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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의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거짓 선지자들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창조경제를 새 경제 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이래 창조경제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누구도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 비전이 이토록 베일에 싸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베일에 싸인 ‘창조경제’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미래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창조경제의 ‘창시자’로 불리는 윤종록 미래부 2차관의 번역서 ‘창업국가’ 읽기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창조경제의 창시자가 직접 쓴 것도 아니고 번역한 것을 읽어서 무얼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원들도 오죽하면 그러겠나 싶기도 하다. 차관이 번역한 책 안 사면 학점이 안 나와서 그런 걸까. 심지어 최문기 미래부 장관 내정자조차도 인사청문회에서 창조경제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기술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는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는 새누리당 의원이 “(창조경제의 개념이) 막연하다는 것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약간 (그렇다)”고 인정했다.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 개념을 만든 조직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에서 인수위원으로 있었던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창의력과 과학기술, 정보통신을 융합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밝혔지만 끝내 사회자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사회자가 “그건 지금까지도 기업들이 다 그렇게 연구 발전해 왔던 거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고서 “더 창의롭게”, “더 두뇌를 써서” 해야 한다고 대답한 게 고작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구상했다는 김창경 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창조경제의 예로 든 통닭집 이야기는 안 그래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개념을 더 오리무중으로 만들었다. 군용 수통에 맥주를 주는 군대 콘셉트의 홍대 앞 통닭집이 창조경제라니… 그럼 군대리아 만든 사람은 창조경제 선구자인가.

군대리아=군대+롯데리아

군대리아(군대+롯데리아)는 창조경제의 선구인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

미래부 장·차관들과 인수위원들의 말만 들으면 창조경제는 무슨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도(道)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도를 도라 하면 더이상 도가 아니라는(道可道 非常道) 도덕경의 첫 구절처럼, 창조경제는 더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와 같은 느낌이다.

창조경제 참 좋은데… 창조경제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한국일보 만평)

지금 정부와 정치권은 창조경제를 통해 어떻게 국가를 발전시킬까가 아니라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엇인가 하는 존재론적 철학 고민의 해답을 찾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경제의 창시자나 주창자나 구상자들은 모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식으로 선불교의 형이상학적 화두 같은 말만 내뱉고 있다.

airguy1988, "Zen Monk Candle", (CC BY ND)

airguy1988, “Zen Monk Candle”, (CC BY ND)
점점 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수준의 참선을 요구하고 있는 ‘창조경제’

실제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창조경제를 “창조적 파괴로 새것이 옛것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은 형이상학적 말이다. 독재자 아버지를 딸이 대체하는 게 창조경제? 최근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인사로부터 창조경제의 개념 정리를 요청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위원장은 결국 이 수준높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엾은 중생쪼렙들을 더이상 보살피지 않기로 했다. 결국 “(그들이)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줄 때 다 설명했는데 이제 또 무엇을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가 있겠느냐. 나는 더 이상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고 한 발 뺐다.

기업, 지자체, 대학, 의료계의 아전인수식 해석 

그러나 정권의 방향이 이익에 직결되는 만큼 기업들의 움직임은 달랐다. 기업들은 서로 자신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창조경제에 가장 부합하는 상품이라고 앞다퉈 주장했다. 일부 기업은 대표가 직접 그런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삼성은 창조경제를 평소 자신들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해온 창조경영과 거의 동일시하는 거저먹기 제스처를 보였다.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은 창조경제를 일자리 확대로 해석하고 인력 확충 계획을 내놓고 있다. 문재철 KT스카이라이프 사장은 올레TV와 스카이라이프를 합친 “올레TV스카이라이프(OTS) 상품이 창조경제의 진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부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벤처캐피탈협회는 “벤처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새 정부의 국정 기조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새삼스레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의료계도 마찬가지였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창조경제 전진기지는 인프라가 준비된 대전이 돼야 한다”며 예산과 주요기관 유치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은 청년기업가정신재단과 업무협약(MOU)를 맺는 자리에서 “이번 협약을 통해 정부의 창조경제 정신에 입각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여성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대한한의사협회도 “우수한 한의약의 지식과 경험은 과학적 연구개발에 의해 보건의료분야의 창조경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 경제현상 평가기준으로 떠오른 ‘창조경제’

같은 기업을 두고 두 신문이 “창조경제다”, “창조경제가 아니다” 하고 다르게 진단하기도 했다. 공학박사라는 명패를 내건 오춘호 한국경제 논설위원은 NHN은 어떻게 日서 성공했나라는 칼럼에서 이 회사가 일본 시장을 겨냥해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개발한 것을 두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창조경제”라고 평가했다. 반면 불법 경품을 제공해 사실상 신문을 공짜로 뿌리고 있는 조선일보의 이철민 뉴미디어실장은 ‘진짜 뉴스’가 공짜여서는 안 된다는 칼럼에서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들은 ‘디지털 시대’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요 언론사가 애써 생산한 뉴스를 헐값에 사들여 네티즌에게 공짜로 뿌린다”면서 “이는 ‘창조 경제’와도 거리가 멀지만, 결국 그 폐해는 사회 전체로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창조경제에 역행하는 서울시의 대형 마트 품목 제한에서 대형마트가 “유통 융합의 교과서적 사례”로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한 내용까지 읽으면 우리들은 도대체 창조경제라는 것은 태초부터 있었던 경제의 알파와 오메가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된다.

결국, 알 수 없는 창조경제…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가라

이런 사달의 원인은 모두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모든 정부는 앞으로 국가가 나아갈 바를 명확히 밝혀줄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혼란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가의 비전을 묻는 말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면 북쪽에서 어린 사자가 14만 4000명과 함께 내려올지니…” 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모호한 수사(rhétorique)로 포장한 비전은 결국 수많은 거짓선지자를 양산할 뿐이다. 정작 그 레토릭이라는 포장을 벗기고 나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물론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747 공약’을 내세웠고 재임 중에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앞세우는 등 레토릭을 통한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적어도 747 공약은 7% 경제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대 선진국 진입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명백하므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녹색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녹색성장 앞에 수식어로 붙는 ‘저탄소’를 보면 전 지구적으로 열중하고 있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목표이자 기준이다. 따라서 실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예산을 많이 썼는지 기업들은 이 부분에 노력했는지를 보면 이 비전이 제대로 시행됐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명박을 깔 수 있다.

창조경제는, 그렇지 않다. 창조경제의 개념이 이토록 모호해서야 우리는 나중에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조차 할 수 없다. 확실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삶은 나아진 것이 없는데,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줄였으니 창조경제를 잘 이뤘다고 평가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대통령의 정책 하나를 평가하고 비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마 다음 대통령도 이와 비슷하게 레토릭만으로 정책을 치장하려는 사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자 애쓰는 와중에 사실상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영어 표기는 Ministry of Science, ICT & Future Planning으로 정해졌다. 직역하면 ‘과학,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미래 계획부’쯤 되겠다. 결국 도(道)이자 알파요 오메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었던 ‘창조’의 정체는 결국 그냥 ‘계획(Planning)’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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