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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 주요 판결을 총 6회에 걸쳐 비평합니다. 이번 글에선 일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노동자가 스스로 입증하라는 퇴행적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합니다.


지난 9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합니다. 과연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 책임을 다하였는지, ‘김명수 대법원’의 주요 판결을 통해 평가하고자 합니다.

총 6회에 걸쳐 [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을 연재합니다. 사법농단, 노동, 군인권, 여성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비평함으로써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대법원장의 교체 이후 새로운 대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판결비평에서는 일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노동자가 스스로 입증하라는 퇴행적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합니다. 산업 발달에 따라 새로운 공법과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있는 노동자의 몸, 희귀병이 생긴다면 누가 증명책임을 지는 것이 정의로울까요?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가 비평했습니다.

  1. 재판 개입은 인정! 하지만 무죄? 사법농단 임성근 대법원 판결의 ‘트릭’(유승익)
  2. 일 때문에 아프면 스스로 증명하라? 불가능 요구하는 대법원 (손익찬)
  3. 긴급조치의 야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다 (이상희)
  4. 원세훈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유죄! 특별사면은 유감 (조지훈)
  5.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지켜주는 방법 (오동석)
  6. 40여 년의 기다림: 강제추행죄 ‘최협의 폭행·협박’ 법리 폐기

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

[2] 일 때문에 아프면 스스로 증명하라? 불가능 요구하는 대법원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민변 노동위원회)

원고의 아들은 사망했다. 판결문에 고민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없지만, 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2014년 2월 24일부터 휴대전화 내장용 안테나 샘플을 채취하여 품질검사하는 일을 했다.

8주 동안 주 69시간 일하고, 휴무일은 6일뿐


고인은 2014년 4월 19일 출근 후 동료 직원과 함께 약 10분 동안 약 5kg 박스 80개를 한번에 2~3개씩 화물차에 싣는 일을 한 후, 사무실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의한 심장탐포네이드’로 사망하였다. 이에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에 아들의 죽음이 산재임을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례비를 청구했다.

고인의 업무내역은 다음과 같다. 고인은 위 회사에서 2014년 2월 24일부터 사망일인 4월 19일까지 약 8주간 일하였는데 매주 6일 출근하였고 통상적으로 8:30 출근하여 20:30 퇴근하였다(일요일의 경우 같은 시간에 출근하여 17:30경 퇴근하였다). 이 8주간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69시간이고, 발병 전 4주간은 1주당 평균 62시간을 근무했다. 3월 7일부터 25일까지는 휴무일없이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발병 전 8주간 휴무일은 6일에 불과했다.

누가 증명책임을 지는가


처분 내용과 법원 심급별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이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아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2. 제1심에서는 관련이 있다고 보아 원고 승소 판결하였다.
  3. 제2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가 드는 사정만으로는 과중한 업무로 사망하였다고 추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대법원에서는 누가 증명책임을 지는지, 즉 당사자 쌍방이 모두 열심히 주장하였으나 애매한 경우에 누가 법관을 설득시킬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종전 대법원 판결은 이를 주장하고자 하는 재해자와 유족이 증명책임을 진다고 하였는데, 그게 아니라 이 사건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이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래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에서도 여전히 증명책임은 재해자와 유족에게 있다고 보아 기존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의사나 전문가도 입증하기 어려운 걸 노동자(유족)이 스스로 입증하라고?

여전히 고인(유족)에게 입증하라는 법원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에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를 증명하여야 한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산재보험법상 다른 규정이나 사회보험 보상에 관한 다른 법령과 체계적으로 맞지도 않고, 입법자가 전혀 예정하지 않았던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어서 수긍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에서 고인이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보기 어려워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본 것이지, 원고가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사실관계의 진위불명의 상황에서 증명책임을 지는 쪽에게 불리하게 판단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애매한 경우’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증명책임, 과연 원고가 지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가?

불가능을 요구하는 법원, 과연 정의에 부합하는가.

위와 같은 대법원 다수의견에 관하여 김재형, 박정화, 김선수, 이흥구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 4명의 반대의견은 쉽게 검색이 가능하므로 이 글에서 다시 요약하지는 않겠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법리적 해석만 놓고 본다면 양쪽 다 수긍할 수 있는 면은 없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해석이 옳은지보다도, 어떤 내용의 법률이 정의에 부합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노동자가 입증책임? 불가능을 요구하는 법원


물리적·화학적 인자와 직업성 암(희귀병)의 관점에서 보자.

산업이 발달할수록 예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법과 화학물질이 인류에 소개된다. 그로 인한 이득은 사업주가 보지만, 낯선 공법과 물질로 인하여 희귀병을 얻게 되어 생명을 잃는 것은 노동자의 몸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하려면 ‘희귀병을 얻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 즉 의학적으로 기전(mechanism)이 설명될 수 있는 경우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과학적(의학적) 결론, 즉 특정한 공법/물질이 특정한 질병과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얻으려면, 대개는 유사한 조건의 집단과의 비교 결과, 즉 역학적(epidemiological)으로도 유의미한 결과값이 나와야 한다. 과학계의 통설로 인정되려면, 한두 개의 논문도 아니고 여러 개의 논문이 있어야 한다. 대개는 수십 년의 추적관찰 결과 겨우 하나의 결론을 얻게 된다: 예를 들면 ‘벤젠 노출은 백혈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의학적 기전이 설명되는 경우인 이상, 이를 부인하는 쪽에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이 정의에 부합할 수 있다. 낯선 공법과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일개’ 노동자가 그 공장에서 사용되는 물질과 위험요인을 특정하여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중앙선관위 제공.

돈에 방해되면 연구조차 ‘거의 없다’ 그걸 어떻게 입증하나


또한, 인류는 A 물질과 B 물질이 더해질 경우 어떤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약리학(Pharmacology)을 통해서 그나마 연구되고 있다(약을 팔면 돈이 되기 때문에). 반면에 A와 B가 더해질 경우 어떤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물론 몇 가지 예외는 있다: 흡연자가 석면에 노출되면 더 쉽게 폐암에 걸릴 수 있다 등). 이러한 연구는 해봤자 돈이 안 되기 때문이고, 오히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행정적 규제를 만들 수 있어 ‘돈이 되는 것을 방해만 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앞으로도 복합노출에 따른 악영향은 연구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산업현장의 노동자는 대개 복합적으로 노출된다. 이 분야에서의 연구가 부진한 것을 노동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따라서 적어도 희귀질병(암)의 경우라면, 원고 측에서 적어도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진 의학적 기전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재해자가 어느 정도 충분히 노출이 되었다면, 특별한 반증이 없는 이상 재해를 보상해 줌이 타당하다고 보인다.

대법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대법원이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바뀐 해석론을 내놓을 경우에 그것이 입법을 추동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변화된 상황에 관한 고민없이 기존의 고루한 해석론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40번째 이야기

– 사망 노동자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 주심 김재형 대법관, 2017두45933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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