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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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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5월 초 여러분이 오고 가는 길의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도 그때와 6월을 맞은 지금의 풍경은 분명히 다르겠죠. 이처럼 우리는 사소한 부분이나 매일매일 접하는 것들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문득 ‘언제 이렇게 주위 모습이 바뀌었지?’하고 깨닫는 경우가 생기죠. 요즘 가로수길서점으로 출근할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버릇이 생겼는데요. 어제 없었던 꽃이 피지는 않았는지, 매일 지나치는 옷 가게 쇼윈도에 어제까지 없었던 옷이 걸려 있다든지… 이러한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답니다. 오늘은 시집 한 편을 가져와 봤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인데요. 이 책에서는 이처럼 우리가 쉽게 놓칠 수 있는 사물을 관찰하고 그 사물의 특징에서 삶의 의미를 담담하게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함민복 시인과 책 소개 시작해 볼게요.

저자 함민복은 196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였는데요. 시집 “우울氏의 一日”,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과 함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등을 냈습니다. 이 외에도 시화집 “꽃봇대”,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 등이 있습니다. 그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그리고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함민복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입니다.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수상 경력을 뽐내며 모든 아픔과 희망을 노래해 온 저자가 네 번째 시집 이후 8년 만에 펴낸 시집인데요. 이 책은 정갈한 언어에 실린 솔직하고 담백한 삶의 목소리로 일궈낸 70편의 시편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이전의 작품보다 좀 더 객관화되고 담담해진 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이 책을 볼까 말까. 좀 더 자세히 이 책을 살펴볼까요? ‘오늘의 책 미리 읽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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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1
<숯> 처음 불타보는 거라고 / 거짓말 한번 해보렴 / 숯아 // 당신 어머니 /탄 속 꺼내놓고 / 그렇게 한번 말해보실래요

Page. 40-41
<나이에 대하여> 십년쯤 된 가지에 까치집을 얹고 있는 / 삼백년 된 느티나무의 가지 끝은 / 바람에 흔들리는 / 한살이고 새순이고 / 나이 먹지 않은 지금이다 // (중략) 상승의 욕망과 하강의 욕망이 맞부딪치는 부분이 /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힘에 끊어질 것 같고 / 서로 박차는 힘에 다져져 단단할 것 같기도 한 // 삼백년 묵은 느티나무 나이는 삼백살이고 / 한살이고 새순이고 / 실뿌리 한 가닥 막 습기에 젖는 순간이다

Page. 80-81
<안개> 안개는 풍경을 지우며 / 풍경을 그린다 // 안개는 건물을 지워 / 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다 // 안개는 나무를 지워 / 무심히 지나쳐 보지 못하던 나무를 그려보게 한다 // 안개는 달리는 자동차와 /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나누어놓는다 // (중략) 안개는 물의 침묵이다 / 안개는 침묵의 꽃이다

Page. 88-89
<씨앗> 씨앗 하나 /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 포동포동 부끄럽다 / 씨앗 하나의 단호함 / 씨앗 한톨의 폭발성 / 씨앗은 작지만 / 씨앗의 씨앗인 희망은 커 / 아직 뜨거운 내 손바닥도 / 껍질로 받아주는 / 씨앗은 우주를 이해한 / 마음 한점 / 마음껏 키운 살 / 버려 / 우주가 다 살이 되는구나 / 저처럼 / 나의 씨앗이 죽음임 깨달으면 / 죽지 않겠구나 / 우주의 중심에도 설 수 있겠구나 / 씨앗을 먹고 살면서도 / 씨앗을 보지 못했었구나 / 씨앗 너는 마침표가 아니라 / 모든 문의 문이었구나

