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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가 ‘잊혀질 소리’를 찾아 나섭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가 2013년 12월 4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강사 위촉식에서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라는 주제로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 위촉된 전문강사들에게 특강 하는 강연자로서 이런 소리를 했네요.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듯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윤성)

기획/디자인: 써머즈
기획/디자인: 써머즈

 

출처를 찾아서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듯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 그렇다.”

(한겨레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느냐고 확인하자)

“그런 얘길 했냐 안 했냐고 묻는다면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 다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건 맞지만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말했다”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 나온 얘기다. 수치심을 느꼈다면 할 말이 없다.”

한겨레(박수지), [단독] 법의학 권위자 “돈 있으면 집어가듯, 야한 옷 입으면 성폭행”, 2014년 5월 27일에서 발췌

이윤성 교수 발언, 어떻게 볼 것인가

이윤성 교수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장수 프로그램의 애청자라면 익히 기억할만한 분입니다. 방송에서 이 교수는 항상 정의의 편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법의학의 권위자였습니다. 과학적 엄격함으로 범죄자의 심리와 범죄 행위의 잔인함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그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1.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

이윤성 교수는 한겨레가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자,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면서 자신의 발언은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서 나온 얘기”라고 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에 그 바탕을 두고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진화심리학은 남녀의 짝 찾기 전략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가설’은 기존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여러 인간의 행동(마음)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학문의 권위나 대중적인 위상과 상관없이 어떤 학문적 가설도 성폭행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의 발언이 혹여라도 여성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책망하고, 그래서 성폭행의 원인과 책임을 그 ‘야한 옷 입은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돌리려는 취지가 있었다면, 이 발언은 정말 심각하게 위험하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는 셈입니다. 더불어 혹여라도 이윤성 교수의 ‘형식적 권위’를 빌려와 이 교수의 발언을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 공동체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2. 만에 하나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 자체로 정당하지는 않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아주 유력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실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 사실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논리학의 ‘자연주의적 오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아주 자명합니다.

혹시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헷갈리는 건 아닐까요? 야한 옷을 입든 야하지 않은 옷을 입든 성폭행 (당)하는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될 수 없는,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이윤성 교수의 발언은 단순히 성적인 수치심과 언어적인 폭력(망언)이라는 익숙하게 반복되어 온 문제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학문적 성과와 권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묻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권위 있는 학문의 잘 팔리는 ‘어떤 가설’을 마치 앞으로 더는 깨지지 않을 도그마로 받아들이고, 그 ‘단편적인 가설’로 세상을 너무 쉽게 설명하는 건 아닐까요?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람을 너무 함부로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지식’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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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댓글

  1. 민노씨는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는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너무 함부로 취급했다. 지식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 근거로 이윤성 교수의 발언을 들었습니다.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듯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 그렇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건 맞지만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 나온 얘기다.”

    민노씨는 이렇게 부연했습니다.

    ‘어떤 학문적 가설도 성폭행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의 발언이 혹여라도 여성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책망하고, 그래서 성폭행의 원인과 책임을 그 ‘야한 옷 입은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돌리려는 취지가 있었다면, 이 발언은 정말 심각하게 위험하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는 셈이다.’

    이 기사를 읽고, 제가 처음 떠올린 생각은 ‘이윤성 교수의 발언이 이렇게까지 몰매를 맞아야 하는 발언인가?”였습니다. 오히려 저는 ‘민노씨가 당위성을 근거로 이윤성 교수에게 언론 폭행을 가하고 있다’고까지 느꼈습니다.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이 말에 여성을 비하하는 느낌이 섞여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돈을 집어가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긴 치마를 입은 여성을 성폭행한 가해자의 형량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성폭행한 가해자의 형량보다 무거워야 한다’와 같은 발언을 이윤성 교수가 했다면 민노씨가 이야기 하듯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긴 합니다. 민노씨의 말대로, 어떤 학문적 근거도 가해자의 의도를 정당화하는 데 쓰여서는 안되는 법이니깐 말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윤성 교수의 발언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경각심을 주기 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면 저러한 발언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다면, 밤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 조심하십시오.”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슬로우 뉴스’라는 대안언론에서 이렇게까지 공격을 당할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이 글을 읽어보니 언론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지 사실을 전달하는지 의도한 것을 표현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3.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것을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당연한 발상이라 생각하시나요?

    그 여성에 당신 가족과 친척의 여성 아무나 대입시켜도 저 명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승협 님이 말씀하시는 그 야한 옷의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발목,종아리,무릎,어깨……?

    그래서, 그 야함의 기준을 넘어가면 성폭행을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나요? 먹이를 보면 헉헉 거리는 개처럼?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이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무슨 뜻일까요. 남성의 짐승 같은 본능은 막을 수가 없으니 여성들이 알아서 조심해라?

    오히려 위의 기사는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4. 그 여자의 옷이 너를 자극시켜서 네가 강간을 하는 거라고? 그럼 네 병신 같음이 나를 자극하니 네 죽창을 갈겨도 되냐?

  5. 김승협 님께

    논평하신 바, 전체적으로 ‘해석’의 차이라 판단합니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그저 상호 존중의 대화를 통해 서로 각자의 차이(방법론과 해석)를 분명히 하거나 좀 더 나은 제3의 방법론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요.

    다만, 승협 님께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 바, 이 점은 아주 치명적인 ‘착오’에 이끌리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이 말에 여성을 비하하는 느낌이 섞여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돈을 집어가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김승협 님)

    1.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2.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다

    위 두 문장에서 ‘유비’의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야한 옷 입은 여성 = 길거리에 떨어진 돈
    2. 성폭행범 = 돈 줍는 사람

    따라서 이것이 승협 님의 착오가 아니라면, 위 승협 님의 논리에서 다음과 같은 끔찍한 결과(사실 판단이 아닌 ‘가치 판단’)를 도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1. 승협 님은 성폭행범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진술하고 계신 것입니다.
    2. 당연히 존중해야 마땅한 ‘여성’이라는 존재를 길거리에 떨어진 돈(전적인 욕구의 대상, 혹은 물적 교환가치)과 다름 없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글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사실의 적시나 진술만으로 그 사실의 나열이 감추는 공동체에 관한 폭력성이 (진술자가 모를 수도 있겠는데)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숙고해주실 바라봅니다.

    진지한 논평에 관해서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6.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의 발언은 당연한 말이 아니며, 팩트도 아닙니다. ‘팩트’, 즉 ‘사실’에는 실험으로 입증된 결과 또는 통계자료라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느낌으로’, ‘당연할 것 같으므로’ 팩트라고 할 수는 없겠죠.

