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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슬로우뉴스는 [기자나 블로거라면 꼭 알아야 할 2013년 미디어 트렌트 8가지]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흐름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의 도전은 앞으로 언론사의 새로운 ‘만트라’, 즉 자기실현적 주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좀 더 오래되고 강력한 예언과 주문들이 이미 존재했습니다. 이 오래된 만트라들이 어떤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새로운 트렌드를 아는 것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box]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 바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의 주요 동인이었던 온라인 통신의 초창기에만 해도 기존 언론사들은 그간 닦아놓은 전통적 기반에 안주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하지만 온갖 담론 참여 경로의 확산과 함께 사회적 의제설정에서 무한경쟁이 본격화되며 산업적 위축이 찾아오고, 기존 언론사들도, 새롭게 뛰어든 매체들도, 뉴스 미디어를 지향하는 개별 블로거들도, 한층 진지하게 새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수년간, 저널리즘을 이런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조언, 아니 그렇게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듯한 만트라들이 몇 가지 대두한 바 있다. 그런 것은 대체로 매우 유용한 방향을 보여주지만, 반면에 말 자체의 표면적 실천만으로는 간과되는 부분들이 있다. 흐름에는 적응하되 과도한 기대감에 실망하거나 지나친 피로도에 쌓여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현실 점검이 필요하다.

[box type=”info”] 만트라: 원래는 종교의 ‘진언’을 의미하는 용어로,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이며 긍정적 변화를 이뤄낼 듯한 느낌을 얻는 자기 암시적 규범을 칭한다. [/box]

j f photos, CC BY ND http://www.flickr.com/photos/good-karma/
j f photos, CC BY ND

저널리즘 10대 만트라와 그 현실

1. 탐사의 깊이가 깊고 공정한 고품질 저널리즘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품질 높은 심층보도가 언론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노력 및 비용은 많이 들고, 그에 비해서 조회수든 입소문이든 파급 효과가 10분 만에 토해낸 낚시성 화제 기사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긍지 높은 언론사라는 브랜드 가치를 얻을 수 있는데, 모든 브랜드 가치가 그렇듯 즉각적 성과가 아닌 장기 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품질 저널리즘을 추구할 이유는, 그런 것으로라도 차별화하지 않으면 여타 정보 소스의 홍수 속에서 묻혀버리거나 아니면 자극적 정보로 활로를 찾아야 하기 따름이기 때문이다. 즉 고품질 저널리즘은 업종 전문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성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 [예]: 온라인의 가능성을 믿으며, 최근 5년여간 탐사저널리즘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뉴스룸들이 급증했다. 하지만 세계탐사저널리스트컨소시엄(ICIJ)에 따르면, 이들 대다수는 1년 예산 5만 달러 이하, 직원 5인 이하의 초소형 조직에 머무르고 있다.

 2. 멀티미디어, 인터액티브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그것이 곧 보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멀티미디어를 총동원함으로써 비로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의미가 있지, 단순한 기믹(gimmick, 관심을 끌기 위해 쓰는 수법, 특징)으로서의 인터액티비티는 오히려 독해에 방해되어 사람들을 기사 중간에 떨어낸다. 화려한 그래픽 기술이 아니라 유용한 정보를 일관된 흐름으로 전달하는 기본기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은, 다큐 영상 연속캡쳐 짤방이라는 전달형식의 큰 유행이 잘 보여준다.  

  • [예]: 조선일보 유료 섹션의 ‘와글와글 합창단’의 멀티미디어 장치 거의 모두가, 기사의 자연스러운 전개과정에서 정보를 유기적으로 보충해주기보다는 단순 병렬되어 있다.
프리미엄 조선 '와글와글 합ㅊ창단'  http://premium.chosun.com/service/issue01/waglwagl/index.html#!chorus
프리미엄 조선 ‘와글와글 합창단’

 3. 사안 발생과 함께하는 신속한 보도는 좋다.

