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2015년 봄, 중앙대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하 ‘선진화안’)으로 진통을 앓고 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선진화안의 쟁점을 소개하고, 졸업을 앞둔 재학생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습니다.
중앙대 독립언론 잠망경에서 활동하는 필자(김펄프)는 2009년 시작한 중앙대 구조조정 역사를 몸소 겪은 ‘화석’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선진화안 논란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중앙대 구조조정 역사와 교육부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이라는 ‘맥락’ 속에서 선진화안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편집자)[/box]
2009년 겨울방학 어느 날.
포털 뉴스 통해 ‘폐과’ 통보받다
여느 날처럼 씻고 밥 먹을 준비하며 포털 뉴스를 보다, ‘중앙대 구조조정 계획’ 기사를 발견했다. 이게 뭔가 싶어 읽었다. 세상에, 내 학과 이름을 기사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폐과된다는 이야기였다. 2009년 12월 29일의 일이다. 이날 발표된 계획안은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0개 학과(부)로 통폐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신이 중앙대 새내기라면 최근 비슷한 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개강을 고작 4일 앞둔 날, 온갖 언론이 앞다퉈 ‘중앙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보도한 뒤에야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았나?
학과제가 폐지된다고? 모집 단위를 광역화한다고?
뭔 소리야, 이게!
이제 갓 입학한 대학, 무언가가 크게 바뀐다는 소식에 신입생인 당신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궁금할 것이다. 앞으로 최소 4년은 다녀야 할 내 학교가 어떻게 바뀐다는 건지, 대학본부는 좋은 말로 홍보하는데 왜 언론은 우려를 표하는 건지, 교수들 또한 왜 이렇게 열심히 반대하는 건지.
불운하게도 구조조정의 전운이 감돌던 2009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화석’으로서, 이 글이 구조조정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일단 두산 재단 이후 첫 구조조정 시기인 2010년으로 돌아가 보자.
4년간 세 번의 구조조정
2010년 4월, 앞서 언급한 첫 번째 구조조정 계획은 진통 끝에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부) 체제로 수정, 통과됐다.
2011년에는 가정교육과가 폐과됐다. 학생들은 구조조정 안이 교육부에 제출되기 하루 전에야 이 사실을 통보받았다. 사립대학의 정원조정 계획은 먼저 교무위원회·대학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 이사회에서 학칙개정을 승인하면 교육부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13년에도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번에는 2010년에 폐과 대상이었다가 전공으로 축소돼 살아남았던 비교민속·청소년·아동복지·가족복지 전공이 표적이었다.
여느 때처럼 학생과 교수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에 대학평의원회는 심의를 거부했지만, 구조조정 안은 이사회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구조조정은 절차에 구애받지 않았다.
학과 폐지 논리는 ‘숫자’
세 번에 걸친 구조조정을 지배해 왔던 논리는 ‘숫자’였다.
2010년 구조조정은 아예 기업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 ‘액센츄어’(Accenture)가 계획을 짰다(기억해두자). 당연히 기업 친화적인 계획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이 이리저리 묶여 학부 하 전공으로 격하됐고, 대신 국제물류·금융공학과 등이 신설됐다.
2011년 가정교육과는 교사 임용이 축소돼 ‘아웃풋’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사라져야 했다. 여기서 생긴 정원은 경영경제계열로 이관됐다.
2013년 비교민속학과·가족복지학과·아동복지학과·청소년학과는 아시아문화학부와 사회복지학부 아래 전공으로 묶여있었는데, 2년간 전공 선택률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폐지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이것도 기억해두자).
숨겨진 맥락은 ‘교육부’
대학본부는 선진화안을 진행하면서 지난 구조조정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설명회에서 “폐과는 마음이 아프다”, “지난 구조조정 방식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같은 말들을 남 일처럼 말했을 뿐.
그런데도 여기서 굳이 구조조정 전사(前史)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 선진화안이 지난 구조조정과 다른 맥락에 있는 듯하면서도 실은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올해 구조조정은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과 연관돼 있다. 이것이 지난 구조조정과 다른 맥락이다. 2014년 1월, 교육부는 학령인구 급감 추세에 따라 2023년까지 전국 대학의 정원 16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 대학 등급화 → 정원 감축 → 정원 조정
교육부는 정원 감축안에 따라 대학 평가지표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구조를 바꿔나가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각 대학을 등급별로 분류해 등급이 높은 대학은 정원의 4%, 낮은 대학은 10%까지 감축하면 가산점을 부여한다. 한편 평가지표에 미달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국고보조금 또는 국가장학금 지급을 중단하는 등 제재를 가한다.
교육부 정원 감축안은 대학과 대학 사이 경쟁을 심화하게 한다. 또한, 부실 사학재단이 재산을 보전하면서 대학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으로써 더더욱 피해는 학생의 몫이 된다. 교육부 방침은 학문 단위 특성에 관한 고려 없이 ‘취업률’을 지표로 삼아 인문·예술계열이 주된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여기서 정부 구조개혁 안의 문제점을 더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겠다. 현재 중앙대 구조조정이 ‘교육부 정책에 부응하면서 좀 더 선제 대응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질은 학과제 폐지 통한 무한 경쟁
이처럼 이전의 구조조정과는 다른 맥락이 더해졌고 대학본부가 구조조정이라는 말 대신 ‘학사구조 선진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진화안의 골자는 2016년부터 학과제를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2021년부터는 아예 계열별로 모집하겠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3학기까지 ‘리버럴 아트’라는 이름의 교양을 이수한 후 4학기부터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3월 11일 발표된 ‘수정검토안’에 따르면 자연·공학계열은 2학기 이수 이후, 예체능계열은 입학 시 전공 선택).
