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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의료기사들 [특집]

많은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의학 정보를 수집하고 더 건강한 삶을 지키려 노력한다. 한편,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의학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특히 오늘날에는 같은 의학이라 해도 그 분야가 세분화되고 그 깊이 또한 깊어져, 의사들도 안과니 내과니 하는 식으로 하나의 분야에 집중해 공부하고 연구한다. 대중의 관심은 집중되지만, 정작 지식과 정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괴리는 자연히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그런데, 주요 언론의 의학 관련 보도조차도 그에 어울리는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오는 엉터리 연구를 대단한 연구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이제 관례로 봐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고, 저 ‘황우석 사태’ 때는 주요 일간지는 물론 KBS, YTN 등 방송사도 의학적 지식 없이 엉터리 보도로 사태를 호도했던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개중에서도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 소위 ‘에이즈’ 관련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료기사를 통해 그 단면을 엿보려 한다. 이는 의학적 지식에 대한 무지에 그치지 않고 그로 인한 인권 침해의 여지까지 노출해 왔다는 점에서 언론사 의료 기사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할 만하다.

The Brighton AIDS Memorial

Dominic’s pics (CCL : BY 2.0)

여기에,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에 대하여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이슈다. 1)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질병이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전파되며 어떤 과정을 거쳐 발병하는가, 2) 그 치료는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가 하는 것 등 몇 가지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또한 3) 감염성 질병을 사회 차원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4) 감염인의 인권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물론, 5) 이 질병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가에 대한 역사적 맥락도 파악해야 한다.

2009년, 언론은 앞다투어 ‘제천 에이즈 택시기사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기사를 뽑아낸다. 충북 제천 지역에서 HIV에 감염된 택시기사가 콘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수십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져 지역사회에 ‘에이즈 공포증’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다. 사건 자체에 대한 보도는 물론, 지역 보건소에 HIV 검사 행렬이 늘어서고 있다는 기사, 지역 경찰이 상대 여성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는 기사, 에이즈 환자 관리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는 기사까지 다양한 기사가 쏟아졌다.

헌데 이들 기사는 쏟아져나온 양만 보면 대강 어림잡아도 수백 개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기사를 몇 개 짚어보자. 국민일보의 당시 기사다.

우선 이 기사는 ‘에이즈 환자’와 ‘HIV 감염인’ 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HIV는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이지만, HIV에 감염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에이즈 환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이즈 환자란 정확히, HIV에 감염되어 기회감염 및 종양 등 특유의 임상증상이 나타난 경우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편의상’ 에이즈 환자라 불렀을 뿐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으나, 잠복기가 약 10여년에 달하며 적절한 치료를 통해 수십 년 이상 임상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있는 특성을 고려할 때 ‘편의상’ 감염인을 에이즈 환자로 뭉뚱그려 부른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민일보 기사 외에도 ‘에이즈 환자’와 ‘HIV 감염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해당 택시운전기사의 경우 6년에 걸쳐 에이즈 치료제를 먹고는 있었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문장도 눈에 띈다. 약을 먹고 있는 환자에게 어떤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인지는 기사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기사는 바로 뒤에서 “격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어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는 관계자 발언을 인용하고 있는데, ‘격리’가 바로 HIV 감염인이 받아야 할 제재라 읽힐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러한, HIV 감염인을 격리 또는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단 국민일보 기사 뿐 아니라 연합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비판의식 없이 보도하였다.

문제는 이런 ‘격리, 또는 강제’ 주장은 감염인의 인권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루(독감)로 인한 사망자는 매년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이 질병은 비말을 통해 전파되므로 HIV에 비해 훨씬 쉽게 전파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감 환자를 ‘격리 또는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환자 또는 감염인의 인권은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HIV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기 때문에 달리 간주해야 한다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HIV는 그 전파 경로가 분명하고 일상 생활을 통해서는 전파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그런 케이스 자체가 아예 없다.

