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처음 출근하고 한 시간쯤 지나서 울트라북 하나를 지급받았다. 포맷되어 자사 인트라넷 링크만 바탕화면에 나와 있었다. 종이에 몇 가지 인적사항을 적고 인트라넷용 아이디도 발급받았다.

마우스도 전화도 없던 내 자리

회사 내부에서 일할 사람에게는 보통 데스크탑을 준다. 그런데 노트북도 아닌 초소형 울트라북을 지급했다는 것이 알려주는 사실은 자명했다. 정리해고로 빠져나간 기자가 쓰던 물품을 회수해 어뷰징팀에 나눠준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마우스는 내 돈으로 샀다. 소모품이기 때문에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마우스를 구입하느라 두 시간분의 급여를 썼다. 하루 8시간 동안 손바닥만 한 울트라북 화면을 들여다보려니 거북목증후군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닦는 것 같아 자리에 아무렇게나 놓인 책꽂이를 받치고 집에서 노는 키보드를 가져다 연결했다.

언론사에 처음 입사해 마우스가 말을 듣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당시로써는 큰 용기를 내 담당자를 찾아갔을 때, 마우스가 고장 났다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드렁하게 서랍에서 다른 마우스를 꺼내준 일이 떠올랐다. 노후 장비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하려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몇 페이지 적어야 겨우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쨌든 전 직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장비를 교체해줬는데, 이 회사는 지금까지 내가 일한 곳 중 가장 적은 급여를 줬고 가장 많은 자비 부담을 요구했다.

마우스만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자리에는 전화도 없었다. 그전까지 다른 언론사에 있으면서 내가 직접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음에도 내 자리에 전화는 있었다. 회사 내의 사람이든 외부 사람이든 기사와 관련해 나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고 나도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엄청난 양의 기사를 쓰도록 요구하면서 전화 한 대 없었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지급받은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취재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phone-nowhere

업무 = 어뷰징

우리의 일은 어뷰징이었다. 언론에서의 어뷰징이란 기사의 무단 전재 및 복제, 배포를 말한다. 어뷰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털이 필요하다. 대형 포털은 우리가 흔히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라고 부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특정 정보를 찾고자 포털 사이트에 방문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무슨 소식이 있나 해서 포털 사이트에 방문하기도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가 그 가운데 있으면 클릭해보고 그러면 그 검색어와 관련된 기사가 수없이 나온다. 정확히는 썸네일과 제목, 기사의 일부가 나오는데 네티즌은 그 정보를 보고 마음에 드는 기사를 클릭해서 전체 기사를 읽는다. 이 과정에서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 게재된 광고들이 함께 출력되고 언론사는 그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box type=”info”]슬로우뉴스에서 발행한 어뷰징 관련 글 모음

이 과정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질문이 하나 나온다. 기사가 나와 그 기사에 대한 관심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반영되는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가 나와 언론사들이 그에 맞게 기사를 작성하는지의 이야기다. 나는 기사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쿨쿨 자는 기자에게 특종이 제 발로 굴러오지는 않는다. 기자는 출입처로 대표되는 여러 정보원을 갖고 있다. 일반인보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정보원의 신뢰도를 검증할 능력도 있다. 그렇게 기자가 1차로 검증한 정보들을 토대로 기자는 기사를 내보낸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그와 관련된 검색을 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가 먼저라고 놓고 업무에 임해야 했다. 팀장은 첫날 교육에서 주요 포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계속 모니터하다가 이 회사가 기사화하지 않은 검색어가 올라올 경우 그 검색어를 클릭해 출력되는 타사의 기사를 자사 기사처럼 꾸며 송고하는 요령을 가르쳤다. 워터마크라고 부르는, 각 언론사의 표식이 박혀있지 않은 모든 사진은 이 회사의 기사에 대한 사진으로 활용해도 무방하며 다만 주요 포털 및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갈 때 이미지가 웹브라우저 화면에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 가로 520픽셀만 맞춰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에는 범위가 없다. 말 그대로 모든 이미지를 말한다. 타사가 썼더라도 워터마크만 박히지 않았다면 다 가져다 쓴다. 그러니 스타나 운동선수의 개인 계정에 올라간 사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스타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사진을 한 장만 올려도 이쪽에서는 스타가 사진을 게재했다는 기사를 낸다. 누구도 허락한 바 없지만 스타의 SNS 계정은 연예뉴스나 어뷰징 담당자의 출입처와 다름없다. 내가 있던 회사는 스타 SNS 팔로우도 하지 않아 다른 회사가 캡처해 올린 이미지를 가져다 썼다.

기사 작성방법 = 복사 붙여넣기

실제로 나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하나를 클릭하면 기사 하나를 열고 거기에 뜨는 기사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이 회사 프로그램에 붙여넣기 했다. 사진은 방금 복사한 기사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고 아주 약간의 성의를 더 기울인다면 다른 기사의 사진을 쓴다. 이렇게 되면 A사의 기사에 B사의 사진을 넣은 기사가 하나 나온다. 사진은 특별히 고칠 게 없고 기사 글은 조금 수정을 가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양심적인 표절이지만 진짜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텍스트의 기사가 올라가면 포털이 표절로 인식해 기사 수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선 긁어온 기사를 맞춤법에 맞게 교정한다. 그리고 문단 순서를 바꾸거나 리드 문장 삭제, 단어를 유의어로 수정하는 등 베낀 기사를 컴퓨터가 다른 문서로 인식하게 만들 방법은 많다. 한 문단을 통으로 들어낼 수도 있다. 타 언론사의 기사 내용을 기초 자료 삼아 마치 우리가 취재한 듯 새 기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내가 있는 회사는 계열사가 많았는데, 팀장은 계열사의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상관없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포털은 기사 수집을 안 하겠지만 직접언론사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은 그 기사를 볼 수 있다. 회사에서는 계열사의 기사를 베끼는 것을 근친상간이라고 일컬었다. 언론에서 사용하는 내부적인 용어 가운데 거친 표현은 많았지만 내가 겪은 곳 가운데 가장 센 곳이 여기였다.