Page. 102-103
<도라지밭에서> 길을 가다가 도라지 / 밭에 올라가보았지요 / 꽃 들여다보고 있으면 / 주인도 혼내지 못할 것 같았고 / 혼내도 혼나지 않을 것 같았지요 // 고향집 장독대 뒤에 피어 있던 / 도라지꽃도 까마득 진 줄 모르고 피어났지요 // 도라지 대궁 도라지 잎들은 무뚝뚝한데요 / 하얀색 보라색 꽃들은 새색시 같았지요 / 백도라지도 보라색 도라지도 / 꽃봉오리 맺힌 것들은 다 하늘 향해 있고요 / 핀 꽃들은 벌들 들락거리기 좋게 목 숙이고 있데요 // 보라색 꽃잎에 들어갔다가 / 금방 흰 꽃잎에 들어가는 벌 / 어지럽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요 / 세상에서 가장 환하고 아름다운 / 식탁을, 직장을 가진 벌들이 부럽기도 했지요 //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던 도라지들 / 세상에, 벌이 꽃에 앉으면 / 무게중심 착 잡으며 흔들리지 않는 거 있죠 / 저두 절정의 순간이라 어쩔 수 없는지 / 하얗게 아리게 질린 낯빛인데요 // 옛날에 장독대에서 각진 꽃봉오리 터뜨리던 / 폭폭 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 있지요

볼까말까 이 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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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쪽나라 님 : 내가 함민복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은 부족한 삶과 그럼에도 힘을 잃지 않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에서 느껴지는 힘이란 자본주의 삶을 이끌어가는 자기계발적 에너지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패배자들의 정서가 묻어나는 그렇지만 결코 사람다움을 잃지않는 그런 힘이다. 함민복의 시에 등장하는 상황과 인물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런 상황과 인물들이 우리들 주변엔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이니 함민복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 실상을 읽는 것이다.
  • 안도현 님 : 함민복 시인이 새 시집을 보내왔다. 무려 8년 만에 낸 시집이라 한다. 제목을 보고 또 본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제목처럼 사람 울컥하게 하는 시들 많아서 큰 선물 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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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tz2 님 : 가장 두드러졌던 건 시각이었다. 철저한 도시 아이로 획일적인 것들만을 보며 자라온 나에게는 아마도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법한 다채로움. 그 안엔 이유모를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중략) 왠지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쓸 것만 같았다. 그런 작품들이 가득 모여 한 권의 책을 이룬 것이 바로 이번 시집 같았다. 현실과 이상 그 어딘가, 떠도는 듯하면서도 결코 어느 쪽도 놓아버리지 않은 균형감각이 있었기에 강화도에 이따금 몰아쳤을 성난 파도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시를 써내려갈 수 있었나보다.
  • 드림모노로그 님 : 넘쳐나는 소비사회에서 버려진 쓸모 없는 것(줄자, 죽은시계, 앉은뱅이저울, 폐타이어)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며 현실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더불어 자연과 공생하는 삶을 노래함에 주저함이 없다. 삶이라는 척박한 땅에 뿌려진 시의 언어들은 현실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낚아 올려져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으며 존재하게 된다. 실존하게 된 뒤에라야 꽃망울을 터트리고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의 봄의 모습처럼, 생동감 넘치는 생명의 시가 되었다.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연상되어진 먹구름을 빨아들이는 청소기를 보는 기분처럼 함민복 시인은 사물이라는 본질을 빨아들여 다시 내뱉어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된’ 사물 고유의 본성을 감지하게 한다. 함민복 시인의 시는 그렇게 시와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 rhkraldud정말 다양한 소재로 시를 쓰셨는데, 어쩜 이런 부분에서 이런 시를 창작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정말 나는 창작을 하는 작가님들을 존경한다. 2부에서는 일상생활을 같이했던 물건들, 어렸을 때 많이 사용했던 직각자, 죽은시계, 화살표, 폐타이어, 빨래집게 등등 이렇게 하찮은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3부에서는 정말 읽으면서 시골 분들의 정겨움과 시골에 하나 둘 없어지는 아쉬움까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중략) 책상에 꽂혀있다 무심코 꺼내 읽어도 부담 가지 않는 그래서 이 시집을 사랑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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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평소 시집을 잘 읽지 않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 오랜만에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작고 구체적인 사물을 주제로 한 시여서 이해하기가 쉬웠고, 그 물건이 주는 교훈이 제 삶에 어떻게 적용될지 상상해 보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워낙 주변을 구경하며 걷고, 그 안에서 별것 아닌 것을 발견해도 쉽게 신기해하는 성격인데요. 이 기회에 한 번 저도 시간 있을 때 다이어리에 짤막한 시 한 편 적어보고 싶어졌습니다.

[box type=”info”]본 게재본은 원문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가로수길서점 블로그의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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