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동성애 반대 발언은 황교안과 그가 대표가 있는 자유한국당이 부르짖는 ‘좌파 독재’가 얼마나 어불성설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황교안이야말로 독재자의 ‘자질’에 충실하다는 걸 방증한다.
일단 황교안의 발언부터 정리해보자.
“저는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한다. 저의 정치적 입장에서도 동성애는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퀴어축제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다. 현장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결과를 사진으로 보며 느낀 게, 어머니께서 말한 것처럼 정말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런 축제들이 벌써 십수 년째 계속되고 있다.”
“소위 보수 정통 가치를 가진 정당에서는 동성애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조례 이런 부분에 대해 현장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강고히 갖고 있다.”
-황교안, 2019년 5월 17일, 세종시 한 카페, ‘세종 맘과의 간담회’ 행사 중에서[footnote]간담회 참석자 중 한 명이 성소수자의 ‘퀴어축제’에 관한 견해를 묻자 이에 답하면서. 출처: 연합뉴스, 황교안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동성애 반대” (2019. 5. 17.)에서 재인용[/footnote]
어떤 우스갯소리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일부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려 하면서, 동성애자가 자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아우성친다.’
자신의 가치관, 윤리관을 일종의 규격으로 삼고, 모두의 삶을 그 규격에 맞추려 한다. 실제로 그렇다. 동성애자가 원하는 건 ‘자신의 삶을 살 권리’인데, 보수 정치권과 개신교계가 원하는 건 ‘너희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만들 권리’다. 이건 동격의 권리가 아니다.
물론 그들은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 다양한 핑계를 동원한다. 요즘 개신교계의 대세(?)인 에이즈 창궐론이 대표적이다. 에이즈가 일상적으로는 감염되지 않는 질병이라고 지적하니 세금 폭탄론이 나오기 시작한다. 질병의 원인과 위험군을 구분 못 하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질병을 이유로 특정 인구 집단을 차별해도 좋다고 말하는 건 나치 독일의 우생학을 떠올리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황교안?
황교안은 퀴어축제가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행태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라는 주어에는 그 실체가 없다. 다만, 황교안 자신의 생각을 “우리 사회”라는 당연한 상식인양, 공동체가 마땅히 공유하는 인식인양 격상한다. 황교안의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우리’인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황교안이 “보지 않았다”는 거다. 보지도 않고 평한다? 보지도 않고 어떤 존재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반이성주의, 반합리주의를 넘어서는 독단이고, 독선이다. 황교안의 가장 문제는 그거다. “보지 않았다”는 거. 완벽한 반이성과 비합리. 아니 그렇게 부르기도 민망한 지적 게으름. 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오만.
그렇다면, 황교안은 신인가? 전지전능한가? 우리(!)는 이런 사고를 독단 혹은 독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독재의 어원은 ‘홀로 말하기’이며, 그것은 ‘나는 옳다, 왜냐하면 나는 옳으니까’라는 동어반복을 논리적 기반으로 한다.
논외이긴 하지만, 퀴어축제에 참여하는 일부 참가자들의 노출 의상이나, 몇몇 부스에서 판매했던 상품 등은 한국사회가 위선적으로 요구하는 도덕적 엄숙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로 퀴어축제를 전체적으로 ‘보면’, 세상에 노잼도 이런 ‘노잼’ 축제가 없다.
아니 세상에 제주 방어 축제 어디 산천어 축제 어디 오징어 축제보다도 ‘노잼’이다. 주말 홍대 입구의 풍경보다 재미없는 칙칙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칙칙한 부스에서 칙칙하게 놀다가 칙칙하게 집에 간다. 이건 아마도 보수 정치권이나 개신교계의 공격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교육’으로 ‘교정’해드릴게요?
그리고 이어서 황교안이 말하는 게 교육이다. 황교안은 교육을 통해 동성애를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보수 정통 가치를 가진 정당에서는 동성애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조례 이런 부분에 대해 현장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강고히 갖고 있다.” (황교안, 위와 같음)
“바르게 역사를 못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던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답다. 교육을 통해 어떤 존재의 삶, 그것도 가장 본질에 속한 정체성을 자기 뜻대로 교정하겠다? 이건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고, 심지어 가치관을 주입하는 차원조차도 넘어선다. 교육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교정’을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논리회로에서 나오는 게 ‘전환치료’다. 집단 상담 교육 등을 통해 동성애를 이성애로 ‘전환’할 수 있다는 ‘믿음'(믿습니까!)인데, 이거 안 된다. 거의 모든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가 ‘전환치료’의 비합리성(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을 비판한다. 전환치료를 언급하는 사람은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는 소리다. 물론 황교안은 그 반대로 자기가 과학적 진실(통설)을 무시하고 있지만.
진짜 독재
어떤 사람들은, 5.18 같은 사건에 대해 이견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서 ‘좌파 독재’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견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그럴 자유를 누구도 침해하지 않는다. 다만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에도 그 한계는 존재하며, 그 한계를 벗어나는 발언에 대해선 누구나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그 책임은 사상의 자유시장이 포용하는 범위 안에서는 반박과 비판일 수 있지만, 그 범위 밖에서는 공적인 처벌일 수 있다.
허위의 사실임이 명확하고 이를 인지할 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음에도 이를 계속 ‘이견’이라 부르며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게 실제로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수준에 이른다면? 5.18 유족과 대다수 국민에게 ‘말’과 ‘글’을 흉기 삼아 그 존재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한다면? 그때는 그 행위자를 처벌하고, 그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 공동체가 범죄로 규정한 그 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말할 순 없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견을 말할 자유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늘어놓으며 그걸 ‘이견’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 반칙이다.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잘못된 신념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주장과 신념은 합리적인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그 주장이 바보 같아서 바보 같다고 비판하는 걸 ‘이견도 못 말하게 하다니 좌파 독재다!’라고 억지 부리면 안 된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견을 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견을 절대적인 법칙인양 취급하며 타인의 삶을 규정하고, 그 삶의 방식을 ‘고치려’는 태도다. 생각의 차이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삶 그 자체를 내 구미에 맞게 고치려 하는 것, 여기서부터가 진짜 독재의 영역이다.
누군가의 삶을 ‘보지도 않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누군가의 삶을 그 방식을 ‘교정’하려고 한다면?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치인이라면? 그런 사람이 제1야당의 대표라면? 우리는 어쩌면 ‘진짜 독재’의 씨앗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