    첫째, ‘성폭행은 100% 남자들이 한다.’ 라는 명제는 팩트가 아닙니다. 이 발언은 굳이 반박하는 통계자료를 링크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겠네요. ‘가해자 남성-피해자 여성’ 성폭행이 성폭행 사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가해자 남성-피해자 남성 성폭행은 물론 가해자 여성-피해자 남성, 가해자 여성-피해자 여성 성폭행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둘째,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라는 명제 또한 팩트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복장과 성폭행 사이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정숙한 복장’ 이라고 생각되는 옷을 입은 여성들이 역설적으로 성폭행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정황증거가 있습니다. 성폭행범이 피해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성적 자극’이 아니라 ‘만만함’에 있으며, 몸을 많이 가리는 옷을 입은 여성일 수록 ‘만만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http://clubtroppo.com.au/2011/05/17/does-provocative-clothing-protect-women-against-rape/

    이윤성 교수는 이렇게 팩트도 아닌 자신의 편견에 의한 주장을 교수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마치 팩트인양 팔아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윤성 교수의 이런 발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큰 해악을 끼치는 말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rape culture’를 확산시킵니다. 남자는 원래 그런 생물이다. 본능적으로 성폭행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자도 조심해야 한다. 밤 늦게 혼자 나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말들은 모두 ‘성폭행이라는 범죄가 당연히 존재하는 무엇이므로, 자연재해를 피하듯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문화’를 조장합니다. 그러나 성폭행은 우리가 생각하듯 밤 늦은 으슥한 골목에서 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85%의 성폭행이 ‘아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물론 성폭행범이 한 명도 없는 이상적인 사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분명 성폭행이 조금 더 일상적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있고, 성폭행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로 여겨지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를 장려함으로써 성폭행을 줄여야 합니다.

    둘째, ‘victim blame’ 현상을 일으킵니다. 성폭행 피해자는 심각한 트라우마와 자괴감에 시달리기가 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을 당한다.’라는 사실도 아닌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면 성폭행 피해자는 더더욱 자기 자신에게 성폭행 피해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입었던 옷을 돌이키며,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내 옷이 내 생각보다 야했던 게 아닐까? 그러니 성폭행을 당한 것은 내 잘못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어쩌면 이 성폭행 피해자는 더운 여름에도 반팔 옷도 입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 있으면 성폭행 피해자는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리고 법의 보호를 받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내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면, “평소 행실이나 옷차림이 어쨌길래, 쯧쯧쯧…”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성폭행의 원인은 성폭행 피해자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성폭행범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탓하는 것은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또다른 2차 피해를 발생시키는 일입니다. 모든 여자가 무릎길이를 넘지 않는 치마를 입고 나시티를 입지 않았을 때 성폭행이 더 줄어들까요, 사람들 사이에 성폭행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이며 욕구를 참지 못하는 것은 인간도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을 때 성폭행이 더 줄어들까요? 한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시길.

    마지막으로 한 성폭행 피해자의 용기있는 행동을 소개하고 글을 맺으려 합니다. 생각보다 더 길어졌네요.

    “이것이 제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저를 보고 ‘그런 옷을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라고 말해보세요.”
    http://i1.kym-cdn.com/photos/images/newsfeed/000/475/113/495.jpg

  7. 위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필자이신 민노씨님께 따로 말씀드리고 싶어 한 마디 더 붙입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강사 위촉식에서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라는 강연에서 한 말임을 생각해 볼때, 정말 놀라운 말입니다. 마치 페미니즘 담론에서 성폭행 이슈에 대해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반대로 뒤집어놓은 듯한 발언을 ‘진화심리학’입네 하고 주워섬겼다는 사실이요. 전체 강연을 들어보지 않아 판단은 못하겠지만, 꼭 일부러 알고 어깃장을 놓을 심산으로 반대되는 말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저는 이 교수의 발언과 같은 주장들을 반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그들이 주장하는 팩트가 팩트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팩트건 아니건간에 그런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죠.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쉬운 글이네요. 변죽만 울리고 지나간 느낌이에요.

  8. 슬로우뉴스에서 이렇게 감정적이고 독단적인 글을 싣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떤 자극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논리는 분명 오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인 오류를 지적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말끔히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여학생이나 여성들의
    노출문화는, 외국 경험이 많은 제가 감히 평가해보아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상식적이고 건강한 시민수준에서
    본다면 정말 여성의 노출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가까운 일본을 놓고 비교해보아도 노출수위가 너무높으며
    인구비율당 성폭력문제의 비율이 많은것이 사실입니다. 위 글의 논조는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대단히 편견에 사로잡힌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남성을 두둔하고자 하는것도 아닙니다.
    제대로된 성교육이나 사회생활 교육이 결여된 한국 교육문화, 유치원 학예회에서 조차 연예인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춤을 가르쳐 선보이는 유치원교사들, ‘섹시’라는말을 아무렇치도 않게 자녀들에게 사용하는 부모들, 정말 한심할정도의 교육수준입니다. 인도나 동남아와 비하면 그래도 낫지만, 근대화, 민주화를 표방하는 나라의
    교육수준이 매우 낮은 것이 실정입니다.
    저는 그런의미에서 이교수의 발언에 적극 찬성합니다. 도데체 무슨 근거로 이교수를 공격하는지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고 무슨 공부를 하길래 이교수를 공격하는지 알수가 없군요. 이정도의 글로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추었다고 생각되어서 슬로우 뉴스 같이 건전한 대안 뉴스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지요..
    자기자녀가 섹시한게 좋고 관능적으로 보이는게 좋고 자극적으로 보일만한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일없는 그런 사회를 희망하신다면 그런나라를 만들어야겠죠. 그리고 그런 나라, 사회가 어디있나를 먼저 찿아보고 모델로 한번 삼아봅시다. 저도 그런나라가 있다면 거기가서 평생 살고 싶습니다. 은행금고 열어두고 도둑맞았다고 한탄하는사람, 탐나는 물건 간수하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사람, 소중한것인줄 알긴 하는데 자랑은 하고 싶은 사람, 나는 자랑할테니 너는 까불지말고 침이나 흘리고있으라!!
    우리가 사는세계는 천국이나 극락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나의 바램과 타인의 욕망이 뒤섞인 사회입니다. 최대한 서로 조심하고 사는것이 상책입니다.
    이교수 발언 하나 틀린것 없습니다. 억지로 곡해해서 비판하지말고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보세요.
    내가 딸가진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하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니 그냥 노출하고 싶은대로 하게 놓아두어야 할지…. 논리적인 정합성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의 감성과 몸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살펴야합니다.
    세상은 많이 배운사람, 바보, 천치, 힘센사람, 돈많은 사람이 혼잡해있는 곳입니다.
    서로 조심하고 삽시다.

  9. 저 야한 옷이라는 것 자체가 추상적인 접근 아닌가요…?

    길에 떨어진 돈은 어디서든 가치가 똑같지만 야한 옷의 기준은 뭐고
    어디까지가 성충동을 유발하는 수위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화가 나서 누굴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다고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몇이나 되며
    성폭행범 역시 묶은 머리 뒷덜미만 봐도 유혹으로 느끼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임에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미성숙하고 비뚤어진 그들 자신이 문제라는 겁니다

    오히려 저런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풍토가
    범죄 충동에 대한 자제력을 더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야한 옷 입은 게 잘못이 되고, 밤에 밖에 있었던 게 잘못이 되고,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게 잘못이 되고, 결국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네요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고 조심하는 것 하고
    어떤 행동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10. 이교수의 발어을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글을 이렇게 퍼트리는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니다
    당신은 당신의 딸이 핫팬츠 입고 다니는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입니까?
    한국처럼 젊은 학생들이 핫팬츠와 미니스커트를 약속이나 한듯이 착용하고 다니는 나라를 본적이 없어요..
    눈을 둘데가 없어서 민망한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노출이 심하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비유를 들어 한것을 가지고 말도안되는 공격을 하는 것을 보면 상식에 의심이들정도입니다.
    비유의 말꼬리를 잡고늘어지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이교수의 취지를 조금만 보려고 해보세요
    대한의 젊은 딸들이 노출을 심하게 하고 다녀도 정말 괜찮나요? 외국경험이 좀있다고 할수 있는 저로서는
    정말 한국여성들의 노출패션에대해서는 할말을 잃게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유학생조차 미니스커트, 핫팬츠를 아무렇치도 않게 입고다녀서 민망한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일본학생이 핫팬츠를 입고 있는 경우는 정말 눈씻고도 볼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관광하러 돌아다니는 한국 젊은 여성들의 노출수위는 가관입니다. 한국여성의 노출은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민망할정도로 심합니다.
    민망할정도가 아닙니다. 사고가 걱정될정도로 심합니다. 도데체 무슨생각으로 이교수의 발언을 공격들하시는지
    논리학 전공자들이신가요? 사회철학, 패미니즘을 이론적으로 옹호하고들싶은가요?

