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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2014년 6월 4일에 열리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많은 논란 끝에 지방의회 무공천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을 돌아보며 문제점을 되짚어보는 글을 소개합니다.

슬로우뉴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사회 현안과 관련된 다양한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슬로우뉴스에 기고하기) – 편집자[/box]

기초선거 무공천 정국은 결국 정당 공천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애초에 자신도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여당과 행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해 온갖 반발을 누르고 무공천을 강행하려 했던 것 자체가 난감한 일이었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문제 자체를 소멸시키려는,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베어버린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러나 무공천 정국에서 야권은 200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발생해 온 ‘정치적 리더십’ 부재를 노출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칼로 잘랐다고 하는 전설 속의 매듭입니다.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그 지역을 지나가던 중 그 얘기를 듣고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 편집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er Cutting the Gordian Knot>, 장 시몽 베르텔레미가 캔버스에 그린 유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Cutting the Gordian Knot), 장 시몽 베르텔레미(1743-1811) 작

기초선거 무공천 찬성론자는 두 가지에 의존했다. 1) 하나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정치윤리적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었고, 2) 다른 하나는 그러한 정당성의 원천을 다시 여론조사 수치에서 찾는 일이었다.

크게 두 가지를 검토해볼 수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무기로 삼는 것이 타당한 전략이었나?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삼아서 보여준 일련의 흐름이 과연 대중 정치에서 올바른 형태로 진행되었는가?

첫째. 약속 자체를 차별적 무기로 삼은 전략은 과연 타당했나

정치조직이 ‘약속’을 전략화하는 일은 사실상의 자살행위다. 약속했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안철수 대표와 그 지지세력의 중요한 무기였다.

성스러운 국민과의 약속으로서 무공천. ‘지금까지 약속을 지킨 정치인은 없다’는 정치 혐오적 수사를 안철수와 그 정치세력이 여권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전면에 꺼냈다. 그럼으로써 약속은 정치적 윤리의 하나로 ‘옳은’ 것이며 차별점이 된다.

약속 자체가 도그마가 되면 다른 무기 활용 어려워져

정치세력이 약속의 이행 여부로 대표되는 전략을 한 번 꺼내 쓰면, 그 자체를 지켜야 한다는 정치적 속박을 가속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치세력은 도덕 외의 다른 무기를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고 무엇이 올바른지 어필하는 것 대신 약속을 차별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약속 이행 자체를 차별점으로 삼으면 삼을수록 그 정치세력은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 새로운 지지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약속만 남은 정치세력이 약속을 어기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의 정치적인 타격 역시 커진다.

유권자들은 결과에 따라 평가할 뿐

약속을 지켜서 바뀌는 것이 없거나 오히려 골치 아픈 문제가 터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유권자는 그것을 ‘약속의 이행’이라고 긍정적으로 보기는커녕, 그냥 무능하다고 평가해 버린다.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 약속의 결과물이 좋지 않다면, 그것 역시 약속을 지켰다고 말하는 정치세력을 단죄하기 위한 평가의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pinky) Promise : 52.20", kennysarmy (CC BY-NC-ND 2.0)
“(pinky) Promise : 52.20”, kennysarmy (CC BY-NC-ND 2.0)

둘째, 국민과 당원의 뜻? 대중 정치의 리더십은 발휘되었나

기초선거 무공천 정국에서 야권 유력 정치인 중 누구도 적극적으로 제 뜻을 밝히고 여론을 돌리는 ‘논리적 설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촌극이다. 즉, 야권 내에 아무도 유력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대표는 존재의 정당성으로서 월등한 힘을 가진다

안철수는 기초선거 무공천을 재검토하면서 ‘내 원칙과 소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민과 당원의 뜻보다 더 중요할 순 없다’, ‘대표직은 위임받은 권한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구태여 안철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야권 유력 정치인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소재다.

모든 조직의 리더(대표)는 앞장서 주요 의제를 만들고, 합법적 권위를 통해 반대파에게 부담을 안길 수 있으며, 조직을 대표해 조직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리더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그 정당성으로서 다른 조직원에 비해 월등한 힘을 가진다. 안철수가 대표이기에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상임고문은 대표가 가진 정당성을 존중해 선대위원장직을 받아들였다.

대중 정치인은 설득과 주장으로 살아남아야

정치세력과 정치인은 민의를 대변한다. 정당 지도부는 당심을 대변한다. 정치인은 여론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무턱대고 뒤집거나 수정할 수 없고, 그렇게 하면 타격을 입는다. 단순히 민의를 받는 그릇이 정치인이라면 왜 타격을 입겠는가? 민의가 바뀌었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민의가 정치인의 내용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제시하는 내용을 민의가 선택함으로써, 말하자면 민의에 맞는 주장을 한 정치인이 선택되어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정치인은 민의를 대변한다.

즉, 우리는 정치인 지망생의 철학과 정책을 판단해 그를 우리를 대표할 정치인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국민들이 공약을 갖다 바치진 않는다. 따라서 정당 리더는 당원에게 자기 주장이 왜 옳은지, 무엇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설득을 해야 한다. 정치 지망생은 유권자를 향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발표해 지지를 구한다.

그 과정에 여론과 당심은 상수인가, 변수인가?

"Leadership", sombody_ (CC BY-NC-SA 2.0)
“Leadership”, sombody_ (CC BY-NC-SA 2.0)

대표에게는 자원과 권한에 상응하는 정치적 목표가 부과되는 것

정당 대표는 당원에 의해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했으며, 당원을 포함한 정당의 정치적 자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 우선권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당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주저앉힐 수 있는 정당 내적인 힘을 가진다.

