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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이래 케인즈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케인즈주의자였던 것처럼, 인터넷 정책이 중요 사회 정책 중 하나가 된 이래 우리 모두는 레식주의자가 됐다. (*케인스 경제학: 자유방임주의 경제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이 함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경제이론. – 편집자)

우리는 모두 레식주의자다

1999년, 지금은 하버드 로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로렌스 레식이 ‘코드와 사이버 공간의 다른 법률들(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이하 ‘코드’)’를 발표했을 때, 레식은 당시 시민 자유의 무정부 영역으로 간주되던 사이버 공간이 영리 목적에 잠식될 것을 경고했다.

로렌스 레식 Lawrence Lessig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1961년 ~ 현재)
(사진: 2008년 2월, 출처: 위키커먼스)

구체적으로 그는 할리우드가 상징하는 기존 문화 산업이 디지털 기술의 파괴적 혁신으로부터 자신의 이윤을 보존하기 위해 보호와 공유의 균형을 통해 발전해온 저작권법의 전통을 깨뜨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은 의회를 로비하고 입법 과정을 왜곡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에 유리한 제도를 창설한다. 그러한 제도는 인터넷이 대표하는 개방적 기술을 통제하고, 그를 통해 시민 자유를 제한하는 통제된 사이버 공간, 통제된 미래 사회를 만든다.

시민 참여를 통한 정치 개혁, 정치 개혁을 통한 시장 개혁

이런 레식의 기본적 논조는 그가 이후 발표한 ‘아이디어의 미래(The Future of Ideas)’, ‘자유 문화(Free Culture)’, ‘코드 2.0(Code 2.0)’, ‘리믹스(Remix)’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아이디어의 미래는 2001년, 자유 문화는 2004년, 코드 2.0은 2006년, 리믹스는 2008년에 발표됐으므로 코드 이래 평균적으로 2~3년에 한 권은 발표한 셈인데, 레식은 아이디어의 미래에서 코드의 분석틀을 확장해 인터넷의 물리적 인프라에서부터 콘텐츠 영역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기업의 영리 추구가 개방적 기술을 통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를 통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 주장한다.

Lessig_books

자유 문화와 코드 2.0에서는 개방적 기술이 어떻게 시민들이 문화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재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자신이 추진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와 같은 이용자가 스스로 설정하는 저작권 공유 라이선스와 같은 저항 운동을 통해 어떻게 대안적 미래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리믹스에서는 이러한 시민의 인터넷을 통한 문화 영역에서의 참여와 공유가 이미지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Flikr)의 사례에서 보듯 저작권 권리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새로운 상업적 가치를 창출함을 강조한다. 레식은 이러한 인터넷상 자발적 공유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모델을 하이브리드 경제(hybrid economy)라 명명했는데, 최근 유행하는 공유경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다.

잃어버린 공화국: 의회 개혁에 대한 관심

이런 레식의 사상적 흐름에서 볼 때, 2011년에 발표한 ‘잃어버린 공화국(Republic lost)’만 저작권법 등 인터넷 정책 개혁이 아니라 의회 개혁을 다뤄서 주제 측면에서 생경해 보인다. 그러나 레식의 기본적인 논지가 미국의 사이버 공간에 관련된 법과 제도가 미국 사회의 이해관계를 민주주의의 이상에 따라 균등하게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로비를 통해 의회를 움직이는 기득권 산업의 이해관계만 치우쳐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그가 의회 개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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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레식은 선거 비용의 급상승을 통해 미국 의회가 이해 단체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다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길들이지 못하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건 인터넷 정책 영역만이 아님을 감지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 내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 산업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는데, 그 이유는 은행가들이 시장의 야성적 충동(irrational exuberance)을 자극해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이후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보상을 누리는 데 반면에 그들이 끼친 손실은 공적 부조를 통해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만은 월가를 점령한 시위 등으로 가시화되었고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났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에 가담했던 존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을 패러디한 ‘잃어버린 공화국’은 이런 미국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인터넷을 통한 의정 활동 관련 데이터의 공개, 공유, 시민의 정치 참여 증대를 역설한다. 미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시민의 정치 참여를 긍정하고, 강조하는 것 역시 레식의 일관된 사상적 측면이다.