  11. 소윤님의 관점은 이해하지만 이교수의 발언의 취지를 보세요..한국여성의 노출자체만을 문제 삼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것이 인과적 연쇄귀결로 이어질수 있느냐를 논점으로 삼고싶은모양인데..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우선당장 밤늦게 인적이 드문데 있는것은 걱정이 되는 것이고, 여성이 노출이 심하면 걱정이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심정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보는 것이 제일의 라는 겁니다. 원인 결과를 추론하는 문제는 고려해야될 변수가 많습니다. 단선적이고 직선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취지에서 이교수를 공격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만,
    문제를 고려할 때, 원인-결과의 문제틀 말고 고려해야될 핵심적인 부분이 있는겁니다. 목이 타면 답답함을 느끼는것처럼, 누가 도둑질하는 것을 보면 분개하는 것처럼, 노출심한 여성을 볼때도 본능적으로 걱정스러운 심정이 작동하는 겁니다. 저는 이교수의 발언에서 그러한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만, 안그러신분은 아마 나이가 적거나 주위에서 사고를 안당해보셔서 그러는것일수도 있을거라는 생각마져 듭니다.

  12. 그러니까 당신의 상식은 어떤 미친 놈이 ‘내 눈엔 섹시해 보여서 강간했다.’ 이렇게 말하는 놈이 있어도 그게 당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그 대상이 당신 가족이어도?

    섹시의 기준이 뭔가요.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게 정상입니다. 벌을 받는 이유는 아무리 패륜적인 게 하고 싶어도 패륜은 죄니까 처벌하는 거고요.

    이건 뭐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과거에 미니스커트 단속, 장발 단속이 일어나고, 금지곡이 생겨나고, 누가 누구의 자유를 억압해도 그럴 수 있지… 하는 놈들이 활개치는 겁니다.

  13. 아하- 여성의 안녕이 걱정되서 길가에 떨어진 동전에 비유했군요. 거참… 갖다 붙일 걸 갖다 붙이지…

    누군가 당신 가족 부모 친지인 여성에게 떨어진 동전에 비유하며 “걱정”해주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할 건가요?

  14. 누군가 누구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욕해야 정상인 겁니다.

    왜 불국사나 가지 배를 탔냐는 망언도 애들 걱정해서 한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15. 노답님은 편견이 심합니다.
    말은 꼬리를 잡고 트집을 잡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좋아죽겠다’라고 말하면 하필 좋은 것을 ‘죽음’에 비유하냐고 하면 뭐라고
    응답해야하나요?? 말꼬리 잡는데는 할말이 없습니다.

    폭력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문제는 일방적 관계는 거의 없습니다.
    법률적으로든 법이전든 상호관계하에 성립하는 겁니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욕해야 정상이라고 생가하는 것은 특정한 대상에만
    자기가 욕하고 싶은 대상에만 그렇게 하는 태도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니 죽을때까지 일본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고 건전하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둘째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당할 수 밖에 없었는가. 왜 일본에게 폭력을 당할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문제를 가장먼저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 일어날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일본 나쁜놈이라고 욕하는 것보다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른 생각입니다.

    인생살이 실패한 사람이 난 타고난 사주가 빌어먹을 사주라 인생이 이렇게 꼬였다든지, 부모잘못만나 이렇게 살고 있다든지, 결혼을 잘못해서 이꼬라지로 살고 있다고 신세타령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런사람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나요???

    무자비한 폭력이나 극단적인 극악범죄의 경우에는 절대다수의 옹호를 자연스럽게 받는 법이며 사회제도를 바꾸고자 누군가라도 시도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남탓을 하는 사람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스스로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 낼수가 없는 사고에 빠져드는 겁니다.

    연구활동 하는 교수가 그런 발언하는 것은 비유의 적절함이 문제의 포인트가 아닙니다. 이교수가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정적으로 걱정이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족한테 그런비유를 해도 무슨말인지 알아들으면 된겁니다.

    이교수의 발언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은 윤리학적으로 검증해볼 구석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검토를 하기이전에 고려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간과하면 전혀 논의가 진행이 안됩니다.

  16. 이교수의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할 말입니다.
    그러나 이교수의 언급만이 성폭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것이라고 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교수의 말에서 좀더 넓은 틀에서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아야 하며, 법제도를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물론 당사자의 심정과 상황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만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당사자와 당사자의 가족, 그리고 교육과 법률을 다루는 제삼자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할
    문제이며. 따라서 이교수의 말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강간 문화를 퍼트리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운데 하나를 지적하는 언급이라고 봅니다.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것을 간수를 잘 해야하는 것이 기본이고
    우리 모두가 그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것을 함께 보호할 수 있도록
    공동체문화와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합니다.

    은해이라면 금고를 잘 지켜야합니다.
    그래도 도둑맞고 강도가 들며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럴수록 좀더 잘 지키고 보호하기위해 담론은 계속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 가지고 왜 여성을 은행에 비유하냐고 하면
    그건 트집을 잡는 겁니다.
    소중하니까, 중요하니까 잘 지키자는 겁니다. 이교수의 취지는 그거라고 봅니다.
    도둑과 강도를 아무리 비난해봤자 그건 일방적인 비난이고 끝없는 비난에 비난의
    연속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비난하지 말자거나 가해자를 용서해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문제는 별개입니다.
    이교수의 이야기는 가해자의 문제를 포함해서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이아닙니다. 설마 이교수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건 아니겠죠??

    은행과 강도중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하나요?
    강도가 있으니까 은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논리인것처럼
    은행이 있으니까 강도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황당한 논리입니다.
    은행은 강도를 욕하고, 강도는 은행을 탓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논리의 틀을 그런식으로 세워놓고 문제를 옳게본다, 그르게 본다 하면서
    끝도 없이 이상사회, 천국같은 사회, 성폭력 없는 세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건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성폭행같은 범죄가 줄어드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이교수도 이견이 없을겁니다.
    따라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정당한 죄값을 치르게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조심스러운 예이지만,
    “이것이 제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저를 보고 ‘그런 옷을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라고 말해보세요.”라고 어느 피해자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성폭행의 문제가 가해자의 전적인 문제로 결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해자는 이 사회의 다른 곳에서 말도안되는 무자비한 성적자극에 노출되어 있어왔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겁니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단순히 가해자 비난으로 끝나지만, 이교수의 성폭행에 대한 지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순히 피해당사자와 가해자의 관계만을 오려내어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왜나뻐!’
    ‘당연히 피해자를 옹호해야지 얼마나 억울하고 불쌍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린것이 아니지만, 문제를 다른시각에서 볼수있는, 보아야하는
    입각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이교수의 제자가 아닙니다. 관계자도 아닙니다.

