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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팟캐스트 ‘시사난타H’를 진행하면서 12회에서 정봉주 전 의원의 유죄 판결에 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정봉주 판결에 대한 쓴소리가 불러온 파장

“단지 말을 잘못한 것뿐인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의 실형을 살게 된 형량에 대해서는 지나치다”는 의견도 들어갔지만, 정 전 의원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한 발언은 “제 무덤을 판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도 들어갔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이명박이 정말 주가조작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분위기상 그렇게 말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는데, 이것은 “허위사실인지 알면서도 유포했다”는 유죄 판결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판결문: “어떠한 소문을 듣고 그 진실성에 강한 의문을 품고서도 감히 공표한 경우에는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또 정 전 의원에게 판결을 내린 이상훈 대법관은 과거 PD수첩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때는 ‘개념판사’라더니 지금은 비난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고 했다. 판결과 그 논리에 대해서야 비판할 수 있지만 이 대법관이 원래 문제판사라든지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자기의 양심과 다른 결정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팟캐스트 평가란에 별점 1점짜리 비난 글이 쇄도했다. 이후 시사난타H에서 비난이 예상되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별점 1개짜리 댓글 또 나오겠네”라고 자조하게 됐다.

후폭풍 예상… 회피하게 되는 사람 마음 

사실 지금 (조중동이 아닌 신문) 기자들 중에서 ‘나꼼수 팬’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사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면서 쓸 수 있는 기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신문기사는 당연히 진실을 써야 하고, 칼럼도 각자 기자의 양심대로 쓰면 되는 것이지만 그 기사를 썼을 때 후폭풍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면 ‘귀찮아서’ 아예 안 쓰는 식으로 회피해 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블로거도 마찬가지이거나 더 심할 수도 있다. 신문기자는 어차피 꼭 써야 하는 기사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쓰지만 블로거는 자기가 쓰기 싫으면 안 쓰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부산 쪽 지역구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부산저축은행 피해자(5,000만원 초과 예금자 및 후순위채 매입자)들을 구제해주는 특별법을 추진한 적이 있다. 나는 <기자의 눈>을 통해 피해자들의 입장은 매우 안타깝지만 예금보장시스템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자 “너 몇 살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당장 부산저축은행 초량 본점으로 내려와라” 등등 비난 메일이 폭주했다. 일부는 섬뜩한 내용도 있었다.

한국일보 – (기자의 눈) 꼬여가는 부산저축銀 사태

만약 내가 부산 출신이나 부산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그런 기사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많은 기자들이 나와 같은 기사를 쓰고 싶으면서도 쓰지 못했다. 같은 꼴 당할 줄 알았기 때문에. 올해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는데 그때는 모든 신문이 함께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이라고 해도 해당되는 ‘특정 계층’의 목소리가 강하고 무서우면 기사 쓸 때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외환은행 노조의 론스타 먹튀 반대 투쟁를 지켜보면서

외환은행 노조의 ‘론스타 먹튀 반대 투쟁’을 지켜보던 금융 기자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외환은행 노조는 “론스타의 먹튀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우리보다 임금이 30%나 낮은 하나금융으로 인수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론스타가 HSBC와 인수 계약을 맺었을 때나 재작년 호주 ANZ은행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보도 등이 나왔을 때만 해도 외환은행 노조는 속으로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국민은행과 HSBC가 외환은행을 놓고 싸울 때 외환은행 사람들은 “우리야 HSBC 쪽을 선호하죠”라고 한 적도 있다. 누가 사 가든지 ‘론스타의 먹튀’는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하나금융이 사겠다고 하자 갑자기 먹튀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으로의 피인수를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협상 끝에 500%의 보너스 등 좋은 조건에 합의를 했다.

외은 노조는 투쟁 과정에서 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사람들은 RT 등을 통해 외환은행 노조의 ‘론스타 반대 투쟁’에 적극 동참했다. 이 와중에 금융 기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외은 노조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이용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론스타나 하나금융이 ‘선’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외환카드를 인수하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다고 유죄판결을 받은 악덕 사모펀드이고,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노조의 적극적인 온라인ㆍSNS 홍보 전략에 대항하기 위해 대행업체를 고용해 ‘트위터 알바’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관련기사) (하나금융은 이 사실을 부인했지만 여성 프로필을 썼던 이 계정들은 현재 활동하지 않는다는 정황으로 보아 의혹을 받을 만하다) 이 상황에서 외환 노조를 비판하는 행위는 자칫 론스타나 하나금융에 이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상당수 기자들이 ‘아예 아무것도 안 쓰는’ 전략을 택한 게 이 때문이다.

