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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윤희숙 연설 동영상을 보았다. 바르르 몸을 떠는 게 눈에 띄었다. 국회 연설의 데뷔라는 긴장감에다 (옳건 그르건) 경제학자로서의 신념 때문에 그런 것처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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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규제 회의론 

윤희숙의 세입자 걱정에는 그에 대한 호오를 떠나 진심이 담겨있다고 본다. 임대료 규제를 저어하는 경제학자의 신념은 유서가 깊고 강력하며 광범위하다. 1974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은 스웨덴 사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했는데, 그가 1965년에 남긴 말은 규제 반대자들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서방의 어떤 나라들에서 임대료 통제는, 아마도, 용기와 이상이 부족한 정부에서 나온 형편없는 정책 중 최악의 사례일 것이다.”(군나르 뮈르달) [footnote]“Rent control has in certain Western countries constituted, maybe, the worst example of poor planning by governments lacking courage and vision.(Karl Gunnar Myrdal, 1898년 12월 6일 ~ 1987년 5월 17일)”[/footnote]

다음의 레파토리는 더 흔하다. 윤희숙도 (연설에는 아니지만) 인용하는 문구다.

“많은 경우에, 폭격을 제외하면 임대료 통제는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술로 보인다.”(아사르 린드벡)[footnote]“In many cases rent control appears to be the most efficient technique presently known to destroy a city?except for bombing.”(Assar Lindbeck)[/footnote]

아사르 린드벡(Assar Lindbeck)이 1972년에 한 말이다. 스웨덴 출신의 린드벡은 15년간 노벨 경제학상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좌파에서 우파로 간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미국과 캐나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보면 각각 93%, 95%, 87%“임대료 상한제는 주택의 양과 질을 떨어뜨린다.”[footnote]“A ceiling on rents reduces the quantity and quality of housing available”[/footnote]는 명제에 동의했다. 조사 연도는 1990년, 1986년, 2001년이다.

이처럼 경제학자 대다수는 임대료 규제에 강한 회의론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대한 분석이 대부분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고하는 실증 분석도 쌓여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다면 윤희숙의 세입자 걱정이 경제학자로서의 신념과 근거에 기반하고 있음이 단번에 눈에 보일 것이다.

군나르 뮈르달(왼쪽), 아사르 린드벡(오른쪽)
군나르 뮈르달(왼쪽), 아사르 린드벡(오른쪽)

1세대 ‘경직성’ → 2세대 ‘유연성’ 

임대료 규제는 대체로 70년대를 기준으로 1세대와 2세대로 나뉜다. 1세대 규제 임대료를 아예 동결하는 수준의 경직성이 특징이다. 임대료 규제에 찬성하는 학자조차 그 부작용을 무시하지 않는다. 2세대 규제 주택의 질과 공급, 임대인의 사정을 고려하는 유연한 방식으로 나라마다 상이하게 전개되었다.

국제적으로 볼 때, 폭격에까지 비유되는 과거 임대료 규제의 심각한 폐해를 근래에도 걱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아래 표는 세입자의 계층별 주거 여건에 대한 유럽 23개국의 비교이다. 표는 복잡하지만, 그저 상식적인 내용이다. 세입자의 주관적, 비주관적 주거 여건이 소득에 따라 좌우됨을 보여준다.

소득에 따른 주택 상태와 주거 평가

어느 나라든 저소득층은 그 이상의 계층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무겁다’고 답하는 비율이 높은 와중에, 평균 면적이 작고, 겨울에는 덜 따듯하고, 눅눅한 벽이나 녹슨 창문 등 한층 낡은 집에 살며, 주관적인 주거만족도가 떨어진다. 단지 평균 방 개수만 몇몇 국가에서 조금 더 많다고 조사된다.

이 23개국은 각기 상이한 임대차 규제를 실시한다. OECD와 유럽통계청의 규제 강도 측정에 따르면 며칠 전의 한국처럼 규제가 약한 나라부터 중간인 나라, 엄격한 나라로 나눠진다. 규제의 엄격한 정도는 세입자의 주거 여건과 이렇다 할 연관이 없다. 실로 결정적인 주거 여건의 변수는 ‘소득’이다.