  17. 이교수의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할 말입니다.
    그러나 이교수의 언급만이 성폭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것이라고 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교수의 말에서 좀더 넓은 틀에서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아야 하며, 법제도를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물론 당사자의 심정과 상황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만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당사자와 당사자의 가족, 그리고 교육과 법률을 다루는 제삼자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할
    문제이며. 따라서 이교수의 말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강간 문화를 퍼트리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운데 하나를 지적하는 언급이라고 봅니다.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것을 간수를 잘 해야하는 것이 기본이고
    우리 모두가 그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것을 함께 보호할 수 있도록
    공동체문화와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합니다.

    은행이라면 금고를 잘 지켜야합니다.
    그래도 도둑맞고 강도가 들며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럴수록 좀더 잘 지키고 보호하기위해 담론은 계속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 가지고 왜 여성을 은행에 비유하냐고 하면
    그건 트집을 잡는 겁니다.
    소중하니까, 중요하니까 잘 지키자는 겁니다. 이교수의 취지는 그거라고 봅니다.
    도둑과 강도를 아무리 비난해봤자 그건 일방적인 비난이고 끝없는 비난에 비난의
    연속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비난하지 말자거나 가해자를 용서해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문제는 별개입니다.
    이교수의 이야기는 가해자의 문제를 포함해서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이아닙니다. 설마 이교수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건 아니겠죠??

    은행과 강도중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하나요?
    강도가 있으니까 은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논리인것처럼
    은행이 있으니까 강도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황당한 논리입니다.
    은행은 강도를 욕하고, 강도는 은행을 탓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논리의 틀을 그런식으로 세워놓고 문제를 옳게본다, 그르게 본다 하면서
    끝도 없이 이상사회, 천국같은 사회, 성폭력 없는 세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건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성폭행같은 범죄가 줄어드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이교수도 이견이 없을겁니다.
    따라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정당한 죄값을 치르게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조심스러운 예이지만,
    “이것이 제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입니다. 저를 보고 ‘그런 옷을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라고 말해보세요.”라고 어느 피해자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성폭행의 문제가 가해자의 전적인 문제로 결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해자는 이 사회의 다른 곳에서 말도안되는 무자비한 성적자극에 노출되어 있어왔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겁니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단순히 가해자 비난으로 끝나지만, 이교수의 성폭행에 대한 지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순히 피해당사자와 가해자의 관계만을 오려내어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왜나뻐!’
    ‘당연히 피해자를 옹호해야지 얼마나 억울하고 불쌍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린것이 아니지만, 문제를 다른시각에서 볼수있는, 보아야하는
    입각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이교수의 제자가 아닙니다. 관계자도 아닙니다.

  18. 궤변이 너무 심해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왜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는 것과 이 문제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깊고 건전하게 생각하라고요? 당신이 재수없게 생겼다고 누군가 펀치를 날리면 내가 왜 이렇게 재수없게 생겼지? 라면서 곰곰히 건전하게 생각해보실건가요?

    게다가 이건 남탓을 하는 게 아니예요. 자신의 인생을 실패하거나 부모를 잘못 만난 게 아니라 누군가 폐륜을 저지르는 명확한 가해자 때문에 피해자가 불행해지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군가를 성추행, 성폭행 하나요? 도대체 무슨 비유를 들고 있는 건지는 아십니까?

    시스템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든다….. 이런 식의 논리가 해당이 안됩니다. 성추행을 하든 성폭행을 하든 누군가 그 ‘범죄자’가 있는 거라고요. 왜 막연히 남탓만 하는 사람에 비유하시나요.

    당신 같은 사람이 성추행, 성폭행 피해자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연구활동 하는 교수가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속칭 똥오줌 못가리는 거예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교수가 10대도 아니고 왜 저 자리에서 학술 이야기를 하나요.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요.

  19. 어설픈 비유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게다가 그 비유도 맞지 않아요. 강도가 은행을 탓하는 게 왜 당연한가요. 다른 사람 물건을 탐하는 자가 남탓하는 게 당연하다고요? 그건 당연하지 않습니다. 비유가 너무 어설퍼요. 계속 늪에 빠져요.

    짧게 이야기하면 님은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것 같습니다. 욕망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님이 욕망이 있는 것과 그 욕망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동일시 하고 있어요. 그 두 가지를 동일시여기는 건 인간의 세상도 동물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누군가는 인간도 동물이라고 하겠죠.

    이교수를 계속 옹호하고 그의 취지가 무엇일 것 같다는 것까지 관심법을 동원해 그를 옹호하다가 맺음말로 아무 관계 없다고 하는 것도 논리적이지 않아요. 관계가 있다는 게 아니라 심정적으로 옹호하는 자신을 부정하는 핑계라는 뜻입니다.

    이교수의 말이 충분히 할수있고 마땅히 해야 하는 말이라고요? 남자들은 꼴리면 참을수 없으니 여자들은 알아서 피해라…. 소중한 걸 지켜야 하니 옷을 가려입고 조신하게 살아라… 라는 말을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20. 글로 님께

    진지하고, 깊이있는 논평에 우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간단히 제 판단과 의견을 남깁니다.

    1. 100% 남자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 그렇다.”

    위 이윤성의 발언에서 ‘성폭행’은 ‘강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씨를 뿌려” “자손” 등의 표현은 이를 넉넉하게 뒷받침한다 보입니다.

    강제추행(죄)의 주/객체는 당연히 남녀를 불문한 ‘사람’이지만, 강간(죄)의 주체는 “100% 남자”이고, 그 객체는 “100% 여자(‘부녀’)”가 맞습니다. 아직까지 대법원 판례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법규범의 현실적인 적용과 집행의 차원에서 이 진술은 ‘사실’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판결문: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로서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피해자를 법률상 여자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종래에는 사람의 성을 성염색체와 이에 따른 생식기.성기 등 생물학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하여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및 개인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적합하다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ㆍ태도ㆍ성격적 특징 등의 성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ㆍ사회적 요소들 역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으므로,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ㆍ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3580 판결)

    2.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장은 두 가지로 나눠서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1) 하나는 강조하신 ‘인과 관계’ 부분입니다.

    ㄱ.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ㄴ. 평범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ㄷ. 히잡처럼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 성폭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장들은 모두 참입니다. 그런 사례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즉 “(그런) 사람(범죄자)이 있”기만 하면 참인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문장은 겉으로는 ‘인과’라는 논리 구조를 띠고 있는 문장이긴 하지만, 가짜 논리(인과성립을 논할 수 없는)로 위장된 문장이므로 더 논할 가치는 없습니다. 그냥 상식칙과 경험칙으로 보건대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제가 이윤성 교수를 비판한 취지는 ‘진화심리학’의 ‘(단편적인) 가설’을 절대적인 진리로 위장해 자신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인 비난가능성에 관해 그 책임을 지워버리고(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한겨레 인용을 보건대 그렇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글로 님과 저는 그 취지를 함께 한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글로 님의 취지가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닐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글로 님의 논평이 구성하는 전체적인 논리 전개를 보면, 예시하신 “하나의 연구 결과”(하나의 가설, 그 가설이 강력한 가설이든 아니면 약한 가설이든, 즉 다수설이든 소수설이든)를 근거로 삼아 마치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다른 가설이 전부 부정될 수 있다는 것처럼 말씀하고 계신데요.