‘내 생각과 일치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일까?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경험을 통해 기자가 쓰고 싶은 기사나 써야 할 기사를 안 쓰는 ‘직무유기’를 하게 되는 동기가 단순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권력’이나 ‘자본’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의외로 ‘직접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직무유기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쓸 기사를 안 쓰는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기자로서 비판 받아야 할 행위다. 사람들이 진실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써 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을 경우 화를 낸다는 사실이 기자의 직무유기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반성하면서 쓴 고백이다. 다만 독자들도 기사를 읽을 때 ‘내 생각과 일치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인지, 꼭 그렇지는 않아도 시사점을 주는 기사가 좋은 기사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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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댓글

  1. 뉴스를 한쪽의 입장으로 치우쳐서 접하게 되면 독자는 오해할수밖에 없지요. 양쪽의 관점에서 최대한 균둥하게 판단할수 있도록 솔직하고 거짓없는 뉴스를 기대합니다. 최종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요.

  2.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기자들의 국수주의 경향을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외환은행이 DBS나 HSBC 등과 매각협상을 벌일 때 국부유출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죠. 이미 외국 자본에 팔려나간 은행인데 말이죠. 생각해 보면 이미 팔려 나간 은행을 다시 사들여 오는 게 국부유출일 수도 있겠죠. 국부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긴 합니다만.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쓴 기사라서 상대적으로 이 은행들 입장이 반영되기도 했을 거고요.

    한편으로, 외환은행 노조가 반대했던 건 구조조정이나 임금하락의 우려도 있었겠지만 대외적인 명분은 1+1이 2가 아니라 1.5나 그 이하가 될 수 있다는 거였고 그런 우려는 일정부분 사실이기도 할 겁니다. 은행들 몸집을 불리기 위한 인수합병 경쟁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고요.

  3. 네 저는 여전히 임금 문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자존심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요. 한때 국내 최고 엘리트가 가는 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이 단자회사에 불과했던 하나금융에 인수된다는 데 따른.. 하지만 말씀하신 1+1이 2가 아니라 1.5나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또 외환위기 이후 많은 은행들이 M&A됐지만 금융 소비자의 권익이 향상되기보다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점이나 금융회사의 몸집 불리기가 계속될수록 그만큼 그 은행이 부실해졌을 경우 금융시스템이 더 큰 위험에 빠진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은행의 몸집불리기 자체는 그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4. 인정!
    가끔 귀차니즘이 다면분석을 더디게 하지만, 기자는 귀차니즘을 이기는 유전자를 가졌거나 귀차니즘을 이기는 근육을 키워야 할 것!
    그리고 가끔 자기편으로 부터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한다는 점은, 따로 고충일 것 같다.

  5. 그러한 그동안의 잘 알지 못하던 이해할만한 언론사들의, 기자들의 내부사정이 있었네요. 이글에 묻어서 그냥 개인적인 하소연정도를 말씀드리자면 요몇년들어 독자들, 일반인들, 대중들… 뭐 혹은 (일반화 할 수 없는 개인일뿐인)제가 느끼는 것은 주요 언론들이 여러가지 중요한 이슈들에 있어서 그에관한 매우 기본적인 사실들 조차 앞다투어 서로 (담합?이라도 한듯이)기사로 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진실을 원한다거나 외면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일이 아닌가?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어떠한 이해할만한 내부의 사정이 있어서 언론사들이, 기자들이 “아예 아무것도 안 쓰는”상황이 있다고해도 그것을 외부에서 보면 결국 정치권이나 자본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밖에 다른 이유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안이나 이슈에 있어서 그것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의 콩깍지가 씌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냉정하게 진실을 추구하고 읽으려 할지 그렇게 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관한 어떤 순서가 있다면 언론사가, 기자들이 어떠한 내부사정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해야할 역할을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요즘은 더욱더 그러길 그저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물론 이런 넋두리와는 관계없이 동감을 넘어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6. 네. 독자들이 진정 궁금해 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쓰는 게 언론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무유기’라고 쓴 것이고요. 그런데 가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이지요. 저는 SNS를 비교적 많이 사용하는 기자인데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사를 빨리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데스크 중에는 그런 분이 별로 많지 않아서 기사가치 판단을 다르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문이라는 매체가 SNS와 달리 독자와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7. 외환은행인수에 그런 내막이 있었군요
    어쩌면 당연히 동반되는 인간의 이기심일 수 있지만 그 미묘한 진실을 써 내는 힘이 언론과 기자의 몫이고 힘이겠죠