레식의 이러한 시민 참여를 통한 정치 개혁, 정치 개혁을 통한 시장 개혁의 사상은 기득권 산업은 물론이고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정부 규제가 비록 경쟁 정책의 성격을 띤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할 것이란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있다는 얘기는 달리 말하면 레식의 사이버 공간의 상업화에 대한 경고, 나아가 상업적 이윤과 정치적 권리의 공동 발전이 중요하다는 논지가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인터넷 자유를 지키려는 정치운동이 환경운동과 같이 제도화될 수 있을 것이냐는 주제의 기사를 실었을 때에도 역시 하버드 로스쿨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전문가이며 ‘망부론(The Wealth of Networks)’의 저자인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와 함께 로렌스 레식을 이러한 새로운 사회 운동의 사상적 지도자로 꼽았다.

한국 인터넷 정책 구상에 미친 레식의 영향력 

그렇게 레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인터넷 정책 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인터넷 자유 관련 시민단체 중 가장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 중 하나가 레식이 설립에 기여한 크레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의 한국 지부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Creative Commons Korea)이다. 필자 역시 이전에 발표한 책들에서 인터넷 정책을 논할 때 레식이 제시한 분석틀을 사용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그러한 논의들이 간과했던 것 중 하나는 레식의 사상적 논지의 근본은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기득권 산업의 로비를 통해 저작권 개정이 기득권 산업에 유리하게 바뀌는 것을 비판하는 근거는 그것이 지식의 공유를 강조하고 제한적 배타적 재산권으로서 지적재산권을 인정한 미국 헌법상 저작권 조항 제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가 일관되게 시민 참여를 통한 정치 운동,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같은 자발적 결사체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까닭도 그것이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강조한 미국 정치 문화의 전통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의회 개혁을 자신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 까닭도 건립 이래 미국 정치의 중심이 의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비록 레식의 분석 방법은 그의 스승이며 저명한 법경제학자인 리처드 포스너(Richard Posner)의 영향을 받아 제도경제학적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지만, 헌법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정치적 배경은 미국 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상황의 특수성, 한국 인터넷의 아이러니

그러나 한국의 상황이 레식이 그의 분석의 기초로 삼은 미국의 상황과 같을까? 그리고 같지 않다면, 레식이 일으킨 시민 참여를 통한 정치 개혁, 정치 개혁을 통한 시장 개혁의 사상을 우리는 한국 인터넷을 논하기 위하여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예를 들어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국가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인터넷 통제를 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순을 레식의 분석틀이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의 이론에 어떠한 변용이 필요한 것일까?