만일, 임대료 규제로 인해 싸지만, 질이 나쁜 주택에 살게 되었다고 할 때, 소득만 허락하면 얼마든지 괜찮은 주택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이 최근의 진화된 규제다. 임대인이 집을 수리해 품질을 높이면 그만큼 월세를 올릴 수 있어 주택의 질적 하락도 방지한다. 민간임대의 공급량과 임대료 규제의 엄격한 정도는 국제적으로 어떠한 상관도 나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단위에서 본다면, 임대료 규제의 역작용을 현재에까지 심히 우려하는 경제학자들은 과잉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지적으로는 다르다. 당장 한국에서 시행되는 임대차 규제는 ‘경직성’이 강하다. 총 4년의 보장 계약기간은 짧지만, 획일적인 5% 상한은 주택의 시설이나 입지, 임대인의 수익 등을 임대료 책정에 반영하는, 엄격하면서도 유연한 규제와 거리가 있다.

문제는 전세다 

무엇보다 전세가 문제다. 주거비 지출은 전세, 자가, (보증부) 월세 순으로 커진다. 임대인에게 전세보증금은 현찰인 월세와 달리 일종의 어음과도 같다. 보장된 수익이 아니다. 저금리로 기대 수익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과격한 인상도 빈번하다. 전세금 인상을 5% 상한으로 묶으면, 현찰인 월세보다 더더욱 메리트가 떨어진다.

폭격을 거론하며 5% 상한제를 비판하는 윤희숙의 발언은 과장되고 경제학 속 과거에 얽매여 있지만, 임대인에게 전세를 놓을 유인이 떨어진다는 점은 경제학까지 가지 않아도 자명하다. 이는 곧 주거비 부담이 가장 큰 월세가 늘어날 유인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임대료 규제가 셋집의 공급을 줄이고, 세입자에게 도리어 피해를 끼친다는 경제학의 오랜 비판이 5% 상한제로 인해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규제 강화로 인해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더라도 별 문제가 아니라며 자신감마저 보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세는 물론 고액 보증부 월세도 사라지고, 200만 원 내외의 소액 보증금 월세가 표준이 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계속해서 자기 무덤을 판다는 인상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oonbyeong.yoon/posts/3270526873013693
민심과는 거리가 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 (출처: 윤준병 페이스북)

전세를 통해 ‘초특가 임대료 할인’을 받던 세입자들이 갑자기 민주당 때문에 그 할인을 못 받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기분일지 이들 정치인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윤희숙이 실제로는 ‘가짜 임차인’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헐뜯어 봐야, 민주당 발 주거난에 곤욕을 치르게 되는 이들은 그런 가십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진짜’ 좋은 주거의 세 가지 조건 

국제 비교에서 임대차 규제는 고르게 좋은 주거 여건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변적 요인이다. 세심하고 신중한 규제가 경제학자들 말마따나 극심한 폐해를 불러오진 않지만, 규제 찬성자들의 호언처럼 혁혁한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공급 부족으로 임대인 우위의 시장인데다 규제까지 어설프게 강화되어 다양한 부작용이 점차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 여당의 자신감만큼 성과가 나오면 국민과 정권에 모두 좋은 일이지만,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고르게 좋은 주거 여건의 결정적 요인은 세 가지다.

  1. 다양한 가격대의 풍부한 주택 공급
  2. 여성과 남성 모두의 높은 고용률
  3. 적은 (임금) 격차

이런 조건에서 각자의 형편에 맞는 점유 형태를 찾아가며 전반적으로 양호한 주거 여건이 도출된다.

문재인 정부는 세 요인 모두에 해법이 없다. 정부 여당이 총동원되어 주거 안정을 이루겠다며 각종 대책을 쏟아내지만, 어떻게 해도 주거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00만호 공급을 외친 제1야당은 공급량 수치는 바람직하지만 다른 두 요인에 대안이 없다. 공급을 확대해도 소득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로 인한 부작용이 불거진다. 정의당은 더 ‘센’ 규제를 외칠 뿐 정책 역량이 미진하다.

주거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나라는 없다. 하지만 전반적인 주거 여건에서 한국보다 월등한 나라들은 존재한다. 한국의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어디인지 아예 그것부터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고질병이 괜히 고질병이 아닌 셈이다.

좋은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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