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금요일, 만 59세로 아버지께서 소천(召天)하셨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의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공장 노동자로 32년간 근속하시다 퇴직한 지 5년만이었고, 사인은 담도암이었다. 이 글은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속한 베이비붐 세대(1946년에서 1965년 출생)에 대한 글이다.
중국 부상 이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한국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던 그들이 조기 퇴직과 청년실업의 그림자 속에서 어떻게 슬픈 노년을 보내고 있는지 적어본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희망과 비극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최소한의 정의의 개념은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한국 사회는 정의로운가? 한국 경제 발전의 중추였던 베이비붐 세대들은 어떤 보상을 받고 있는가?
물론, 그들이 나를 포함한 현재 청년들이 맞이하고 있는 것보다는 더 희망이 보이는 경제적 상황에 청년으로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청년이던 1970년대, 1980년대 한국 경제는 무섭게 발전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취직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꾸준히 저축하면 내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1997년에 들이닥친 IMF 경제 위기를 통해서 그렇게 열심히 모아놓은 재산과 가정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걸 경험한 세대, 가정을 돌보기 위해 평생동안 직장에 충성하다 보니 퇴직 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태반인 세대다. 그리고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로 퇴직한 후 방황하는 가운데 위기의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 경제의 거품이 꺼져가고 자신의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걸 본 세대, 자녀도 경제 위기 가운데 취직, 결혼, 육아로 허덕이는 가운데 의지할 곳을 찾기가 어려운 세대기도 하다.
가계부채, 조기퇴직, 그리고 청년실업
구체적으로, 경영 컨설턴트사인 맥킨지가 2012년 1월에 발표한 세계 10대 경제국가의 부채 탈출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2011년 1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부채는 주요 10개 경제국가 중에서 6위로 이탈리아와 비슷하고, 이 중 가계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로 한국보다 부채가 많은 나라보다 더 높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경우는 가계 부채가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해당 분기에 약 13% 정도였다. 이는 한국이 국가 전체가 갖고 있는 부채 수준도 결코 낮지 않지만, 그중에서 가계가 부담하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의 가족 경제상 이 가계 부채 책임을 가장 먼저 지고,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건 아버지다. 그러나 이들은 IMF 이후 빨라진 정년퇴직을 맞아서 경제 능력이 격감하거나 상실한 경우가 많다. 나아가, 최근 지방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은 이들이 평생 벌어서 투자한 자산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다. 또한, 가정경제에 새로운 뒷받침이 되어줘야 할 자녀들은 취직, 결혼, 육아 문제로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국가 통계상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한국 실업률은 약 3~4% 정도이지만, 한성대 김상조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 통계에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빠져있다. 예를 들어 교육을 마치고 학원에 다니고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은 실업 인구로 잡히지 않는다. 2010년 비경제활동인구는 1,600만이었고, 이 중에 그냥 쉬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이 160만이었다. 이런 수치를 고려하면 한국의 실업률은 약 10% 정도 된다.
그리고 이들 역시 결혼, 육아 과정에서 끓임 없이 오르는 전세가를 고려하면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경우가 허다하다. 조기 퇴직과 청년실업의 진퇴양난 속에서 베이비붐 세대들은 기댈 곳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왜 한국 남성의 암 사망률이 OECD 최상위권인가
이렇게 놓고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 남성 암 사망률이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OECD 보건 지표를 보면 한국이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 다음으로 남성의 암 사망률이 높았다. 이들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수준이 한국보다 떨어진다는 걸 참작하면, 한국은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나라 중에서 암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국내 주요 대학 병원에서 최근 암센터를 건립하는 추세를 보면 국내 암 환자 증가율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국내 남성 폐암 사망률이 높다는 걸 고려하면 흡연율도 한 원인이겠지만, 보다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원인은 앞서 설명한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그들이 일하기도 쉬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하고 싶지만, 그들이 젊을 때와 달리 그들을 받아주는 직장을 찾기란 어렵다. 쉬고 싶지만 쉬기에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있는 가정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권위주의적 정치, 권위주의적 문화 속에서 자라난 세대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문제를 공유하고, 거기서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가족들과 나누기도 어렵다. 일만 하다 보니 마땅한 취미 생활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것에 대해서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경향도 강하다. 그런 가운데서 일하지도 쉬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끓임 없는 고도 스트레스, 거기서 파생된 불규칙한 삶, 잘못된 생활 습관이 만들어 낸 것이 암이다.
우리 아버지들을 위하여 그리고 한국 사회의 성숙을 위하여
이 글은 내 아버지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아버지들을 위한 글이다. 그리고 그들을 아버지로 둔 우리 세대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 마음껏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규범적으로뿐만 아니라 실리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다.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경제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데 중요한 동기 부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밤낮으로 노력해도 늙고 병들면 대책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그리고 그 리스크가 나날이 높아만 간다면, 사회 전체의 근로 의욕은 감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늪에 빠지는 사회에 미래가 있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권이 추구하려 하는 창조경제도 이 문제를 피해 가기는 어렵다. 창조는 리스크 관리가 가능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안함을 느끼면 도전하기보다는 움츠러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집안이 어렵고, 아버지가 어려운 데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아주 큰 부담이다. 따라서 슬픈 베이비붐 세대들이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동시에 이런 세대를 양산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 모두를 위한 것이다.
글 잘봤습니다. 이름이 낯이 익었는데 제가 전에 봤던 책의 저자셨군요. 슬로우뉴스에도 좋은 글 많이 기고해주세요~
[베이비붐 세대]
詩人/靑山 손병흥
가난하고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
삶이 고달팠던 전후세대로 태어나
한국산업화의 기틀 위해 앞만 보며
중동과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를 무대로 청춘조차 묻은 채
글로벌시대 선진국대열에 이르기까지
새 역사를 창조했던 일등공신 지친세대
지난날의 찬란했던 과거 회상은커녕
어느새 점차 중심에서도 물러나버린
연이은 부모와 자식을 위한 부양에다
농업세대 IT세대사이 중간에 끼인 채
여전히 소통이란 가교역할로 지쳐가는
아직까지 쓸모 있고 건강한 몸이지만
조기퇴직하거나 직장 밖으로 밀려나와
그저 고달픈 여정 인생사 귀로에 서있는
마냥 쓸쓸하게 거리를 떠도는 베이비부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