또한 ‘격리, 또는 강제’ 정책은 실제 전파를 막는 데도 전혀 실효성이 없다. 자신을 격리하거나 통제하거나 강제한다는데 달갑게 그 조치를 받아들일 감염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책은 자연히 감염인들을 음지로 숨어들게 할 수밖에 없고, 검사는 물론 치료조차 받지 않는 감염인들을 대규모로 늘릴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 국민 전체를 검사하면 된다”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우선 천문학적 비용이 문제가 될 것이며, 설령 이렇게 한다 해도 감염 후 12주 이상이 지나야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특성상 그 실효성도 없다. 이런 정책은 영화 속 디스토피아를 현실에 그대로 재현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위의 사설처럼 ‘성적 타락’을 운운하는 사설이나, ‘감염인 인권 보호라는 거창한 구호가 건강권을 위협한다’는 식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과연 위의 조건들, 의학적 지식이나 인권에 대한 의식,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어떻게 사회적으로 전파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 등 중 단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가 의문스러워진다.

Syringe

seanmichaelragan (CCL : BY 2.0)

무지가 선정성을 만났을 때

위의 기사는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밀집 지역에서 MRSA 박테리아 감염증이 크게 늘었다”는 논문을 인용한 2008년 기사인데, 기자는 제멋대로 이를 “동성애자를 집중 공격하는 신종질병이 확산되고 있다” “피부접촉만으로 전염되는 것으로 나타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말도 안 되는 해석이다. 우선 MRSA는 신종질병도 아니었으며, 주 감염 경로가 피부 접촉이라는 것은 한참 전에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 이 때문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도 엉터리다. 동성애자 남성들을 집중 공격한다는 것도 전혀 학술적 근거가 없는 엉터리 서술이다.

미디어다음에서는 심지어 이 기사의 제목을 “미 동성애자 ‘신종에이즈’ 공포”로 바꾸어 포털 메인화면에 싣기도 했는데, 이는 무지가 선정성을 만났을 때 얼마나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해당 기사의 댓글에는 역시나 HIV 감염인과 동성애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혐오 발언이 쇄도했다.

다른 경우도 한 번 살펴보자. 신종 플루 당시 언론의 ‘속보 경쟁’은, 의료 이슈가 얼마나 선정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속보’의 형태로 몇 명째 사망자가 발생했는지를 보도하며 대중의 공포를 부추겼다. 물론 새로운 감염성 질병에 의한 사망자 추이는 중요한 정보고, 그것을 알리는 것이 알 권리라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것임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사망자 추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예방접종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집단면역(인구의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을 갖게 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질병이 더이상 전파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 예방접종의 목표이기도 하다)으로 인한 전파 차단은 언제쯤 기대할 수 있는지 등 반드시 따라와야 할 중요한 정보들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Fake blood bag

CarbonNYC (CCL : BY 2.0)

“묻는다”

마지막으로 기사 하나를 더 살펴보자. 한겨레 21의 아래 기사는 ‘무수혈 수술’이라는, 의료계 종사자라 해도 정확히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결론내리기 힘든 문제에 대해 ‘미술평론가’가 블로그에 쓴 글을 인용하여 결론을 짓고 있다. 정작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정작 관련 전문의의 의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식의 기사쓰기로 과연 신뢰할 만한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의사가 아닌 기자가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대강의 지식이라면 갖출 수도 있겠지만,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강만 안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설익은 지식을 끼워맞춰 잘못된 결론을 내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의학이나 의료 분야 이슈에서 언론에 요구되는 덕이란, 사실 “묻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학문의 권위자에게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기사를 만들 수 있다. HIV 관련 기사를 쓰면서, 최소한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가 어떻게 다른 개념인지, 왜 감염인을 통제하려던 과거의 정책 기조가 점차 그들을 보호 지원하려는 방향으로 바뀌어나갔는지, 전문가에게 묻고 자문을 구했다면 저 많은 엉터리 기사가 나올 수 있었을까.

묻고, 그리고 나서 쓰고, 쓰고 나서 다시 또 묻는다면, 저런 잘못된 정보가 여과 없이 쓰여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묻는” 과정을 더하는 것이 슬로우뉴스의 한 지향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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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ㅍㅍㅅㅅ 노조위원장

블로거. 한때는 문학소년, 관심사는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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