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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

  • “미국은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판매를 늘리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 윤석열(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하루 앞둔 4월24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런 보도를 내보냈다.
  • (한국 스타일로 번역하자면)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according to people familiar with the situation)”이라고 언급했을 뿐 취재원을 밝히지는 않았다.

두 번째 에피소드.

  •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로스엔젤레스타임스 기자가 물었다.
  • “중국에서 반도체 제조를 제한하는 정책이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 동맹국(=한국)이 피해를 받게 하면서 국내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인가.” 동맹이라면서 이래도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 바이든은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이러한 반도체에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윈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윤석열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이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세 번째 에피소드.

  • 중국 정부가 5월21일 마이크론의 제품에 심각한 보안 위험이 있다면서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 미국 하원의원 마이크 갤러거(Gallagher)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 “그동안 중국 공산당의 강요를 직접 경험한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은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backfilling)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 동맹이니까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이리저리 채이고 있는데 한국 언론은 정작 계속 물을 먹고 있다.
  • 대통령실도 굳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
  •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
  • 국민들은 외신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뿐이다.

윤석열은 다음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늘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는가.
  • 있다면, 한국 정부는 뭐라고 답변했는가.
  •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대가로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될 텐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는가.
  • 중국과 대화를 하고 있는가.
  •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실 공식 입장은 이것 뿐이다.

  • 중국의 마이크론 제제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문제다.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협의하는지 잘 보면서 우리도 대응하겠다.”
  •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의견서를 보냈는데 중국 공장의 “실질적인 확장(material expansion)” 제한 범위를 5%에서 10%로 늘려달라는 내용이다. 미국 관보에 실렸다.
  • 미국과 중국이 노골적으로 내정 간섭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출을 하든 말든 한국 기업이 판단할 문제고 한국 정부는 한국 기업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이 정도의 발언도 못 하나.

거짓말도 계속 하고 있다.

  •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이 수십만 발의 포탄을 옮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밝혀 왔는데 거짓말을 한 것이다.
  • 미국 CIA에서 유출된 문건에 따르면 김태효(국가안보실 차장)는 “‘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을 맞바꾼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면서 “포탄을 폴란드에 판매해 ‘우회 지원’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공개된 정보의 상당 부분이 위조됐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포탄 지원을 논의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 미국에 질질 끌려가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들통이 났는데도 해명도 없다.
  •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주어가 빠진 것”이라고 변명했다. 뒤늦게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한국어 녹취 원문을 공개했지만 역시 사과도 해명도 없었다.

어떻게 될까.

  • 중국 관련해서는 디커플링(단절)이 아니라 디리스킹(위험 관리)이 글로벌 화두다. 아무리 한미동맹이 절박한 상황이라도 한국은 중국과 척을 질 수 없다.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위험을 관리하면서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출 가운데 40%가 중국이다. 조선일보가 “중국 공장 철수에 대비한 플랜 B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매우 무책임한 선동이다. 이 신문은 도대체 한미 동맹 밖에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윤석열이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시간을 좀 더 끌면 주도권을 놓칠 위험도 있다.
  • 지금 윤석열이 대통령이란 게 한국 사회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지난 한 달의 상황을 지켜보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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