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아유, 아버님~ 요즘은 미리 준비 안 하면 학교 들어가서 따라가질 못해요~”
얼마전 유아 가정방문교육을 받아보려고 상담을 했다. 상담 사원은 입학까지 몇 년이나 남은 아이 앞에 대뜸 초등학교 교과서를 펼쳐놓았다. 교과서를 보고 놀랐다. 옛날처럼 국어는 기역, 니은, 디귿, 산수(수학)는 일 더하기 일, 이 더하기 이를 가르치는 수준이 아니었다.토론식 국어 수업, 스토리텔링 수학 어쩌고 하는 알 듯 말 듯한 용어를 막 나열했다. 교과서 수준이 높아져서 미리 배워놓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다고 겁을 줬다.
즉, 선행학습을 해야만 하는 환경이 되었다는 얘기다. 뭔가 이상하다.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와중에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하 ‘사교육 걱정’)이라는 단체에서 ‘선행교육 금지법'(정식명칭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안’, 이하 ‘법안’) 제정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법안은 2013년 4월 16일 민주통합당 이상민 의원 외 28명에 의해 발의되었고, 최근 안철수 의원이 이에 관해 부정적인 의견을 언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관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대안 연구소 안상진 부소장을 서면 인터뷰했다.
[/box]
뗏목지기(이하 ‘뗏’): ‘사교육 걱정’은 누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안상진(이하 ‘안’): 송인수, 윤지희 두 대표가 2008년 6월 12일 대학 입시 경쟁, 사교육 고통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단체를 창립했다.
뗏: 법안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려 달라.
안: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국가교육과정에 앞선 교육과정을 운영하지 않도록 하며, 학교시험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이 없도록 한다.
- 대학은 대학입학전형에서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거나 입학조건으로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다.
- 학원․교습소 및 개인과외교습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에게 학교교육과정을 선행하여 교육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내용을 광고․선전하여서는 안 된다.
-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교육부에 교육부 교육과정운영정상화추진위원회를, 시․도 교육청에 시․도 교육청 교육과정운영정상화추진위원회를 둔다.
-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선행교육을 하거나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학교의 설립자 · 경영자 및 학교의 장의 경우 시정명령, 학생정원의 감축, 학급 또는 학과의 감축 · 폐지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하고, 학원설립 · 운영자, 교습자 및 개인과외교습자의 경우 교습의 정지, 과외교습 중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한다.
선행교육은 일종의 반칙이며 정상적인 학교 교육 운영의 방해꾼
뗏: 선행학습과 선행교육(법안 내 표현)은 어떻게 다른가.
안: ‘선행학습’이란 학습자가 학교교육과정에 앞서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행교육’이란 국가 교육과정과 학교 교육과정에 앞서서 학원, 과외 교습자 및 학교 등 교육 관련 기관이 제공하는 모든 교육을 의미한다. 우리가 규제하려는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학교, 학원, 개인과외 교습자 등이 제공하는 ‘선행교육’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뗏: 선행교육이 왜 나쁜가.
안: 혼자서 공부하는 것을 넘어서, 학원 등에서 학교 진도를 남보다 앞서 나가 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경쟁으로서 일종의 반칙 행위라고 본다. 또한 선행교육을 받고 오는 학생들이 많을 경우, 학교와 교사가 수업을 이끌어갈 때 혼란을 겪게 되어 학교 교육의 정상적 운영에 방해가 된다.
뗏: 외국도 선행학습, 선행교육은 하지 않나.
안: 어느 나라도 선행학습과 선행교육을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예로 독일은 선행학습이 공정한 경쟁의 원칙에 어긋나는 반칙이며 학교 수업에 방해를 준다는 이유로 엄히 금하고 있다. 물론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문화적,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다. 말하자면 선행학습, 선행교육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특별한 현상이고,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응급조치로서 법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본다. 앞서 말한 독일에 관해서는 ‘EBS 지식채널e’에서 다룬 적이 있다.