동시에 국민 앞에 정당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정당의 방향성을 보이고, 반대하는 국민들을 논리로 설득하고 정치적 매력으로 어필해 여론 그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정당 대표에게는 자원과 권한이 주어지고,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목표가 주어지는 것이다.

여론이 존재하기에 맞춰서 행동한다?

반대로 말하면, 정당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단순히 선거의 승패 때문이 아니다. 정당 자원을 우선 배분하고, 권위를 부여해 반대파와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반대급부로서 그 권한에 부합한 결과를 획득하지 못했을 때 그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안철수와 야권 지도부는 재앙에 가까운 리더십 부재를 보여줬다. 약속 이행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전략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여론이 존재하기에 거기에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는 이들의 행동은 리더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다.

논리적 근거에 관한 설명과 설득은 존재했었나

안철수 대표든 김한길 대표든, 정말로 무공천이 그렇게 중요하고 관철해야 할 이슈였다면 기회는 많았다. TV 출연, 라디오 연설, 기자회견, 선언문, 공개 토론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신이 주장을 관철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그 기회에서 무엇을 했는가? ‘국민을 믿고 국민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국민을 믿는다.’, ‘국민과의 약속이다.’ 같은 얘기만 고장 난 테이프처럼 늘어놓았고, 막상 그 국민에게 왜 이 결정을 했는가, 이 결정을 지지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과 설득은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2014-04-14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출처: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2014-04-14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출처: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무공천 철회 여론조사, 리더십 부재의 절정

청와대에 거부된 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내놓은 안을 보자. 왜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할 것인지 ‘못 먹어도 고’를 외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왜 여론조사가 개입하는가? 국민에게 표를 구하는 선거 전략을 국민에게 물어보는 것인가? 이것이 국민에게 공약을 정해달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말이다.

여론을 바꾸어나가야 할 문제를 여론에 따라 행동해

정당의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전략을 짜고, 당위성을 설파해 여론을 설득해서 표를 구해야 하는데 왜 이미 존재하는 여론에 지도부가 정치적 결정에 대한 가부를 묻는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지를 설득하고 반대를 조절하는 정치와 조직의 리더십은 어디로 갔는가?

무공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와는 별개로 여론조사 자체를 실천의 기준으로 삼은 행위는 코미디에 가깝다.

여론을 바꾸어나가야 할 문제에서 지금의 여론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동시에 반대파를 ‘국민의 뜻에 반하는 자’로 만들어 입을 막기 위해,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지방선거의 핵심 전략을 결정하는 데 사용했다.

무공천 정국에서의 새정련 지도부의 행태는 현재 야권이 얼마나 정치적 리더십 없는 난장판 중우정치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대중 정치의 근본을 벗어났는지를 심각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Question mark, Ipswich, 21 January 2012", ed_needs_a_bicycle (CC BY-NC-SA 2.0)
“Question mark, Ipswich, 21 January 2012”, ed_needs_a_bicycle (CC BY-NC-SA 2.0)

대중 정치인에게 주어지는 책무는 국민의 의사를 물어가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국민 그 자체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혀 정치적 자산을 늘려가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무공천 정국에서 이런 대중 정치의 당연한 과정이 상실되었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왜 새정치인가’에 대한 답변은 예전에도 지금에도 약속이라는 것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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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원칙론적인 정론입니다마는, 지나치게 현실이나 사실과 유리되어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먼저, 여당에 대해서 같은 수위의 비판이 절대적으로 빠져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원칙”이니 “신뢰”니, “약속을 지키는” 프레임이 이전엔 없었던 획기적인 프레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야당의 지지층 그 자체의 불안정한 특성이 여당에 비해 새정연을 궁지에 몰고 있는 것이지요. 정당과 정치인이 어느정도 여론(그것이 당내든 당외든)을 쫓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사실 관계가 잘못된 부분도 몇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무공천 전략”의 역사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신당 창당이 발표되기 직전만 해도 민주당의 당내 토론 결과는 항상 무공천이 우세했습니다. 대선 당시부터 그러했고, 3월 초에 가면 거의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당내 여론이 한 달만에 뒤집힌 것이 단순히 시간이나 설득이 부족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이해문제, 즉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의 불길한 신호들과 고질적인 계파 갈등 때문이겠지요.)

    더구나 이번 결정 과정은 원래는 당원 투표(‘당심’)을 물으려다가 여론이 50% 추가 된 것이고, 실제로 결과를 바꾼 것은 ‘당심’입니다. 즉 새정치연합이 이번 결정에서 여론을 쫓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또한 선대위원장 문제는 실제로는 계파 갈등이 그대로 드러난 훨씬 복잡한 문제인데, 단순히 ‘대표의 정당성을 존중해서 받아들였다’라고 서술했으며, 일절 없었다는 대표들의 창당 이후의 국회 연설, 기자회견, 선언문, 공개 콘서트 등 무공천을 알릴 여러 기회가 실재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체는 되려 ‘요식행위’가 될 수 있어서 문제인 것이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비판의 핀트가 잘못되었습니다.)

    안으로는 대표직을 흔들기 쉽고, 밖으로는 지지층이 얄팍한 야당의 리더십 부족에 대한 중요한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들이 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글 전체적으로 비약적이고 단정적인 어조나 조롱조가 많은 것도 흠입니다. 그리고 독단과 리더십은 종종 혼동되지만, 다르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2. 토성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사 글의 비판 대의는 알겠지만, 현실적면을 너무 좌시하신거 같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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