하지만 속보의 중요성은 턱없이 과장되어 있다. 아주 잠깐 히트수가 오를 뿐, 비슷한 복제품의 홍수에 평준화될 따름이다(더 자세한 논의는 관련 글 참조). 속보 분야는 트위터의 입소문이나 뉴스통신사의 발 빠른 배급력이 지니는 비교우위를 인정하고, 그보다는 사람들이 돌아와서 다시 참조할 자료로서의 보도 페이지를 신경 쓰는 것이 적절하다. 어떤 이슈가 있음을 알리는 ‘바이럴’ 전파물은 게재 후 15분에서 1시간 이내로 승부가 나곤 하지만, 잘 정리된 내용을 담은 페이지에 대한 클릭 발생은 해당 이슈의 생명력 기간 내내 지속된다.

  • [예]: 슬로우뉴스의 기사 ‘애런 스워츠가 말하는 열정의 자세’는 2013년 1월에 발행되어 초반 일주일가량의 초기 트래픽이 지나간 이후에도, 1년여에 걸쳐 매일 수십 건씩 추가 조회가 올라가고 있는 경우다.
애런 스워츠 Aaron H. Swartz (1986. 11. 8 ~ 2013. 1. 11.)
(dsearls CC BY_SA)
“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

4. 깔끔한 인터페이스는 중요하다.

하지만 깔끔한 인터페이스가 미디어에 계속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바쁘고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다. 계속 사이트에 머무는 것은 관련성 높은 정보들이 하나의 시선 흐름 안에 계속 이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데 디자인을 갱신한다면서 관련 정보들을 제거하거나, 그 상태에서 자동 광고의 물결 속에 노이즈마저 넘치면 딱 랜딩 페이지만 훑어보거나 그마저도 중간에 포기하고 나갈 따름이다.

  • [예]: 2013년 현재 한겨레 기사를 보면, 개편을 거치며 깔끔해졌으나 관련 정보의 연동은 자동으로 뽑아 배열한 목록뿐이다.
한겨레 관련 기사 사례
한겨레 관련 기사 사례

5. 적극적 토론 통로는 필수다.

하지만 너무 방치하지도 너무 임의로 삭제하는 것도 아니도록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는 댓글난은, 차라리 재앙이다. 통로는 딱 관리할 수 있는 만큼만 만들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의 경우처럼 2012년 기준으로 전업 댓글관리직원만 30명 이상을 기용하는 것도 방법이고, 고커(Gawker)미디어 계열 사이트들처럼 댓글 토론 과정에서 대화 단위로 자발적 관리자 역할이 발생하도록 새로운 툴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고, 그냥 토론 통로를 기사 단위 댓글난이 아닌 통합포럼 등으로 좁히는 것도 방법이다.  

  • [예] : 네이버뉴스의 정치 보도 가운데 아무 것이나 댓글난을 들춰보면서 한숨을 쉬지 않을 길이 있을까.
항상 쉽게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을 볼 수 있는 포털뉴스 정치기사 댓글란
항상 쉽게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을 볼 수 있는 포털뉴스 정치기사 댓글난

6. 스마트 광고가 미래다.

독자 관심사와 해당 기사 내용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방법은 아직 기술적으로 완전하지 않다. 특히 적합한 세트가 언제라도 도출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확보되기 전에는 더욱 그렇다. 그전까지는 기사 키워드에 어설프게 기계적으로 매칭하거나, 나 자신의 검색기록에 매칭하느라 기사 내용과 동떨어진 광고가 뜰 따름이다.