키보드 소리를 좋아하지 않던 팀장

팀장은 키보드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복사와 붙여넣기를 해야지, 키보드 타이핑을 왜 하냐는 것이다. 내 업무는 기사 작성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사를 작성하지 말아야 했다. 기사는 복사하고 붙여넣고 베끼는 것이지, 사안을 조사하고 알아보고 정리해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keyboard-typing

다루는 아이템은 어떨까? 이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연예 소식과 스포츠 소식을 다루는 회사다. 축구, 야구 등 각 분야의 전문 기자들도 있다. 한국 기자사회에서는 출입처라는 제도가 통용된다. 해당 출입처와 관련된 아이템만을 다룬다는 의미로 언론사에서는 나와바리라는 말을 쓴다.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들은 자신의 나와바리가 아닌 곳의 기사를 내는 것을 금기시한다. 경제부 기자가 경제부총리의 브리핑은 기사화할 수 있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은 경제계와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절대 내보내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만약 타 출입처의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면 해당 출입처 기자에게 알려주거나 아니면 자신이 나중에 제대로 제작할 생각으로 정보만 모아놓고 기사화하지 않는다. 출입처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진 제도다. 하지만 이 회사의 어뷰징팀은 출입처 제도를 과감히 깨뜨리고 스스로 초월적인 지위를 만들어 가졌다. 연예와 스포츠를 다루는 회사였음에도 트래픽을 끌어올 수 있는 아이템이라면 대통령이든 의료보험이든 갯지렁이든 무엇이든 좋았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ㅇㅇㅇ”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 기사의 후반부에는 대개 네티즌 반응이라는 것이 들어간다. 이에 대한 작성법도 배웠다. 네티즌 반응이라는 것은 진짜 네티즌 반응이 아니다. 검색어를 기사 본문에 한 번이라도 더 포함시켜 포털에 상위 노출을 꾀하기 위해 검색어를 필두로 아무 말이나 지어 놓고 붙일 말이 없으니 네티즌 반응이라고 한다. 보통 기사 작성자가 개인적인 의견을 쓴다. 하긴 하루 8시간을 포털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들도 네티즌이기는 하다.

기사에 포함된 네티즌 반응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내부 실정을 모르는 입장에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다. 어느 네티즌이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은 황당한 반응은 차치하더라도, 기사가 나와야 기사를 보고 네티즌이 반응을 할 수 있는데 기사도 나오지 않은 사안에 어떻게 네티즌이 의견 개진을 한단 말인가. 네티즌 반응을 언론사가 수집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그 기사는 널리 알려졌다는 뜻이고 그런 기사는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기사화할 필요가 없다. 네티즌 반응은 독자들에게 네티즌 반응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색어 유입을 이끌어내려는 언론사의 몸부림이다.

흐려진 바이라인

바이라인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 말미에 ○○○ 기자라고 나가는 것을 바이라인이라고 한다. 기사의 작성자를 알리는 것은 물론 이름을 명시함으로써 책임 소재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바이라인을 작성하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 우리의 바이라인은 이름 대신 팀명으로 나갔다. 이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말살시키겠다는 의도보다는 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1인당 기사 할당량은 원칙적으로 1인 1일 100건이다. 나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30여 개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 회사 최고 기록은 133건이었다고 한다. 기자 한 명이 기사 100건을 쓰려면 하루 8시간 동안 쉼 없이 5분마다 기사를 하나씩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스포츠 기사를 조각조각 잘라 쓰지 않는 이상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100개의 기사를 쓴다면 이런 식이다. 야구 경기에서 1회 초에 투수가 타자에게 빠른 직구를 던져 타자는 스윙을 했고 이에 스트라이크 하나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 하나로 내는 것이다. 이렇게 기사를 내면 야구 한 경기로 100여 개의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런 기사를 누가 읽을지는 논외로 하자. 이나마도 취재가 가능할 때 이야기다. 현장에 있거나 최소한 어디서 경기 중계라도 보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하루에 기사 100개를 쓸 수는 없다. 정상적인 취재를 거쳤다면 30개도 무리다. 우리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관리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작성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언론사의 특정 팀에서 나온 기사라는 식으로 바이라인을 흐린다.

내가 소속된 팀의 담당 업무는 어뷰징이고, 소속 인원은 처음 세 명에서 그다음 다섯 명으로, 그 후 곧 여덟 명으로 늘어났다. 8명이 각자 바이라인을 걸고 각각 100개씩의 기사를 내는 것보다는 한 팀이 800개의 기사를 생산했다고 하는 편이 신뢰도를 획득하기 쉽다. 외부에서는 해당 팀의 인원이 몇 명인지, 해당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언론사는 믿는다. 독자들은 기사 작성 과정은 모른 채 언론사의 이름을 믿고 기사에 대한 신뢰도를 결정하거나, 혹은 단지 언론사이기 때문에 정석적인 취재 과정을 거쳐 작성했으리라고 여기고 기사를 본다. 직접 어뷰징을 하기 전까지는 나 역시 그랬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