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고속도로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대통령 부인 소유의 땅으로 노선을 구부러지게 만드는 게 가능할까. 그게 아니라면 왜 예타(예비타당성조사)까지 끝낸 사업을 뒤집었을까.
지금까지 나온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새 정부 출범 직후 노선이 바뀌었는데 마침 우연히도 그 고속도로 종점에 김건희 땅이 있었을 뿐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드러난 바 없다는 게 현실적인 결론이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싶지만 여기서 더 나가려면 의혹을 넘어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어느 쪽이든 밀리면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원희룡(국토교통부 장관)이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설레발을 쳤고 백지화하겠다고 했다가 민주당이 사과를 하면 다시 시작하겠다고 물러선 상태다. 이재명(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요구를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은 그야말로 총공세를 펼쳤지만 강력한 한 방이 없었다.
- 자료도 충분히 공개됐고 사안의 실체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대립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징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쟁점은.
- 첫째, 원안과 개편안 가운데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분석과 주장이 엇갈린다. 국토교통부가 개편안을 밀어붙이면서 비용편익 분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판단이 쉽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원래 비용편익 분석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이 끝난 뒤에 하는 거라고 해명한 바 있다.)
- 둘째, 원안과 개편안은 완전히 다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노선의 절반 이상이 바뀌는 데다 사업의 성격도 다르고 예산도 1000억 원 가까이 늘어난다. 하지만 예타를 끝낸 사업을 뒤집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과거에도 예타를 마친 고속도로 24건 가운데 14건이 시작점이나 종점을 변경한 사실이 있다. 사업비가 평균 17% 늘어났다.
- 셋째, 왜 바꿨는지를 알려면 언제 바꿨는지를 봐야 한다. 원안이 예타를 통과한 건 2021년 4월, 개편안이 발표된 건 2023년 5월8일이다. 그런데 타당성 조사를 시작한 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3월이고 두 달 동안 검토 끝에 5월19일 개편안을 내놓았다. 두 달 만에 수천억 원 사업을, 그것도 용역업체가 뒤집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윗선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윤석열 당선이 확정된 게 3월10일이고 취임이 5월10일이다. 인수위 차원에서 손을 썼다고 보기엔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다. 게다가 용역업체들은 둘 다 문재인 정부 때 선정됐다.
- 세 가지 쟁점 모두 민주당에게는 불리하다. 국토부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민주당의 의혹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더 깊게 읽기.
-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춘천-양양 고속도로와 연결시킬 경우 10km 가까이 돌아가게 된다는 노컷뉴스 보도가 있었다. 원희룡은 특별히 이 기사를 찍어 “가짜 도면을 유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노컷뉴스의 지도는 언뜻 보면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하지만 양평과 춘천을 잇는 선은 국토교통부 지도에는 없다. 국토교통부가 만든 도면이 아니라 노컷뉴스가 임의로 선을 그어 만든 예상도라는 게 원희룡의 주장이고 실제로 국토부 계획에도 없다.
- 원희룡은 “서울-춘천 교통 정체를 해소한다는 목적은 계속 살아 있다”면서도 “이것을 서울춘천고속도로에 연결시킨다는 그 표현이 나오는 순간부터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언젠가 나중에 연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 노컷뉴스의 기사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혹이지만 상당한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예타 해킹이다.”
- 김대중(행정학자)은 얼룩소 기고에서 “이왕 시작한 논쟁을 생산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면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개편한 노선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았으면 통과할 수 있었겠느냐다”라고 주장했다.
- 김대중은 개편안으로는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국토부가 처음부터 개편안을 염두에 두고 예타를 통과하기 쉬운 원안을 밀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단 예타만 통과하면 국토부 맘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예타 해킹’이라고 부른다.)
- 이번 기회에 예타를 가볍게 던지고 본타에서 뒤집는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김대중의 주장이다.
- 실제로 예타 신청서를 보면 양평군의 수요 보다는 수도권 지역 교통 정체를 강조하면서 가장 길이가 짧고 비용이 적게 드는 노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양평을 잇기만 한다면 애초에 종점이 어딘지는 예타 단계에서 중요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래서 늘공과 어공의 차이가 있구나.”
- 원희룡이 이런 말을 했다. “어공이었다면 눈치를 봤을 텐데 늘공들이 원칙대로 처리하다 보니 논란을 키웠다”는 이야기다.
