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대원칙이죠.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표현도 모두 표현의 자유에 따라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러다보면 실제 폭력을 발생시키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표현의 자유조차 용인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에 일정한 제한을 둡니다.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구성한 허위사실, 타인의 인격을 훼손한 음란물, 내란이나 그에 준하는 수준의 선동, 폭력이나 범죄의 협박 등. 여러가지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기준선이 그렇게 뚜렷하지만은 않다는 것이죠. 의도적이고 악의적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인격을 훼손한다는 건 어디까지인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명백한 기준선이 있다 하기 어렵고, 사회적인 맥락을 따져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욕당한 김성태?
김성태라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죠. ‘어디까지가 공인인가’ 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어떤 기준으로도 이 사람이 공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는 지난 9월 5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출산주도성장’이라는 희대의 괴설을 주창했습니다. 이에 누군가가 숫자부터 이상하다며 이 괴설을 “개드립”이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성태는 이것이 자신을 모욕했다며 고소합니다. 아 맞다, 그를 의원이나 원내대표로 칭하지 않고 이렇게 이름만으로 칭한 것도 모욕이라고 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표현의 자유여야 합니다.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이자, 권력에 의해 침탈당하지 않는 표현의 자유여야 하죠. 공인의 공적 역할에 대해 모욕죄로 고소장을 날려댄다면 이런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입니다.
출산주도성장과 같은, 유력 정치인의 대표 어젠다가 미칠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는 최대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산주도성장이 욕을 먹는다고 해서 김성태에게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생긴다고 볼 구석은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고영주의 경우
그런데 미묘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2013년 1월 보수단체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석패한 전 대선 후보이자 여전히 야권의 유력 정치인이었습니다. 공인 중의 공인이죠. 그에 대한 비판은 최대한 폭 넓게 인정되어야 함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고영주의 발언을 법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적화’와 같은 단어는 위험합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그 자체가 사람을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낙인이었습니다. 고영주 본인이 바로 그 시대의 공안검사이기도 했고요. 군부독재가 종식되며 많이 완화되긴 했으나,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사회 수준이 급격히 퇴행한 것도 또 사실입니다. 고영주 같은 사람이 방문진 이사장이 된 것이 사실 그 뚜렷한 방증이죠.
형사사건은 무죄, 민사상으로는 배상 판결(1천만 원)이 나온 것이 이런 미묘한 측면 때문일지도요. 문재인이라는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기엔 좀 질이 많이 낮지만)으로서 넉넉히 용인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 ‘적화’ 등의 단어가 “남북 대치, 국가보안이 존재하는 우리 현실에서 갖는 부정적, 치명적인 의미에 비춰 볼 때 원고(문재인)가 아무리 공적 존재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감정적, 모멸적인 언사까지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순 없다.(재판부)”고 봤죠.
김성태의 혐오발언
표현의 자유가 어려운 것이 이런 까닭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다시 말해 이를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가에 관해 기준선을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에 한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야 한다(‘명백·현존 위험의 원칙’). 이 또한 칼로 무 자르듯 뚜렷한 기준선은 아니지만, 적어도 김성태보다는 합리적인 기준이 되겠지요.
다시 한 번 김성태 의원을 예로 들어 봅시다. 그는 여러 막말로 설화에 시달려왔지만,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이 발언입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기무사의 쿠데타 모의에 대해 여러 제보를 받고 폭로를 이어가자, 김성태는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분(임태훈 소장)은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는 분이다. 이 분이 군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자가 60만 군을 대표해서 군 개혁을 이야기하는 시민 단체의 수장의 목소리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김성태)
이 말은 굉장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얘기하자면, 임 소장은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본인의 성 정체성을 확고히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이 또한 김성태의 차별적인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죠.
김성태는 없는 혼란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동성애자는 군 개혁을 주도하면 안 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임태훈 소장은 군 개혁을 주도하는 입장도 아니고, 다만 여러 고발의 목소리를 취합하고 폭로한 것일 따름인데요.
김성태의 발언은, 곧 동성애자는 사회 문제를 고발할 자격조차 없다는 심각한 혐오발언입니다. 특히 김성태 같은 권력자가 이런 혐오발언을 하는 것은 실제로 성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죠. 현존하는 위협, 명백한 해악을 발생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욕죄 대신 차별금지법을
일전에 제가 ‘모욕죄는 폐지하되,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반론하더군요. 모욕죄를 폐지해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혐오발언을 단속하는 게 양립 가능하다고 보느냐고요.
네, 물론 양립 가능합니다. 저는 표현의 자유를 무한정 용인하자는 입장이 아니거든요. 현실에 위험을 일으키는 경우, 인격을 말살하는 수준의 반인륜적인 표현은 당연히 규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욕죄는 그 기준선을 전혀 제대로 긋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욕적 표현의 기준 자체부터가 이미 애매합니다. 모욕감이란 감정도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모욕죄로 보호하는 법익이란 것도 애매합니다. 김성태가 몸소 보여주었듯 정책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모욕으로 고소하는 지경입니다. 권력자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도구로 이용되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모욕죄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김성태가 몸소 보여주었듯,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은 그 자체로 현실적인 위험을 발생시킵니다. 혐오감을 드러낸다고 해서 무조건 규제해야 하는 혐오발언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예를 들어 임태훈 소장이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그는 게이’라고 아웃팅을 했습니다. 이건 허위사실이 아니지만, 그의 사회적 평판을 하락시키고 공격하려는 의도가 담긴 발언입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엄존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는 모욕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허위사실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규제가 필요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만능열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혐오발언을 경중을 따지지 않고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세요. 개신교계 단체나 정당, 언론에서 공공연히 허위사실을 퍼트리거나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를 그냥 두고 봐도 된다는 얘긴 아닙니다. 자기네들끼리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까지 규제할 수는 없을테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지금 일부 개신교계가 벌이는 수준의 공공연한 혐오범죄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성태의 고소 vs. 임태훈의 고소
마침 임태훈 소장이 김성태 원내대표를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 고소한다고 합니다. 김성태 의원은 자신의 혐오발언에 대해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검찰과 법원은 다소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테지만, 설령 그렇다 해서 그게 김성태의 발언이 질 낮고 노골적인 차별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김성태의 고소장과 임태훈 소장의 고소장이 같은 무게로 평가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모욕죄와 명예훼손죄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훨씬 너그럽게 용인되어야 합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은 지금보다 강력하게 규제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지금의 사회적 맥락에서 올바른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같은 지위를 갖고, ‘다른’ 삶의 양태로서 동등하게 존중받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 날이 온다면 차별금지법도 효용을 잃고, 폐지를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아직 아닙니다. 오늘은 김성태의 혐오발언을 규탄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를 끌어내려야 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