    아무리 강력한 가설도, 심지어 절대 불변을 표상하는 과학법칙들도 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통해 극복(변경)되는 점에서(예: 뉴튼의 열역학 제1법칙의 세계관을 끝장낸 아인슈타인) 말씀하신 연구가 갖는 의미에 관해 논하는 것은 별론으로 그것을 길게 쓰시는 취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윤성 교수의 발언은 다른 가설과 연구결과를 통해 부정해야 하는 발언이 아니라 그저 현재를 사는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의문을 갖고 부정해야 하는 진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즉, 저는 어떤 이론 혹은 연구결과(가설)이 당대의 특수한 시공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상식과 인간적 가치, 현재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자면, 인간에 관한 상호 존중과 스스로에게 관한 존엄의 관점에서 어떤 가설이 그 최소한의 가치(상호 존중과 존엄)을 훼손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선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아주 상식적인 입장을 강조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설과 연구 결과를 마치 무기처럼 자신의 ‘편견’을 강요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선동적 진술(이윤성의 경우)을 강화하려고 한다면, 혹은 그 가치적 비난가능성을 막는 방패로 쓴다면, 그걸 깨는데 무슨 연구결과를 공부하거나(물론 그러면 더 좋겠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위에 주신 논평과 아래 따로 주신 의견에 관해서는 다시금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견이 있습니다만, 공들여 의견과 입장을 전해주신 그 마음은 깊이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추.
    링크가 포함된 댓글은 스팸 여부를 필터링하는 과정을 시스템적으로 자동 수반해서 최종 입력(현출) 시간이 깁니다. 답답함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아래 같은 글(링크 없는 댓글)은 지우겠습니다.

  21. 정말… 대단한 댓글들이 많네요. 아직도 폭력행위의 주체를 가해자만 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이 만든 것이라는 판단을 하시는 건가요?

    당신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할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전적인 책임이 있는게 아니라 피해자도 일정부분 자신이 성폭행을 당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학교에서 자식이 맞고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자식에게 ‘니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 라고 하실껍니까? (아.. 그러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것을 훈육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죠.)

    틀렸습니다. 왜 맞아야 했는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체벌이 정당한 교칙 아래에서 이루어진 행위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은 이런거예요.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 하니까 여자들은 살갖을 드러내고 다니지 말아라? 남자는 동물이고 대를 이어야 하는 위대한 본능을 지닌 종족이니까?

    거창한 진화심리학까지 꺼내지 않아도 이교수의 말은 틀렸습니다. 댓글을 쓰신분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있더군요. ‘우리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우리는 범죄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고 그 범죄를 줄이려면 여성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는 것은 특정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단들 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건 어떻습니까? ‘남자는 동물이고 대를 이어야 하는 위대한 본능을 가진 종족이니까 모든 여자들이 살갖을 드러내어 위대한 인간족을 이어나가자!’ 참 거창한 진화심리학의 결론이네요.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 가진 자유를 억압하면서 평화를 추구한다? 누가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너무 많아서 생각도 안나시죠?)

    제발 부끄러운 짓들 하지마세요. 당신이 어딘가에서 맞아서 코뼈가 이그러지고 심한 멍이 들었는데 당신에게 ‘니가 그사람에게 주먹이 날아올 짓을 제공한거 아냐? 그 사람이 왜 널 때리겠어?’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래도 폭력행위에서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이교수 발언을 옹호하는 당신들이 가해자 인겁니다.

  22. 참 어이가 없는건 이런 댓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공익을 위해서 이런 것 걱정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누가 도둑질하는 것을 보면 분개하는 것처럼, 노출심한 여성을 볼때도 본능적으로 걱정스러운 심정이 작동하는 겁니다.’

    이런 걱정스러운 심정을 보고 흔히들 오지랖이라고 합니다. 본능적으로 걱정한다고 하셨으니까 이 댓글을 쓰신분을 풀어쓰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Natural born ojiraper : 내츄럴 본 오지라퍼

    노출이 심한 여성을 보고 왜 저렇게 입었지?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 오지랖이라는 거예요.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 아래에서 누구든 자신이 입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면 분개하는 것처럼’ 도둑질이 합법입니까?(아 이글을 쓰신분은 은행이 있기 때문에 돈을 훔쳐야 하는 강도의 심정을 이해하시니까 이런 문장도 나올 수 있네요.)

    어떤 이유로든 법 아래에서 주어진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당할 수 없습니다. 설사 그것이 이교수가 배운 진화심리학에서 주장하는 ‘건강한 대를 이어야 하는 위대한 남성의 본능'(껄껄)이라도요.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데에 분노합니다. 당신들이 가해자인거예요. 공익을 위하셔서 지나가는 노출이 심한 여성을 보며 성폭행을 당할까봐 걱정하십니까? 그럼 집에가셔서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서 생각해보세요. 나는 왜 그 노출이 심한 분을 쳐다봤던 걸까…

    당신들은 공익을 위하는게 아니예요.

  23. 다시 정리합니다. 기본적으로 이교수를 공격하고자 하는 기사이기 때문에
    의견을 듣고자하는 귀가 없는 것같습니다.

    1) 말의 의도

    저를 비롯해서 노답님 그리고 이윤성교수까지 성폭행 피해자를 감싸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거나 성폭행 가해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한쪽을 비난하고 싶어서 저나 이교수가 그런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교수는 성적폭력, 언어폭력이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반대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할겁니다. 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논평자들이나 발언 당사자인 이윤성 교수는 적어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다루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삼자의 입장이라고 해서 당사자로 분할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해자는 분명 가해자를 충분히 비난, 질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교수의 이론적 명분이 충분하냐하는 것은 분명 논의의 대상입니다. 이 교수의 근거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에서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교수는 자신의 이론근거를 광고하기 위해서 그런 발언을 했을까요?

    이교수는 가해자야 말로 원인제공자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안이 민감하다보니 그런식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그래야지 손쉽게 공격하고 비하할 수 있으니까요.

    이교수의 발언을 그런 식으로 곡해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말고는 그 어떤 입각처도 있을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겁니다. 이교수를 또라이학자 취급하고싶거나, 서울대를 부각시켜 대한민국 지성계의 수준을 한심한 수준으로 폄하하려는 의도마저 보입니다. (서울대 또라이 교수는 따로 있습니다.)

    오지랖이 넓어서, 어설픈 공익을 옹호자가 되고싶어서 제가 논평을 하는게 아닙니다. 성폭행의 문제를 가해자나 피해자의 당사자의 입장 이외의 관점을 포함시켜서 살펴보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할것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당사자의 입장에만 묶여있으면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것이 피해당사자의 입장을 무화시키고 왜곡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자꾸 물고늘어지는 자세는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갑자기 어떤 행위가 하고 싶어서 사건을 일으키고, 갑작스럽게 피해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도록 우리사회가 충분히 장(場)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 부분을 살펴보자는 겁니다. 저의 논의의 출발점은 어떤 특정한 이론을 옹호하고자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당신과 나의 기본적인 의도가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말의 문법을 보지말고 말의 의도를 보세요.

    2) 비유의 이해

    아마도 이교수를 공격하고 비하하는데, 그리고 피해자의 억울한 심정에만 촛점이 맞추어지다보니 비유를 이해할 수 있는 여력이 없으신것 같습니다. 제가 들었던 두 가지비유, 즉 1) 타자를 가해자로 비난하는 비유, 2) 은행과 강도의 비유 의 뜻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같습니다. 그 비유를 다시 해설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살펴보세요.

