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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헬렌 켈러와 찰리 채플린이 흑백사진에서 만나던 날

세상에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편집자)

헬렌 켈러, 찰리 채플린을 만나다 (1919)

왼쪽은 친숙한 사나이, 찰리 채플린입니다. 그 오른쪽은 “어둠에서 빛을 보는” 헬렌 켈러입니다. 1919년, 영화촬영장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찰리의 눈과 헬렌의 손이 만나고 있습니다. 찰리가 약 10년 후에 만든 영화, [시티라이트](City Lights)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 영화에도 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맹인 여인이 나옵니다. 헬렌을 만난 날, 찰리는 유난히 수줍음을 타서 말을 더듬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볼 수 없었던 헬렌이 찰리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그의 영화를 상상해 보았겠지요.

찰리와 헬렌의 만남을 재현한 것 같은 [시티 라이트] (찰리 채플린, 1931)의 한 장면

헬렌은 미국의 영웅입니다. 교과서에도 나오고, 그녀가 만든 맹인 재단은 장애인의 권익 개선에 큰 기여했습니다. 눈과 귀 대신에 손과 마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런 감각의 손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써냈습니다. 지금 읽어도, 간결하고 단아한 문장들입니다. 인고와 낙관이 잘 버무려진 언어들이 번뜩거립니다. 90년에 가까운 긴 삶에서 글은 그녀를 버티게 한 힘이자 무기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헬렌을 잘 모릅니다. 갸우뚱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10년 즈음, 그러니까 30살쯤 이후에는 그녀의 저술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 이후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증보판이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솜씨를 가진 그녀가 글을 안 썼다니 기이한 일이지요. 연유가 있습니다.

20대부터 이미 모든 사람으로부터 “고난을 딛고 피어난 꽃”이라는 찬사를 받고 유명세를 치렀던 헬렌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침 시각 장애인의 실태를 파악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헬렌 켈러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거기서 헬렌은 맹인 여성들의 가난과 가난 때문에 견뎌야만 하는 수모를 보게 됩니다. 창녀촌으로 내던져지는 맹인 여성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리고 위험한 노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눈을 잃게 되는 여성들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 비열한 기업들, 그리고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가 되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 꽤 과격한 그룹이었던 세계산업노동자(IWW)에도 가입했습니다.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지요. 언론에서 대대적인 보도를 해댔습니다. [브루클린 이글](Brooklyn Eagle, 브루클린 독수리)이라는 우파신문에서 특히 심하게 공격했답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신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비난했을까요?

한때 헬렌은 장애를 극복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의 표본이었는데, 이제는 이걸 공격합니다. “헬렌은 이런 치명적인 장애 때문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그러다 보니 마음에도 장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장애는 곧 그녀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말합니다. 헬렌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커밍아웃합니다. 1912년에는 [어떻게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몇 해 전, 나는 한 신사를 만났었는데, 그는 ‘브루클린 이글’의 편집장 맥켈웨이 씨였다. 시각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뉴욕 모임 직후였다. 당시 그가 나에게 했던 찬사는 너무 대단해서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하지만 내가 사회주의자임을 천명한 지금, 그는 나와 대중에게 내가 장님이고, 귀머거리며, 그래서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떠벌린다. 그를 만난 후로 몇 해 동안 내 지적 능력은 위축된 게 틀림없다. 이번엔 그가 얼굴을 붉힐 차례다. (……)

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브루클린 이글]이여! 어쩜 이리도 비겁한 새(鳥)인가! 사회적인 장님이자 귀머거리인 [브루클린 이글]은 이토록 참기 힘든 시스템, 우리가 막으려고 하는 육체적인 실명과 귀먹음의 원인인 바로 그 시스템을 두둔한다. (……)

만약 내가 사회주의 운동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끔 꿈에 그리는 그런 책을 쓸 수 있다면, 나는 그 책에 어떤 제목을 붙일지 알고 있다. [산업적 장님과 사회적 귀머거리](Industrial Blindness and Social Deafness)

– 헬렌 켈러, [어떻게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1912) 중에서

그녀가 찰리 채플린을 만난 1919년, 언론의 마녀 사냥에 지칠 대로 지쳐있을 때입니다. 찰리로부터 어떤 위안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로 자주 만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녀의 손이 편안하고 따스해 보인다는 것밖에.

30살까지만 알려진 헬렌 켈러의 삶

헬렌이 언론의 공격과 싸우고 있을 때, 찰리도 같은 곤경에 처합니다. 그에게 공산주의 딱지가 붙여집니다. 이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찰리는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망명의 길’을 떠납니다.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한다’는 인신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결국 모든 걸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의 영화도 지워집니다. 이즈음, 헬렌이 쓴 ‘사회주의적 경향’의 글도 철저히 무시되고 지워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고 미국인들이 알고 있는 헬렌 켈러는 그녀의 30살까지 인생입니다. 그 이후에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잊혀진 삶입니다.

찰리와 헬렌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납니다. 이미 두 사람이 세상을 버린 다음입니다. FBI 비밀문서가 2000년대에 공개됩니다. 거기에서 맥카시 위원회에 제출된 ‘공산주의자들’ 명단이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찰리 채플린이 또 그 옆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적혀 있었습니다. 20세기의 고통을 함께했던 풍운아, 이 세 사람의 ‘아프고도 진실했던 삶’은 공식 역사에서 지워지고, FBI의 어두운 캐비닛에서 빨간색 물감을 뒤집어쓴 채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빨간색의 힘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오늘, 빨간색을 모르는 헬렌 켈러가 있는, 빨간색을 허용하지 않는 흑백사진을 봅니다. 그녀의 손이 찰리의 입술을 읽으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상상해 봅니다.

헬렌 켈러 (1912년), 찰리 채플린 (1915년)  퍼블릭 도메인

헬렌 켈러 (1904년 모습), 찰리 채플린 (1915년 모습)
만든이: 미상, P.D Jankens (두 사진 모두 저작권 기간이 만료한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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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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