이쯤에서 앞서 기억해두자고 얘기한 두 가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컨설팅 업체 액센츄어, 그리고 2013년 전공선택률이 낮다는 이유로 과를 폐지한 구조조정 말이다. 이 두 가지는 이번 선진화안의 시작과 끝에 각각 위치해 있다.
중앙대 미래전략실, 컨설팅 업체 출신 영입
행정부총장 산하에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다. 2014년 1월부터 이곳 실장이 바로 전(前) 액센츄어 이사, 김재훈 씨다. 액센츄어에서 중앙대 구조조정을 담당하다가 내친김에 교직원이 된 셈이다. 그는 작년 2014년 8월 학보사 [중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기획처가 대학 행정 전반에 대한 컨트롤 타워 기능에 집중한다면 미래전략실은 중장기 관점의 전략 수립에 집중한다.” “중앙대의 청사진은 대형융합학문단위, 리버럴 아트 컬리지, 국제화 캠퍼스와 재정적 측면에서의 수익구조 다변화로 이뤄져 있다.” (김재훈 중앙대 미래전략실장)
한편 모집 단위 광역화는 ‘사실상 학과제 폐지를 가미한 학부제의 확대가 아니냐’는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재 사회구조 속에서 학부제는 취업에 유리한 특정 학과로 선택이 쏠리는 현상으로 귀결되고, 수업 개설이 어려울 정도로 선택률이 미달하는 전공은 2013년 구조조정에서 그랬듯 폐지를 피할 수 없다.
결국, 더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모집단위 광역화는 ‘돈 안 되는’ 전공들의 순차적 폐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대학본부는 정원의 120%까지 전공 선택을 허용함으로써 특정 전공 쏠림현상과 선택자 미달로 인한 전공폐지를 방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발표 자료와 언론보도에서 나타나는 대학본부의 입장을 정리해보면 명확히 정해진 방침 없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다.
레인보우? 아카데믹 어드바이저리?
대학본부는 선진화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능열쇠인 것처럼 홍보한다. 교양교육 혁신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중학위 도입과 복수전공 확대로 전공 진입 경쟁에 탈락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겠다고도 한다.
학생 한명 한명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레인보우 시스템’과 ‘아카데믹 어드바이저리 시스템’의 도입으로 전공에 대한 만족도와 진로 만족도를 효과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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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시스템:
학생 경력개발 시스템. 학생의 입학부터 학업-생활-장학-졸업-동문 활동으로 이어지는 생애 주기 단계별 통합 경력관리를 하게 된다. 학생에게는 경력 비전 및 실천 계획 수립, 진로 탐색 및 경력 맞춤형 전략 수립, 필요 역량 이해/진단 및 수준 관리, 비전 달성을 위한 요구사항 구비 등 경력개발 활동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아카데믹 어드바이저리 시스템:
아직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1,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담당 지도교수가 개인별 상담을 통해 전공과 진로에 관한 전문적인 조언을 함으로써 진로를 모색하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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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진짜 원하는 것
학교 당국이 말하는 ‘장밋빛 미래’는 학과제 폐지를 통해서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정책 추진과 제도 도입은 현실적으로 재정 투자에 관한 문제다. 학과제를 폐지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본부는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지 못하는 문제가 중앙대의 가장 큰 문제인 양,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인양 호도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오히려 교원의 충분한 확보와 그를 통해 더 다양한 강의를 선택할 수 있는 수업환경이다. 학생들이 정말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1분이면 수강신청이 모두 마감돼 온종일 클릭질하며 빈 강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콩나물’ 강의실에서 수업이 바뀔 때마다 일대 전쟁이 벌어지고, 하위 5%는 무조건 D+ 학점이 부과돼 수강 인원이 적은 강의는 평가가 두려워 감히 신청할 엄두도 내지 못해 결국 폐강된 강의를 신청한 학생들은 한 학기를 통으로 날려버리는 상황을 해소해 달라는 게 학생들의 진짜 목소리다.
‘넘어지면 X된다’ 강박증 강요하는 학교
하지만 대학본부는 자신들의 계획에 대한 어떤 합리적인 대책도 마련해두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지금 당장 재정 투자와 학사 제도 개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방관하는 본부를 학생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 전공학습 기간 축소 대책 = ‘시간당 학습량 강화’
- 전공 선택률 저하 대책 = ‘교수와 학생의 자구적인 노력’
그 무엇도 정상적인 대책은 아니다. 제도 부작용 해결을 교수와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에 가깝다.
결국, 선진화안은 극단적인 경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정 인기 있는 전공에 지원자가 몰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2016년부터 F학점 외에는 재수강할 수 없고, 하위 5%는 무조건 D학점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학생들은 한 번이라도 넘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강요받으며, 숨 막히는 100m 달리기를 입학 첫 학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대의 선택, 더 할 나위 없었다’
‘그대의 선택, 더할 나위 없었다.’ 입학식 즈음해 영신관에 크게 걸린 문구다. 종영한 인기드라마 [미생]의 명대사를 약간 변형한, 대학 로망에 부푼 당신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럴 수 있을까?
현재 상황에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당신의 선택을 더 할 나위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안을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 뒤에, 필요하다면, 스스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