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면 길이 된다’ 북살롱 텍스트북 북토크 지상중계
“스위스는 빵 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는 사고가 발생하면 당장 국정조사 들어갑니다. 난리나요.”
우리는 노동자가 다치고 죽는 것에 둔감한 나라다. 어쩌다 누군가의 드라마틱한 비극에 관심 가질 뿐 대체로 노동자가 날마다 죽어가는 현실에 관심이 없다. 그게 이상한 거란다.
경제학 박사로 노동을 연구해온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을 저서 ‘같이 가면 길이 된다’ 북토크 기회로 29일 만났다. IL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분이라 서울서 뵙는 기회가 귀했다. 내가 목요일마다 서점 매니저로 일하는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열린 덕분에 북토크 사회를 맡았다. 질문마다 거침 없는 답변에 후련한 동시에 막막한 기분도 들었다. ‘슬로우뉴스’ 민노 편집장이 북토크 녹취록을 전해주신 덕에 정리해본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산업재해 후진국, 그래도 되니까
2022년 국내 산재 사망자 874명. 다친 사람은 10만7214명이다. 우리 산재 규모, 세계에서 어떤 수준일까?
“후진국, 그냥 후진국이예요. 세계적으로 보면 국민소득 올라가면서 산재 사망률이 떨어져요. 한국은 그 그래프에서 혼자 뚝 떨어져있는 아웃라이어여요. 패턴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경제력이 부족해서?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산재 예방) 강제력이 떨어져요. 기본적으로 기업이 산재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돈 버는 데 지장이 없어요.”
잘 살게 됐어도 산재 사망이 끔찍하게 많은 나라. 사실 주변에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중산층, 일반 직장인들은 대체로 안전하다고 했다. 위험을 외주화해 영세한 일터의 늙은 노동자에게 떠넘긴 탓이다. 작은 사업장에서, 혹은 맨날 사고 나는 곳에서 또 난다. 이것도 우리만 그런가?
”우리나라처럼 3차 4차 하청 구조가 복잡한 곳이 없어요. 다른 나라들은 하청 구조도 단순해요. 하청에 재하청을 하는 이유는 원청에서 위험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죠. 일감만 몰아주는게 아니라 산업재해를 몰아주고 있어요.”
이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산재는 우선 정부 책임입니다. 헌법이 명시한 생명권을 지키지 못한 거죠.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빈 공간이 많아서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업이 빠져나갈 방법을 너무 잘 알아요. 세 번째로 세계 어느 나라든 법이 효과를 내려면 사회적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사회적 힘이 있는지, 그 힘을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려면 원인을 찾는 보도가 나와야 하는데, 꽃다운 청춘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드라마만 나와요. 산재가 왜 발생했는지, 금방 잊혀집니다.”
사회적 힘을 지지하기 위해 이상헌 국장은 이 책의 인세를 전액 ‘생명안전 시민넷’에 기부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과 기업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 책임에 도움되는 일을 찾았다. 생명안전 시민넷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생명권을 좀 더 법제화하자는 것인데,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 기존 것들을 묶은 겁니다. 다른 나라에 비슷한 사례가 없다고 하는데, 한국의 산재가 특수합니다. 예외적이고요. 그러니까 법도 특별한 게 필요한거죠.”
목소리를 내거나 탈출하거나
노동조합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시선은 차갑다. 교사모임을 비롯해 노조 대신 ‘모임’이라고 정체성을 말하는 직역 단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가 후진적이라 그런지 탈정치를 위해 다들 애쓴다.
“실제 조사해보면 노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70~80%로 아주 높은 편인데요. 지금 현존하는 노조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대기업 노조는 산재 위험이 낮은데 체계적으로 위험을 하청화하잖아요.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식인데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큰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놀랍지 않은 현상입니다. 미국에서도 거대노조, 작은 노조 있었는데, 이후 비정규직 노조가 커졌죠.”
책에는 노조 조직률이 올라가고, 단체협약까지 이뤄지면 기업 생산성이 10% 이상 상승하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노조 천국 노르웨이 조사라지만, 노조는 원래 기업과 노동자의 윈윈을 위한 조직 아닐까?
“(문제 발생시) 노동자에게는 두 가지 전략이 있어요. 목소리를 내거나, 탈출하거나. 전자가 훨씬 더 이익입니다. 기업에게도 그게 좋아요. 다만 20세기 초, 영국 기업들도 노동자가 배우면 말을 안듣는다고 했어요. 기업은 간혹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비경제적 이유, 노동자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불매운동은 1년 이상 해야 효과, 더 과격해도 된다
우리는 노동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노동자는 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받는지,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유럽에서는 마치 기술을 가르치듯 어릴 때부터 노동을 가르치고, 노조 간부가 와서 교육도 한단다. 우리는 다 노동자이면서 노동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 ILO 제네바 본부에 한국인은 이 국장을 비롯해 3명이 있다. 국민소득 비율로 보면 20~30명은 있어야 하는데 턱없이 적다. 예전에는 노동문제에 열정적인 지원자들의 영어 실력이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영어를 잘하는데 노동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ILO의 요즘 현안이 무엇인지 참석자 질문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는 글로벌 스탠더드 규정이 없어요. 플랫폼 노동자 문제를 놓고 전 세계에서 논의가 치열한 편입니다. 2~3년 내에 기준 등 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SPC 불매하고 쿠팡 안 쓰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내 마음의 평화에만 도움될 뿐, 불매운동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하는데요. 불매운동은 오랫동안 불편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1년 이상은 해야 효과가 있어요. 외국에서는 불매운동이 아주 과격해요. 우리는 영업방해 등으로 걸리지만, 조금 더 과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을 살리자고 하는 거니까요. 유럽에서는 불매운동하면 기업에 타격이 커요. 그리고 당연히 정부가 반응하고, 기업에 여러 제약이 생깁니다.”