MITI일례로 레식의 분석틀의 초점은 의회에 맞춰져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관료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1982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정치학과 교수였던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통산성과 일본의 경제 기적(MITI and Japanese Economic Miracle)이란 책을 통해서 일본인은 미국정치를 볼 때 관료만 집중하고 의회는 간과하고 미국인은 일본사회를 볼 때 의회만 중시하고 관료의 역할은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산업 정책이 경제 발달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은 1980년대부터 성장한 정보통신산업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레식의 분석에서와는 달리 한국의 인터넷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회보다 정부 관료가 어떠한 인센티브를 통해서 정책을 만들고 있는지, 그 인센티브는 누가 제공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반독점법의 전통이 취약하다. 미국은 큰 기업(big business)의 독과점 남용에 대한 피해를 1948년에서 1967년 동안 진행된 AT&T와 카터폰 간의 소송을 통해 체감했다. 미국 주요 통신사인 AT&T는 전화기의 통화 소음을 감소시키는 카터폰의 장착을 통신 품질 저하를 명목으로 거부했다. 작년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이 국내 주요 통신사들에게 거부 당한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카터폰은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설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승소했고, 이후 팩스, 모뎀 등 새로운 혁신이 줄을 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왜 미국 정부가 1885년에 설립된 미국 굴지의 통신사인 AT&T를 반독점법에 따라 1983년 모회사에서 7개의 지역 벨 운영사(regional Bell operating companies)로 분리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준다. 독과점에 대한 견제가 하나의 전통으로 사회에 정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비록 시장 개방의 노력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있었고, IMF 이후 공격적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그 결실은 시장진입자보다 기존사업자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았다. 1987년에 ‘아시아의 다음 기적'(Asia’s Next Miracle)을 통해 한국이 학습을 통한 기술 발전, 기술 발전을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새로운 후기 발전(late development)의 모델을 보여줬다고 호평한 암스덴(Amsden)도 이렇게 시장 개방을 통해 시장 집중이 나타나는 상황에 대해서는 비판적 논조를 보인 바 있다. 이미 경제적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은 평등을 통한 자유가 아닌 자유를 통한 불평등을 강조하는 경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부가 무지하거나 무능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정부는 WTO 가입을 통해 외국 시장에 국내 통신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개방 후에도 경쟁력을 유기하기 위해 독점은 피하지만 과점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길 원했다. 그래서 1990년대 말 아이네트, 두루넷, 하나로 등 새로운 통신사업자가 반짝 등장하지만 이후 KT, SKT, LGT의 삼자 독식으로 통신시장은 금세 집중된다. 옛 정보통신부가 산업진흥과 규제를 같이 맡은 상황에서 예견된 일이었다. 산업진흥을 위한 정부의 편향된 투자와 제한된 경쟁정책이 만든 결과였다. 비록 독점이라는 최악은 피했으나, 과점이라는 차악을 택했고, 덕분에 기존사업자의 이윤은 보전됐지만, 경쟁의 제약을 통한 피해는 소비자가, 이용자가 안게 됐다. 이런 공급자 중심의 산업 발전, 사회 발전 양상은 다른 산업도 비슷하다.

통신3사의 과점 상태, “정부의 편향된 투자와 제한된 경쟁정책이 만든 결과”

다만, 인터넷은 그 양상이 더욱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그러나 민주국가 중에서 가장 통제와 검열이 심한 인터넷을 갖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권력 집중과 남용의 전통이 강한 정부가 주도하는 폐쇄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는 일찍이 배제되거나 제한됐고 산업발전의 목적하에서 이용자 보호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목표가 됐고, 그 결과로 한국 인터넷의 아이러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레식을 넘어서, 한국 인터넷을 논하라

달리 말하면, 제대로 된 한국 인터넷의 분석은 단순히 레식의 분석틀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인터넷에 대한 이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레식의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레식은 미국 사회의 전통에서, 역사에서 인터넷의 미래, 아이디어의 미래, 민주주의의 미래를 보려 했다. 한국은 지난 반 세기 동안 가난한 권위주의 국가에서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로 급변했다.

레식의 사상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레식이 했던 것처럼 한국의 역사적 배경,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인터넷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왜 특정 정책적 대안이 다른 정책적 대안보다 우선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 인터넷과 그 외에 다른 국가의 인터넷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다른지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 비교적 시각 속에서만이 한국의 인터넷이 발전이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 혹은 예외적이었는지, 그리고 그 무엇이 원인이었는 지가 분명해진다. 레식을 비롯한 주요 디지털 사상가의 주장이 어디가 옳고, 어디가 틀린 지, 그리고 무엇이 개선되어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국 인터넷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레식을 넘어서, 한국 인터넷을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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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한국의 인터넷 정책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 일면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레식의 주장을 빌려 인터넷 정책을 제안했던 시도가 한국에도 많았던 모양이군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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