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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목표는 정권의 획득”이며,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라는 구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중학교 시절, 별생각 없이 암기하고 주관식 시험 답안으로 작성한 경험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 간단한 두 명제 뒤에 숨어있는 반사회적 가치의 무게를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치권력의 획득이 지고지순의 목표가 되어 선거 전후 180도 말 바꾸기를 핵심 선거전략으로 삼는 정당들. 소비자들의 입으로 뭐가 들어가든 개의치 않고, 하천에 오물을 몰래 흘려보내며,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에 꿈쩍하지 않는 기업들.

우리는 매일매일 ‘정권 유지와 획득에 도움이 되는 방향’,’비용 절감 및 수익 극대화 전략’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반사회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목도하고 있다.

교육의 목표는… 이윤 추구?

ghoguma, "sorrow" (CC BY)
ghoguma (CC BY)

눈을 돌려 교육을 바라보자. ‘교육’이라는 말에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뜻이 서려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도 교육의 목표를 선뜻 ‘성적 향상’과 ‘스펙 쌓기’로 정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보다는 행동이 본질을 더 잘 보여주는 법. 실제 투입되는 시간과 인력, 자본을 생각하면 “초중등교육의 실질적 목표는 각종 시험 대비”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일례로 2012년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근거한 한국교육개발원(KDI) 자료를 보면, 지난 20년간 교육물가지수를 반영한 실질 공교육비는 연평균 0.3퍼센트 감소한 데 비해 사교육비는 매년 5.5퍼센트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빈부격차의 꾸준한 심화를 생각한다면 대도시 중산층 이상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상승했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교육비의 지출은 늘었지만, 청소년 사망 원인으로 자살은 2010년 이후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중고교생의 가장 큰 자살 충동은 ‘성적 및 진학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역설적이게도 ‘교육’은 팽창했지만, 학생들은 더욱 불행해진 것이다.

질문: 우리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교육을 하고 있는가 

지금 교육은 총체적 부실 상태다. 우리는 황폐화한 교육 현실을 직시하고 기성세대의 중대한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 청소년의 ‘멘붕’ 이면에 교육의 붕괴가 있고,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 책임이 있다는 점을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서로 잘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다. 죽어가는 학생, 이 사회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결단해야 할 때다.

최근 선행교육금지 입법 논의가 한창이다. 선행학습이 법적으로 금지될 수 있는가에 관한 논란은 사교육 위상 재검토, 국가의 교육에 관한 의무 범위, 학부모와 사교육업계의 관계, 학생 발달과 교육과정 간의 관계, 교육의 근본 목표 등에 관하여 광범한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행교육 금지 입법 찬반 여부를 떠나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우리는 학생들을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가? 즉, 우리는 장사가 아닌 교육을 하고 있는가?

사교육 조장하는 나쁜 광고의 하나로 제보된 사진 (출처: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사교육 조장하는 나쁜 광고의 하나로 제보된 사진 (출처: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이 질문에 간단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교육의 문제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사회 구조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진지한 성찰, 반성, 소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적 제도적 개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 글은 사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한 가지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경영학적인 개념을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이다. 교육 문제를 다루면서 교육학이 아니라 경영학 개념을 빌린 것은, 흔히 ‘학원’이라고 불리는 사교육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전제하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교육 주체로서의 실천 윤리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교육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인식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일은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사교육,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기

위키백과에 의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만들어졌고, ‘기업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금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다. CSR 개념의 철학적 한계에 관한 지적, 경영자 입장에서 바라본 기업 성장 전략과의 충돌 등에 관한 학술적, 실천적 논쟁이 있지만, 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비즈니스 전략의 측면에서 중대한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CSR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하버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니셔티브'(Harvard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Initiative)의 정의를 살펴보자.

CSRI
하버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니셔티브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전략적인 측면에서 정의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지 벌어들인 이윤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윤 창출 과정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선활동이나 규범의 준수에 그치지 않고, 직장, 시장, 공급망, 지역사회, 공공 정책 등 기업의 영향이 미치는 제반 영역들에서의 관계들, 나아가 일체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기업의 관리 방식까지를 포괄한다.”

