바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울리지 않는다
사내유보금이 조 단위인 상황에서 무려 경제부총리가 노동자 임금은 한정되어 있으니 노동자들끼리 나누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노동소득분배율 같은 복잡한 얘기하지 말자. 법정 최저임금이 편의점 알바의 최고임금인 이유는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과다한 수수료를 책정하여, 이윤 중 가맹점주와 편의점 노동자의 몫을 본사가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다. 편의점 알바의 임금을 편의점 혹은 본사 정규직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재벌, 대기업은 대법원 판결조차 무시하고,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며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고용과 임금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없다고 정부가 말하고 있다.
결론: 해고하기 좋은 나라… 정부가 노동의 근간을 흔든다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하겠다는 방안을 정규직 보호 합리화라고 포장하고, 그 목적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고 호도한다. 노동시장 2중 구조를 개선하겠다면서 정부는 전혀 새롭지 않은 ‘중규직’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아예 단절하고, 지금도 복잡한 노동시장을 3중 구조로 재편해, 더 복잡하게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서 합리성은커녕 일관성마저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게 정부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놓고 흥정하고 있다. 노동정책도, 고용정책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와 고용안정은 그저 경제정책 중 하나이자, 규제 완화 대상이다. 아마도 이름만 바꾸어 기존의 대책을 새로운 것인 양 내놓고, 노동자와 계속 거래를 하고자 할 것이다. 이 정부는 그렇게 고용과 노동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일단, 근로기준법부터 바꾸어야 할 것인데, 해야 일이 크고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