  • [예]: 지금 이 기사의 옆에 뜬 배너광고를 보시라. 이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슬로우뉴스 '저널리즘 트렌드' 해설 기사에 딸린 스마트(?) 광고는 염색약 상품 광고
슬로우뉴스 ‘저널리즘 트렌드’ 해설 기사에 딸린 스마트(?) 광고는 염색약 상품 광고

7. 온-오프 부서의 뉴스룸 통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뉴미디어에 대한 적응인 것이 아니다. 그냥 두 부서가 서로 뭘 다루고 있나 알게 되는 것 뿐, 여전히 두 팀은 저널리즘에 대한 배경도, 업무 발상도, 대체로 노동 조건도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대우가 부당하게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면 딱히 이상하지도, 역기능적이지도 않다.

필요한 것은, 매체가 다루고 있는 개별적 이슈들에 대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다루어 함께 연계시킬지 조율해내는, 주요 의결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상위개념으로서의 종합기획팀이다. 아니면 그걸 해낼 똑똑한 편집국장을 물어오거나.

  • [예]: 시사주간지 온라인 진출의 선구자격인 독일의 ‘슈피겔’ 조차, 전통의 종이 잡지팀과 온라인팀 사이 갈등으로 고생한 바 있다(관련 기사).

8. 기자와 편집인들에게 온라인 환경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것은 필요하다.

현실: 하지만 그들의 정신 성장만으로 발전이 오는 것이 아니다. 돈을 투자하고 새 전문가들을 기용하여 중책에 놓아야 비로소 상황은 움직인다. 데이터 저널리즘과 강력한 팩트체킹 같은 것은 돈과 사람이 든다. 투자 여력 없이 개개인의 업그레이드만 강조하면 업무 과중에 눌려 기사 품질만 하락할 뿐이다.

  • [예]: 영국 가디언지에서 추진하는 오픈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의 수집과 관리를 하는 코너인 ‘데이터블로그’만 해도 전업 전담인력이 다섯 명이다.

9. 독자들과 ‘소셜하게’ 지내는 것은 브랜드에 도움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브랜드가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약간만 관리를 잘못하면, 기존 지지 독자들과의 대화에 빠지며 이상한 방향으로 유사 사적 관계를 흉내 내며 난감한 상황들을 불러오기에 십상이다. 내부 그룹을 보듬는듯한 친근한 대화보다는, 인격성을 지니되 정중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다양한 독자층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쪽 훨씬 중요하다.

  • [예]: 지지자들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게시판 언어로 말을 건네는 한겨레신문 트위터 계정과 에세이 형식에 가까운 친근한 서술을 하면서도 보도의 건조함을 유지하는 아사히신문 한국어 계정의 차이가 극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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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한국어판 페이스북

10. 성공적 사업모델을 배워라.

오늘날의 다변화된 미디어환경에서, 남의 성공모델을 통짜로 옮겨붙이며 성공을 재현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왜 하필이면 그 매체의 사례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는지 요인들만 뽑아내서, 이쪽 매체에 적합한 성공 모델을 완전히 재조립해야 한다.

  • [예]: 뉴욕타임즈가 종량제 무료기사와 결합한 페이월 방식(metered paywall, 유료 컨텐츠 방식)을 2009년 도입하여 2년여 만에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하자, 미국의 온갖 지역신문들이 그 모델을 따라서 도입했다. 현실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정도의 신문조차 도입 4개월 만에 집어치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유료 컨텐츠 상품 설명
뉴욕타임즈의 유료 컨텐츠 상품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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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슬로우뉴스 송년회에서 재미있고 참신한 콘텐츠를 생생한 육성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캡콜드님 스타일의 유머 – 어느 부분이 유머인지 논란이 있었음 – 가 돋보이더군요.

    일전의 강정수님의 기사와 연이어서 보니 또 좋은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염색약 광고는 혹시 캡콜드님이 염색약을 많이 찾으셔서 자동으로 된 프로세스 는 아닌거죠?

  2. 그 캡쳐는 민노씨께서 해주신건데, 혹시 늘 하시는 두건 밑에는 발랄한 총천연색의… // 말미의 슬뉴 로고만 빼고 모두 유머입니다(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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