    잘 읽고 갑니다

  8. 위 글에 대해 외환은행 직원으로서 당사자인 저는 전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억울한 면이 있네요. 월급이 낮은 하나은행이 아닌 급여 수준이 비슷한 신한이나 국민이 인수하려고 했어도 그 정도의 반대 투쟁은 했을 것이고, 명분이란 원래 가장 강력한 것을 내세우는 것이니 은행 노조라고 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신사적이 아닐까요?

    외국은행에 인수를 바랐던 노조에 대해서는 저도 좀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은행 내부에는 노조 외에 투쟁세력이 또 있었고 노조 내부에도 갈등세력이 있었는데 사실상 우리 전부가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것은 론스타는 떠나고 외환은행은 독자적으로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은행에 인수를 바랐던 것도 그렇게 되면 이름과 조직이 남게되고 장기적으로 독자생존이 가능할 것이란 희망 때문이었지요.(제일은행의 사례를 보면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이건 논외로 하지요)

    국내은행에 인수/합병이 되면 이름이 사라져버리니 그런 희망을 가질 수조차 없거든요. 조흥이나 서울은행의 경우를 보면 명백하지요.

    아무튼 최 기자님의 개인적인 생각이야 제가 어찌할 수 없지만 복잡한 이면을 전부 들여다 보지 않고 노조나 외환은행 조직원의 사리사욕만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9. 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가열차게 투쟁을 했는데 오로지 임금 하나 때문이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진심으로 죄송하고, 제가 글을 잘 못 쓴 탓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외환노조만큼 강력한 조직력을 보이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투쟁도 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전부 개인의 사리사욕만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강도의 투쟁은 어려웠겠지요.
    다만 제가 접했던 외환은행 노동자 분들의 말씀을 잘 새겨듣다 보면 투쟁의 근본 원인이 첫째 임금 차이, 둘째 ‘다른 데도 아니고 하나금융’이라는 것 등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임금 투쟁이 론스타 같은 거악을 물리치는 것에 비해 명분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노조들이 타기업에 피인수를 앞두고 투쟁할 때 고용승계와 임금 관련 주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환은행 노조도 투쟁 과정에서 그부분을 주로 내세웠다면 사람들이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했을 텐데, 외환 노조의 경우 그런 부분은 거의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대의를 위해서 론스타와 금융당국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했던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10. 쓰신 글 안의 “외국은행에 인수를 바랐던 것도 그렇게 되면 이름과 조직이 남게되고 장기적으로 독자생존이 가능할 것이란 희망 때문이었지요” 라는 부분은

    외환은행 노조측에서 해당 기간 동안 일반 시민들에게 배포해주신 책자속의 문건들과 정면으로 대치되고 있는 내용으로 판단됩니다.

    강철수화백의 만화로부터 노조측의 성명문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보여졌던 ‘외국자본의 침탈’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되는 내용에 대해서입니다.

    ‘하나은행은 사실은 돈이 없고 그게 다 외국자본거다. 그래서 이 행위는 외국자본에 건실한 외환은행을 더 사기적으로 넘겨주는 행위다’ 를 강조하시려고 했던것 같긴 하지만요.

    일단 다른걸 다 떠나서 ‘먹튀’ 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적 정황을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열차게 가장 많이 쓰시던 문구로 기억됩니다.

    되려 남겨주신 리플이 모순에 또 다른 모순을 더하는 행태로 보여질 정도인데, 그런점에서 펄 님의 기사가 ‘사리사욕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 이 아니라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맥락을 제대로 짚었다고 판단됩니다.

    ‘오로지 국가와 대의를 위해서 맞서 싸우는 것처럼’ <- 핵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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