- 그렇다면 김건희 땅이 거기에 있었던 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 이미 2017년에 국토교통부 1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에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포함됐고 2019년에 예타 기준이 낮아지면서 양평 도심 특히 JTC와 가까운 곳에 땅을 살 이유가 충분했을 수도 있다. 김대중은 “그때만 하더라도 윤석렬이 야권의 대선주자가 될 것이라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보면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면서 “루틴대로 투자에 나섰고 성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남은 쟁점.
-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시스템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이게 예외적인 사건이고 김건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사건의 실체가 뭐든 김건희와 무관하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다.
- 용역업체들(동해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이 문재인 정부 때 선정됐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고 민주당은 누가 선정했든 그 업체들이 두 달 만에 전혀 다른 종점을 들고 나온 데는 윗선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는 의혹을 흘리고 있다.
-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면 용역업체들이 임의로 예타를 뒤집지는 않았을 것이고 국토부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진실을 확인하고 싶으면 이 부분을 파면 된다.
지금 이야기해야 할 것.
- 뒤바뀐 노선과 김건희 땅의 상관 관계는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 애초에 예타가 끝난 사업을 국토부가 임의로 뒤집는 게 가능하다는 게 이번에 드러났다. 오랜 관행이었다고 하지만 얼마든지 특정 이해 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경향신문은 “김건희 라인 살아나도 정부는 예타 건너 뛴다”고 보도했다. 예타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문재인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149개 사업에 예타를 면제한 데 이어 비수도권 사업에 지역 균형발전 가중치를 높였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비수도권 SOC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는 비율이 개편 전 52%에서 개편 후 89%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예타 면제가 늘고 예타 기준을 높여 잡는 등 예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에도 어느 정도 원죄가 있다는 이야기다.
- 김건희 고속도로 논란을 파헤치는 것 못지 않게 구멍난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토부가 과거에도 예타를 뒤집는 경우가 많았다고 반박한 건 뒤바뀐 그래서 이 고속도로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수많은 논란과 의혹이 묻혀 있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해야 한다.
- 그래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은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정말 절묘하게도 우연히 그 자리에 김건희 땅이 있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김건희를 둘러싼 의혹과 별개로 누더기가 된 예타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게 이 사건의 교훈이다. 그 과정에서 이 사건의 실체도 드러날 것이다.
윤석열은 대통령 선거 당일인 2022년 3월 10일에 당선되었으며, 2022년 5월 10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원희룡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으로 2022년 3월 13일에 임명되었으며, 국토건설부 장관으로는 2022년 5월 16일에 취임하였습니다. 인수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과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감원 연수원과 금융연수원은 서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인수위는 총 7개의 분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분과별로 인수위원장 안철수, 부위원장 권영세, 기획위원장 원희룡, 취임준비위원장 박주선 등 총 24명의 인수위원, 73명의 전문위원, 73명의 실무위원, 그리고 5명의 부동산 전문가 등 총 18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조직은 3월 17일에 발표되었으며, 금융연수원 별관 인수위에 입주한 날짜는 3월 20일입니다. 대통령 당선인과 비서실, 인수위원장, 부위원장 등이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입주한 날짜는 3월 14일입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도로공사에서 건설처장, 혁신본부장 및 R&D본부장을 역임한 조사장은 도로공사를 퇴직한 후, 동해종합기술 SOC사업부문 사장으로서 취임하였습니다. 조사장은 입사한 지 약 2개월여만인 3월15일에 서울-양평고속도로 타당성 용역계약을 수주하였으며, (총용역부기금액 1,942,677,000원, 계약보증금액 194,267,700원, 계약금액 1,860,000,000원)으로 발주처 조달청에서 계약번호 22010149, 관리번호 2291037-00으로 조달청과 계약일자는 2022년 3월29일 이다. 과업을 시작한 날짜는 3월29일입니다. 그리고 약 50여일 뒤인 5월19일에 ‘타당성조사 착수보고서’를 제출한 후 용역비로 약 18억 원을 받았습니다. 이 착수보고서에는 종점을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하는 대안이 등장합니다. 경향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윤석열은 인수위가 구성되기도 전인 시점에서 양평고속도로 변경안이 최우선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즉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유는 “돈 때문” 이었습니다