    – 조선은 약해빠지고 정치가 무능하니 식민지로 만들어 고통을 주는게 당연하다.
    – 은행은 관리가 허술하고, 은행강도는 본래 존재하는 거니까 은행은 강도를 당하는게 당연하다.

    저와 이윤성교수 그리고 여타 논평자들이 위의 테제를 옹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런식으로 몰고가지 말라고 비유를 들었던겁니다.

    사람은 일단 피해를 입으면, 온 힘을 다해 가해자를 비난하고 질책하면서 칼끝을 가해자로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의 비유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결코 쉽지 않아요. 그 이유는 사회 전체를 놓고보는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종교적 심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학자, 이론가연 하면서 높은 곳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고 하면 더 이상 할말이 없어요.

    3) 논의를 하기위한 준비 부족.
    “폭행을 당하고 나서 나는 폭행을 당할만하다고 곰곰히 생각해봐야 합니까”
    (junelove371196672)

    이처럼 논평하는 것은 심각합니다. 자신의 논리에서 한발도 움직일수 없다는 자세입니다.

    ‘원인’이라는 말은 틀을 달리해서 보면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겁니다. 피해의 직접적 원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정말 자극적인 성적 자극을 줄이도록 노력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취지입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공동체적인 노력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노력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4) 자유 ?
    “헌법이 보장한대로 나는 자유롭게 옷입고 다닐 권리가 있다”
    (junelove371196672)

    이처럼 논평하는 것은 위험한 태도입니다.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 논리가 모든것을 방어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야기하는 것과 한치도 다를바 없습니다. 이교수의 발언은 그 취지를 봐야합니다. 다음을 잘 생각해 봅시다.

    –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삼성’.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겠다는데 공산주의, 사회주의도 아니고 니네가 무슨상관이야!!(이건희) 내가 서비스직원들 멋대로 착취해서 재산 불리겠다는데, 무슨상관이야 이새끼들아.. 데모해봐라 나는 나하고 싶은 대로 할란다… 삼성만세

    – 사채광고 맘대로 해서 고리대금업 자유롭게 하겠다는데 뭔 상관이야 이 병신들아!! 법이 보장하는데 왜 지랄들이야. 억울하면 법을 고치든지!!

    – 내가 식민지 만들어서 성노예 만들겠다는데,, 무슨 잔소린고!! 고얀놈들,, 힘 없는것들이 까불고있어,, 내가 만들어 놓은 법 안에 들어 와서 고통당해라 !!!

    – 학교든, 학원이든, 길거리건, 으슥한 곳이건, 지하철이건 내 맘대로 옷입고 다니겠다는데 왠 참견이야… 이 성도착증환자들 새끼들아!! 쳐다보지마 너 처다보라고 이렇게 입고다니는줄 알아!! 나 이쁘고 시원하면 됐지 뭔상관이야.. 재수없게..

    헌법 운운하기 이전에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헌법이 모든 것을 보장하고 금지하는 최종근거가 아닙니다.

  24. 이해하려고 하는 준비가 안되신 분 같습니다. 피해의식이 너무강해서… 답이 없네요.

  25. 궤변론자로 몰고가는건 정말 문제입니다.
    궤변으로 이교수를 옹호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제 글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제책임이겠죠..

  26. 전반적으로 논리가 당치 않군요. 반론합니다.

    1)
    이윤성 교수는 자신의 말에 대해 이렇게 부연했습니다.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말했다
    이로 볼 때 그의 발언은 명백히 ‘피해자가 조심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가해자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의 발언보다(사실에 대한 서술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과연 ‘사실’인가는 문제지만) 부연 설명으로 드러난 ‘의도’가 더 문제로 보이는군요.

    2)
    …비유가 틀렸습니다.-_-; 은행이 금고를 잘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건 도둑맞기 쉬워서가 아니라 그게 남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 돈이라도 도둑맞지 않으려면 잘 지키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그 경우에는 금고를 털렸다고 해서 은행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3), 4)
    ‘인구비율당 성폭력문제의 비율이 많은것이 사실’이라고 얘기하셨는데 김현수님의 사고방식은 그 ‘성폭력문제의 비율’만 줄이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식인 듯합니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력이 늘어나니(이것도 이견이 있는 듯하지만) 야한 옷을 안 입으면 되고, 여성들이 밖에 돌아나니면 성폭력이 늘어나니 밖에 안 돌아다니면 되겠군요.
    선후가 틀렸습니다. 여성들이 좀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동하기 위해 성폭력을 줄여야 하는 게 옳지,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여성을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4)는 무슨 초등학생 말싸움을 보는 듯하군요.-_-;
    뭐 초등학생을 위해 설명하자면 서비스직원 착취, 고리대금, 성노예는 명백히 다른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행동입니다. 남을 해치는 행위를 자유권으로 보호하는 법체계는 없습니다. 한편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위의 셋과 맨 아래는 구분됩니다.

  27. 죄송하지만 솔직히 김현수님은 토론에 참여하실 기본적인 지적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문장도 엉망이고, 글이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지 않으며, 주장과 근거 사이의 관련성도 부족하고, 타당한 근거를 대지도 못하고 계시며, 예라고 드시는 것들은 모두 실소밖에 나오지 않아요. 인신공격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제발 안쓰러우니 쨉도 안되는데 그만 덤비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 책 많이 읽으셔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8. 최소한 왜 노출이 심한 옷이 문제가 되는지라도 좀 말해주세요. 그게 정말 성범죄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거 맞죠? 그런거죠? 그러면 이제 다시 처음부터 제 글을 읽어보시면 되겠네요.

  29. ‘여자들이 옷을 벗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야동보면 강간할 수 있다’
    사실 두 개의 발언은 거기서 거기지만 전자는 악플취급이고 후자는 선플취급이고
    한국여자의 이중성에 치가 떨린다

  30. 죄송하지만 솔직히 이교수 옹호하는 사람이, 그것도 한사람이 이렇게 글을 올릴지는 예상못했죠? 제가 지금 토론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보세요? ㅋㅋ 스마트폰 타자가 서툴러서 비문이 많기는 해도 그쪽 심사에 맞추어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이해가 금새금새되는 깔끔한 삼류 서적들만 골라서 독서를 하셨나보네요. 인신공격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제발 깊이 있는 인문학 독서를 많이 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 혹 법학으로 밥벌이 하시나? ㅋㅋㅋㅋㅋ 구름 위에서 내려오세요.
    실제 토론 해보니 반반으로 쫘악 갈라지던데, 어설픈 논리로 설득하려고 하지말고, 저 사람이 왜 저런 언급을 하는지 행간을 보세요. 딱히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하이볼님은 내 생각에 타당하지 않으면 전부 가짢은 이야기로 보는 태도를 버리고 좀 더 겸손함을 배우셔야 겠습니다. 어줍짢은 지식놀음 하려고 하시지 말고 조용히 계세요. 다 뜻이 있어서 댓글놀이 해보는거니까. ㅋㅋㅋㅋㅋㅋ
    지적수준이 높으신 하이볼님에게
    김현수 배상

  31. 반론해주신 것은 고마운데,, 저의 이야기의 맥락을 잘 이해하고 계신것같지 않아요.

    1) 이교수의 의도를 매우 잘 알고 계신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하고는 말이 안될것같습니다.

    2) 글을 잘 보세요. 난독증이세요? 비유를 주장하려는 대목이 아닙니다!