사교육이라는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
뗏: 공교육 뿐 아니라 사교육 영역의 선행교육도 금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안: 그렇지 않다. 선행교육 금지법은 모든 사교육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선행교육과 같이 사회적으로 ‘해로운’ 사교육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이는 먹을거리 중에서 불량식품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0년 4월에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은 과외교습 금지 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에도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을 통해 국가가 부득이한 경우 사교육 문제에 개입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었다.
뗏: 공교육 정상화의 여러 가지 방안 중 가장 먼저 ‘선행교육 금지’를 들고 나온 이유가 있나.
안: 선행교육 문제가 무척 심각하다. 초, 중, 고등학교 가릴 것 없이, 성적, 지역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사교육이라는 과중한 학습 노동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사교육 중 가장 의미 없이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선행교육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첫 번째로 주장하게 되었다.
뗏: 선행교육 금지가 음성적인 고액 과외를 양산할 수 있다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주장들도 있다.
안: 공무원들이 일일이 선행교육 여부를 조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 학부모, 교사를 포함한 국민들, 또는 시민단체가 감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신고 포상금 제도도 시행된다. 예컨대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과속 여부를 감시하지는 않지만, 국민 대다수가 과속을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자제하여 질서 있는 교통문화를 조성하는 것과 같다.
선행교육은 학원 등 사교육 기관의 영업구조와 마케팅, 그리고 학부모의 경쟁과 불안심리가 근본 토양이다. 그렇지만 개인과외는 속성상 학원과 비교하면 보충과 심화 개념이 강하다고 본다. 또한 학원 수강을 통해 서로 비교하며 나타나는 불안과 경쟁 심리가 작용할 여지가 현저하게 적다. 그럼에도 개인과외가 증가하는 것은 걱정되기도 하지만, 학원 선행학습 수요가 모두 개인과외로 이전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본다.
학원총연합회가 선행교육 금지 법안 주도적으로 반대해
뗏: 법안에 반대하는 움직임, 구체적 사례가 있다면 알려 달라.
안: 학원에서 선행교육 상품을 판매하는 분들이 가장 반대가 심하다. 특히 학원총연합회는 홈페이지에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을 밝히고 항의전화를 계속하도록 한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라고도 지시한다. 그래서 국회의원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항의 전화를 하거나 각 홈페이지에 심한 글들을 반복해서 올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각 학원을 통해서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우리 법안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고 설문을 하면서 법안을 왜곡하기에 우리 단체가 반박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뗏: 현재의 입시제도와 학벌주의를 개선하지 않는 한 선행교육 금지는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안: 동의할 수 없다. 입시제도와 학벌주의 때문에 경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교육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선행교육은 다르다. 이건 교육적으로 해악이 너무 크다. 우리는 교육경쟁을 막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불량식품과도 같은 선행교육 상품만 규제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교육은 이 법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즉 중학교 시기 이전의 학생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는 선행교육 상품만을 막자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아이들 중에서 몇 %가 그 내용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나? 전국 1등급 4%? 그보다도 적은 비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행교육은 지역, 성적, 학생의 능력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져 그 폐해가 고스란히 고등학교에서 나타난다. 난이도와 분량은 늘어나는데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은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과 암기 위주의 피상적인 선행학습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이런 불량식품을 없애자는 것이지 사교육을 부정하거나 교육경쟁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뗏: 사교육을 통한 ‘내 자식’ 신분 유지/상승 수요는 여전히 많다. 선행교육 금지가 사교육 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가.
안: 선행교육 금지로 이를 주된 상품으로 판매하는 학원의 감소와 그 사교육은 어느 정도 줄어든다고 본다. 특히 공교육에서 이런 선행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제거해 준다면 훨씬 높은 비율로 줄어들고 특히 학생들의 고통은 많이 해소될 것이다. 일부 과외 시장의 증가는 있을 수 있지만 아까 과외 얘기를 한 것처럼 지금처럼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과외 시장 이외에 온라인 수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일부 있다. 그런데 선행교육은 기본적으로 학생에게 매우 어려운 내용을 억지로 학습하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관리가 되지 않는 온라인의 특성상 개인이 지속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학원의 수요가 온라인으로 이전될 것이라는 예측도 실제보다 훨씬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 의원의 부정적 견해는 지금 고통 받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
뗏: 최근 안철수 의원이 법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논지인데, 이에 대한 의견은.