쿠팡을 불매한다는 참석자는 “새벽에 나가보면, 쿠팡 택배기사들은 그래도 야광 띠가 부착된 옷이라도 입고 있는데 SSG나 마켓컬리는 어두운 작업복이라 더 위험해 보인다”며 근본적으로 새벽배송을 문제 삼는게 아니라 산재가 발생한 회사만 집중 비난하는 방식의 소비자 움직임에 질문을 던졌다. 결국 관심 문제다.
”정치적 가십에만 관심도 많고 보도도 많은데요. 사람의 일상에 관한 보도가 너무 없어요. 추상적인 이야기들만 보도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기업 입장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8월14일 ‘택배 없는 날’, 다른 업체들과 달리 쿠팡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자신감 같아요.”
야간 노동, 하겠다고 해도 시키면 안 된다
새벽배송을 거부하는 나는 24시간 가동이 필수적인 공장의 교대근무 외에 발암물질을 남긴다는 야근에 반대하지만, 이것도 소비자가 나서야 하는 문제일까?
“야간 노동은 당연히 객관적으로 문제가 돼요. 유럽은 야간 노동 못하게 되어 있어요. 야간 노동은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루이틀은 괜찮아도 5년 10년 하면 문제가 생겨요. 노동자가 원하고,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하면 안 된다는게 유럽 노동법의 규제 원리입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안전은 어떤 경제적인 이해관계보다 상위에 있어요. 그것을 위협하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약자인 노동자들끼리 하청에 재하청으로 위험을 떠넘기는데, 여기에 이주노동자가 등장했다. 마치 시혜적 관점에서 일자리를 준다는 시선도 심각하지만 최근 안성 공사장의 붕괴사고 사망자는 모두 외국인이었다.
“한국은 고령화에 인구감소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이주노동자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요? 데이터를 보면 이미 위험의 외주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산재 위험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ILO에도 관련 협약이 있지만 다 맞추기는 힘들어요. 할 게 너무 많아요. 법적으로 어떻게 대우할지, 노동법상 지위도 그렇고,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3~4년 간 100만 명 이상 들어올텐데,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굉장히 차별적이어요. 이런 랭킹은 없지만 세계 탑10에 들 것 같아요.”
경제학자인데, 경제학과 공감을 어떻게 결합했냐는 참석자 질문도 인상적이었다.
“원래 경제학에서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 이전에 쓴 책이 ‘도덕감정론’입니다. 그 책 핵심이 공감이어요. 결국 서로 믿으면서 따지지 않으니까 비용이 줄어들고 효율성이 생기는 게 경제학이거든요. 경제학이 어느 순간 그런 이야기를 쏙 빼놓았네요.”
“사회적 힘이 필요하다”
이상헌 국장은 ILO에서 노동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바꾸는 일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일자리가 많으면 축하할 일이 아니라 경제 걱정을 하고 나서는 경제학 말고, 노동의 편에 서는 경제학. 이 국장의 다음 책은 아마, 좋은 일자리가 왜 부족한지 찬찬히 살피는 얘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노동 현안은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다 노동자인 우리 일이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희망을 붙잡고 늦은밤 북토크에 모인 이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같이 변화를 모색하든, 더 시끄럽게 떠들든 뭐든 하겠지.
인상..표정..니트 상의..상전 어부인을 곳곳에서 배려하는 화법..노동 데이터를 많이 참고하는 전문가의 거침없고 한편으론..소박한 답변들이 좋았습니다..혹시! 빠다 냄새가 나는 작가 또는 정치적 or 사회갈등 이념 전파에 치우치는 작가가 아니길 바랬는데..살짝 살짝 피해가는 그의 균형감 있던 답변에 만족합니다..”성덕”을 받은 진행자..(그쵸 ㅎㅎ) 뜻밖으로 유려하게 핵심을 간결하게 잘 전하는 톡톡 튀는 진행 솜씨는 압권이었다 라고 평가하고 싶어요..그날 어찌나 졸았던지(전전날 3일 연강으로 기운이 쪽~빠져서), 이상헌 국장은 현직에서 정년 퇴직을 하길 바래요.. 졸음 꾹~ 참고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