    3) 비약이 심합니다. 저의 글을 보고 ‘성폭력 문제의 비율만 줄이면 그만’이라는 함의를 발견한다는 것은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네요.

    4) 초등학생 말싸움에 끼어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쥰러브님의 “법아래 주어진 자유와 권리”라는 언급에 대해서 반론을 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행동”과 “해롭게 하지 않는 행동”은 누가 어디서 정하는가요? 일반적으로? 명백히 해악을 끼친다?

    솔직히, 저의 의견에 뭔가 논리적으로 반박하시는 분들 의도가 불순해보입니다.
    논의를 전개하는 층(수준)이 저와 다른 사람들이 같지가 않습니다.
    학자인양하고 덤비시는데, 제발 깊이 생각하세요.

    다시 한번 밝힙니다.
    이교수의 말은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기 이전에 새겨들어야 할 구석이 있습니다.
    논리적 타당성은 본격적으로 칼싸움을 해야할 전장이 있는겁니다. 그렇게 말 몇마디 댓글에
    올려놓고 저능 벌때들처럼 덤벼들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정말 진정으로 토론을 해 보고 싶으로시면 귀하의 주장에 관련된 성폭력과 여성에 관계된 논문 링크 해 주세요. 정독해보고 이야기 해 봅시다.

  32. 왜 그렇게 억지를 부리세요….
    어떤 사람이 성적 자극이 극심한 사회에서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있다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쪽을 비방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이교수가 그 점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쥰러브님 여성이세요?
    난독증 없으시면 제 글을 다시 봐주세요. 일리가 전혀 없고 쓸모없는 이야기라면
    반론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싶으시다면,
    “인과론”에 대해서 공부하시고 어떤 의미에서 “원인”이라는 말을 쓰고 계신지 밝혀주세요.

    <>

  33. 자꾸 우리는 자신도 잣대에 재어 보지 못하면서 남을 재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요 잘잘못으로 볼 사건이 아니라 이러 이러한 것들이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 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영향을 끼친다 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동의 하시리라 봅니다
    이러이러 한; ‘야한 옷 착용자 많은 곳이 야하지 않은 옷 착용자 많은 곳보다 성범죄 발생률이 높을 것이므로 야하게 입는 문화를 바꾸는 편이 성범죄를 줄일수 있을 것이다’

  34. 이 기사와 링크된 한겨례 기사를 보고 씁니다. 아마 위에서 다 나온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겸 써봅니다.

    1. 여성이 노출이 높은 의상을 입는 것은 분명 섹스 어필이라는 점이 있습니다. 그걸 교수님께서는 ‘야한 옷’이라고 언급하셨죠. 그리고 여성의 이런 노출은 남성에게 성적인 자극을 가합니다. 주로 시각적이긴 하겠지만요.

    2. 그러나 성폭행은 본질적으로 번식 본능보다는 폭력에 가깝습니다. 주먹이나 칼 대신에 성기를 사용한 것 뿐이죠.

    3. 단순 번식 목적이라면 성폭행은 효율도 낮고 페널티가 큽니다. (불법이긴 하지만) 음성적인 성매매 혹은 원나잇 만남, 섹스 파트너를 만드는 등의 행동이 성폭행보다 지불할 것도 적고 목적을 이루기에도 훨씬 좋습니다.

    4. 진화하면서 생긴 심리학적인 점, 즉 본능이 혹시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해도 현재의 인간은 본능을 이성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정상입니다.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 개체는 집단, 사회에서 도태되고 배척받기 쉽습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회사에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번식 이전에 생존이 더 중요한건 당연한 말이겠죠

    5. 보통 찬반이 갈리는 의견은 맞는 점도 있고 틀린 점도 있습니다.
    죄다 틀렸으면 아예 사람들이 상대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어떤 의견에 대한 논의가 있다면 무조건 맞다 틀리다로 접근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부분이 무슨 이유에서 틀렸는지 잠시 범위를 좁혀서 의논해야 합니다.

    현재 논의중인 부분 이외의 부분은 언급하지 않아야 하고, 필요하다면 현재 논의가 끝난 뒤에 따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6. 이미 결론을 내놓고 거기에 짜맞추기 위해서 온갖 이유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논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상대편이 이런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논의하긴 힘드니 그냥 무시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35. 20년전이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논의의 수준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혐오의 감정을 느끼며
    쌍방폭행이나 교통사고 이외에
    피해자의 잘못을 운운하는 거의 유일한 범죄가 성범죄더군요.
    뭐 아주 가끔 남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강탈하는 범죄인 절도와 비교해서
    ‘야한 옷’을 ‘문을 열어놓는 것’에 비유하는 유일한 범죄도 성범죄인듯합니다.
    전문가고 나발이고 어떤 경우에든 나와서는 안되는 비유이고 피해자가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라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36. 저 교수의 발언은 철저히 남성 중심의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며, 바로 그것이 여성의 입장으로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 역시 여자이며, 저 말을 들으니 굉장히 소름이 끼치고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이 나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남성의 성기는 불수의근으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발기의 원인은 특히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정을 하지 않으면 발기를 잠재우기가 힘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까지가, 여성으로서의 이해의 한계입니다. 여성의 몸 구조는 남성과 매우 다릅니다. 흥분을 할 수는 있어도 발기는 하지 않으니까요.)
    이윤성 교수는 발기의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발기가 성폭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는 점일 겁니다.
    이성을 갖고 있는 남자들이라면 발기가 되더라도 성폭력이라는 어이없는 선택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취객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남자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그들은 자제력을 잃은 상태이며, 일반적으로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면 웬만한 여성을 제압할만한 완력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 교수의 발언이 소름끼치는 건 취객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남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들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취하거나 미친 남자일지라도 남자니까) 거스르지 말지어다, 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일 겁니다.
    그간 성범죄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솜방망이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들이 취했다(심신상실)는 이유로 오히려 감형을 받은 경우는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질환자들이 저지른 성범죄들도 오히려 정신질환이라는 이유 때문에 참작을 받는 실정입니다. 이런 판결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요. 개탄스럽습니다.
    조금 논외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 성은 환상이다,라는 일본 학자 기시다 슈의 책에서는 이러한 주장마저 있습니다. 동물의 성생활에 있어서는 항상 암컷이 우위에 있지만 인간의 성생활에서 수컷이 우위인 이유가, 금기나 욕망이 없으면 수컷이 발기를 제때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적 욕망과 성적 능력사이의 간극’, ‘여성은 도구화되고 상품화 된다’, ‘자본주의 시대의 비참한 성’, ‘신이 죽자 연애가 등장했다’, ‘서구인은 죄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더 성욕을 느낀다; ‘죄악시 되는 성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모두 이 책의 소제목들입니다. 특히 여자분들이 읽어보시면 놀랄만한 점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관심이 가신다면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37. 강간의 진화는 진화 심리학계에서 그리 논쟁적인 주제가 아닙니다, 사회학이나 페미니즘에서 극단적으로 혐오할 뿐이죠. (대체로 잘못된 이해와 일반화에 기인하는,)

    강간이 적응이라고 밝히는 것이 강간을 옹호하는 논리는 아닙니다. 저기 이윤성이라는 분이 해당 논지에 대한 이해도 좀 떨어지고 학자다운 표현을 못해서 문제가 되는거구요.