“We define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strategically.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encompasses not only what companies do with their profits, but also how they make them. It goes beyond philanthropy and compliance and addresses how companies manage their economic, social, and environmental impacts, as well as their relationships in all key spheres of influence: the workplace, the marketplace, the supply chain, the community, and the public policy realm.”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업의 성과뿐 아니라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문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환경과 커뮤니티, 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이 CSR을 주주와의 관계나 기업 이미지 홍보, 브랜드 로열티 등의 영역에서 핵심적인 전략으로 채택한다. 개별 기업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이 사람을 키워내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육기업에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무와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교육기업을 운영하는 주체, 교육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교육을 단순한 상품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교육 서비스 행위에 엮여 있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요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교육자로서 학생을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학생, 학원강사, 그리고 CSR

나는 영어교육 실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몇 명의 학부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연구 참여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느 유명 어학원은 하루에 암기해야 할 단어의 숫자가 수십 개에 이르고, 수업 관련 과제까지 더하면 최소 2~3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학원 강의 2시간에 숙제까지 하면 하루에 꼬박 다섯 시간을 써야만 학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정규 학교 수업과는 별도의 학습량이다. 이 상황을 하버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니셔티브가 제시한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이 교육기업은 영어교육 전문가를 노동자로 고용하여 학원생의 언어능력 향상에 도움을 줌으로써 이윤을 추구한다. 최고의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단기간 안에 언어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하게 시키면 된다고 판단한다. 이를 위해서 엄청난 양의 과제를 부과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때로는 학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단기간 안에 성적과 시험 점수의 향상을 보인 학생들은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학습자들이 받는 지적, 정서적, 신체적 스트레스의 양이다. 우선 다섯 시간이라는 시간 자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루 5시간의 영어공부가 학습자에게 얼마만큼의 부담인지 쉽게 아는 방법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한 주에 이틀씩 정규 근무 시간 이후 5시간씩 잔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물론 이는 영어 한 과목에 국한된 이야기이므로, 다른 과목의 학원에 다닌다면 잔업 시간과 야근 일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일의 양 자체도 많지만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의 압박 또한 엄청나다. 몸은 잠을 부르는데 학원 과제를 하지 못하고, 잠들면 학원 선생님이나 어머니에게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자괴감이 쌓이다 보면 자기 효능감은 바닥을 치게 된다.

학생만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다. 사실 학원의 폐해를 논의할 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학원강사의 심리다. 지난 한 해, 수업을 통해 다양한 학원 강사를 만났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과도한 숙제를 내야 하고, 엄격한 규율을 유지해야 하고, 반교육적이라고 생각되는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자신의 교육적 신념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학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싶지 않고, 비교육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교수 학습법은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학원의 기본 방침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학원에서 일하기 어려워진다.”

이제 상황을 종합해 보자. 학원기업은 노동자(강사)의 심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과제와 엄격한 훈육을 학생에게 강제함으로써 성적을 끌어올리고 이윤을 창출하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이 때문에 지적, 정서적, 신체적 고통을 받는다. 비유하면,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상품을 생산하면서 수익을 올리지만, 뒤로는 환경적 재앙을 만들어 내는 기업 행태에 불과하다. 물론 그 폐해는 사회가 고스란히 받아 안게 된다.

탈선한 열차: 사교육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학생 발달권

사교육의 위력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교육이 전인격적인 발달이라는 본질을 무시하는 현실은 단순히 열차가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라 열차가 궤도를 벗어난 긴급상황이다. 그렇다면 국가, 공교육, 사교육, 학부모, 교사 모두가 힘을 합해 교육이라는 열차를 최대한 빨리 다시 궤도에 진입시켜야 한다.

국가는 거시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행정을 혁신하며,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를 바꿔가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를 인격체로 대하면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교육 방향을 정해야 한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발달시키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은 자신이 떠맡아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업체’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사교육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사교육은 장사’라는 생각을 압도하고, 학원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육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학습자 관점에서 ‘전인적 발달전략’을 적극 제시해야만 한다. 단기 성과가 아니라 인간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학습자는 학원생이기 이전에 전인적 발달이 필요한 인간이다. 또한, 학생은 지식을 소화해야 할 지적 존재일 뿐 아니라 누구보다 민감한 감정을 지닌 정서적 존재이며, 왕성한 신체적 발달을 경험하고 있는 몸의 주인이기도 하다.

학습자는 지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균형 잡힌 발달을 요구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를 지니고 있다. 교육기업은 학습자들의 발달을 돕는 파트너가 되어야지, 그들의 잠재력을 고갈시켜 자기 잇속을 채우는 장사치가 되어선 안 된다.

사교육의 이윤추구 권리는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권을 침해할 수 없다. 전자는 상법적 권리라면 후자는 헌법적 권리다. 사교육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이라는 기초 위에 대한민국의 모든 사교육 기업들이 교육자가 지녀야 할 자부심을 회복하고, 학부모들은 자녀의 전인적 발달을 위해 애쓰며, 학생들은 충분한 고민과 소통을 통해 교사들과 함께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공부길’을 내는 사회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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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과 그에 따른 심각함을 잘 설명하고 있어, 매우 공감되네요. 이런 목소리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교육의 큰 변화와 혁신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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