안: 근본적인 구조개혁은 중요하다. 그리고 해야 한다. 그러나 함께 해야 한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은 참으라는 것인가? 그렇기에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선행교육은 우리 교육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여기에는 학교에서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시험문제, 또 상급학교의 입시 문제, 학원에서 만들어내는 마케팅 원리, 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특별한 기대, 대학 서열구조로 말미암은 경쟁심리, 노동시장의 좋은 일자리 부족 등 관련 요인이 너무 많다. 따라서 우리는 법을 통해 공교육에서의 요인을 없애면서 동시에 학원에 대해 규제를 하고, 학부모의 의식 전환을 위한 캠페인과 근본적인 변화를 함께해야 한다고 본다.
뗏: 법안을 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교육과정정상화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정하고 위원회 구성, 운영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없겠는가.
안: 운영과정에서 선행교육을 판정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많이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 현실에서 제공되는 선행교육 프로그램은 최소한 한 학기부터 길게는 2~3년 선행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이 정도 긴 기간이라면 판단이 어렵지 않다. 한 학기 이상의 선행이 단속되면 1~2개월 앞서는 선행이 만연할 수 있지 않으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사교육 기관을 통한 선행학습 경쟁의 본질은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한 ‘속도 경쟁’이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1~2개월 정도의 짧은 선행교육 프로그램만 수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학부모의 불안과 경쟁 심리를 이용하는 사교육 업체의 마케팅이 효과를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일주일, 한두 달 앞선 선행교육 프로그램을 식별하는 어려움은 상상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필요한 ‘기우’일 뿐이며, 그렇다면 위원회에서 사교육 기관의 과도한 선행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box type=”note”]
슬로우뉴스는 선행교육 금지법안의 국회 통과와 관련 대통령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볼 예정이다. 또한 법안에 대한 독자들의 찬/반 주장과 의견들을 기대한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지난 2013년 5월 28일에 대입전형 단순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후에도 고교 체제 개편, 영유아 사교육 문제, 수학교육과정 문제 등 여러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box]
다들 사교육을 x 나게 까는데요. 사교육이 사회악일까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봐야될거 같아요.
김연아씨가 학창시절때 자신의 피겨 재능을 개발하기 위해 받은 교육 또한 공교육에 속하지 않은 사교육이었습니다.
박태환씨도 마찬가지고요.
과연 단순하게 사교육이 아이들에게 흥미를 떨어뜨리고 아이들에게 고통만 주는 기능을 할까요?
그정도로 애들을 몰아치는 학부모가 기형적인거 아닌가요?
실제로 수능시험을 치는데 필요한 능력을 아이들에게 함양시키는 것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는 공교육 교사도 많은 상황에서 단순하게 사교육이 문제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여기 글을 좀 많이 읽었는데요 윗분 댓글 보니 이 글이 생각납니다
https://slownews.kr/10081
누구나 김연아 박태환이 될수없죠 물론 저도 이런 식의 접근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고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지 않나 싶긴 해여
그래도 우리 공교육이 슈퍼스타 키워내거나 똑똑한 사람들 지원하는 쪽으로 흐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김연아 박태환은 직업이면서 국가대표니만큼 본문에서 설명하는 선행교육과는 차이가 있죠. 공교육의 목적을 말씀하신대로 수능시험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사교육이 커지는 면이 있습니다. 사회가 아쉽게도 많이 빡빡하지만 지역이라든지 집안 형편 등에 따라 불평등한 기회를 가져서는 안되겠죠. 사교육을 당장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공교육이 바로 서는게 여러 모로 긍정적이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