    어떤 진화적 적응의 근접 매커니즘(near-by mechanism)을 밝히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렇지 않은가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유류가 새끼를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 귀여운 생김새라던가 유형진화 (paedomorphosis)와 같은 여러 자연선택이 동원 되지만, 그게 어미의 사랑을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38. 이 논쟁을 보면서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 할 때 싸가지와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39. 깜짝 놀랐습니다. 여성의 노출을 성폭행의 전제로 두심에… 성폭행을 행하는 자들은 주로 ‘만만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아동 성폭행, 노인 성폭행, 친족 간의 성폭행이 일어나는 요즘. 심지어 남아들에게까지 ..우리 아이들이 노출이 심해서였을까요? 할머니들이 속옷을 안 입어서? 제 친구는 친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해서 재판까지 다녀왔습니다. 친구는 자고 있었고 한 겨울이였기에 옷도 몸을 꽁꽁 가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여성들은 그럼 집에서도 누군가의 성적자극을 하지 않게 하며 살아야하나요?
    어느 부분에서 노출을 지적해야 할까요? 성폭행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제어가 안 되는 사람들이죠. 병이 있는 거예요. 폭력성을 제어 못하며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성적 충동을 제어 못하는 병이 있는거죠. 이런 정황을 보시고도 여성들의 노출 탓이라고 돌리시겠습니까? 그런 논리라면 워터파크가 가장 성폭행 발생율이 높겠네요.
    그리고 성적취향은 그리 단순하지 않죠. 다리나 가슴이 다가 아닙니다. 발목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 목덜미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 귓볼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 어떻게 성폭력범의 성적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 가려야 하는지요?
    만약 성적 정체성이 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혼란을 지적하실거라면 그런 사회적 요견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신 게 옳지 않을까요? 성교육이나 남녀 모두 성이 소중하고 성관계라는 건 단순한 욕망충족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던가 나의 욕구나 충동 때문에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죽일 수도 있다던가 그런 교육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상품화하고 생산해 내는 자본에 대한 비판이나요.

  40. 진화심리학이고 뭐고 비유가 어떻고를 다 떠나서 그냥 간단히 생각해보자구요. 요즘 같이 더운 여름날 내 딸이 민소매 차림에 핫팬츠를 입고 귀가하던 밤에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럼 그 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땅에 떨어진 돈을 보면 주워가고 싶은 것처럼 네가 그렇게 입고 다니면 남자들이 강간하고 싶은게 당연하지.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니. 그러니 네게도 잘못이 있다.”라고요.

  41. 뒤늦게 기어들어와서 참 흥미롭게 말싸움을 지켜봤습니다
    이교수가 품위없고 경솔한 소리를 한 것 같기는 하네요
    제 보기에 김현수님은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자, 싫은건 싫은거고 아닌건 또 아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보상심리 비슷한 것 때문에 불필요한 것에까지 감정을 쓸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바람직한 태도를 생각해보자,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구요
    그리고 각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기에 앞서, 그리고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탄탄하고 그 감정은 또 얼마나 절실한지를 떠나서, 김현수님한테 굳이 덤비고 다구리깠던 다른 분들은 아무튼 뭔가 까버리고 싶은 욕구를 감당하지 못 하는 상태로 보입니다
    저는 여기서 왜 이교수나 김현수님에게 사고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간주들 하시는건지 의아하네요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나 빼어난 미모를 보고는 그만 못 참고 사고를 치는 모자란 남자개체가 실제로 있다는게 주지의 사실이잖아요
    세상의 남자가 모두 법을 잘 지키고 선하고 상냥하지 않다는거, 철 든 여자라면 상식 아닌가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현실에 대해, 사후에 분노하고 징죄를 요구하기 앞서서, 다름아닌 나를 내가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그렇게나 고까우세요들?
    물론 이게 “그렇게 입고 다녔으니 당해도 싸다” 식의 정신빠진 방향으로 진행되기 십상이기에 감수성과 피해자에 대한 연민을 넘어 ‘anti-macho 꼴통주의’로까지 나가버린 분들에게는 아주 게딱지같은 소리이겠지만, 책임전가나 양비론으로 옥신각신 하기 이전에, 야하거나 야하지 않거나 만만하거나 만만하지 않거나 하여간 저지르는 새끼들이 분명히 있단 말이에요
    즉 확률상 완전한 0%이 아니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준비를 해 둬야 하는것이죠
    게다가, 피해를 입은 쪽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헛소리를 누가 한다면 헛소리를 한 그 때의 그 놈을 혼내야지, 불쾌한 통계상의 숫자 1이건 존엄한 한명의 인격으로써든 아무튼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자는 태도에다가 화풀이를 하는게 부당하기도 하구요
    대체 왜들 그리 싫어하나 싶고 필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은행이니 돈이니 하는 비유는 생ㅋ략ㅋ합니다
    아니 근데 벌써 한달이 넘었는데 이거를 누가 볼라나 몰라

  42. 야함의 기준은 있나요? 그리고 그렇담 강도에게 털린 은행의 경우 돈으로 강도들을 충동시킨 은행의 책임도 있는거네요? 그렇담 은행을 싹 다 없애버리는게 은행강도범죄를 없애는 지름길이겠군요!!!
    우리나라에서 높은 위상을 가진 대학의 교수라는 사람이 야한옷을 입은 여성을 보면 강간하고 싶어진다는 일부 성범죄자들의 동물적인 생각에 공감하고 이해한다니… 저 교수에게 수업듣는 여학생들이 걱정되네요

  43. 민노씨 님 글 보고 구글 가입까지 하면서 댓글씁니다
    님이 쓴 글증에 다 개소리지만 특히 개소리인게 하나 있음
    이게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남
    일단 유혹이라는 개념이 없어보임
    아니 그냥 개념이 없어보임 정말 쯕빵한대 때려주고싶음
    어떻게 이런 사람이 글을쓰나 싶음 정말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심함
    공동체 운운하기 전에 자신이 중립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쓴 글 인지 이 글이 정말 주관적인지 먼저 생각좀 적어야 겠음 물론 가념이 없는 님에겐 힘들겠지만
    요즘 인터넷 기자는 타자만 칠줄알면 개소닭들도 할수 았나보네 ㅎ

  44.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나 빼어난 미모를 보고는 그만 못 참고 사고를 치는 모자란 남자개체가 실제로 있다는게 주지의 사실이잖아요” // 주지의 사실이라.. 하하… 저 교수도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저런 발언을 한거겠죠ㅎㅎ;; 성폭행에 대해 뭔가 착각하고 계신거 같은데, 정작 성폭행 피해자들을 보면 빼어나기는 커녕 평균~평균이하의 외모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노출이 심한 옷이랑 성폭행의 상관관계도 없고요. 그렇게 치면 겨울엔 아무도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으니 성폭행이 없어져야겠군요? 얼굴까지 가리고 다니는 중동국가들은 성폭행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겠군요?ㅋㅋ 길거리에서 벗고 썬텐하는 핀란드 같은 나라의 성범죄율 찾아보세요. 에혀…. “여자들이 야한 옷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건데 어찌 그걸 ‘뭔가 까버리고 싶은 욕구를 감당하지 못 하는 상태’로 볼 수가 있는지ㅉㅉ 그리고 사고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일어난 일을 사고라고 합니다.. 성폭행같은 범죄는 사건이라고 하죠. “사고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 “그만 못 참고 사고를 치는 모자란 남자” 등등…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없이 들으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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