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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소리 22: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

슬로우뉴스가 ‘잊혀질 소리’를 찾아 나섭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가 2013년 12월 4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강사 위촉식에서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라는 주제로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 위촉된 전문강사들에게 특강 하는 강연자로서 이런 소리를 했네요.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듯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윤성)

기획/디자인: 써머즈

기획/디자인: 써머즈

 

출처를 찾아서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듯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 그렇다.”

(한겨레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느냐고 확인하자)

“그런 얘길 했냐 안 했냐고 묻는다면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 다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건 맞지만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말했다”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 나온 얘기다. 수치심을 느꼈다면 할 말이 없다.”

한겨레(박수지), [단독] 법의학 권위자 “돈 있으면 집어가듯, 야한 옷 입으면 성폭행”, 2014년 5월 27일에서 발췌

이윤성 교수 발언, 어떻게 볼 것인가

이윤성 교수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장수 프로그램의 애청자라면 익히 기억할만한 분입니다. 방송에서 이 교수는 항상 정의의 편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법의학의 권위자였습니다. 과학적 엄격함으로 범죄자의 심리와 범죄 행위의 잔인함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그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1.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

이윤성 교수는 한겨레가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자,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면서 자신의 발언은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서 나온 얘기”라고 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에 그 바탕을 두고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진화심리학은 남녀의 짝 찾기 전략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가설’은 기존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여러 인간의 행동(마음)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학문의 권위나 대중적인 위상과 상관없이 어떤 학문적 가설도 성폭행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의 발언이 혹여라도 여성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책망하고, 그래서 성폭행의 원인과 책임을 그 ‘야한 옷 입은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돌리려는 취지가 있었다면, 이 발언은 정말 심각하게 위험하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는 셈입니다. 더불어 혹여라도 이윤성 교수의 ‘형식적 권위’를 빌려와 이 교수의 발언을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 공동체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2. 만에 하나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 자체로 정당하지는 않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아주 유력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실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 사실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논리학의 ‘자연주의적 오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아주 자명합니다.

혹시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헷갈리는 건 아닐까요? 야한 옷을 입든 야하지 않은 옷을 입든 성폭행 (당)하는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될 수 없는,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이윤성 교수의 발언은 단순히 성적인 수치심과 언어적인 폭력(망언)이라는 익숙하게 반복되어 온 문제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학문적 성과와 권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묻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권위 있는 학문의 잘 팔리는 ‘어떤 가설’을 마치 앞으로 더는 깨지지 않을 도그마로 받아들이고, 그 ‘단편적인 가설’로 세상을 너무 쉽게 설명하는 건 아닐까요?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람을 너무 함부로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지식’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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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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